일은 일일 뿐이다.

Gos&Op 2013.06.21 08: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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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들로부터 (회사 외부) '일은 재미있냐?'라는 질문을 종종 듣는다. 그러면 '일이 재미있으면 일이 아니죠'라고 짧게 말하고 긴 얘기는 피하는 편이다. 나도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보통 회사 내부) '재미있는 일 없냐?'라고 묻곤 한다. 업무 외적으로 재미있는 일/이벤트가 없냐는 뜻도 있지만, 회사에서 내가 재미있게 빠져들만한 일이 없느냐는 뜻도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뭔가를 기대하고 묻는 질문은 아니다.

2013:06:25 11:22:48때마침 올라온 미생 138수. http://cartoon.media.daum.net/webtoon/viewer/21407

그런데 일이 재미있어야 하는가? 프로에게는 일이 재미있을 필요가 없다. 재미가 선택을 위한 한 요소는 되겠지만 절대적이지 않다. 일이 재미있으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그냥 아마추어에 불과하다. 재미있는 일만 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안전한 전쟁에만 참전하겠다고 말하는 용병과 같다. 일은 그냥 일일 뿐이다. 프로라면 계약한 사항을 완수하고 어쩌면 그것 이상을 해주는 사람이다. 맡은 일을 재미있게 할 수는 있으나, 재미있는 일만 하겠다는 것은 프로의 자세가 아니다.

일을 통해서 자아를 실현하겠다는 것도 어리석은 생각이다. 잘 생각해보기 바란다. 일을 통해서 무슨 자아가 실현되겠나? 일을 열심히 하면 인정을 받고 승진을 하고 두둑한 연봉이 보장될 수는 있지만, 그런 것이 자아실현은 아니지 않는가? 장래희망이 사장이 되는 사람이 그렇게 일을 해서 사장이 된다고 하면 장래희망은 충족시켰겠지만, 그게 꿈의 완성도 아니고 자아의 실현도 아니다. 꿈이나 자아라는 것이 그렇게 물질적이지 않다. 일은 그냥 일일 뿐이다. 자아실현을 하겠다면 일보다 더 의미있는 것을 찾는 게 낫다.

때로는 속물이 더 진실하다. 누군가는 내게 배신감을 느낄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지금 돈을 벌기 위해서 일한다. 선언적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일이 재미있어서도 아니고 자아실현을 위한 수단도 아니다. 당장 영혼을 팔지는 않겠지만 더 많이 얻을 수 있다면 당연히 그걸 취할 거다. 이게 프로의 자세고 윤리다. 용병은 이미 전쟁에서 이기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필사적이다. 나도 지금 살기 위해서 일을 할 뿐이다. 아직은 그저 살고 싶을 뿐이다.

일이란 재미있을 수도 재미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프로에겐 그게 중요치가 않다. 좋든 싫든 해야만 하는 일에 자신의 모든 능력과 에너지를 쏟아부어서 맡은 일을 완수하면 된다. 그 과정이 즐거우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문제가 될 것이 없다.

(2013.06.17 작성 / 2013.06.21 공개)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unexperienc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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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도 글을 적었는데 (다음에서의 3년 3 Years in Daum), 또 1년의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업무적으로는 지난해의 포스팅에서 크게 다를 바도 없습니다. 그냥 무난하게 보낸 1년정도로 평가하면 됩니다. 무난함이 제 인생을 설명하는 유일한 키워드가 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생깁니다. 4년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면서 점점 한계에도 부딪힌다는 느낌도 받습니다. 삶이 도전이 아니라 일상이 되면서부터 그날이 그날입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냥 주어진 24시간 이상의 의미를 갖기가 어렵습니다.

 지난 주말에 애월 해안도로를 드라이브하면서 문득 스쳐간 생각이 있습니다. 제주에 내려온지도 4년이지만 나는 제주에서 어떤 사람인가?라는 의문이었습니다. 뭍사람들은 제주하면 관광지로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4년동안 제주에서 살면서 관광객으로의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제주의 토박이 현지인으로 융합되지도 못했습니다. 여전히 그들에게는 저는 낯선 이방인으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제 성격에 극적인 변화가 없는 이상은 제가 현지에 유합되어 살기도 어려워 보입니다. 그래서 결심을 했습니다. 제주에서 관광객으로 한번 살아보자라는 결심입니다. 4년동안 많은 곳들 돌아다녔고 꽤 유명한 식당들도 돌아다녔지만, 늘 관광객이 아닌 그냥 지친 삶의 여유를 위한 순간의 산책이었고 굶주린 배를 채워주기 위해서 맛집들을 돌아다녔습니다. 어느 한 순간도 그냥 편하게 즐기기 위해서 제주를 돌아다녀보지도 못했던 것같습니다. 그래서 5년차를 맞으면서 이제 관광객의 삶을 살아보고 싶어졌습니다. 여유와 자유의 시간을...

