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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Op

공존가능한 사회

이 글도 일전에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을 다시 옮깁니다. 더 자세히 더 길게 적는다고 해서 더 정확한 뜻을 전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지속가능이라는 단편적인 용어보다는 공존가능이라는 더 보편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맞을 것같다는 의미에서 적은 글이었습니다. 그리고 일전에 적었듯이 지속가능의 차원 (지속가능성의 여러 측면.)을 확장한 것이 공존가능이라 믿습니다.

일단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옮깁니다.

지속가능성.
조금 어려운 개념의 단어를 너무 쉽게 사용하는 것같다.
많은 사람들이 '지속가능'을 말하지만 자신들이 무슨 의도로 저렇게 말하는지 대부분은 모른다고 생각한다.
'지속가능'보다는 '공존가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공존이란 나와 너, 즉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지속가능이라는 단어를 현재와 미래라는 시간 축에서만 정의되지만,
공존가능이란 현재와 미래 뿐만 아니라, 여기와 저기, 나와 너 즉 시간, 공간, 인간이라는 컨텍스트 3축에서 모두 정의된다.
오늘 잘 살자고 미래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것,
여기가 흥하기 위해서 저기를 파괴할 수 없다는 것,
나 혼자 잘 먹겠다고 이웃을 외면하지 않는 것. 이것이 공존이다.

처음에 저 글을 적게 된 개기는 글을 적기 며칠 전에 어떤 대기업에서 지속가능보고서를 발간했다는 신문기사 제목을 본 것입니다. 지금 검색창에서 '지속가능보고서'를 검색하면 노출되는 회사가 맞는지 아니면 다른 기업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쨌든 별로 지속가능해보이지 않는 기업에서 그것에 관한 보고서를 내는 것을 보면서 과연 저들은 지속가능성의 의미를 잘 알고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최근에 정치권의 큰 이슈인 경제민주화도 지속가능에 대한 얘기를 다루는데, 현재 그런 경제민주화에 가장 역행하는 부류가 대기업들입니다. 그런 보고서들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내용은 충분히 유추가 가능합니다. 그저 사회복지비로 얼마를 지원해줬고, 산에 나무를 몇 그루 심어줬고, 이산화탄소나 각종 오염물질을 일부 줄였다거나, 사회적 기업을 지향한다는 그런 내용이 보고서에 뻔히 들어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런 활동들이 지속가능의 모든 것인가?에 대한 심한 의문이 있습니다. 당연히 해야 마땅한 일을, 그저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자랑거리로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회의감이 듭니다. 그래서 (제가 다니는 회사에서도 지속가능보고서를 만들고 있지만) 그런 보고서를 내는 기업들을 보면 안쓰럽기도 합니다. 알고 하는 행동일까? 적어도 계산은 된 행위겠지요.

3월에 적었던 글 '지속가능성의 여러 측면.'에 보면 지속가능의 정의가 잘 나와있습니다. 1987년도 세계환경개발위원회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오늘날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미래 세대의 역량을 훼손하지 않고 현재의 욕구를 잘 대응하는' 사회로 정의했습니다.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 사이의 어느 한쪽의 양보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이들의 공존을 최적화하는 것이 지속가능성입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현재와 미래의 관계 뿐만 아니라, 여기와 저기 (우리나라와 외국, 특히 제3세계) 그리고 나/우리와 너/너희 사이의 지속가능성도 보장이 되어야할 것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속가능이라는 말 속에는 시간 축에서 오늘과 내일의 의미가 너무 깊이 밖혀있기 때문에 나와 너, 여기와 저기를 아우르는 용어로는 어감이 이상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공존가능'이라는 말을 생각했습니다. 공존가능이라는 것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것, 여기와 저기가 공존하는 것, 그리고 나와 너가 공존하는 것을 모두 뜻합니다. 시간축뿐만 아니라, 공간축과 인간축에서의 지속가능성을 모두 포함하는 의미에서 '공존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공존가능하는 것은 위의 지속가능성의 정의에서처럼 현재를 위해서 미래를 포기할 수도 없고, 미래를 위해서 현재가 무조건 양보할 수 없다는 시간축에서의 공존, 우리 나라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이웃 나라의 경제나 환경이 피폐해지는 것을 방치할 수 없다는 공간축에서의 공존, 그리고 나만의 이기적인 이득을 위해서 이웃에게 해를 끼칠 수가 없다는 인간축에서의 공존을 모두 아우르는 것입니다. 지금 지속가능성의 대표적인 사례가 환경보전인데, 이것은 비단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 사이의 갈등해소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선진국의 이기를 위해서 후진국/약소국의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것과 같이 공간적인, 인간적인 측면에서의 갈등중재를 포함합니다. 그리고 기업의 사회적 책무 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라는 용어도 자주 등장하는데, 그런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다 하는 것이 기업과 사회가 공존하는 것을 이룩하겠다는 것이 목표입니다. (기업 홍보가 아니라)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이 사회적 공존을 뜻합니다. ... 그리고, '공존가능'이 '지속가능'보다는 더 쉽고 친근하게 들리지 않나요?

그런데 지속가능성은 영어로 sustainability인데, 공존가능성은 어떤 단어를 사용해야할지 좋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냥 영어사전에서 공존하다를 찾아보면 live together 또는 coexist가 나오는데, 그렇다면 공존가능성은 coexistability라고 적어야 할까요? 그러면 공존가능 사회는 coexistable society라고 해야할까요? 그런데 공존가능 사회는 coexistable society가 아니라, 그냥 society 또는 our society라고 적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Society라는 것 자체가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살아가는 무리를 뜻하기 때문에, 사회라는 단어 속에 공존하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회 내에서 살아가면서도 그 뜻을 깨닫지 못하고 또는 무시하고 지내는 것같습니다. 우리의 사회는 우리가 모두 함께 살아가는 사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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