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Pin It
보름열흘 후면 다음을 거쳐 카카오에 입사한지 만 9년이 됩니다. 한두달 전부터 당일 아지트 (카카오 사내 게시판)에 올릴 글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음 시절부터 3년 주기로 안식휴가가 나오는데, 다음 9년차는 2개월의 휴가가 나옵니다 (합병 후에 안식휴가 체계를 변경했지만, 기존 입사자에게는 선택권 있음). 6년차 1개월 휴가를 아직 사용하지 않았고, 미사용 작년 연차와 올해 연차를 모두 합치면 총 4개월의 시간을 만들 수 있는데,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관해서 글을 적으려 했습니다. 선택지는… 1. 공부 2. 여행 3. 이직 4. 집필 5. 무념 6. 기타…

하지만 약 한달 전에 광고 노출과 관련된 로직을 개발하는 부서에 겸직하면서 휴가 계획은 또 잠정 보류했습니다. 2017년을 시작하면서 그동안 미뤄뒀던 딥러닝을 비롯해서 데이터 과학 알고리즘들을 다시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논문도 읽고 오픈소스도 다운받아서 설치, 실행해보고 있었습니다. 최근 몇 년동안은 늘 주말 이틀동안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는데, 올해는 하루는 돌아다니고 하루는 공부하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겸직으로 잠시 이어오던 패턴이 바뀌었습니다. 범용의 데이터 관련 논문들은 다시 잠시 미뤄두고, 현업에 필요한 온라인 최적화나 트래픽 예측 등을 다룬 논문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팀에서 필요한 Go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간 1996년에 C언어라는 걸 수업에서 배웠고 (C는 배웠다는 것만 기억하는 수준), 2000년을 전후로 Java를 공부했는데 10여년이 흘러서 새로운 언어를 또 공부하게 됐습니다. 중간에 대학원에서는 MatLab을, 다음 시절에는 SAS를 이용해서 데이터 분석 코드를 작성하기도 했고 필요에 따라서 펄, PHP, 파이썬 등의 코드도 수정해서 사용하기도 했지만, 랭귀지를 완전히 새로 공부하는 건 참 오랜만입니다. C를 배우면서 제일 어려웠던 — 여전히 이해와 활용의 한계를 넘지 못한 — 포인터가 Go에 그대로 있고, C 이후에 소개된 새로운 개념들이 복잡하게 썪여있어서 20대에 헤매던 것 이상을 40대에 다시 재현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한글책 한권에 의존해서 그냥 읽어나가는 수준이라 익숙치가 않지만 현업에 사용되는 코드도 리뷰하고 새로 짜다보면 어느 순간 또 익숙해지리라 믿을 뿐입니다.

데이터 마이닝팀에서 7년을 보내고 제주/판교 로케이션 문제가 겹쳐서 2년 전에 광고팀으로 소속을 옮겼습니다. 데이터 기반으로 더 정교한 타게팅 및 랭킹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계획으로 소속을 옮겼지만, 합병 이후의 조직 변경 및 전략 수정에 따른 혼돈의 시간을 보내면서 데이터를 보는 시간은 점점더 줄어들고 업무적 자존감은 바닥을 쳤습니다. 논문을 다시 읽은 것도 자존감을 회복하자는 것과 또 역량을 키우면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컸습니다. 개발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데이터 다루는 쪽으로 다시 돌아가리라는 생각을 계속 가지던 차에, 비즈추천셀에 결원이 발생해서 혹시 함께 해보지 않겠느냐는 연락을 받고 수락을 했습니다. 평소에 함께 일해보고 싶었던 친구가 있는 셀이라서 합류 결정을 쉽게 내렸는데, 이후에 알고보니 그 친구는 조만간 다른 회사로 떠난다고...

지금은 그 친구가 떠나기 전에 그의 지식과 경험을 전수받고 있습니다. 산업공학을 전공하면서 최적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여전히 온라인 최적화 방법은 참 낯섭니다. OR 수업을 들으면서 LP를 공부했고 정상적인 고등학교 수학을 이수해서 미적분이나 확률통계를 다 공부해서 기초적인 것은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SGD 류의 알고리즘을 익히려니 학생 때 난 뭘 배웠나라는 한숨만 나옵니다. 알고리즘을 소개한 논문을 읽을 때면 당장 내가 사용할 것도 아닌데라는 생각으로 자세한 이해는 매번 뒤로 미뤘는데 결국 그것들과 친해져야할 시간이 됐습니다. 강의를 듣거나 수식을 풀어줄 때만 머리에 잠시 스쳐갈 뿐 다시 논문을 집어들면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FTRL 알고리즘으로 CTR을 예측하고 OWLQN 알고리즘으로 전환률을 예측하고 ARIMA로 트래픽량을 예측하고 또 새로운 과금식으로 자동입찰 로직을 만들고… 공부해야할 것과 새로 만들어야할 것들이 많지만, 어떤 면에서는 지금이 행복합니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나라는 고민을 잊도록 눈코 뜰 새 없이 일에 묻혀 시간을 보낼 때가 오히려 더 행복을 느낍니다. 이게 학습된 노예 근성일지라도…

작년 하반기부터 준비하던 프로젝트가 아직 진행중이어서 여전히 광고팀에 소속돼있습니다. 앞서 업무적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고 적었지만 광고에 소속된 지난 2년이 무의미하고 무가치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광고 비즈니스와 플랫폼, 즉 광고 도메인에 관한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습득했습니다. 그것이 저의 앞길에 어떤 도움을 줄지 아니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지는 모르겠지만 광고를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인터넷/모바일 회사에 들어왔다면 광고 업무는 언젠가 -- 보통 퇴사 전 마지막? -- 잠시라도 몸담아서 익힐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회사들이 광고로 매출을 올리고 있지만 그들의 비즈니스 근간을 전혀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서비스를 기획개발하겠다는 이들이 많습니다. 광고팀에 소속하기 전에는 저도 그런 부류였지만 이제는 서비스뿐만 아니라 광고도 어느 정도 알게됐습니다. 비즈추천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있고 어떤 기여를 할지 지금은 모르겠지만 경험은 배신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물론 시간을 경험으로 바꾸는 것은 오롯이 저의 역할입니다.

