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내부인을 위한 글이었습니다. 내부에 먼저 공개를 하고 외부에 공개할 예정이었으나 주말동안 심사숙고한 이후에 내부에는 따로 공개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일부 내용/표현은 수정했습니다.) 인식의 차이도 확인했고, 또 왜 이런 글을 자꾸 적어서 스스로 힘들게 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있었습니다. '포기하면 편해.'라는 만화의 한 컷이 주말 내내 제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관조자의 길을 걷는 것이 제 정신건강에 더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 오해한 부분도 많았습니다. 그 믿음에 대한 확신이 사라졌습니다. 작지만 뭔가를 주고 싶어서 시작했던 일에서 매번 이런 좌절감과 상실감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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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에 휴가를 내고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제목으로 초안을 작성하다가 어떤 메일 때문에 멘붕되어 글을 계속 잇지 못했습니다. 전날 밤에 '우리는 여전히 파편만 보고 있다'라는 말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모바일이든 인터넷이든 아직은 누구도 전체 그림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전체 그림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이 단편적인 현상에만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메일은 저의 생각과는 정반대의 내용을 담고 있었기에 실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후사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감정에 휩쓸려 지나친 비판/편향된 견해만 밝힐 것같아서, 그리고 블로그를 통해 일반에도 공개될 거라서, 적던 글을 모두 리셋하고 조금 더 건설적인 주제로 바꿨습니다. 그리고, 의도를 가지고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하지도 삼가지도 않았습니다. 글을 쓰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표현을 사용한 것이라 부적절해 보이는 실언도 있습니다. 글을 쓸 때면 매번 인식의 차이, 인식의 한계를 경험합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그냥 다름이고 그것을 어떻게 포용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이 글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개인의 부족함으로 다음인 게시판에 글을 적지 않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연말/연초마다 1편 정도는 글을 계속 적어오고 있습니다. 두달 전에 적었던 '합창성의 세계로 나아가라'라는 글로 퉁 칠까도 생각했지만 하루 밤의 고민에서 나온 글로 1년을 정리/준비하기에는 부족함을 느껴 이렇게 글을 적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도 어려운 시기에 누군가의 희생의 결과였듯이, 지금처럼 불안, 불만, 불확실의 시대에 외치는 소리가 없다면 이는 망조이고 구성원으로써의 도리가 아니라 판단했습니다. 표현의 다양성과 자유가 사라져가는 이 공간이 늘 안타깝기에 이렇게 발가벗겨지는 것에 두려움은 없습니다. 이전의 여러 글들과 같이 많이 부족하고 또 이 글을 통해서 -- 매번 그랬듯이 -- 누군가는 상처를 받을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백신이라는 독을 투여하여 항체를 만들듯이 저의 직설을 통해서 현실을 되돌아보고 또 미래를 준비하는 발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너른 아량을 베풀어주실 것을 구하지만, 저와 견해가 다르다면 욕하셔도 관계없습니다. (단, 게시판의 댓글은 읽지 않습니다.) 여러 이유로 저를 욕해도 좋고 저주해도 좋으나 현실을 외면하거나 무시하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최근 개인적으로 느끼는 회사의 분위기, 그리고 여러 베테랑 기획/개발자들과 대화하면서 그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회사 분위기를 종합하면 '다음이 활력을 잃었다'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근년에 의욕적으로 런칭한 서비스들이 여러 이유로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어떤 경우는 런칭 전에 사업을 접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외부의 환경과 경쟁업체들은 다음보다 더 나은 퍼포먼스를 보이며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해가고 있습니다. 그런 내외부의 원인, 그래서 발생한 여러 흉흉한 소문들은 다음인들의 의욕을 꺾어놓습니다. 실패/좌절이 겹쳐지면 스스로 '나는 안 돼'라는 그런 생각이 깊어지고 자신감이 많이 떨어집니다. 뿐만 아니라, 경영환경의 변화로 무턱대로 많은 리소스를 투자할 수 없기 때문에 웬만한 아이디어에는 지갑을 열 수 없어 더욱 신중해집니다. 안정에 대한 갈구가 길어질수록 업무태도가 더욱더 수동적이 되고, 그래서 역동성을 잃게 됩니다. 2등에서 벗어나고자 열심히 뛰었지만 현실/결과는 '만년 2위'라는 평을 듣고, '그래도 2등이 어디야'라는 그런 자기만족에 빠집니다. 저는 다음이 1등이 되어야 된다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Daumish (다음다움)을 잃어버리는 것에는 크게 걱정하고 있습니다.
