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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날씨 좋은 토요일 오전, 아점을 먹고 애월 해안가를 드라이브한다. 푸른 하늘, 광활한 바다, 따뜻한 봄바람… 드라이브하고 사진 찍기에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전혀 없다. 그러나 운전을 계속 하면서 마음 한켠에 허전함을 느낀다. 모든 것이 완벽한데 뭔가 부족함을 느낀다. 혼자라서 그런 걸까?

3년 전에 봤던 바닷가가 아니다. 아니 작년에 봤던 기억 속의 그곳이 아니다. 경치 좋은 곳마다 부자연스럽다. 목좋은 곳은 어김없이 새로 건물이 들어서있다. 새로 생긴 펜션이다. 새로 생긴 식당이다. 그리고 새로 생긴 카페다. 제주를 여행하면서 이제는 편해졌다. 그런데 숙박시설, 식당, 카페는 서울에 없어서 서울 사람들이 제주까지 여행을 오는 걸까? 그들은 제주에 잠을 자러 오는 걸까?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오는 걸까? 아니면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커피나 마시려고 아까운 시간과 돈을 들려서 제주로 오는 걸까?

작년 초에 제주의 동쪽 해변인 월정리에 직장동료와 함께 간 적이 있다. 생각 속의 월정리 해변을 그 친구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내 선택에 후회를 했고, 그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몇 년 전에 ‘아일랜드 조르바’라는 작은 카페가 생겼고 사람들의 입소문을 탔던 적이 있다. 여러 사정에 따라서 그 카페는 ‘고래가 될 카페’로 재개장을 했다.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의 장소가 됐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어느 순간 월정리 해변은 카페촌이 되었고, 해안가 도로변은 주차장이 되었다. 3년, 5년 전에 그곳에서 좋은 기억을 가졌던 이들이 그 기억만을 가지고 다시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다시 그곳을 찾는다면 그들은 분명 실망할 것이고 내가 작년에 가졌던 미안함을 가족/친구들에게 가질 것이다.

1~2년 전에 페이스북에 ‘오늘 차를 타고 이곳저곳을 다녀보니 내가 좋아하던 제주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라고 짧게 글을 적었던 적이 있다. 최근 1~2년 사이에 그것이 더 가속화되고 있다. 

작년 가을에 — 11월 20일이니 겨울 초입이라고 말하는 게 맞을 듯 — 사진을 찍으러 다니면서 섭지코지 옆을 지나갔다. 멀리 섭지코지가 보이는데 바다 빛깔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래서 너무 슬펐다. 페이스북에 “섭지코지가 거대 자본에 잡식되기 전에 이곳에 와보지 못한 것은… 저걸 보면 앞으로의 모든 세대들에게 죄를 짓고 있는 기분이다.”라고 남겼다. (원문에는 오타/자동수정 ‘기준’으로 남겨졌다.) 이런 느낌을 받고 집에 돌아와서 한편의 글을 보게 됐다. 제주 한라일보에 조미영 여행작가님이 적은 “더 이상 비밀의 정원은 없다”라는 글이었다. 내가 받은 그 느낌을 다른 사람들도 같이 느끼고 있었다. 오히려 나는 조작가님이 내심 부럽다. 그녀는 그래도 섭지코지의 원래 모습에 대한 기억이라도 있다.

최근 중국 거대 자본이 들어와서 한라산 중산간에 난개발이 진행중이다. 신문방송에서는 이것에 대한 문제점을 계속 얘기하는데 공사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더 최근에는 송악산 일대가 중국자본에 넘어갔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그외에 많은 난개발 소문이 있다. 어쩌면 5년, 10년 뒤에는 제주가 제주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제 제주의 모습은 오로지 지금 제주를 본 사람의 기억에만 의존해야할지도 모른다. 몇 장의 사진으로만 제주의 모습을 기억하게 된다는 것은 너무 슬프다. 잠시 눈가가 촉촉해진다. 그리고 한 곳 더… 강정.

TV에 잠시 소개되거나 좀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몰려온다. 그리고 우후죽순 새로운 건물이 들어선다. 애월 해안가 드라이브의 끝은 한담해안에서 마쳤다. 먹물과 봄날. 이제 이 좁은 도로에 차를 끌고 들어갈 수가 없다. 사람들로 미어터진다. 지난 가을에 조천의 한 피자가게 앞을 지난 적도 있다. 그곳도 그랬다. 이유는 똑같다.