작년 가을 쯤에 제주를 떠나서 새로운 모험을 하지 않을까?라는 나름의 계획이 또 1년 미뤄졌습니다. 제주를 떠난다는 것은 곧 회사를 떠난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는 선택입니다. 또 올해 가을 쯤에 제주를 떠나야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마지막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단지 더 이기적이고 더 모질지 못했을 뿐입니다. 최근 주변에서 많은 이들이 새로운 도전을 찾아서 회사를 떠나고 있습니다. 그럴 때면 매번 저는 남들보다 뒤쳐진 것이 아닌가라는 불안감을 느낍니다.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그런 맥락입니다. 발버둥쳐서 새로운 도전의 길에 들어선 것은 아니지만, 자반타반으로 어쨌든 도전의 길에, 아니 항상 도전의 길에 서있었습니다. 도전. 제 인생에서 참 낯선 단어지만 한편으로는 늘 함께 했던 단어입니다. 가만히 서 있다고 해서 그것이 도전이 아닌 적은 없었습니다.

입사할 때는 길면 5~6년을 이 회사를 다니지 않을까?라고 나름 예상했지만 벌써 9년을 꽉 채웠다. 회사 생활이 Array인줄 알았는데 지내고 보니 List였다. 6년을 보내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3년 3년을 보내면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4년/2년/4년을 보내면 대학과 학위까지 받는 그런 배열같은 삶에 익숙했는데, 회사에서의 삶은 정해진 시간이란 것이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끝이 없는 무한 리스트 (종신고용)의 시대도 아니고... 메모리를 미리 할당해두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한해씩 늘려가면서 연장하고 있다. 새로 더 할당할 수 있는 메모리 공간이 있을까?

===
F: https://www.facebook.com/unexperienced


신고

댓글을 달아 주세요

보이지 않는 길

TSP 2017.01.02 12:09 |
Share           Pin It
2016년도 마지막 날인 지난 토요일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한라산 사라오름을 다녀왔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12월 31일에 일년에 단 한번만 개방되는 한라산 저녁 산행을 선택해서 새해 첫날의 해돋이를 백록담에서 보는 걸 선택했겠지만 저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저 사라오름에 올라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한 새하얀 상고대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푼 마음 뿐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전날의 포근한 날씨 때문에 기대했던 상고대는 놓쳤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의 산행으로 지친 몸으로 2017년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여섯시에 맞춰둔 알람이 울릴 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날씨를 체크했더니 흐림으로 나옵니다. 비록 사라오름에 상고대가 있더라도 날씨가 흐리다면 그저 짙은 안개 속의 상고대만 보고 내려올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역으로 흐린 날씨 때문에 간밤에 새롭게 상고대가 생기지는 않았을까?라는 희망도 가졌지만... 어쨌든 미명이 밝기 전의 추운 겨울날에 일찍 일어나서 산행을 한다는 것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짧은 시간동안 깊은 고뇌에 빠졌습니다.

결국 전날 준비해둔 장비를 챙겨서 길을 나섰고 6:30경에 성판악 휴게소에 도착했는데 여전히 날은 어두웠습니다. (그 시간에 이미 많은 이들이 산행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도 놀라웠습니다.) 사라오름까지는 조금 미끄럽지만 눈이 별로 쌓여있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등산화만 갈아신고 바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준비성이 좋은 분들은 헤드랜턴으로 길을 밝히며 걸었지만, 저는 무작정 등산로를 따라서 걸었습니다. 돌길이 조금 위험할 수도 있지만 다른 분들이 비춰주는 불빛에 의존하기도 하고 어둠이 걷히는 새벽의 기운에 의지해서 계속 걸어갔습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어둠 속도 길은 있다는 것을 잘 알지만 길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보이지 않는 길... 어제 새해 첫날을 보내면서 아니 그제 지난해의 마지막을 보내면서 '길이 보이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계속 했습니다. 40대를 접어든 지금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해야하는 걸까?를 계속 고민하게 되는데 지금의 제 모습이 마치 이른 새벽에 등산로를 걷고 있는 제 모습과 매우 흡사했습니다. 분명히 저 앞으로 길은 있을텐데 어둠 속에서 그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멈춰서서 밝을 때까지 기다려야할지 아니면 길이 있을테니 감각에 의지해서 일단 계속 걸어가야할지...

연말에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이런 글귀를 봤습니다. '회사를 나가는 것은 용기고, 회사에 남는 것은 지혜다.' 그도 누군가로부터 들은 것을 다시 적었겠지만 이런 글귀를 그가 마음에 새기는 것도 그리고 제가 기억하는 것도 어쩌면 지금 많은 이들의 공통된 고민이 아닐까?라고 생각해봅니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그냥 머물러있어야 하는가 아니면 계속 걸어가야 하는가? '음악이 흐르는 동안은 계속 춤을 춰야 한다'라는 말은 지난 금융 위기 때를 대표하는 문구였는데, 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계속 걸어야할지 아니면 멈춰야할지...

매년 년초의 첫 포스팅은 조금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한해를 살아갈 포부를 적었는데, 2017년을 맞이하는 지금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그냥 잘 될 거야' '이 또한 지나가리라' 류의 위로가 될 수 없는 위로의 글을 적을 수가 없습니다. 작년 이맘 때에 적었던 글을 다시 보니 지난 일년이 참 부끄럽습니다. 어둡지만, 하나의 촛불에라도 의지할 수 있기를...

비록 세상은 어제와 같을지라도 저는 또 내일을 향합니다.

===
B: https://brunch.co.kr/@jejugrapher
F: https://www.facebook.com/unexperienced



신고

댓글을 달아 주세요

Share           Pin It
제주 아라리오 뮤지엄 동문모텔II[각주:1]에서 ‘실연에 관한 박물관 Museum of Broken Relationships’라는 제목으로 재미있는 전시가 진행중입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실연, 즉 관계의 끊어짐을 주제로 국내외의 사연과 물품을 전시합니다. 오늘 (2016.05.05) 개막했는데, 오는 9월 25일 (2016.09.25)까지 진행합니다. 전시에 관한 더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를 참조하세요.
http://www.arariomuseum.org/exhibition/#/dongmun-motel2.php

