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들로부터 (회사 외부) '일은 재미있냐?'라는 질문을 종종 듣는다. 그러면 '일이 재미있으면 일이 아니죠'라고 짧게 말하고 긴 얘기는 피하는 편이다. 나도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보통 회사 내부) '재미있는 일 없냐?'라고 묻곤 한다. 업무 외적으로 재미있는 일/이벤트가 없냐는 뜻도 있지만, 회사에서 내가 재미있게 빠져들만한 일이 없느냐는 뜻도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뭔가를 기대하고 묻는 질문은 아니다.
때마침 올라온 미생 138수. http://cartoon.media.daum.net/webtoon/viewer/21407
그런데 일이 재미있어야 하는가? 프로에게는 일이 재미있을 필요가 없다. 재미가 선택을 위한 한 요소는 되겠지만 절대적이지 않다. 일이 재미있으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그냥 아마추어에 불과하다. 재미있는 일만 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안전한 전쟁에만 참전하겠다고 말하는 용병과 같다. 일은 그냥 일일 뿐이다. 프로라면 계약한 사항을 완수하고 어쩌면 그것 이상을 해주는 사람이다. 맡은 일을 재미있게 할 수는 있으나, 재미있는 일만 하겠다는 것은 프로의 자세가 아니다.
일을 통해서 자아를 실현하겠다는 것도 어리석은 생각이다. 잘 생각해보기 바란다. 일을 통해서 무슨 자아가 실현되겠나? 일을 열심히 하면 인정을 받고 승진을 하고 두둑한 연봉이 보장될 수는 있지만, 그런 것이 자아실현은 아니지 않는가? 장래희망이 사장이 되는 사람이 그렇게 일을 해서 사장이 된다고 하면 장래희망은 충족시켰겠지만, 그게 꿈의 완성도 아니고 자아의 실현도 아니다. 꿈이나 자아라는 것이 그렇게 물질적이지 않다. 일은 그냥 일일 뿐이다. 자아실현을 하겠다면 일보다 더 의미있는 것을 찾는 게 낫다.
때로는 속물이 더 진실하다. 누군가는 내게 배신감을 느낄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지금 돈을 벌기 위해서 일한다. 선언적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일이 재미있어서도 아니고 자아실현을 위한 수단도 아니다. 당장 영혼을 팔지는 않겠지만 더 많이 얻을 수 있다면 당연히 그걸 취할 거다. 이게 프로의 자세고 윤리다. 용병은 이미 전쟁에서 이기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필사적이다. 나도 지금 살기 위해서 일을 할 뿐이다. 아직은 그저 살고 싶을 뿐이다.
일이란 재미있을 수도 재미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프로에겐 그게 중요치가 않다. 좋든 싫든 해야만 하는 일에 자신의 모든 능력과 에너지를 쏟아부어서 맡은 일을 완수하면 된다. 그 과정이 즐거우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문제가 될 것이 없다.
(2013.06.17 작성 / 2013.06.21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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