제주의 아름다운 곳, 특히 사진 찍기 좋은 곳을 발굴해서 책이나 블로그 등으로 남기려는 계획을 작년에 세웠다. 그런데 이제는 망설여진다. 알려지면 또 없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계속 사진을 찍으러다닐 예정이다. 누군가의 기억이 사진으로라도 남겨주는 것이 미래 세대들을 위한 도리인 것같다. 어쩌면 약올리는 것이 될지도 모르지만…

글을 시작했지만 끝을 맺을 수가 없다. 아, 질문(제목)에 대한 답변이 빠졌다. 지금처럼이면 결국 No지만 아직은 기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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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unexperienc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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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가능한 사회

Gos&Op 2012.08.15 20: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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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도 일전에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을 다시 옮깁니다. 더 자세히 더 길게 적는다고 해서 더 정확한 뜻을 전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지속가능이라는 단편적인 용어보다는 공존가능이라는 더 보편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맞을 것같다는 의미에서 적은 글이었습니다. 그리고 일전에 적었듯이 지속가능의 차원 (지속가능성의 여러 측면.)을 확장한 것이 공존가능이라 믿습니다.

일단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옮깁니다.

지속가능성.
조금 어려운 개념의 단어를 너무 쉽게 사용하는 것같다.
많은 사람들이 '지속가능'을 말하지만 자신들이 무슨 의도로 저렇게 말하는지 대부분은 모른다고 생각한다.
'지속가능'보다는 '공존가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공존이란 나와 너, 즉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지속가능이라는 단어를 현재와 미래라는 시간 축에서만 정의되지만,
공존가능이란 현재와 미래 뿐만 아니라, 여기와 저기, 나와 너 즉 시간, 공간, 인간이라는 컨텍스트 3축에서 모두 정의된다.
오늘 잘 살자고 미래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것,
여기가 흥하기 위해서 저기를 파괴할 수 없다는 것,
나 혼자 잘 먹겠다고 이웃을 외면하지 않는 것. 이것이 공존이다.

처음에 저 글을 적게 된 개기는 글을 적기 며칠 전에 어떤 대기업에서 지속가능보고서를 발간했다는 신문기사 제목을 본 것입니다. 지금 검색창에서 '지속가능보고서'를 검색하면 노출되는 회사가 맞는지 아니면 다른 기업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쨌든 별로 지속가능해보이지 않는 기업에서 그것에 관한 보고서를 내는 것을 보면서 과연 저들은 지속가능성의 의미를 잘 알고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최근에 정치권의 큰 이슈인 경제민주화도 지속가능에 대한 얘기를 다루는데, 현재 그런 경제민주화에 가장 역행하는 부류가 대기업들입니다. 그런 보고서들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내용은 충분히 유추가 가능합니다. 그저 사회복지비로 얼마를 지원해줬고, 산에 나무를 몇 그루 심어줬고, 이산화탄소나 각종 오염물질을 일부 줄였다거나, 사회적 기업을 지향한다는 그런 내용이 보고서에 뻔히 들어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런 활동들이 지속가능의 모든 것인가?에 대한 심한 의문이 있습니다. 당연히 해야 마땅한 일을, 그저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자랑거리로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회의감이 듭니다. 그래서 (제가 다니는 회사에서도 지속가능보고서를 만들고 있지만) 그런 보고서를 내는 기업들을 보면 안쓰럽기도 합니다. 알고 하는 행동일까? 적어도 계산은 된 행위겠지요.

3월에 적었던 글 '지속가능성의 여러 측면.'에 보면 지속가능의 정의가 잘 나와있습니다. 1987년도 세계환경개발위원회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오늘날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미래 세대의 역량을 훼손하지 않고 현재의 욕구를 잘 대응하는' 사회로 정의했습니다.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 사이의 어느 한쪽의 양보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이들의 공존을 최적화하는 것이 지속가능성입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현재와 미래의 관계 뿐만 아니라, 여기와 저기 (우리나라와 외국, 특히 제3세계) 그리고 나/우리와 너/너희 사이의 지속가능성도 보장이 되어야할 것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속가능이라는 말 속에는 시간 축에서 오늘과 내일의 의미가 너무 깊이 밖혀있기 때문에 나와 너, 여기와 저기를 아우르는 용어로는 어감이 이상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공존가능'이라는 말을 생각했습니다. 공존가능이라는 것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것, 여기와 저기가 공존하는 것, 그리고 나와 너가 공존하는 것을 모두 뜻합니다. 시간축뿐만 아니라, 공간축과 인간축에서의 지속가능성을 모두 포함하는 의미에서 '공존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공존가능하는 것은 위의 지속가능성의 정의에서처럼 현재를 위해서 미래를 포기할 수도 없고, 미래를 위해서 현재가 무조건 양보할 수 없다는 시간축에서의 공존, 우리 나라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이웃 나라의 경제나 환경이 피폐해지는 것을 방치할 수 없다는 공간축에서의 공존, 그리고 나만의 이기적인 이득을 위해서 이웃에게 해를 끼칠 수가 없다는 인간축에서의 공존을 모두 아우르는 것입니다. 지금 지속가능성의 대표적인 사례가 환경보전인데, 이것은 비단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 사이의 갈등해소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선진국의 이기를 위해서 후진국/약소국의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것과 같이 공간적인, 인간적인 측면에서의 갈등중재를 포함합니다. 그리고 기업의 사회적 책무 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라는 용어도 자주 등장하는데, 그런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다 하는 것이 기업과 사회가 공존하는 것을 이룩하겠다는 것이 목표입니다. (기업 홍보가 아니라)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이 사회적 공존을 뜻합니다. ... 그리고, '공존가능'이 '지속가능'보다는 더 쉽고 친근하게 들리지 않나요?