‘실연에 관한 박물관’은 아라리오 뮤지엄에서 처음 기획한 전시회는 아닙니다. 크로아티아의 올링카 비스티카와 드라젠 그루비시치라는 두 아티스트가 시작했던 전시 컨셉을 아라리오에서 정식으로 빌려와서 국내의 사연을 모아서 진행하는 것입니다. 실연 박물관은 실제 연인이었던 비스티카와 그루비시치가 헤어지면서 둘 사이에 추억이 깃든 물건을 전시하고 또 주변의 사연과 사연품을 모아서 전시하면서 시작된 것입니다. 몇 주 전에 방영한 무한도전 ‘나쁜 기억 지우개’ 특집에서 ‘실연 박물관’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개막 행사에서 비스티카와 그루비시치가 직접 제주를 방문해서 몇몇 사연을 직접 소개했습니다. 그냥 얼핏 보면 사소한 물건들이 나열돼있습니다. 그러나 뮤지엄에서 제공하는 전자책에 소개된 각자의 사연을 읽어보면 모든 물건이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작은 사연품들 중에서 4층에 올라가면 큰 지프형 자동차도 전시돼있어서 처음에 조금 놀랐습니다. 전시회 기간이 끝나면 모든 사연품들은 크로아티아의 수장고로 보내서 반영구 보관한다고 합니다.

혹시 박물관에 직접 방문하기 어려우신 분들은 ‘실연의 박물관’라는 책도 함께 출간돼서 그것을 보셔도 됩니다. 각 사연품들의 사진과 사연자가 직접 적은 사연글이 함께 소개돼있습니다. 전시장에는 외국의 사연품들도 일부 전시됐지만, 책은 국내 사연만 포함했습니다. (외국 사연은 영어로 된 책이 따로 있다고…)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50964818

제가 왜 이렇게 잘 알고 굳이 전시회를 소개하느냐 하면… 아라리오 뮤지엄의 한 큐레이터께서 저도 뭔가 구구한 사연이 있을 것 같다고 전시에 참가할 수 있을지 문의를 해왔고, 저는 이별 — 특히 연인과의 실연 — 에 관한 기억이나 적당한 사연품은 없지만, 일반적인 헤어짐이라는 주제에 관해서 사진과 글은 줄 수가 있다고 전달드렸고, 그래서 사진(과 글)이 실렸습니다. 모든 사연을 소개할 수 없지만, 제 사연은 여기에 공개합니다.

전시된 사진으로 블러처리해서 찍었습니다. 선명한 사진은 전시장이나 책에서 확인하세요.

저의 고향은 경북 경산입니다. 굳이 고향을 언급한 것은 경상도 사내하면 대부분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리고 저의 아버지도 당연히 경상도에서 태어나 자란 토박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과묵하고 잔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그런 부자였습니다. 어릴 적에 아버지는 참 엄하셨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많은 기억이 없지만 어릴 적에 혼나고선 집 밖으로 쫓겨났던 기억이 납니다. 어릴 적에 그런 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기숙 생활을 한 이후로는 늘 혼자 외지에서 생활했습니다. 한 지붕 아래서 아버지와 함께 생활했던 기간보다 집을 떠나 혼자 생활한 기간이 더 깁니다. 더욱이 제주도에 있는 회사에 취직한 이후로는 1년에 두세차례만 고향을 방문했습니다. 어릴 때는 무서워서 아버지와 가까워지지 못했는데, 철든 후에는 물리적으로 떨어져지내다 보니 친해질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많은 기억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 아버지께서 작년 여름에 소천하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몇 년동안은 파킨슨 병으로 오래 고생하셨고,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기는 했지만 마지막 몇 달은 요양병원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아버지와 깊은 유대감은 없었지만 병세가 깊어진 이후로 집에서 걸려오는 전화가 늘 불안했습니다. 그래고 혹시나 불길한 연락을 받았을 때 고향가는 비행기편을 바로 구하지 못하면 어쩌나하며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 마지막 몇 달동안은 한달에 한번꼴로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를 찾아뵙는데, 결국 6월 마지막날 하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대구행 비행기표를 쉽게 구했고 주변의 도움으로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잘 보내드렸습니다. 그렇게 장례를 마치고 저는 다시 제주로 돌아왔습니다. 장례식 중에는 바쁘고 지쳐서 큰 상심이 없었는데, 제주에 오니 며칠동안 비워뒀던 쓸쓸한 방으로 그냥 들어가는 것이 꺼려졌습니다. 그래서 공항 주차장에서 차를 찾고 바로 인근에 있는 이호항으로 향했고, 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면서 아버지의 생전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거나 함께 사진을 찍지도 않았었는데... 그렇게 보내드리고 나서 홀로 이렇게 바다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그를 그리워합니다.

===
F: https://www.facebook.com/unexperienced


  1. 실제 모텔이었던 건물을 개조해서 박물관/전시실로 만들어둠 [본문으로]
신고

댓글을 달아 주세요

카카오 이후의 삶

TSP 2016.01.08 09:29 |
Share           Pin It
2008년 3월에 다음에 입사해서 현재 카카오 합병법인까지 만 8년을 근무하고 있다. 다음/카카오가 나의 첫 직장이지만 마지막 직장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면 카카오 이후의 나의 삶, 특히 밥벌이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가 궁극의 관심사다. 요즘처럼 불확실하고 급변하는 시대에 5년 내지 10년 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살겠다라는 묘사는 할 수 없으나 어떤 궤적을 그리며 살 것이다 정도의 여러 시나리오는 작성할 수 있다. 그래서 나의 카카오 이후의 삶에 대한 시나리오를 작성해보려 한다.

가장 가능성있는 시나리오는 크게 1) 다른 회사로 이직, 2) 새로운 업종으로 전직, 3) 나만의 사업 창업, 그리고 4) 은퇴 정도다. 물론 다른 가능성도 있다. 희박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브라이언의 눈에 들어서 브라이언의 남자 (BIP = Brian Important Person)가 된다거나 내가 좋아할 신규 서비스 프로젝트에 합류해서 카카오를 계속 다니는 것도 당연히 가능하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1년 내지 5년 내에 카카오를 떠난다면 어떤 궤적을 그릴까에 집중하려 한다. 당장은 카카오를 떠나지는 않는다. 가정이 현실이 아니다라는 것은 아니다.