 그러고 보니 지난 1년은 제주에 제대로 정착하기 위한 노력의 시간이었습니다. 4월 봄부터 계속 제주의 단독/전원주택을 알아보고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제주의 부동산 특성도 많이 파악했고, 내가 가진 능력이 너무 작다는 것도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누구도 인정해주도 않는 높아진 저의 눈만 확인했습니다. 가진 것은 없으면서 눈만 높으니 아직 집을 구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현실에 타협하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차선책으로 직접 주택을 지어볼까?라는 고민이 계속되는데, 5년차를 접어들면서 부동산 경기에 대한 걱정도 생겨나고 다음에서의 제 삶이 언제까지 이어질까라는 현실적인 걱정도 생겼습니다. 이 현실적인 걱정 때문에 관광객으로써의 삶을 살고 싶다는 욕구로 발전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한해도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습니다. 더 좋은 서비스에 대한 생각들도 있었고, 더 멋진 삶에 대한 생각들도 있었습니다. 서비스에 대한 얘기는 이 글에서는 일단 접어두겠습니다. 더 멋진 삶에 대한 생각 중에 하나는 바로 제주의 삶에 대한 책을 적어보는 것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주위의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과 십시일반 글을 모아서 책으로 엮어보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올해는 더욱더 관광객으로의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더 많은 곳을 다니고 더 많은 경험을 쌓아야지 하나의 잘 익은 책으로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새롭게 카메라도 장만해서 더 멋진 풍경들도 담고 싶습니다. 더 많은 나만의 추억이 더 많은 우리의 유산으로 남기고 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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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삶을 설명하는 세가지 키워드가 있습니다. 현재까지 그렇게 살았다는 의미보다는 그렇게 살겠다는 다짐의 키워드입니다. 여러 번 밝혔는 것같은데 바로 자유 다양 재미입니다. 삶은 자유로워야 합니다. 삶에서 다양성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삶이 재미있어야 합니다. 이것들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면 우리는 빈곤한 삶을 살게 됩니다. 상상력이 빈곤해지고 열정이 빈곤해지고 도전이 빈곤해집니다. 첵바퀴 일상에서는 상상력도 열정도 도전도 필요없습니다. 그런 삶은 자유도 다양도 재미도 없는 삶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관광객으로 살기는 이 세가지 키워드를 잘 설명해주는 것같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제 삶에는 반감기가 있습니다. 처음 20년은 경산에서 살았습니다. 다음 10년은 포항에서 지냈습니다. 그러면 제주에서의 삶은 5년정도가 될까요? 그렇다면 올해가 더욱더 중요한 해가 될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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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동안 적고 싶었던 글인데 (사실 어떤 식으로 글을 적을지 전혀 구상은 되어있지 않음), 오늘 도로사정상 퇴근을 못하고 사무실을 혼자 지키고 있으면서 이런저런 글/생각을 적을려고 합니다. 제주에는 어제 밤부터 눈이 계속 내리고 있습니다. 많은 양이 내린 것은 아닌데, 한라산 중산간에 있는 집으로 통하는 길은 이미 어려붙어서 통행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한번 퇴근을 시도했다가 사무실에 돌아와있습니다. 여느 글들과 마찬가지고 글의 논리흐름이 엉망입니다. 글을 적는 순서를 꺼꾸로 적을 예정이라서 글의 흐름이 더 많이 꼬여있습니다.

 최근에 자주 '21세기는 유희의 시대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 머리에서 나온 결론은 아니지만,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 저를 붙잡습니다. 제러미 러프킨의 '소유의 종말 Age of Access'를 읽은 이후로 이 생각이 확고해졌는 듯합니다. 그 전에도 은연 중에 느끼고는 있었지만, '유희의 시대'에 도립했다는 결론은 못 내리고 있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현재의 여러 사건/흐름들을 보면서 그 결론이 맞다는 생각이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유희의 시대를 다른 말로 소비의 시대로도 말할 수 있습니다. 완전히 똑같은 말은 아니지만 여러 맥락에서 그렇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지금까지 유희/놀이가 없었다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더 큰 유희의 시대가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여러 단계상 지금을 유희의 시대로 불러도 괜찮겠다는 것입니다. 21세기를 유희의 시대/세기라고 부른다면 지난 19/20세기는 생산/노동의 시대정도로 불러도 될 듯합니다. 대량생산 Mass-Production의 시대가 20세기였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21세기도 여전히 대량생산이 경제체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앨빈 토플러의 정의에 따르면 19/20세기는 제조업의 시대였고, 21세기는 정보의 시대가 되겠죠. 정보의 시대는 정보의 생산보다 정보의 소비가 더 중요한 시대입니다. 그래서 소비의 시대라 부릅니다. 그리고 그런 정보가 단순히 삶을 유지하기 위한 영양소같은 정보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더욱 윤활하게 해주는 그런 촉매제같은 정보들이 범람하고 그런 것들을 소비하고 즐기기 때문에 유희의 시대라고 정의 내립니다.

 지금 정보의 시대, 소비의 시대, 유희의 시대에는 모든 제품이나 서비스가 갖춰야할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Play & Fun'입니다. 21세기에 성공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는 재미있어야 합니다. 그 제품이나 서비스를 소비하는 사용자들은 그냥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즐기고 나서 얻는 것이 바로 재미입니다. 고단한 회사의 업무도 플레이&펀의 영역에 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시대의 젊은이들은 재미가 없으면 더 이상 흥미가 없습니다. 자기 입에 풀칠만 할 수 있다면 더 많은 돈이나 명예보다는 더 많은 자유를 택할 것입니다. (물론, 불확실성이라는 미래의 특징을 어떻게 매니징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지금 내가 만들고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자/소비자들이 쉽게 즐기면서 사용할 수 있는가? 그래서 그들은 재미/FUN을 얻어가는가?를 물어보면서 제품/서비스를 기획하고 개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 제품/서비스는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을 것입니다.