그런데 지속가능성은 영어로 sustainability인데, 공존가능성은 어떤 단어를 사용해야할지 좋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냥 영어사전에서 공존하다를 찾아보면 live together 또는 coexist가 나오는데, 그렇다면 공존가능성은 coexistability라고 적어야 할까요? 그러면 공존가능 사회는 coexistable society라고 해야할까요? 그런데 공존가능 사회는 coexistable society가 아니라, 그냥 society 또는 our society라고 적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Society라는 것 자체가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살아가는 무리를 뜻하기 때문에, 사회라는 단어 속에 공존하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회 내에서 살아가면서도 그 뜻을 깨닫지 못하고 또는 무시하고 지내는 것같습니다. 우리의 사회는 우리가 모두 함께 살아가는 사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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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욱님께서 애플의 기업문화에 대해서 다음 제주오피스에서 강연을 하고 계십니다.

오늘 오후에 미국 Lycos의 CEO인 임정욱 (@estima7)님께서 다음 제주 오피스 (다음스페이스.1)에 오셔서 사내강연을 해주셨습니다. 강연주제는 최근에 어쩌다가 번역을 맡게되신 <Apple Inside> (아직 국내에 책 정보가 없네요. 내일 정식 출판된다고 합니다. 다음 주에 정식 출판된다고 합니다. 국내책정보)에서 다루고 있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가장 핫한 기업인 애플의 내부 문화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강연한 한시간 정도 이뤄졌고, 짧은 (한국의 문화를 그대로 반영하듯이 매우 적은) 질의응답시간이 있었습니다. 자세한 강연 내용은 위의 '애플 인사이드'를 읽어보시면 될 듯합니다.

강연이 끝나고 짧게 더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오늘 강연의 내용은 일반 직원들보다는 경영진들이 한번 들어보고/읽어보고 자신의 경영스타일과 애플 또는 스티브잡스/팀쿡의 그것과 비교해보면 좋을 것같다는 얘기를 하셨습니다. 지금 애플이 시가총액 최고 기업이기 때문에 애플의 기업문화나 스티브잡스 또는 팀쿡의 리더십 모형을 그대로 배워야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애플이 지금은 가장 잘 나가는 회사인 것은 맞지만, 그 이면의 많은 어두운 면들이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한 독재적인 스타일 등) 부각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반면교사를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어쨌든 다른 회사의 여러 문화나 리더십을 관찰해보고 자신의 경영 스타일/철학이나 조직의 문화를 고쳐나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경영진들의 역할임은 틀림없습니다.

강연의 핵심은 '기업문화 또는 창업정신는 중요하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합니다. 최근에 계속 문화는 중요하고, 조직이 독특한 문화를 만들고 또 창업자의 정신을 계승해가는 것은 단순히 제품/서비스를 만드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한 기업이 그 기업만의 문화를 발전시키고 정착시키는 것이 그 기업을 더 진일보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사회에서 특정 시대를 대표하는 시대정신 Zeitgeist가 필요하듯이, 기업은 기업을 대표하는 시대정신, 문화가 필요합니다. 그런 문화를 바탕으로 해서 기업 및 경영진들의 경영철학이 세워지고, 그것을 바탕으로 고객들에게 가치를 줄 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만들어집니다. 자신의 정신이나 문화가 투영되지 않은 제품/서비스는 그것이 당장은 캐시카우 역할을 해주더라도 지속성은 보장받기 어렵습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애플의 기업문화가 모든 기업이 본받아야할 그런 것이다는 것도 아니고 모든 경여자들이 스티브잡스의 스타일을 고수해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각 기업과 경영진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성향과 가치관이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스타일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 스티브잡스가 애플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우뚝 세웠지만, 만약 1980년대에 스컬리에 의해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애플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80년대에는 스컬리의 리더십이 필요했고, 또 2000년대에는 다시 잡스의 리더십이 필요했던 것뿐입니다. 기업의 성장에서 초기에는 창업자의 창업정신이 중요하지만, 확장기에는 운영에 초점을 둔 경영진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성장 중 위기상황을 만나거나 새로운 도약기가 필요할 때는 창업자와 같은 비저너리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가 있습니다. 애플의 흥망성쇠도 그런 기업의 라이프사이클에 의해서 설명되어야 합니다. 단지 한 사람 때문에 성공 또는 실패했다고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많은 경우, 기업의 흥망성쇠는 필연입니다. 기업이 흥하고 잘 나갈 때는 웬만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체기를 거쳐서 하락기에 접어들면 작은 문제도 크게 부각됩니다. 보통 하락기의 큰 원인은 (여러 사람들의 결정적인 실수 또는 실정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시기를 맡아서 기업을 떠받쳐줄 제품/서비스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야침차게 준비한 제품/서비스가 시장에서 호응을 얻었다면 기업에 위기가 닥치지도 않았을테고, 또 웬만한 위기는 그냥 무시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제품/서비스가 제대로 나오지 못하는 것은 그 기업의 기획력이나 개발력이 떨어졌다기보다는 그런 새로움을 채워줄 그 기업의 문화적 힘이 고갈되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하게 됩니다.