이직한다.
가까운 미래 (5년 내)를 생각한다면 가장 가능성이 큰 시나리오다. 특히 제주 생활을 청산할 때 큰 동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순서는 바뀔 수도 있다.) 카카오에서 하고 있는 일도 좋고 함께 하는 동료들도 좋지만 카카오가 평생 직장이 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매우 낮다. 그렇다면 다른 곳으로 회사를 옮겨야 하는데 나이나 업무 특성 등을 고려한다면 시장에서 완전 똥값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아무리 늦어도 5년 안에 이직해야 한다. 물론 몸값을 제대로 받기 위해서는 실력을 인정받는 것이 더 중요하지만, 카카오를 떠난다면 이직이 제 1 옵션이고 그 옵션을 충족시키려면 가능한 젊을 때 실행해야 한다.

어떤 곳으로 이직할 수 있을까? 다음/카카오에서 8년을 보냈기 때문에 네이버나 라인, SKP같은 서비스 중심의 IT 회사가 가장 적합한 대안이다. 빅데이터 (분석)과 인공지능이라는 시대의 흐름에 편승해서 범IT 기업이나 대기업의 연구소에서 데이터 업무를 지속하는 것도 가능하다. 데이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업체면 더 환영한다. 카카오에서 개발자라는 직군에 속하지만 코딩에 능하고 좋아하는 테크니션이기보다는 더 개념적인 사고를 좋아하고 또 데이터를 보는/다루는 업을 오래 했기 때문에 데이터 기반의 컨설팅 업무나 서비스를 기획하는 회사도 매력적인 대안이다. 괜찮은 스타트업에 합류하는 것도 좋지만 이는 창업하기 꼭지에서 다루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이직을 한다면 시기가 중요하다. 잡마켓에서 경험이나 기술같은 밑천이 비슷하다면 결국 나이가 깡패다. 즉 조금이라도 어릴 때 이직해야 한다. 그런데 IT기업의 개발자로 살다보면 평생 개발만하며 살아가야 할지 아니면 매니저로 올라가야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이직 전에 내가 평개발자인가 아니면 매니저인가도 이직의 중요한 변수다. 일단 평개발자라면 지금 당장 이직하는 것이 맞다. 나름 이름있는 기업에서 나이 많은 그냥 개발자를 뽑을 가능성이 낮다. (뛰어난 오픈소스 컨트리뷰터라든가 아니면 다른 명성을 얻었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그들은 (내 나이대를 뽑는다면) 임원/매니저급을 뽑아서 주니어들을 키워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매니저가 될 수 있다면 어쩌면 이직 시기를 다소 늦춰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건 그냥 가정일 뿐이다.

박사학위(산업공학)를 받고 나서는 나름 거시경제를 다루는 경제연구소 쪽으로 진로를 택하고 싶었다. 결국 그러지 못했지만 여전히 기회가 있다면 그쪽으로 가서 더 넓게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세상의 흐름을 보고 읽는 것은 언제나 흥분된다.  IT와 데이터 분야에서 나름 경험이 있기 때문에 투자회사에서 기술자문역도 나름 끌리는 면이 있다. 그냥 바람이 그렇다는 거다.

이직이라는 선택지에서 중요한 고려사항 하나는 '성장 vs 유지'다. 새로 옮기는 곳이 나를 몇 단계 높게 성장시켜주는가 아니면 그냥 현재까지의 나의 경력과 경험으로 몇 년을 버틸 수 있는가는 중요한 포인트다. 예전 같으면 40대는 중장년층이라서 2~30대에 배운 것들이 이제 결실을 따먹기만 해도 충분했지만, 이젠 40대에도 여전히 배우고 성장하지 않으면 그냥 도태된다. (언제든 가능하지만) 각성을 해야 하는 시기는 이미 지나갔을 수도 있으나 여전히 성장해야 한다. 같은 분야에서 성장이 (& 버티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직보다는 전직을 꿈꾸는지도 모른다.

전직한다.
전직을 단순한 산업의 이동 (즉, 범IT 및 데이터 기술 회사를 떠나는 것)을 여기서는 뜻하지 않는다. 100세 시대 (물론 나는 100세까지 살고 싶은 욕망은 없다)에 가장 좋은 방법은 회사에 억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 그리고 보통은 불안하고 배고픈 -- 프리랜서로 사는 것이다. 문제는 프리랜서로 살기 위해서는 실력이 보장돼야 한다. 물론 더 큰 운이 필요하다. (May the force be with you.) 그런데 이 실력이라는 것이 이제껏 밥벌이를 해왔던 그 실력과는 무관한 거다. 물론 데이터 컨실팅이나 잡지사 기고와 같은 프리랜서로 살 수도 있겠지만, 일단 타이틀을 ‘전직’이라 했으니 완전히 다른 업 — 적어도 형태상으로라도 — 을 가정한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예술가인데, 나는 예술적 기질이 없다. 음악 미술 등 다방면에 대해서…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사진 실력과 명성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사진사로 제 2의 삶을 살 수 있을까? 또 내가 조금만 더 감성적으로 글을 적을 수가 있다면 작가로의 삶을 살 수 있을까? 이런 상상을 해봤지만 가능성은 낮다. 어떤 분야든 아마추어로 좋아해서 많이 할 수는 있지만 프로로 넘어가는 벽은 참 높다. 모든 것은 가능하지만, 지금 사진이나 글쓰기에 전념한다고 해서 성공, 아니 여생의 연명을 보장할 수 없다. 그래서 가볍게 연습삼아서 제주 생활 및 사진 관련 책을 내볼까도 생각해봤는데, 결국 실행하지 못했다. 스토리펀딩이나 비기술 킥스타터같은 걸 시도해볼까? 그외의 분야에서 내가 접근할 수 있는 게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 운 좋으면 어느 장인의 밑에서 도제를 시작할 수도 있겠지만... 마지막으로 글을 쓰든 강연을 하든 돈을 벌려면 실력보다 명성이 있어야 한다. 

창업한다.
많이 고민이 되는 꼭지지만 또 가능하면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앞선다. 회사물을 편안히 오래 먹은 사람은 창업하면 안 된다. (너무 단정적으로 표현했다.) 성공이 보장된 창업은 존재하지 않으며 실패는 늘 가까이에 있다. 창업을 하기 위해서는 좋은 사업 아이템도 있어야 하고, 그걸 구현할 기술력을 스스로 갖추거나 지원할 동료가 있어야 하고, 또 현대 사회에서는 초기 투자금이 있어야 한다. 가장 큰 허들은 정부[규제]다. 많은 재미있는 아이디어는 있었다. 그러나 그건 창업을 전제로 생각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뼈아픈 검증을 거쳐야 한다. 검증을 통해 살아남은 아이디어가 있다손치더라도 그걸 실행할 수 있을까?는 또 다른 난관이다.