 플레이&펀 이전의 제품들은 Look&Feel정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제품/서비스가 쉬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 사용하는 소비자들도 매뉴얼의 도움이 없이 그냥 턴온/턴오프를 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애플의 제품들이 룩&필에 성공했기 때문에 지금 유수의 기업들보다 앞서가고 있습니다. 잡스의 키노트에서 자주 말했던 'It just works'이라는 말은 그런 룩앤필에 대한 것입니다. 그것을 만들기까지 수많은 노력을 기울렸고, 수면 아래의 제품 설계/개발에서는 엄청난 복잡도가 있었지만 최종 결과물에서는 그런 모둔 수고와 복잡성이 모두 감춰지고 단지 손에 잡힐듯한 심플한 제품/서비스만 남습니다. 그런 미니멀리즘 또는 심플리서티가 바로 룩앤필 시대의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런 애플의 디자인이나 사용성이 이제 점점 대중에 전파되고 있습니다. 이런 대중성 또는 보편성 이후에 제품의 차별화 또는 독창성을 주기 위해서 필요한 것인 플레인앤펀이라고 생각합니다.

 룩앤필 이전의 제품들은 어쩌면 make&work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듯합니다. 어떻게든 제품/서비스를 만들어야 했던 시대입니다. 원래 아무 것도 없었던 무의 시대였기에 어떤 모양/기능의 제품이더라도 사용자의 필요를 충족시켜줄 수가 있었다면 판매가 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대량생산체계에서 프레스로 찍어내면 팔리던 그런 시대 말입니다. 그런 시대의 정신이 바로 메이크&워크가 아니었을까요? 그런 시대를 종언한 시도가 바로 애플의 룩앤필입니다. 물론 애플만이 아닙니다. 다이슨이라던가 아이데오같은 회사들도 그런 궁극의 사용성을 보장해주는 디자인의 제품들을 설계/생산했습니다. 메이크&워크 시대에는 그냥 만들기만 하면 팔리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더 싸게 만드러서 더 싸게 판매하는 것으로 가격전쟁이 벌어졌습니다. 그런 가격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규모의 경제가 필요했고, 더 대량생산에 치중했습니다. 그런 (가격전쟁) 틈바구니에서 살아남는 다른 전략으로 소니나 도요타 등의 일본기업들은 품질이라는 전략을 들고 나왔습니다. 우수한 품질의 제품은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았고, 그래서 더 비싼 가격에 판매되었습니다. 그렇게 기능, 가격, 품질이 보편화된 시점에 나왔던 디자인 차별화/독창성이 큰 무기였습니다. 20세말과 21세기 초의 애플의 모습이 바로 그것입니다.

 초기 포드의 T모델로 대변되는 미국의 자동차는 마차를 대신해줬기 때문에 자동차산업이 형성되었습니다. 독일의 자동차가 성공했던 것은 우수한 기능이었습니다. 지금 현대차가 미국에서 성공하는 이유는 (저렴한) 가격입니다. (물론,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유지하면서도 낮은 가격이기에 사람들의 선택을 받는 것이겠죠.) 일본 도요타가 미국시장을 석권하는 이유는 우수한 품질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몇년동안 그리고 앞으로 몇년 사이에 앞서 말한 기능, 가격, 품질은 거의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이를 것입니다. 이 시점에 여러 기업들이 들고 나온 것이 독특한 디자인의 차동차들입니다. 스포츠/슈퍼카들은 성능이 우수하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사용자들에게 주는 멋스러움이 주가되고, 또 미니쿠퍼를 비롯한 박스형자동차 등도 새로운 트렌드/디자인을 무기로 들고나온 케이스입니다. SUV는 그런 흐름에 역행하게도 기능에 초점을 맞췄는데, 안타깝게도 고유가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한발 후퇴할 것으로 보입니다. 자동차 산업에서 기능, 가격, 품질, 디자인... 그 이후는 어쩌면, 필연적으로, 재미라는 요소일 겁니다. 재미라는 것은 단순히 '웃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경험', 좋은 경험을 뜻합니다.

저렴함의 시대는 갔습니다. 복잡함의 시대도 갔습니다. 아름다움의 시대도 갔습니다. 이제 모든 제품/서비스가 웬만하면 저렴하고, 단순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렇기에 그 제품/서비스에 재미를 첨가해야 합니다. 이제 제품을 판매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경험을 판매하는 시대입니다. 새로운 차원의 경험을 제공해준다면 새로운 브랜드가 탄생할 것입니다. 저렴함이 브랜드였던 시대, 다기능이 브랜드였던 시대, 심미주의가 브랜드였던 시대... 이제는 재미가 브랜드인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당신의 제품과 서비스는 사용자들에게 어떤 경험, 재미를 주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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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의 검색 In Public?

Gos&Op 2011.12.06 09: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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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잠시 떠오른 생각으로 시리즈를 이어갈까합니다. 답을 제시하는 글이 아닙니다. 그냥 저의 궁금증에 대한 나열입니다. 지난 글들은...
 1. 재미있는 검색. FUN 
 2. 잉여자들을 위한 검색 Search As Fun
 3. 잉여를 위한 검색은 없다. No Search for Abundance/Surplus
 4. 잉여의 나라로 Into Real World
 5. 검색의 재미 검색의 잉여 Fun of Search
 6. 잉여와 잉여자, 그리고 검색 Abundance & Surplus
 7. 재미를 위한 인터넷. 그렇다면 검색도 가능? Not that purpose only.