문화라는 것은 누구에 의해서 그냥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참여하더라도, 그들이 즐겁지가 않다면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거나 정착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즐거움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제품/서비스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용자들도 즐겁게 만들 수 있습니다. 즐거운 경험이 제품/서비스를 통해서 고객들에게 전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업의 분위기 삭막하고 문화가 빈약하다면 고객들에게 즐거움/경험을 전할 수가 없습니다. 저의 해석 또는 느낌이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짧은 소견과 관찰의 결과는 결국 문화의 힘이 서비스/제품의 힘이다라는 것입니다. 문화는 경험이고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문화에서 새로운 서비스/제품이 나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 문화 또는 창업자의 정신/철학을 바탕으로 고객에게 가치를 줄 수 있는 기업.. 그런 기업이 결국 지속가능하리라 믿습니다. (지속가능성을 단순히 환경문제 또는 사회적기업으로만 이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어려움에도 살아남고 번영하는 기업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가 있고, 철학이 있고, 가치가 있습니다. 결국 기업의 지속가능성은 그 기업이 가진 문화의 다양성, 풍부성, 깊이에 달려있습니다. 아침에 '교육의 시대는 끝났다'라는 도발적인 글을 올리긴 했지만, 그런 기업의 문화, 철학, 가치는 대를 이어 전달해주고 더 발전시킬 수 있다면 그런 교육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흐르는 정신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어야 합니다.

(글을 적는 동안 실행시켜놨던 프로그램이 종료되어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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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어제 적고 싶었던 본 내용을 적으려고 합니다. 어제 적은 비이해관계에서는 사회가 진화론적인 적자생존의 경쟁을 부추기고 그래서 동료 및 공동체가 파괴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삭막한 시대일수록 더욱더 각자의 이해/이득/경쟁에 기반하지 않은 비이해관계의 구축이 필요하다/절실하다는 것이 주요 요지입니다. 이런 비이해관계로 구축된 공동체를 뭐라 부를까 고민하다가 '잉여 네트워크'라는 말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잉여들을 위한 공간'정도의 의미를 가집니다.

잉여 네트워크의 호혜주의 reciprocity에 기반을 합니다. 나의 존재와 활동이 타인에게 이득을 주고 또 타인의 행위의 결과가 나에게도 이득을 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익뿐만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편하게 여김으로써 공동체의 분위기가 가볍고 밝아지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경쟁 또는 타도 상대로 여기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고 보살펴주는 것입니다. 네트워크에서 하나의 노드가 실패하면 때로는 이웃 노드로 그것이 파급되어 전체 네트워크의 실패를 도래하기도 하지만, 하나의 노드가 실패하더라도 이웃 노드들이 서로 그것의 부족분을 보완해서 전체 네트워크는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적자생존의 경쟁 네트워크에서는 최후에는 몇 개의 대형노드만 남게 되겠지만, 상보적인 잉여 네트워크에서는 실패한 노드도 재생시켜줘서 최후에도 전체의 균형 balance를 유지시켜 줍니다.

여기에서 자발적 기부라는 개념도 등장할 수 있을 듯합니다. 정의상 '잉여'는 남는 것을 뜻합니다. 경쟁체제에서는 내게 부족한 것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획득하고 남아도는 자원은 그냥 허비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호혜체제에서는 자신의 남는 부분을 사회/공동체에 기부해서 이웃의 부족분을 매꿔주게 됩니다. 그런데 아직은 이런 (재능)기부에 대한 플랫폼이 제대로 갖춰져있지 않은 듯합니다. 물론 그런 재능기부플랫폼이 잉여 네트워크이고, 잉여 네트워크의 한 결과물이 그런 재능기부플랫폼이 될 듯합니다. 그래서 결국 잉여 네트워크 또는 잉여 공동체는 사회를 위한 그리고 공익을 위한 서비스/커뮤니티인 셈입니다. 그리고 잉여의 기부이므로 모든 노드가 동일한 수준으로/일괄적으로 기부를 해야 한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넘치는 부분을 허비하지 않고 사회에 귀속시키는 것이지, 자신을 살신성인해서 퍼주는 것이 아닙니다.