소위 말하는 치킨집이나 카페 등의 창업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건 안 할 거다. 이걸 할 거면 그냥 은퇴할 때까지 모아둔 돈으로 손을 빨며 사는 것이 더 낫다. 물론 일은 돈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여러 산업, 인구 구조 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기술창업보다 더 확실한 필패 창업이 그런 생계형 소자본 창업이다. (돈 잃고 몸만 축낸다.) 내가 당찬 포부가 있어서 꺼리는 것은 아니다. 이건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을 나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다. 오히려 그런 곳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연명하는 것이 나에게 더 맞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미래에 그런 아르바이트 기회라도 생길까?라는 의문은 남는다.

직접 창업하는 게 아니라면 유망한 스타트업에 합류하는 것은 고려해볼 수 있다. 물론 그들이 나의 경험을 필요로 한다면...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그저 비전만을 믿고 맨땅에 헤딩하지 못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그저 욕심만 커지고 눈만 높아진다. 그래도 여전히 내 감을 믿는다면 창업에 동참하는 것은 나쁘진 않다. 많은 고민을 해봤는데, 결국 나이가 들어서 (대한민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려면 자기 사업을 하고 있거나 자기 소유의 땅/건물이 있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역시 난 직접 하는 것보다 옆에서 부추기는 것에 더 능하다. 캐릭터로 치자면 나는 왕이 아니라 책사다. 오해할 것 같아서 덧붙이자면 내가 리더의 자리에 있지 않을 뿐 리더십이 없는 것이 아니고 실행하지 않을 뿐 실행력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은퇴한다.
당장 실행에 옮길 시나리오는 아니지만 최소 10년 뒤에는 은퇴를 고민할 수 밖에 없다. 50세에 은퇴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 슬프긴 하지만... 전직을 해서 사진이나 글쓰기 등으로 먹고 살 수 있다면 은퇴 시기를 더 늦출 수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빨리 돈을 모아서 시골에 땅을 사놔야 한다. 우리 조상님들이 그랬듯이 자기 땅에서 자기가 먹을 식략을 키워서 연명하는 수 밖에 없다. 운좋게 이상한 작물을 키워서 대박을 내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혼자 입에 풀칠할 수 있는 만큼의 채소를 키울 땅이 필요하다. 귀농이 어렵다는 걸 잘 안다. 어쩌면 그래서 40대에 은퇴해서 귀농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을지도 모른다. 어릴 때는 시골에서 태어나서 자란 것이 일종의 핸디캡이었지만, 요즘 생각해보면 어릴 때 흙냄새를 제대로 맡고 자란 것은 오히려 축복인 것 같다.

일반 회사에서의 은퇴 시기를 조금 당겨서 아프리카 등의 제3세계를 지원하는 NGO에 들어가는 것을 희망했던 때가 있다. 이미 접은 생각은 아니다. 10년 전에 처음 생각했을 때는 40세에 은퇴해서 떠나는 거였는데... 선교활동도 생각해봤지만 아직 전혀 준비가 돼있지 않다. 최소한의 후원을 받을 수 있다면 관련 단체에 들어가서 힘이 있는 동안 제3세계에서 봉사활동하고 싶다. IT와 데이터 기술을 가지고 제3세계를 돕는 것도 좋지만, 그들에겐 1차 산업, 즉 생존이 더 큰 문제다. 그들에게 서비스 기술은 허상이다. 어쨌든 그런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아프리카로 간다면 봉사 활동하면서 아주 가끔 짬을 내서 사진도 찍고 관련글도 적을 수 있지 않을까? 여러 모로 나에게 매력적인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정보가 없다.

NONE OF ALL ABOVE
오지선다형의 마지막 보기는 항상 이거다.
세상 일이란 알 수 없다. 이직 전직 창업 은퇴가 아닌 다른 가능성은 언제든지 열려있다.

2016년도 첫 글에서 나는 ‘개인 브랜드’를 만들겠다고 적었다. 확고한 브랜드를 구축해서 명성을 얻는다면 미래의 길이 조금은 명확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
B: https://brunch.co.kr/@jejugrapher
M: https://medium.com/jeju-photography
F: https://www.facebook.com/unexperienced
신고

댓글을 달아 주세요

개인 브랜드 만들기

TSP 2016.01.04 18:53 |
Share           Pin It
2016년 병신년이 시작된지도 며칠이 지났습니다. 2016년이 진짜 병신 같은 한 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 저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 걸까요? 지난 몇 년 동안 연초에 적었던 글의 키워드는 관광객 (2012), 살아남기 (2013), 정성적 삶 (2014), 그리고 세컨드 라이프 (2015)였습니다. 올해는 가정에서, 회사에서, 사회에서 저 '정부환'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브랜드를 구축하는데 많은 것을 투자할까 합니다. 특히 작년에 정했던 제2의 삶을 위해서 나는 어떤 브랜드를 갖춰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고민과 실행을 시도하려 합니다.

먼저 다시 티스토리에 글을 좀 더 많이 적으려 합니다. 작년 한 해 동안 겨우 50편 미만의 글을 적었습니다. 게 중에서 월별로 정리한 '오늘의 사진' 포스팅을 제외하면 겨우 30편 정도의 글을 적었습니다. 2014년에 약 120편, 2013년에는 250편을 적었던 것에 비해서 많이 적은 수치입니다. 물론 중간에 제주 사진과 관련해서 미디엄과 브런치에 별도의 공간을 개설해서 많은 포스팅을 올리기는 했지만, 업무와 관련된 기술과 트렌드 그리고 사회 현상에 대한 저만의 해석을 다룬 글을 거의 적지 못했습니다. 2016년에는 다시 제 자신을 사회에 PR하기 위한 기술적인 글과 미약하더라도 인사이트가 있는 글을 적는데 노력하려 합니다.