 작년에 소셜네트워크의 현상에 대해서 '허영의 또는 허영 위에 세워진 왕국'이라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의 SNS를 이용하는 것이 단지 정보의 습득보다는 자기 자신을 뽐내기 위해서 많이 사용한다는 의미였습니다. 경제학자 베블린 Thorstein Veblen[각주:1]이 말한 과시적 소비 Conspicuous Consumption (보통, 베블린효과 Veblen Effect로 알려진 것)이 이뤄지는 대표적인 (인터넷) 공간이 소셜서비스입니다. 물론 그 전에 있던 많은 커뮤니티 서비스에서도 그런 과시적 행위가 많았지만, 그 공간이 더욱 사적으로 바뀌면서 과시의 정도가 더 심해진 듯합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 자주 언급하는 내용은 '나 XXX에 왔어' '나 XXX랑 있어' '나 XXX를 먹고 있어' '나 XXX를 샀어' '나 XXX를 선물받았어'... 등의 글을 자주 올리게 됩니다. 이런 종류의 조금 사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나는 XXX (전문정보)를 알고 있어'류의 글이 타임라인/뉴스피드에 많이 올라옵니다. 위의 글에서 공통적으로 빠져있는 문장이 있습니다. (물론 가끔은 명시적으로 표현되었지만) 그것은 바로 '... 부럽지?'입니다. 많은 트윗이나 뉴스피드를 분석해보면 "나는 이런 멋진 곳에서, 멋진 사람이랑, 멋진 음식을 먹고, 멋진 물건을 소비/선물받고, 또는 이런 어려운 지식을 알고 있는데, 넌 이거 없지? 그러니 부럽지?" 이런 식의 글들입니다. 이것이 베블렌이 경제/소비생활에서 밝견했던 과시적 소비의 인터넷/온라인 버전이 아니면 뭘까요?

 그런데, 이 글의 주제는 소셜이 아니라 검색입니다. 검색에서도 이런 과시적 소비가 이뤄질 수 있을까? 그리고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과시적 소비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가 오늘 아침에 갑자기 든 의문입니다. 검색은 소셜과 달릴 더 개인적인 영역입니다. 이걸 공적인 영역으로 끌어낼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어떤 정보를 찾고자할 때 주로 검색을 이용합니다. 어떤 정보/지식을 찾는다는 것은 지금 그 정보/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 또는 잘 모른다는 것이 밑에 깔려있는 가정입니다. 소셜에서는 '나는 이걸 알고 있다. 또는 이걸 가지고 있다'가 전제가 되어서 '너는 이걸 모르지? 또는 이걸 알려줄까?'로 이어지는 과시행위로 이어졌는데, 검색에서는 '나는 이걸 모른다'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네가 내가 이걸 모른다는 걸 알면 안 된다 (그러니 검색해서 충분히 알고 난 뒤에 아는 척 하겠어)'는 의식이 깔려있습니다. (항상 그렇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더우기, 아주 특수한 케이스지만 어제도 방송인 H씨의 스캔들 비디오가 이슈가 되었지만, 그런 종류의 음성정보를 찾기 위해서도 검색을 많이 이용합니다. 진짜 궁금하고 낯이 두꺼운 경우에는 공공장소에서 'XX비디오'를 찾고 있어요라고 친구/지인들에게 부탁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보통 사적인 장소나 사적인 커뮤니티 또는 그런 것만을 주로 취급하는 곳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음), 보통의 경우는 인터넷 검색창에서 관련된 키워드를 입력해서 그런 데이터를 얻고자 합니다. 

 요약하면, 소셜이 양지의 서비스라면 검색은 (일종의) 음지의 서비스입니다. 이런 음지를 지향하는 서비스가 이전 글들에서 말했던 그런 (양지의) 재미를 제공해줄 수 있을까? '나는 이걸 찾아봤어. 너도 궁금해?'를 쉽고 가볍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 생각을 해보면 모든 검색의 주제가 음지에 있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특히 미디어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사안들에 대해서는 양지에서 소통되고 논의되어야하는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유머/사진/동영상을 발견했을 때 친구들에게 공유한다거나.. (그런데 그런 유머는 검색을 통해서라기 보다는 게시판이나 다른 친구들의 글을 통해서 얻는 경우가 더 많죠. 그래서 이렇게 회자되는 정보를 하나로 묶어서 보여주려는 서비스 시도가 종종 있었습니다.) 가벼운 글보다는 어쩌면 사회의 어두웁거나 무거운 사건 (예를들어, 선관위 DDoS공격 (아닌 것같지만) 사건이나 총선/대선 등의 선거, 자연재난재해, 사건사고 등)을 검색을 통해서 쉽게 유통시킬 수는 있을 것같습니다. (그런데 이게 검색의 양지화인가???) 단순히 검색결과에 대한 공유버튼을 추가하는 것으로는 이뤄지기 힘들 듯합니다. 검색이 양지의 플랫폼으로 만들어줘야 가능할 것같은데, 그런 플랫폼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1. http://en.wikipedia.org/wiki/Thorstein_Veblen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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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글타래를 이어갑니다. 오늘은 장황하게 글을 적지 않고 그냥 의미있는 설문조사 결과/기사만 소개합니다. (퓨리서치)
 1. 재미있는 검색. FUN
 2. 잉여자들을 위한 검색 Search As Fun
 3. 잉여를 위한 검색은 없다. No Search for Abundance/Surplus
 4. 잉여의 나라로 Into Real World
 5. 검색의 재미 검색의 잉여 Fun of Search
 6. 잉여와 잉여자, 그리고 검색 Abundance & Surplus