잉여 네트워크가 추구하는 가치는 social responsibility입니다. 노드는 전체 네트워크에 속하기 때문에 네트워크 내에서의 책임을 다 해야 합니다. 최근에 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의 사회책임)이 강조되는 것과 비슷한 취지입니다. 그런데 각 노드 또는 전체 네트워크가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네트워크가 지속가능해야 합니다. 공동체가 지속가능 (sustainability)하다는 것은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네트워크를 유지할 에너지를 계속 공급받아야 된다는 소리와도 일맥상통합니다. 국내외의 많은 NGO들은 국가나 개인들의 기부로 운영을 계속 해가지만, 잉여 네트워크에서는 스스로의 힘으로 에너지 (a.k.a., 돈)를 생산/자급자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 한다고 하더라도 기업을 유지할 자본을 획득하지 못하면 결국 그 기업은 지속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결국 잉여 네트워크는 '좋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뻔한 결론에 이릅니다. 그리고 잉여 네트워크는 공동체라는 순수성을 영속시켜야 합니다. 구글이 초기에 <Don't be evil>로 선하게 돈을 번다 (또는 윈윈)는 것을 내세웠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에는 결국 하나의 주식회사 (직원과 고객보다는 주주의 이득을 대변하는 회사)로 바뀌면서 여느 기업 못지 않게 사악해져가는 것을 반면교사 삼아서, 공동체가 끝까지 순수하게 남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처음부터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잉여 네트워크의 정신은 해커리즘 또는 아마추어리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해커'는 남의 시스템에 불법적으로 침투해서 정보를 빼가거나 시스템을 파괴하는 자로 인식됩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순수하게 '잉여자들의 저항정신'정도로 약간은 미화된 개념이 받아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Mark Zuckerberg's Hacker WayHacker Culture: The Key to Future Prosperity 등의 글에서 해커문화 또는 해커의 순수성을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해커와 크래커 Cracker는 구분이 되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미화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순수한 해커란 결국 아마추어 Amateur를 뜻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노동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즐거움/재미를 위해서 취미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마추어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순수한 즐거움을 넘어서야 합니다. 더이상 아마추어를 Just for Fun으로 정의하면 안 됩니다. 이제 More than Fun으로 정의내려야 합니다. 프로츄어라는 신조어가 생겼듯이 아마추어의 취미활동을 통해서 개인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유익에 앞장 서야 합니다. 이제는 Social Responsible Amateur의 과잉이 필요합니다.

다른 글에서 지속가능을 위해서는 자발성 Spontaneity 민주성 Democracy 다양성 Diversity가 필요하다고 적었습니다. (참조. 지속가능 웹생태계 조성자들) 벌써 3년 전에 생각했던 속성인데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만들어야할 잉여 네트워크도 자발적 참여에 의해서 조성되고, 민주적 방식으로 운영되고, 다양한 재능들이 모여서 성장해야 합니다. 여기에 앞서 말했던 순수성과 호헤성이라는 개념을 더 하면 될 듯합니다.

며칠 전부터 구상하고 있는 간단한 서비스가 있습니다. 조만간 그 서비스에 대한 내용도 잉여의 공유라는 취지에서 글을 남기겠습니다. No sooner t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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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주의 강정마을에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구럼비 바위 일대의 발파작업은 이미 시작되었고 조만간 구럼비 바위의 발파작업도 할 거라고 합니다. 보통의 자연의 파괴는 비가역 irreversible 과정이기 때문에 신중해야 합니다. 간혹 장기적으로 가역인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들어, 한라산 백록담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현재는 성판악과 관음사 코스로만 가능합니다. 원래는 윗세오름에서도 백록담으로 오를 수 있지만, 현재 완전히 훼손된 자연을 복원시키기 위해서 지금 20년 넘도록 등산로가 폐쇄되어있습니다. 20년 간 폐쇄했지만 아직 제대로 복원이 되지 않아서 언제 재개방될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이런 등산로를 복원하기 위해서도 2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한데, 구럼비 바위는 한번 파괴되면 절대 복원이 불가능합니다.

이런 자연과 환경 문제를 다루면서 가장 자주 듣는 단어가 지속가능성 sustainability입니다. 그동안 지속가능성에 대해서 여러 정의들을 보았지만 어제 읽은 책에서 본 정의가 마음에 들어서 오늘 소개하려고 합니다. 지금 <성장의 한계[각주:1]> (by 도넬라 H. 메도즈, 데니스 L. 메도즈, 요르겐 랜더스)를 읽고 있는데, 1987년도 세계환경개발위원회에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아래와 같이 정의하였습니다.
지속가능한 사회는 '오늘날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미래 세대의 역량을 훼손하지 않고 현재의 욕구에 잘 대응하는' 사회이다. - 1987년 세계환경개발위원회
그동안 지속가능성에 대해서 부분적으로 알고 있던 내용이 위의 한 문장으로 완전히 해결된 듯합니다. 지속가능하다는 것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중요하게 둔다는 점입니다. 현재의 이득을 위해서 미래를 희생시키지도 않고, 그렇다고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시키지도 않는 것이 지속가능함입니다.