2014년에 기술 및 인사이트 글이 적었던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다음이 카카오와 합병할 즈음에 회사 안팎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이슈에 대해서 절대 침묵하지 않겠노라고 사람들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그래서 합병 후에 사내 게시판인 아지트에 새로운 그룹을 개설해서 (워킹데이 기준으로) 매일 짧든 길든 거친 생각을 적었습니다. 가벼운 글도 있었고 심각한 글도 있었습니다. 그냥 스쳐 지나간 생각도 있었고 깊이 고민한 것들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매일 한 가지 생각을 글로 적는 것이 쉬운 작업은 아니었고, 좀 더 깊이 고민해서 블로깅을 해도 될 주제도 아지트에 짧게 적고 넘겼습니다. 오늘 해당 아지트에 2016년도 첫 글로 '이젠 매일 글을 적지 않겠노라'고 선언했습니다. 올해는 소수를 위한 아지트보다 다수/대중을 위한 티스토리에 더 집중할 생각입니다. 대외 활동이 거의 없는 제가 세상과 통하는 문은 결국 블로그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티스토리에 더 집중하려 합니다.

필요하다면 지난 일 년 동안 아지트에 적었던 생각 중에서 여전히 유효한 것들이 있다면 다시 정리해서 티스토리에 올리겠습니다. 때론 사회 현상에 대한 넋두리를 읊을 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데이터마이닝과 관련된 생각 (기술, 트렌드, 학습 등)과 사회생활에서의 보편적인 생각을 정리할 것입니다. 그 외에도 카카오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좀 더 다양하게 제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글을 적을 요량입니다. 사회적 이슈에는 여전히 깊은 관심을 가지겠지만, 그런 사회적 메시지를 블로그를 통해서 밝힐지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해보겠습니다. 물론 직접 글을 적지 않더라도 데이터 관련 기술 및 트렌드 글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더 많이 공유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데이터마이닝 관련된 진로상담도 더 친절히...

2015년에 가장 후회되는 것 중에 하나는 독서를 많이 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징조는 2014년부터 나타났고, 또 핑계를 대자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부류의 신간이 별로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 있지만, 어쨌든 지난 한 해 동안 제대로 읽은 책이 10권을 넘지 않은 듯합니다. 2004년도에 미국에 채류 하면서 한국에 돌아가면 책을 많이 읽겠다는 결심을 했고, 2005년도에 귀국해서 한 달에 적어도 4~5권의 책을 읽었었는데, 재작년에는 한 달에 2~3권으로 줄었고 작년에는 매월 한 권의 책도 채 읽지 못했습니다. 가벼운 책이나 내용이 중복되는 것들을 독서 목록에서 제외시키다 보니 이젠 좀 두껍고 어려운 책들만 남은 점도 있지만, 지난 한 해 동안 절대적으로 독서 시간이 많이 줄었습니다. 2016년에는 다시 좀 더 다양하고 많은 책을 읽고 깊고 다양한 사색의 시간을 갖는 것을 목표로 삼으려 합니다. 그리고 데이터마이닝 및 IT 관련 트렌드와칭도 더 열심히 하고 내용을 공유하도록 노력할 예정입니다.

어떤 기술이나 분야를 마스터하고 전문가가 되는 것은 오히려 쉽습니다. 전문가가 됐다면 그다음은 인플루언스가 돼야 합니다. 학습하고 연구한 내용을 혼자만의 지식으로 묵혀두지 않고 사회에 나눠주는 그런 기여를 하지 않는다면 지식의 축적이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 공유과 기여를 통해서만이 '나'라는 존재가 사회에 알려지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평판을 쌓다 보면 의도하든 아니든 여러 형태로 저의 제2의 삶으로 이끌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올해 제 나이는 40, 즉 불혹입니다. 불혹은 만 나이로 계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검색해봤는데 77년생이라고 딱 특정지어놓은 것을 보고 잠시 의기소침했습니다. 불혹에는 세상의 유혹에 동요되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그건 공자 같은 성인들의 이야기고, 저 같은 일반인들은 나이 40에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과거와 완전한 단절은 불가하겠지만, 여러 가지로 조금씩 다른 삶을 시도해보고 싶습니다. 다양한 시도에는 제주와 카카오의 품을 떠나는 것을 배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정부환'이라는 더 견고한 개인 브랜딩을 구축한 후에 새로운 길을 모색할 가능성은 더 크지만, 어떤 것이든 미리 특정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난 2015년도 열심히 살아왔지만 저의 본연의 모습 또는 제가 해야만 했던 일들로부터 많이 벗어났던 한해였습니다. 2016년은 다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저만의 브랜드를 구축하는데 집중할 요량입니다. 이를 위해서 더 많이 사색하고 더 많이 찾고 더 많이 읽고 또 더 많이 적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삶의 대부분은 결국 체력에서 결정납니다. 그래서 올해는 운동도 좀 더 열심히 하는 걸로...

===
B: https://brunch.co.kr/@jejugrapher
M: https://medium.com/jeju-photography
F: https://www.facebook.com/unexperienced


신고

댓글을 달아 주세요

그날

TSP 2015.08.21 13:54 |
Share           Pin It

2년 전에 적은 글을 다시 읽었습니다.
어제 잠들기 전에도 그리고 아침에 일어난 후에도...
오늘은 그 친구가 우리 곁을 떠난지 2년이 되는 날입니다.
한참 가물던 여름의 끝자락에 그날도 단비가 내렸는데 오늘도 여전히 비가 내립니다.
그를 그렇게 보내고 한순간도 잊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여전히 그가 생각납니다.
어려운 데이터 분석 문제를 접했을 때도 그가 있으면 조언을 구할텐데라며 생각났고,
해변의 모래사장을 보면 그 친구의 아들이 좋아했던 모래놀이가 생각나서 그가 떠올랐고,
죽음이라는 관념의 문제를 만나면 그라는 실제와 대면하기도 했고,
어느날 아침에 문득 또는 잠들기 전에 문득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떠났지만 여전히 제 머리 속에서 살아숨쉬고 있습니다.
사실 아버지의 죽음보다 더 큰 충격과 슬픔이었습니다.
식사 후 담소를 나누는데 전달된 그의 부고 문자가 여전히 거짓말처럼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아니, 아직도 거짓이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는 더 이상 제 곁에 없습니다.
여전히 보고 싶고 그립습니다.

그대, 편히 쉬시게나.


Also in...

F: https://www.facebook.com/unexperienced

신고

댓글을 달아 주세요

사는 것

TSP 2015.06.25 18:44 |
Share           Pin It

'사는 것'에 관해서 더 깊이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모든 이슈나 상황 속에서도 경제만을 갖다붙이는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지만

인간이라면 그저 산다는 것 그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잘 사는 것도, 먹고 사는 것도, 함께 사는 것도 아닌

그저 산다는 것 그 자체에 집중하고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메르스 사태에서도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말하고

세월호 이슈에도 경제가 죽는다고 말한다.