 재미있는 설문조사가 퓨리서치에서 발표했습니다. 미국 성인들의 과반수 이상이 재미로 인터넷에 접속한다는 조사결과입니다. (퓨리서치의 원본 리포트) 논란의 여지가 없게 하기 위해서 퓨리서치의 원본글을 인용하겠습니다.
These results come in the larger context that internet users of all ages are much more likely now than in the past to say they go online for no particular reason other than to pass the time or have fun. Some 58% of all adults (or 74% of all online adults) say they use the internet this way. And a third of all adults (34%) say they used the internet that way “yesterday” – or the day before Pew Internet reached them for the survey.1 Both figures are higher than in 2009 when we last asked this question and vastly higher than in the middle of the last decade.
 대강 번역하자면 "모든 연령대의 인터넷 사용자들이, 과거에 비해서, 특정한 이유를 갖고 인터넷 (온라인)에 접속하는 것보다 그냥 시간을 보내거나 재미를 위해서 인터넷에 접속한다. 모든 성인의 59% 또는 모든 온라인 성인의 74%는 인터넷을 그런 용도로 사용한다고 답했다. 그리고 34%의 성인들이 설문조사 전날 그런 용도로 인터넷을 사용했다고 답했다. 그런 경향은 같은 질문이 마지막으로 조사된 2009년보다 높아졌고, 10년전보다는 월등히 많이 증가했다"입니다.  (아래 그래프 참조) * 재미있는 것은 그래프에서 보듯이 2009년과 비교해서 장년과 노년층에서는 그런 트렌드가 다소 누그러졌지만, 젊은층에서는 더욱 커졌다는 것. 나이가 들수록 인터넷피로도도 커졌다는 의미일까요?
 

지난 10년간 인터넷을 시간떼우기 또는 재미를 위해서 사용한다는 응답률의 각 연령대별 추이도.


 사람들에게 늘리 퍼진 가장 일반적인 가정은  '인터넷 = 정보의 바다'입니다. 즉, 인터넷은 정보를 탐색하기 위해서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의 조사결과에서 보듯이 단지 그 목적으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위에서 응답한 60%의 사용자들의 대부분이 인터넷을 이용하는 첫번째 목적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그러나 단지 정보만을 얻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인터넷이 우리의 삶에 더욱 밀접하게 연결될 수록 우리의 삶도 인터넷에 더욱 밀접해진다는 것입니다. (말장난처럼...) 모든 제품이나 서비스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 목적/의도와 다른 진화된 용도로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재미를 얻는다는 의미는 (일단 온라인게임을 제외하고) 인터넷에서 원래 궁금했던 사항이 아닌 정보를 탐독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올드미디어 시절에 집으로 배달되는 신문의 모든 헤드라인을 훑어보거나 (또는 전체 기사를 읽어보거나) 특정시간대에 방송되는 뉴스를 시청하듯이, 지금 우리는 포털에 접속해서 전체 또는 특정 섹션의 기사들을 훑어보고 있습니다. 필요한 특정 정보를 얻는다는 의미보다는 어떤 의미에서 시간을 떼우기 위한 행위입니다. 그나마 뉴스기사 (물론 제대로 적은 기사)는 정보성 컨텐츠지만, 그 외에 다양한 재미있는 유머나 사연, 이미지, 동영상 등을 감상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더우기 소셜미디어에서는 친구들과의 수다도 정보성보다는 오락성에 더 가깝습니다. 위의 그래프에서 보듯이 젊은 성인일수록 재미를 위해 인터넷을 사용한다는 응답률이 높다는 것도 큰 의미/시사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보의 바다 인터넷에서의 꽃인 검색도... 검색도 충분히 재미를 위해서 사용될 수 있고 또 재미를 위한 검색도 가능하다는 결론은 너무 성급한 것일까요? 검색이 그런 용도 FUN로 사용되는 것에 문제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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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섯번째 글입니다. 글의 시작은 재미있는 검색을 만들자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바쁜 현대인들에게 잠깐의 기쁨을 줄 수도 있겠으나, 그것보다는 잠시라도 여유를 찾은 이들에게 검색이 어떤 혜택을 줄 수 있을까로 이야기가 흘러갔고, 재미있는 검색을 논하기 전에 검색이 줄 수 있는 재미는 어떤 것이 있을까?라는 물음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핵심된 내용이 정리되지 못하고 지난 다섯편의 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 논의흐름의 맥이 될 '잉여는 무엇이고 잉여자는 누구인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대상으로 삼고 싶었던 그들이 누구이며 그들의 속성이나 성향을 알지 못하면서 그들에게 재미를 주겠다는 어설픈 논의는 핵심을 벗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먼저 지난 다섯편의 논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재미있는 검색. FUN
 2. 잉여자들을 위한 검색 Search As Fun
 3. 잉여를 위한 검색은 없다. No Search for Abundance/Surplus
 4. 잉여의 나라로 Into Real World
 5. 검색의 재미 검색의 잉여 Fun of Search