그런데 위의 문장에는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바로 위의 정의는 지속가능성을 시간의 축에서만 설명하고 있습니다. 더 완전한 지속가능성은 시간의 축에서 뿐만 아니라 공간의 축에서도 설명이 가능해야 합니다. 공간의 축에서 지속가능성을 다시 정의하면 '여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다른 곳의 역량을 훼손하지 않고 여기의 욕구를 잘 대응하는'정도가 될 듯합니다. 현재와 미래를 여기와 다른/저기로 단순하게 바꿨습니다. 전체 지구의 측면에서 봤을 때, 한 곳의 발전이 다른 곳의 발전을 훼손시킨다면 나라/지역간의 불균형과 격차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런 불균형의 사회는 지속가능할 수가 없습니다. 과거의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 개척이 바로 공간적 지속가능성을 훼손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강대국의 이득을 위해서 약소국을 식민지로 삼아서 그들의 희생을 강요했던 그 시대를 되돌아 봐야 합니다. 결국 각 국에서 반란이 발생하게 되었고, 또 세계대전의 발발로 이어졌습니다. 굳이 일제강제침략기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지역 간의 불균형이 발생하면 지속가능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축이 더 있습니다. 바로 인간의 축입니다. '나/우리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남/그들의 역량을 훼손하지 않고 나/우리의 욕구에 잘 대응하는'을 인간축에서의 지속가능성의 정의입니다. 현재 Occupy Wall Street (월가점령) 시위에서 말하는 1% 대 99%의 분리,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를 생각하면 됩니다. 이런 소득/경제에서 시작한 교육, 정치, 문화 등의 사회 전분야에서의 불평등과 불균형, 또는 양극화는 이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훼손하고 있습니다. 대기업의 이득을 위해서 일방적으로 중소기업이나 서민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현재의 신자유주의는 절대 지속될 수가 없습니다.

결국 지속가능성은 현재와 미래, 여기와 저기, 그리고 나/우리와 너/그들 사이의 서로 희생을 강요하지 않고 함께 보호하고 함께 발전하고 함께 공유하는 것입니다. 경쟁이 아닌 공존과 협력의 사회/시대가 결국은 지속가능한 사회/시대입니다.

  1. 본문에 책을 소개하였다고 해서 제가 이 책을 추천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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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ke a long story short.

 지속가능한 회사는 단순히 친환경기업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성장, 생존이 아닌, 해가는  기업이다.
 기업이 성장한다는 것은 지속적으로 돈을 벌어들인다는 거다. 물론, 돈을 버는 방법이 합법적이고 나쁘지 않아야 겠지만,..
 그런데 이유없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재무상태만 양호한 기업은 성장의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재무가 좋다고 번성하고 성장하고 지속가능한 것이 아니다. 이유가 없는 (양호한) 재무는 회사의 독이다. 
 (더우기 중독되는 경우도 흔하다.)
 대표적인 경우가 (사모펀드 등의) 기업사냥꾼들에 의해서 합병되어, 구조조정 (리스트럭쳐링, 다운사이징 등)을 당해서 
 일시적으로 재무상태가 호전된 기업은 그 속의 핵심, 결국은 인간 그리고 관계,이 망가졌기에 더 이상의 희망이 없다.
 (구조조정은 명확한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보다 더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은 없다.)
 요즘 그런 기업들을 많이 본다. 단지 피인수된 기업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그런 기업이 아니다라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사람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경영진들은 오직 그들의 사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기업은 망한다. 
 (극단적인 예가 국가를 자신의 이득취득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그 사람처럼... 사람? 맞는 표현인가?)

 개인적으로 회사의 최고수장은 재무통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는 CFO가 되었어야 했다.
 로코스트리더십 (Low-cost Leadershp)이니 뭐 이런 쓰레기같은 말을 입밖에 꺼내는 순간 그는 신뢰를 잃었다.
 양호한 재무의 이유가 장기적인 비전과 기술적 밑바탕이어야 한다. 단순히 금고에 돈이 넘쳐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아, 이유없이 금고가 넘쳐난다면 그것을 이유있는 곳에 사용해야 한다. 그래야 재무의 이유가 생겨난다.

 '이유없는 재무는 성장의 독이다'라는 짧은 글만 적을려고 시작부터 저렇게 했는데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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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1.14 22:19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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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밤에 트위터에서 어떤 분이 DM으로 아래의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현재 서비스 중인 네이버그린pc는 외부에서 조달했는데 1억 조금 더 주었다고 들었습니다. 이딴식의 에코는 좀 곤란하지 않을까 합니다.
오래 전부터 인터넷 에코시스템에 관심이 많았고, 지금 다니고 있는 '다음'도 단순히 인터넷 포털이 아닌 인터넷 에코시스템 (즉, 다음에코시스템)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요지의 말을 자주 했던 터라, 예정에도 없던 블로깅을 하게 됩니다. 지금 컨디션이 별로 좋지가 못해서 글의 논리가 제대로 잡힐지 걱정이지만, 당장 생각나는 몇 가지로 글을 시작, 마무리할 겁니다.