다음다움이란 그저 단순히 네이버와 달라야 된다, 카카오와 달라야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차별화를 위한 차별화, 유일화를 위한 유일화는 지양합니다. 다음이라는 사명에서와 같이 더 다양성이 존중되고, 일관성은 다소 부족하더라도 더 다양한 도전을 하는 곳이 다음이어야 합니다. 그런 다양성의 존중과 도전이 바로 다음의 역동성입니다. 지금 그런 역동성을 상실했습니다. 새로운 도전이나 확고한 비전 그리고 너른 포용력보다는 서비스 운영에 치우친 기획자들, 유비보수에 바쁜 개발자들, 서비스 마인드가 부족한 지원자들, 그리고 모호한 경영자들의 모습에서 저는 밝은 미래만을 볼 수는 없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들을 욕보이기 위해서 이렇게 뭉퉁그려서 적은 것은 아닙니다.)
다음이 가진 많은 장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장점들이 단점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게시판에 올라왔던 '만년 2위 다음의 설움'의 글의 도입부에 제시된 수평의 문화가 그저 리더가 없는 연방제같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수평 네트워크의 장점은 하나의 노드에 문제가 발생해도 이웃노드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해서 전체 네트워크의 실패를 방지할 수가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네트워크가 경직되어있습니다. 한두개의 노드가 아니라 거의 전체 노드에 위험이 내재해있습니다. 지금 자신이 속한 팀이나 유닛이 여전히 역동적인가?를 점검해보십시오. (현재 유일한 역동성은 멤버의 이탈과 신규 입사뿐입니다. 제 입사이래 5년동안 1000명 이상의 신규 입사자가 있었습니다. 매년 250~300명이 충원되었고, 적어도 150~200명은 이직했다는 얘기입니다.)
다음이 가진 가능성 중에 하나가 바로 서울과 제주로 이원화된 것입니다. 당연히 업무에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불편을 해소하는 다양한 솔루션들을 만들어낼 수가 있습니다. 일정 공유가 어려우면 캘린더 서비스를 더 개선하고, 화상회의실이 부족하면 그냥 노트북/아이폰의 페이스타임으로 업무를 조율하고, 프로젝트 히스토리 관리가 어려우면 구글닥스처럼 협업툴을 이용할 수가 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서울-제주 간의 이런저런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을 극복시킨 유일한 방법은 더 잦은 (서울-제주) 출장이었습니다. 현재의 서울-제주 이원화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일정공유프로그램, 화상회의시스템, 문서공유서비스, 그룹/모바일메시징솔루션 등을 개발, 개선했다면 지금쯤이면 대한민국에서 B2B/엔터프라이즈 시장의 리더가 되어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또는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음이 지금쯤 가졌어야했던 많은 기회들을 놓쳐버렸습니다. 우리의 현실에서 불편을 체득하고 그것을 해결할 솔루션을 개발해서 외부에 공개했다면 더 나은 다음 뿐만 아니라, 더 나은 대한민국도 가능했습니다. 말로는 스마트워크나 플렉서블 워크스페이스를 외쳤지만, 현실은 잦은 출장뿐이었습니다. 프로젝트 초기에 개념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F2F 미팅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일정 궤도에 오른 프로젝트를 유지보수 또는 팀을 관리하기 위해서 불필요하게 출장을 하는 것은 더 효율성을 떨어뜨립니다. 하늘에서 허비한 돈과 시간만으로도 위의 예시 중에 하나 정도는 괜찮게 나왔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두가지 사례만 들었지만 다음의 장점이 장점으로 발전할 때는 그것이 긍정적인 문화가 되고, 그 문화를 바탕으로 더 재미있는 서비스/솔루션들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껏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현재로써는 외부에서 조롱을 받는 그런 어정쩡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다음이라는 Identity를 느낄 수가 없습니다. 다음만의 문화가 있고, 그걸 밖으로 표출할 수 있을 때라야 다음의 Identity를 가졌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몇 년 전에 팀쿡이 애플 CEO대행을 하고 있을 때 컨퍼런스콜에서 잡스 사후에도 애플이 잘 나갈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 즉흥적으로 읊어서 유명해진 The Cook Doctrine은 -- 현재 애플의 상황은 별개로 해서 -- 단순히 팀쿡만의 생각이라기 보다는 애플의 전직원들에게 공유된 애플의 철학, 가치, 또는 문화가 그런 형태로 표출된 것입니다. 지금 다음의 아무 직원이라도 붙잡고 '다음을 어떻게 생각해?' '다음의 철할/문화가 뭐야?'