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도에 미국에 잠시 체류할 때 출석하던 교회 게시판에 올라온 이야기가 있다. 실화인지 아니면 꾸며진 상황인지, 그리고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글이 올라왔다는 것만은 정확히 기억한다. (어쩌면 2005년도에 한국에 돌아온 후에 읽었던 글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람이 일을 의뢰받았다고 한다. 예를들어, 듀데이트가 10일이고 수고비로 100만원정도 받는 일이다. 그런데 좀 열심히 하면 일주일만에 끝낼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고민이 시작된다. 만약 일주일만에 일을 끝내고 결과물을 전달해주면 일을 의뢰한 사람이 그 일이 10일이나 걸릴만큼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계약맺었던 100만원의 수고비가 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또 다음에 일을 의뢰할 때는 더 나쁜 조건으로 계약을 맺을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일주일만에 일을 끝마친 후에 3일정도는 그냥 놀다가 예정된 날짜에 결과물을 전달해주는 것이 나을까?를 고민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때 친하게 지내던 어느 목사님께서 일주일만에 모든 일을 끝마치고 나머지 3일만큼 일을 더해서 예정된 결과물에 플러스알파를 더해서 전달해주면 어떻겠느냐는 조언을 해주셨다고 한다. 그 당시에 이 제 3의 옵션을 듣는 순간 조금 화가 났다. 왜 이 세번째 방법이 제1, 아니 제0의 방법이 아니라, 여러 대안들이 마음이 들지 않을 때 겨우 선택하는 방법이어야 하는 상황/일반인식이 아쉬웠다.
다음에서 데이터분석유닛/데이터마이닝팀에서 근무하다보니 회사의 다양한 데이터를 다룬다. 정책상 전사의 모든 데이터에 쉽게 접근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검색과 관련된 데이터는 그나마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특히 최근 검색 관련 로그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몇 팀 중에 하나다. 그러다보니 검색로그를 활용해서 신규 서비스를 기획하거나 신규/개편 오픈한 서비스의 지표를 확인하기 위해서 다양한 분석요청이 들어오고 이를 지원해준다. 분석요청 지원이 팀의 메인 롤은 아니지만, 때로는 까다롭고 많은 시간을 요하는 경우가 많다. 분석기간이 길어서 데이터가 많거나 조금 까다로운 분석/가공이 필요하거나 또는 요청 자체가 모호한 경우는 마음 속 깊이에서부터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런 경우에는 신경을 써서 더 잘 해줄 수도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데이터만 뽑아서 추가/복잡한 가공을 하지 않고 그냥 전달해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10년 전에 제 3의 대안을 제 3의 옵션으로 생각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글을 적었던 사람이 이제는 귀찮다는 이유로 그냥 아무렇게나 일을 처리해주는 속물로 변해버린 것같다. 어제도 새로운 분석요청을 받았는데 (복잡하거나 어려운 것은 아님), 처음에는 결과물 필터링 등을 그냥 요청자에게 맡기고 기본적인 데이터만 뽑아줄 요량이었는데, 밤에 침대에 누워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조금만 더 수고를 하면 분석을 요청한 기획자는 엄청 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페이스북에 아래의 글을 남겼다.
조금 귀찮은 일이지만 내가 조금만 더 수고하면 상대는 엄청 편해진다. 그런데 상대는 내가 그런 귀찮은 수고를 한 것을 알까? 상대가 이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이 어리석인 생각일까?
조금 귀찮은 일이라고 말했지만, 단순히 분석프로그램에 코드 몇 줄을 추가하는 것은 아니다. 분석요청이나 필요한 데이터가 정형화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가 편하게 볼 수 있는 형태의 자료를 만들기 위해서 많은 자료를 일일이 찾아서 수작업으로 데이터를 재가공해서 분석프로그램에 피딩해야 하는 일이다. 몇 십 분의 수작업이 끝나면 해결될 문제지만, 이게 생각보다 귀찮은 일이다. 그런데 이 작업을 기획자에게 맡겨버리면 그/그녀는 몇 시간을 소요해야지 겨우 원하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내가 조금 더 수고하기로 했고, 게시판에 올라왔던 글이 문득 생각이 났다.
그런데 이런 수고를 묵묵히 하면서 또 이것을 누군가가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생겨난다.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그 순간 스스로 조금 부끄러워졌다. 나의 메인 업무가 아닌 일에 플러스알파를 더하는 일이기 때문에 생생을 내더라도 별로 문제될 것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걸 자랑삼아 밝히는 것도 좀 그렇다. 그렇지만 내가 이정도의 수고까지 감내해줬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라는 점을 또 밝히지 않으면 상대는 영원히 내가 어떤 수고/과정을 거쳤는지 모르고, 그냥 지라 게시판에 분석요청만 올리면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정도의 인식만 가질 것이 뻔하다. 그래서 조금 슬픈 상황이다. ... 앞으로도 많은 일들을 만나면서 화가 나는 상황이 발생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제 0의 옵션 -- 사람들이 말하는 제 3의 길 --을 선택하려 노력할 것이다. 그런데 그 선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인식이 생길 것같은 서운한 생각이 든다. 나도 인간이다.
(오랜만에 바로 글을 적어서 바로 공개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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