 지금은 허지부지되었지만, 작년 이맘때 풍운의 꿈을 가지고 Sustainable Web EcoSystem (SubEco)을 조성해보겠다고 새로운 블로그를 개설한 적이 있습니다. 그 블로그에서 지속가능한 웹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 자발성 Spontaneity 2. 민주성 Democracy 3. 다양성 Variety 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글을 적었습니다. 첫째, 자발성이란 웹생태계 플랫폼은 특정 회사나 단체가 임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위키피디아 등, 국내에서는 다음이나 네이버 등)로 조성하더도, 그 플랫폼 위에 생태계를 구성하는 더 작은 단체나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정부나 특정 단체의 마스트플랜에 따라서 생태계의 구성요소가 짜맞혀지는 것이 아니라, 그 생태계에서 살아갈 개인들의 자신에게 필요한 기능들을 추가하고 구성하는 그런 것을 말합니다. 둘째, 민주성이란 이런 웹생태계를 구성하는 모든 단체 및 개인들에게 저작 및 소비 등의 접근에 평등을 보장하고 또 그들의 순수한 기여를 보장해줘야 한다는 점이다. 민주적 시스템에 의해서 때론 힘 (네트워크에서의 영향력 및 평판 등)의 균형을 상실할 수 있으나, 소위 말하는 표현의 자유와 같이 모든 Peer들이 자유롭게 네트워크/생태계에 기여하는 환경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다양성의 경우, 자연생태계의 건전성은 종의 다양성으로 판단이 되듯이 웹생태계도 다양한 종류의 서비스들과 참여자들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각 시대나 지역에 따라 주요 트렌드 또는 유행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으나 모든 시대나 환경에서 획일화되는 것만큼 웹생태계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 없을 것이다. 참여자들의 다양성도 보장되어야 하고, 참여 방법의 다양성도 보장되어야 하고,.. 등등의 크고 작은 다양한 서비스들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생태계가 갖춰져야지만이 지속가능한 웹생태계 SubEco가 만들어진다. 물론, 자연생태계가 그러하듯이 웹생태계에서도 서비스나 참여자들이 시간을 두고 꾸준히 진화해나가고 때론 적자생존으로 영향력 또는 평판이 높은 서비스나 참여자들이 선두로 치고나가고,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도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적자생존이나 퇴화의 과정도 대자연 (Mother Nature)의 순리에 맞게 진화, 변화해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역으로 이런 웹생태계를 파괴하는 속성으로는 자발성이 무시된 강요에 의한 환경조성, 민주성이 무시된 독단과 독재, 그리고 다양성이 무시된 획일화 등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같다. 특히, 획익화에서 외부 세력에 의한 획일화도 문제가 되지만, 생태계 내에서 (어떤 조건에서) 합의된 획일화도 문제가 될 수가 있다. (즉, 경제학적 논리에 의해서 1등 서비스로 사람들이 몰리는 현상 등)

 이런 측면에서 한국의 웹생태계를 진단하기에 앞서, 외국의 사례를 좀 들어보자. 개인적으로 웹생태계가 가장 잘 이루어진 경우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로 보고 있다. 페이스북이라는 소셜플랫폼 위에 다양한 어플리케이션들이 얻혀지고 소비되는 모습이나, 140자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몰리고 또 그들의 필요에 따라서 부가서비스들이 붙어나가고 어플리케이션들이 지원을 하는 모습에서 적어도 페이스북생태계와 트위터생태계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물론, 최근에 이슈가 되는 개인정보 Privacy 문제나 피슁 등의 사이버공격, 특정인/단체를 향한 집단행동 등과 같은 부작용도 목격이 되고 있지만, 전체의 맥락/흐름에서는 크게 문제가 될 것같지가 않다. 아니, 그 생태계 내에서 자정능력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 측면에서, 건전한 지속가능한 웹생태계를 문제가 발생했을 때 자정할 수 있는 능력 (자정능력)도 갖춰져야 한다. 이런 자정능력도 앞서 말한 자발성, 민주성, 다양성의 기반 위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초기의 위키피디아도 건전한 웹생태계를 구성했다고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위키피디아의 발전에서도 몇몇 부작용이 발생했던 점들은 주지의 사실이고, 또 여러 자정 현상도 있었다. 이에 반해서 MS, 구글, 또는 마이스페이스 등이 나름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은 자발적인 생태계가 아니라 '돈'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바탕으로 인위적인 생태계를 만들려 했기 때문에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구글은 검색 및 검색광고라는 초유의 무기를 가지고 있지만, 연이은 소셜 및 기타 서비스들의 실패를 말하는 것입니다. (구글 자체의 실패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Knol, Orkut, 구글비디오, 웹이브 (?) 등의 서비스가 허지부지된 것을 상기하기 바랍니다.)