 과연 잉여는 무엇일까요? 잉여를 그냥 나머지, 떨거지로 생각한다면 이전 글에서 짧게 언급했던 소비 또는 유희의 시대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입니다. 잉여란 단지 필요가 없어서 남는 것이 아닙니다. 잉여란 많아서 흘러넘침을 뜻합니다. 가둘 수 있는 통의 용량은 제한되어있는데, 그것보다 더 많이 들어와서 흘러넘치는 상태입니다. 돈의 잉여라면 벼락부자, 졸부가 자신의 부를 주체하지 못해서 마구잡이로 돈을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를 이미 충족시키고 또 그 이상의 기본 욕망을 충족시키도 남아서 그것을 더 가치있는 곳에 사용하는 것이 잉여입니다. 시간의 잉여도 단지 할 일이 없어서 빈둥거리는 것이 잉여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고, 그리고 고갈된 에너지를 재충전한 상태에서 (충분한 재충전의 의미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자신의 본업도 아니고 그렇다고 휴식도 아니지만 개인 또는 사회적으로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시간의 잉여일 것입니다. 소비의 시대는 무조건 자신의 가진 것을 허비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유희의 시대는 단지 재미를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소비와 유희의 말에는 더 고차원의 중용이 있습니다. 일에 따른 휴식 그리고 그 이상이 잉여입니다. 

 잉여자는 그런 잉여의 가치를 알고 그것을 즐기는 자입니다. 단지 시간이나 돈이 남아돌아서 마구잡이로 허비하는 사람에게 잉여자라는 별칭을 붙이기 어렵습니다. '잉여자'가 주는 어감이 조금 부정적인 것은 압니다. 지금 논의에서는 구시대적 관점이나 가치에서 붙여진 그 부정적 '잉여/잉여자'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잉여자는 플러스알파의 가치를 아는 사람입니다. 잉여자는 그냥 (돈이나) 시간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을 가치있게 활용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잠깐. 음 고백하자면.. '잉여'라는 용어는 박상민님의 '소프트웨어, 잉여과 공포'라는 글에서 가져왔습니다. 글하단의 '참고' 참고.)

 앞에서 돈과 시간을 얘기했지만, 잉여를 말할 때는 '돈'보다는 '시간'에 관계된 것같습니다. 사람의 시간을 구분해보면 '일/업 + 휴식 + alpha'정도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일의 종류가 다르고, 휴식의 방법도 다르고, 알파의 유무도 다를 것입니다. 직장인은 직장에서 주어진 업무가 일이지만, 학생은 (학교)공부가 일이 됩니다. 그리고 휴식의 방법도 단순히 잠을 자는 것에서부터 음식을 먹는 것, 마사지나 사우나를 하거나, 독서나 TV시청/게임 등의 개인차기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은 일과 휴식의 시간은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논의에서 어떤 일/휴식을 가졌느냐 또는 얼마나 일/휴식을 하느냐보다는 알파의 유무나 크기의 차이가 중요합니다. 이 알파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뉴욕대학교 교수인 클레이 셔키 Clay Shirky의 <많아지면 달라진다 Surplus Cognitive>에서 주장하는 사회를 위해 더 가치있는 기여로 발전하느냐를 결정합니다. 

 휴식을 넘어서는 부분에서 (시간의) 잉여가 시작하고, 그 잉여휴식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그리고, 제 글의 시리즈에서, 그 지점에서 검색이 어떤 기여를 하고 가치를 줄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불필요하게 추가된 잠이나 TV시청, 게이밍을 다른 더 가치있는 실내/야외활동으로 전환시킬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잠이나 TV시청 등에 더 중요한 가치는 두는 이들에게서 그것들을 빼았을 생각은 없습니다. 지금 논점에서는 필요이상의 그것들, 즉 잉여에 대한 얘기입니다.) 시간이 있는 (그리고 조금이라도 의지가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더 창의적인 활동의 무대로 끌어들일 것인가? 야외에서 레즈스포츠를 즐긴다거나 실내에서 독서 등의 취미활동을 한다거나... (잠이나 TV/게임 등이 취미일 수도 있죠.^^) 이 지점에서 검색이 도와줘야 합니다. 그래서 검색의 '추천'기능과 '노하우'기능이 필요합니다. 추천은 말그대로 영화나 도서 등을 사용자에게 알려주는 것이고, 노하우는 (단순 지식iN이라는 Q&A서비스가 아닌) DIY를 위해서 가이드를 해주는 것입니다. (추천과 노하우에 대한 내용은 지금 그리고 내년에 제가 담당할 일과 연결된 부분이라 지금 당장은 자세한 설명을 생략합니다. 몇 개월 후에 또 다른 기회를 통해서 어떻게 추천할 것인가? 또 어떻게 노하우를 발견/공유할 것인가? 등에 대한 주제를 만들어보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테마검색이나 실세계검색이 이 추천과 노하우와 맥이 통합니다. 테마검색이나 실세계검색은 별 생각없이 막던졌던 용어인데, 지금보니 추천/노하우의 전형입니다. 그런데, 이 추천과 노하우 (또는 테마검색과 실세계검색)이 합쳐지면 'Act-How'가 됩니다. 앎으로써의 지식이 아닌 행함으로써의 지식.