경제가 죽고 사는 주체나 객체인가도 모르겠다.

그저 사람이 죽어가는데 잘 먹고 사는 걸 걱정한다.

잘 먹는 것에 앞서 그저 산다는 것에 집중하자.

사는 것이 해결된 이후에 잘 먹고 사는 것도 가능하다.

일단 살고 보자.

신고

댓글을 달아 주세요

광고는 서비스다.

TSP 2015.04.09 09:39 |
Share           Pin It
최근 데이터 분석을 전문으로 하던 팀에서 광고를 제공하는 팀으로 트랜스퍼를 했습니다. 제가 하는 기본 업무의 성격을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기존에 검색, 쇼핑, 미디어 관련 데이터 분석 업무에서 광고 관련 분석으로 바뀐 것 뿐입니다. 오랫동안 인터넷 비즈니스에 관심을 가지며 지켜봐왔고, 다른 서비스 분석 업무를 진행하면서 광고도 주의깊에 살펴봐왔습니다. 광고를 중심으로한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에 나름 조예가 있다고 자부하지만, 외부인의 시각에는 한계가 분명 있습니다. 어쩌면 이 글에서는 그런 외부인의 한계로 인한 오해를 배설할 수도 있고, 앞으로 비즈 업무를 대하는 자세나 방향성에 대한 다짐일 수도 있습니다.

인터넷 업계에는 나름 내부 알력 싸움이 있습니다. 서비스를 담당하는 쪽과 돈을 버는 (보통 광고) 쪽 사이의 긴장이 늘 존재합니다. 서비스 쪽에서는 가능한 사용자들에게 불필요한 요소를 모두 배제해서 깔끔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하고, 광고 쪽에서는 가능한 많은 광고를 다양하게 노출시켜서 매출을 올리고 싶어 합니다. 서비스의 성격과 흐름에 크게 방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다양한 광고를 노출하고 최적화하려고 서로 협력하겠지만, 서비스 지향 기획/개발자와 비즈 기반의 기획/개발자의 생각이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습니다. 비즈를 담당하는 쪽도 매출에 대한 압박 때문에 악역을 자처하는 것은 잘 알지만, 기획자와 개발자 사이의 간격보다 서비스와 비즈 사이의 간격이 더 커 보입니다.

어쩌면 제가 광고 외부인의 시각으로 봤을 때는 당연히 서비스가 먼저이고 나중에 광고같은 비즈니스 모델을 잘 붙이면 된다는 입장이었지만, 이제 광고 내부인으로 어떻게든 매출을 올려야 하는 입장으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적어도 인터넷 업계에서는, 서비스가 먼저다라는 기본 전제가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외부인의 시각에서 광고는 그저 서비스의 아름다움을 해치는 요소에 불과했고, 그렇게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광고에 집중하기로 한 시점에 다시 광고를 더 깊이 생각하게 되고, 광고가 그저 서비스의 발목을 잡는 걸림돌이 아니라 광고 자체가 하나의 서비스로써 역할해야 한다는 관점을 가지게 됩니다.

외부인의 오해일 수도 있으나… 광고인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어떻게든 최고의 매출을 올리면 된다라는 사고를 지녔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랫동안 검색 분야에서 일해왔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더 컸습니다. 사용자가 입력한 키워드에 적정 정보를 노출하기에 앞서 불필요한 광고가 더 많이 노출되는 경우가 많았고, 계속 그런 광고를 걷어내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광고쪽의 반대로 무산되다고, 최근에서야 일부 키워드 군에 대해서는 광고 우선 전략을 폐기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다음카카오 검색에서 정보 컨텐츠보다는 광고가 우선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광고쟁이들의 궁극 목적은 매출을 극대화하는 것이다라는 오해 아닌 오해를 오랫동안 가졌습니다.

보통 인터넷 광고에서 매출을 높이는 전략이라면 크게 단가가 높은 광고를 노출시키는 것과 많은 클릭을 받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물론 광고의 형태에 따라서 다양한 과금 체계를 가지고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성과형 PPC (Pay Per Click)를 기준으로 봤을 때 클릭을 많이 발생해서 매출을 올리거나 한 클릭에서 많은 수수료를 부과하거나 그 둘이 큰 틀입니다. 광고 최적화의 목적식도 보통 '단가 x CTR'을 높이는 형태로 정해집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더 비싼 광고를 더 클릭할 수 있게 만들 것인가?가 광고팀들의 미션이었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광고의 궁극적인 목적은 광고사로부터 최대한의 매출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광고도 하나의 서비스입니다. 즉 광고(주)와 고객을 연결시켜주는 서비스입니다. 광고주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그것이 필요한 고객에게 연결시켜주는 것이 광고입니다. 남녀를 연결시켜주는 것이 데이팅 서비스이고, 친구들을 연결시켜주는 것이 SNS이고, 사용자가 필요한 정보를 바로 찾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검색 서비스이듯이, 광고는 광고주 또는 그들의 서비스/제품과 고객을 연결시켜주는 서비스입니다.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할 때 자연스레 발생하는 것이 클릭이고 매출입니다. 광고가 어떻게 해서라도 클릭을 유도해서 매출을 올리게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과 서비스를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배달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광고는 필요와 필요를 (때론 욕구와 욕구를) 연결시켜주는 것입니다.

그런 연결을 매개해주는 모든 것은 서비스입니다. 그래서 광고도 서비스입니다. 그래서 제가 앞으로 할 일도 어떻게 하면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좋은 (광고) 서비스를 만들어줄까입니다. 고객 (광고주와 사용자 모두)을 만족시키는 것이 서비스의 목적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광고주와 사용자를 잘 연결시켜주는 방법을 더 깊이 고민할 것입니다. 광고주의 필요와 사용자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것을 통해서 결국 서비스 제공자의 필요도 충족된다고 믿습니다. 어떤 광고를 노출시켜줄 것인가?를 판단함에 있어서 단가가 높을 것인가 또는 클릭이 많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인가를 기준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광고주가 원하는 사용자, 또는 사용자가 원하는 광고/정보/서비스를 찾아줄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할 것입니다. 고객이 광고를 찾게 만들 것입니다.

광고 서비스를 하는 사람으로써 매출을 무시할 수는 없겠으나 그것이 제 1의 목적이 될 수가 없습니다. 광고 또한 고객의 만족을 먹고 자라는 서비스입니다.