 한국은 어떤가? 인터넷의 초기에는 모두가 힘이 미약했기에 단정지을 수는 없었지만, 현재는 네이버, 다음, 네이트 등의 소위 포털 3강에 의해서 한국의 인터넷이 좌지우지되고 있다. 특히, 1등 기업인 네이버의 경우는 인터넷 사용자들에게 많은 혜택도 돌아갔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들이 많이 보고가 되고 있다. 글의 시작에 보여드렸던, 트위터의 DM이 일례는 극히 겉으로 드러난 경우에 해당된다고 봅니다. 하나의 공룡기업이 등장해서 그 아래에 있는 중소의 하청기업들의 등살을 파먹고 살아가는 모습이 현재 한국의 인터넷, 아니 산업 전반의 모습입니다. (인터넷 밖으로 눈을 돌리면 S기업으로 상징되는 사회 부조리.. 설명생략) 그런 사회의 부조리가 대한민국 인터넷 생태계에도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런 왜곡된 생태계가 정상적인 생태계인양 보여지고 있습니다. (내부인으로써 '다음'이라는 회사 또는 서비스 및 전략에 대해서 부정적인 글은 못 적는다는 점은 양해 바랍니다. N에 대한 공격은 비슷하게 D에 대한 공격이라고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작년부터 N에서 밀고 있는 다양한 캐스트들... 겉으로 보기에는 사용자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사용자들에게 힘을 나눠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그냥 플랫폼을 제공할테니 와서 마음껏 노십시오'라는 선전을 했지만, 그들이 처음에 기획했던 그리고 우리들이 기대했던 목표에는 아직도 한참 미치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물론, 돈이 있고 저력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더 전진하고 진화하겠지만... 현재의 모습만으로 평가하겠습니다.) 생태계에서 큰 힘을 가진 객체가 등장하면 다른 힘없는 객체들은 퇴락의 길로 들어섭니다. 그런 중소개체들이 몰락하고 나면 대형 공룡도 궁극에는 함께 멸종해버리는 일이 발생합니다. 지금의 한국 인터넷 생태계도 이와 비슷하게, 공룡과 다른 개체들의 상생의 협력이 아닌 공룡의 일방적인 독주의 형태로 보여집니다. 여담이지만, 덩치가 큰 공룡 (보자기)를 이길 수 있는 민첩하게 움직이고 뾰족한 무기를 가진 가위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습니다. 지금은 보자기의 위력에 눌려있지만, 그럴 수록 더욱 날을 갈고 스피드를 유지하다보면 더 건전한 생태계 참여자로 성장할 것입니다.

 잠시, (글의 논지와는 맞지 않습니다.) 애플과 구글에 대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애플을 향한 찬사만큼이나 부정적인 견해가 큽니다. 빛이 강할수록 어둠이 짙다는 걸 잘 보여주는 회사가 애플입니다. 그런데, (일반 사용자들의 입장에서) 구글을 향한 찬사들만 보입니다. 자세한 글을 적지는 못하겠지만, 여기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구글이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선한 기업은 아닙니다. 적어도, 경제적인 관점에서 또는 기업의 존재 이유라는 관점에서... 기업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합니다. 이유추구에 합당한 전략을 보여줄 뿐입니다. 그래서, 때론 온화한 키다리아저씨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때론 폭군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키다리아저씨 전략이 이유추구에 도움이 되면 키다리아저씨가 되고, 폭군이 이유추구에 도움이 되면 폭군이 됩니다. 지금 많은 아니 모든 기업들 (애플, 구글, MS, 어도비, 등등)이 모두 같습니다. 그리고, 건전한 생태계 조성이라는 측면에서, 애플의 독주도 건전치가 않고 구글의 독주도 건전치가 않습니다.

 이정도로 글을 끝내겠습니다. 결론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웹생태계는 몇몇 힘있는 기업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생태계에서 살아가는 모든 구성원 - 개인 (우리) -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가꾸어지고 진화되는 것입니다. 기업의 횡포가 심하더라도 참여하고 사용하는 우리들이 바른 의식을 갖고 사용하고 또는 불매함으로써 건전한 대한민국의 웹생태계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WEB is ON your H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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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웹 생태계 (Sustainable Web EcoSystem, SubEco) 구축 및 복원이라는 목표를 두고 새로운 블로그를 개설했습니다. 이제 막 시작한 블로그라서 아직은 유용한 정보도 별로 없지만, 나름대로 그동안 경험을 바탕으로 그리고 전 세계에 존재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계속 내용을 추가/수정할 예정입니다. 신뢰라는 바탕 위에 세워지는 그런 웹 생태계의 구축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의 협조를 강구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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