 ** 참고. 박상민씨의 '소프트 한국'이라는 제목으로 현재 6편까지 연재되어있습니다.
 1. 소프트웨어, 공포와 잉여 
 2. 영웅이 탄생하기 힘든 나라
 3. 실무형 인재란 없다!
 4. 세상을 바꾸는 '잉여인'
 5. 지식의 역사, 소프트웨어
 6. 안드로이드? 진짜는 아마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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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TA 때문에 두개의 글을 적기 전에 연속으로 4편의 글을 적었습니다. 오늘 그 시리즈를 조금 이어갈까합니다. 지금 제목만 생각났을 뿐, 어떤 내용으로 이야기가 구체화되고 전개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시작합니다. 시작을 해야 생각을 이어갈 수 있고 글을 마무리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FTA 문제도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결론이 나고 세상이 바뀝니다.) 재미있는 검색에 대한 저의 이전 담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재미있는 검색. FUN
 2. 잉여자들을 위한 검색 Search As Fun
 3. 잉여를 위한 검색은 없다. No Search for Abundance/Surplus
 4. 잉여의 나라로 Into Real World

 미리 말씀드리지만, 아래는 두서없는 글입니다. 결론도 정답도 없습니다. 설마 끝까지 읽고 욕하지 마십시오. 미리 경고했습니다.

 처음 글을 적기 시작한 것은 '검색은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것에 더해서 '검색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명제로 시작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을 위해서 어떤 모습으로 검색이 가능할까를 생각하면서, 말도 안 될 수도 있지만, 검색게임이라는 것도 생각해봤고, 테마를 정해놓고 A-to-Z를 보여주는 테마검색, 그리고 온라인에서 뿐만 아니라 실세계에서 즐길 수 있는 놀이거리를 제공하는 실세계검색 등의 이야기를 펼쳤습니다. 처음부터 '검색은 재미있어야 된다'라는 생각에서 이런 연속의 글을 적었습니다.

 그런데 방금 뿌나를 보면서 갑자기 든 생각이 있었습니다. 검색은 재미있어야 된다. 그런데 '검색의 재미'는 뭘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그래서 잠시 닫혔던 이 글시리즈를 다시 열었습니다. 검색의 재미는 뭘까요? 검색의 재미를 제대로 파악해낸다면 역으로 재미있는 검색을만들 수도 있을 것같습니다. 일종의 리버스 엔지니어링 Reverse Engineering입니다. 사실 제가 이 글들을 적으면서 처음부터 결론을 이를 생각이 없었습니다. 더우기 지금의 의문 '검색의 재미는 무엇일까?'는 어느 한 사람의 생각으로 정리될 문제가 아닙니다. 막상 글을 적기 시작하니 저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질문을 오픈 쿼스쳔 Open Question으로 남겨놓으려 합니다. 정말 무책임하죠?

 한번 TV 시청을 시작하면 쉽게 TV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그래서 독서 등의 다른 행위를 할 시간이 부족해지기 때문에 일주일에 정해진 몇 편의 TV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TV시청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특히 연속극의 경우 몰입의 정도가 심하기 때문에, 매번 조심스럽습니다. 그렇게 조심한다고 하면서도 덫에 걸려들었습니다. 바로 '뿌리깊은 나무'입니다. 뿌나의 경우 내용전개도 재미있지만 그 속에 더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고, 그 의미가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과도 너무나 서로 닿아있습니다. (군왕의 도리와 백성의 삶. 지금 위정자들의 배신과 FTA정국, 언론은 왜곡되어있고 그래서 더욱 언로가 막혀버리고, 신문방송의 통제를 넘어 인터넷/SNS의 통제까지도 넘보고 있는 작금의 상황을 500년 전 세종의 한글창제 정신에 비추면 너무 한심하고 부끄럽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검색을 업으로 삼고 있는 본인에게 너무 많은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검색이란 무엇인가? 내가 지금 검색서비스를 왜 만들려고 하고 있는가? 과연 내가 세종이 백성들을각하는 것과 비견될만큼 다음검색을 사용하는 유저들에게 유익과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 모든 서비스를 기획, 개발하고 있는가? 등의 질문이 끊이질 않습니다. 지금 인터넷이라는 것이 500년 전의 문자 (한글창제)와도 너무 닿아있습니다. 

 결국 재미있는 검색이란 없습니다. 사용자들에게 가치를 줄 수만 있으면 그것이 바로 재미있는 검색입니다. 역으로 검색의 재미는 사용자의 가치충족과 만족일 듯합니다. 검색은 유저들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해줄 수 있을까? 원론적으로 정확한 질의에 대한 답변정도. 그렇지만, 단순히 문자화/디지털화된 문서/정보가 아니라 그 이상의 삶을 줘야 합니다. 삶. 그것이 실세계입니다. 인터넷에 의존해서 살아가지만 우리는 여전히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주는 하나의 통로로써 검색이 역할을 할수 있을까요? 아니 그런 검색을 만들 수 있을까요? 