==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unexperienced


신고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somenam.tistory.com BlogIcon 방배동외톨이 2015.04.30 20:3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천번째 생각

TSP 2014.07.17 13:18 |
Share           Pin It

2008년 9월에 처음 티스토리를 개설하고 1000번째 글입니다.

중간에 특정 시리즈의 글 약 80개 (중요한 글은 아님)를 삭제해서 사실상 922번째 글이지만,

인덱스 상으로 1000번째의 글입니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해서 개설했던 블로그인데, (누적PV는 50만이 채 되지 않음)

최근 매일 2~300명씩 꾸준히 방문해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아무도 관심이 없을 듯한 주제의 글에 깊이도 없이 장난치듯 적었는데...

때로는 더 많은/좋은 정보가 있었더라면 또는 더 깊은 통찰이 있었더라면...이라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지나가는 일상을 기록하고 생각을 정리하려던 원래 취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짧은 글에 짧은 생각이 담기고 긴 글에 긴 생각이 담기지는 않습니다.

형식이나 길이 또는 표현을 떠나서 모든 글에 그 순간의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합니다.

거슬리는 표현이나 내용도 분명 많았겠지만 그 모든 것이 그 순간의 저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했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음을 밝히고 싶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건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예전에 나는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다양하고 많은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남긴 적이 있습니다.

지난 999번의 생각이 결코 많은 생각은 아니었지만

내가 그 순간에도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이정표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생각할 것이고 가능하면 실천할 것입니다.

헛소리가 될 수도 있고 뻘짓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실패를 경험할 수도 있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에서 그냥 삶을 즐기며 살고 싶습니다.

우리의 삶은 정량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삶이 아닙니다.

삶이란 그냥 살아가는 것이고 그러면서 의미를 찾는다면 감사한 일입니다.

그렇게 매일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다보면 또 더 재미있고 다양한 새로운 하루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순간에도 많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삶 사람 사랑이 제일 어렵다는 것을 매일 깨닫습니다.

오늘 하루가 내게 주어졌고 그만큼의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신고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이렇게 살다간 죽는다

TSP 2014.05.02 12:33 |
Share           Pin It
아침에 출근해서 조식을 먹고 양치를 하러 가는 중에 문득 '이렇게 살다간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났다 (했다가 아니라 났다). 최근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몇 주를 계속 달려오고 있다. 눈이 충혈돼서 이물감을 느끼면서 인공눈물에 의지하면서 지낸지가 한달이 넘었고, 입술 주위가 부릅 트서 피가 계속 난지도 수일이 지났다. 어느날 피곤해서 일찍 잠들었는데 꿈에서 맵리듀스 작업을 계속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깨버린 적도 있다.

전체로 봐서는 중요할 수도 있으나, 나의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일들은 계속 발생하고 그에 따른 스트레스를 계속 받는다. 그럴 거면 대안이나 바른 방법을 제시해주든가... 그러지도 못하면서 스트레스만 주는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 작년에 친하던 후배가 변을 당한 이후로 '내일 아침에는 눈을 뜰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안 하고서 잠든 날이 거의 없는 것같다.

그외에 다른 많은 상황들이 겹쳐서 나름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와중에... 아침에 문득 그런 생각이 났던 거였다.

그런데 죽음이라는 것이 사람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역사에서 죽음을 피해간 인물을 찾을 수가 없다. 성경에는 에녹과 엘리야 두 사람만 죽음을 피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예수님의 경우, 죽음을 피한 것이 아니라, 죽음 후의 부활이다.) 뱀파이어류의 만들어진 이야기도 있지만 그들도 결국 죽음 이후의 모습일 뿐 죽음을 피한 것은 아니다.

진나라의 시황제가 불로장생을 꿈꾸면서 불로초를 찾아다녔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런데 만약 불로초가 실제 존재했고 시황제가 그걸 시음해서 불로장생했다면 과연 그는 행복했을까? 권력의 최정점에 서서히 내려와서 밑바닥에 내려왔을 때도 불로장생이 그에게 유익했을까? 최근에 불로의 희망을 버리지 못한 이로 레이 커즈와일을 들 수 있다. 나름 똑똑하고 많은 일을 한 사람인 것은 인정하지만, 그 사람의 책을 읽으면서 알지 못하는 연민을 느꼈던 적이 있다. (여기까진 아침에 한 생각)

최근 발생한 사건을 보면서 만약 내가 죽었을 때 나를 위해서 슬퍼하고 눈물 흘려주는 사람이 없으면 나는 참 잘못된 삶을 살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또 반대로 어느 누구도 나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으면 하는 이중적인 바람이 있다. 정해진 운명의 길로 가는 사람을 위해서 너무 미안해하고 슬퍼한다면 그 운명의 사람도 마음편히 떠나지 못하지 않을까?라는 그런 생각... 

육체적으로 피로가 풀리지 않고 정신적으로 나약해지니 많은 생각의 늪으로 빠져든다. 며칠 전 "열심히 사는 것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더라"라고 적었던 페이스북의 그 말도 어쩌면 이런 컨텍스트에서 나왔는 것같다.

나는 일에서는 스트레스를 별로 받지 않는다는 오만한 생각을 하면서 보낸 젊은 날이 후회된다. 어쩌면 무생의 일에서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 맞다. 그러나 사람에게서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미 스스로 나름의 판단을 내린 사람이지만 (그래서 그에게서 연민이나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는다)... (줄임) ... (여기까진 며칠 전 생각)

어제 내도동 보리밭길을 걸으면서 했던 생각을 페이스북에 짧게 적었다. 사진을 찍으러 다니면서 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자연 경치를 해치는 전신주와 전선이다. 그런데 어제는 자연은 이미 전신주와 전선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렸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만들어졌지만 이미 자신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을 제거할 수가 없다면 그냥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이 포용력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가?라는 생각도 해봤다.  (여기까진 어제 생각)

이런 글을 적는 것이 나는 힘든데 왜 못 알아주냐라는 볼멘소리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지금은 그냥 이런 저런 생각의 흐름을 그냥 그대로 적을 뿐이다. 내 생각에는 자유가 있다. 내 행동에는 책임이 있다. 행동하기 전까지는 내 생각에 자유를 허하라. (이건 방금 막)

==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unexperienced
신고

댓글을 달아 주세요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