 데이터의 발굴, 정보의 습득, 지식의 발견에 더해서 삶의 지혜를 경험하는 것. 그것이 검색이 줄 수 있는 최고의 가치이고 재미일 듯합니다. 그런데 검색이 삶의 지혜를 줄 수 있을까? 무엇이 지혜인가? 또 어떻게 그걸 만들 수 있는가? 발견의 즐거움보다 더 큰 행동의 즐거움을주는 검색서비스를 꿈꿔봅니다. ... 누군가는 꿈을 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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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금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사람들이 내게 일을 부탁할 때, '이거 중요한 거에요'나 '이거 급한 거에요'라고 하지 말고, '이거 재미있는 거에요'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중요하고 급한 건 너네 사정이고, 난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단 말이야. (원문링크)


 사람마다 자신의 가치관을 표현하는 몇 개의 단어가 있을 거다. 내게 있어 그런 첫번째 단어는 '자유'다. 사람들에 따라서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 자유의 뜻이 달리 사용될 수 있겠지만, 어쨌든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 중에 하나가 바로 '자유'다. 그런데 자유가 나의 가장 기본되는 모토라고 해서 모든 상황에서 자유만을 추구할 수가 없다. 어쨌던 나는 '나름' 이타적인 인간이기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사회 속에서는 나의 자유를 희생할 때도 있다. 그런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일'이다. 혼자만의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 아닌, 여러 사람들 틈에서 함께 일을 해가기 위해서는 나만의 영역을 때론 포기하기도 하고 또 남의 가치를 수용하기도 해야 한다. (물론, 난 이 면에서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매번 동료들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상처를 주면서 또 가장 아픈 사람은 나 자신이지만...) 그래서 일이라는 컨텍스트 내에서는 나의 가치는 자유보다는 재미로 바뀐다. 물론, 자유로운 일에서 오는 즐거움이면 더 좋겠지만, 일이라는 것이 자유로울 수는 없으니... 나는 일을 즐겁게 하고 싶다. 그런데, 일이라는 게 계약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 즉 타율에 의해서 행하는 것이기에 많은 경우 즐거울 수가 없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과연 일이 즐거울 수가 있는가?

 과연 일이 즐거울 수가 있는가?
 뭐, 가장 간단하게는 내 마음자세를 바꾸면 일이 즐거워질 수도 있다. 일단 나 자신을 버리고 나의 어리석은 자존심을 버리고 그냥 그렇게 물흐르듯이 일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건 즐겁게 일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동료들과 트러블을 발생시키지 않는 방편일 뿐이다. 적어도 나 자신을 희생해서 동료는 즐거울 수가 있을 것같다. 시키면 시키는대로 다 알아서 해주는 일종의 꼬봉이 생긴셈이니, 회사 생활이 안 즐거울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난 천성적으로 그렇게 마냥 허허 하면서 일을 해주는 경우가 없다. 그래서 다시 질문으로 돌아간다. 과연 일이 즐거울 수가 있는가? 즐거울 수가 있기도 하다. 단, '즐거운 일'을 하는 경우에 한해서. 그렇다. 그러니 내게 일을 부탁하거나 시킬 때 그 일의 중요도나 시급성으로 날 꼬시려들지 말고, 그 일이 정말 재미있는 일이라고 날 꼬셨으면 좋겠다. 아무리 중요한 일이더라도 내가 느끼는 재미가 없으면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뭘까? 어찌어찌해서 KPI/인사고과는 잘 받을 수 있는지 몰라도, 내가 그 일을 하는 동안에는 난 그냥 일개 일꾼에 불과하지 않을까? 뭐, 비슷한 취지로 이런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언제부턴가 개발자들이 마술상자가 되었다. 그냥 손만 집어넣으면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줄 안다. 그런데 더 미련한 것은 누군가 손을 넣으면 또 그가 원하는 것을 쥐어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그걸 해결해주려고 밤을 새는 개발자 자신... (원문링크)


 그렇다, 나는 지금 누군가가 아주 급하다고 말하면서 부탁한 일을 처리해주느라고 지금 이 시간 (22:00)에 사무실에 앉아서 이 글을 적고 있다. 이 일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도 있지만, 사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내가 먼저 알아서 이 일을 해줬다면 지금쯤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회사에 들어온지 3년이 흘쩍 지났지만 아직도 대학원병에서 완치되지 못했다. '대학원병'이란, 언제든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연구실에 가서 그 일을 처리하는 걸 말한다. 어떤 의미에서 부정적이지만, 나는 상당히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한다. 병이라고 표현하니 좀 그런데 Graduated Syndrome이라고 표현하자. 나는 천성적으로 올빼미형 인간이다. 저녁에 잠이 들기 전에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많이 떠오른다. 학교에 있을 때는 가끔 그런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일어나서 컴퓨터를 켜거나 연구실로 달려가곤 했다. 다른 이들이 보면 넌 왜 그렇게 사니?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난 그런 삶이 좋았다. 학교에서 실험을 해서 논문을 쓰는 것이 내 일이었고,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고, 또 내가 재밌어 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내가 맡고 있는 일이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인가?라는 생각과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일인가?라는 의문을 자주 던지게 된다. 아직 대학원병에서 완치되지 못했다고 했다. 요즘도 가끔 밤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일어나서 사무실에서 바로 구현해보고 싶은 충동을 많이 느낀다. 그런데 내가 왜 그렇게 해야하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냥 아이폰 메모장에 아이디어만 짧막하게 메모해두고 그냥 잠이 든다. 내가 잠을 자다 말고 밤늦게 사무실에 나와서 밤을 새며 일한다고 해서 내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렇게 나는 내 즐거움을 포기하면서 내 병을 고쳐가고 있다.

 ... 우울한 개발자의 넋두리는 계속된다. (참고로 난 다음에 들어와서 '개발자'라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 난 늘 다음의 서비스의 사용자일 뿐이다. 일반 사용자들보다 조금 더 긴밀하게 그 서비스를 바꿔갈 수 있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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