라고 묻는다면 90%이상은 제대로 말도 못하고, 나머지 10%도 모두 다른 얘기를 꺼낼 거라고 확신합니다. '세상을 즐겁게 변화시키는 다음'이라는 창립모토도 있고, Passion Open communication Creativity 등의 몇 가지 실천 가치가 존재하지만 이것들이 현재 다음인의 삶/생활에서 무의미해진지 오래입니다. 잘 만들어진 문구나 섹시한 단어들보다는 우리가 삶에서 체득한 다음을 잘 표현하는 그것이 우리의 모토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제가 슬픈 것은 무엇이 다음의 문화이고 가치이고 철학인지 도통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지금이라도 모두 머리를 맞대고 대화하고 정리하면 그것이 다음의 문화 철학 가치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모든 직원들이 개별적으로는 회사에 문제가 많이 있고 어떻게 해결할지를 혼자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나름의 해답을 찾은 이들도 있지만 많은 이들은 '내 알바 아니다'라고 그냥 포기한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지금 이런 혼란과 불안정한 시기에 다음의 가치와 철학을 세우고,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가치와 철학에 바탕을 두고 다음이 앞으로 해야할 사업들을 정리할 수 있고, 그렇게 정리된 사업은 또 다음의 문화 위에서 아름답게 꽃피울 수가 있습니다. 제가 이 글에서 바로 '다음의 문화는 이거여야 한다'라고 손쉬운 답을 줄 수 없습니다. 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지만 모두가 느끼고 있는 그것을 찾아내서 명확히 해야 합니다. 조직의 비전은 그런 조직의 문화 가치 철학 위에서 만들어지고 공유되어야 합니다.
미래는 하나가 아닙니다. 네이버가 제시한 미래, 카카오가 제시한 미래, 구글이 제시한 미래, 애플이 제시한 미래, 삼성이 제시한 미래. 그렇다면 다음이 제시하는 미래도 있어야 합니다. 그걸 보고 싶습니다. 그걸 함께 만들고 싶습니다. 보지 못한 미래를 상상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도 상상은 계속 해야 합니다. 남이 만들어놓은 미래에는 우리의 자리는 절대 없습니다. 다음의 미래는 다음의 문화적 토양 위에 세워질 왕국입니다. 지금 다음의 문화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다음의 미래를 건설할 수 없습니다. 마치 집터를 마련하지 않고 집을 짓겠다고 나서는 것과 같습니다.
혼자서 오랫동안 고민했던 몇 가지 실천들은 나열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이 진짜 다음을 다음답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지만, 잘못된 왜곡된 견해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군가 앞장서서 다음의 문화를 만들고 실천방안들을 찾아보자는 그런 결의가 있으면 그때 더 자세한 토론의 주제로 남겨놓겠습니다.
그래도 다음의 행동강령이 될 수 있는 4+1 동사를 소개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창조적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한 4 + 1 프랙티스)
- 상상하라. Imagine
- 표현하라. Express
- 행동하라. Act
- 쟁취하라. Occupy
- 이해하라. Understand
우리는 더 다양하고 많은 것들을 상상해야 합니다. 상상하지 못하면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저 얻은 것은 결국에는 우리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출시할 서비스를 상상할 수도 있고 우리의 회사생활을 즐겁게 할 아이디어를 상상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일상생활에서의 즐거움을 상상할 수도 있습니다. 나쁜 것이 아니라면 모든 것을 상상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렵고 불가능해보이는 것을 상상한다면 더 좋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상상한 것을 그냥 기억의 저편에 묻어두지 말고 그것을 말로써 글로써 표현해야 합니다. 동료들과 대화를 하면서 새롭게 떠오른 아이디어를 표현할 수도 있고 블로그나 게시판에 그것을 적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친구나 동료들로부터 다양한 피드백을 받아서 그 아이디어를 발전시켜야 합니다. '정'이 없으면 '반'과 '합'도 없습니다. 잘못된 아이디어였다면 폐기하거나 수정하면 됩니다. 너무 사소하다고 생각해서 표현하지 않고 있으면 그 아이디어는 영원히 사소한 것으로 남게 됩니다. 이렇게 대화나 토론을 통해서 구체화된 아이디어라면 이제는 시제품 또는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보는 것입니다. 서비스 아이디어가 아니면 그냥 실천해보는 것입니다. 마플봇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으면 마플API를 이용해서 (또는 동료의 도움을 받아서) 마플봇을 만들어서 사용해볼 수도 있고, 그냥 악기를 배워보고 싶다면 악기를 구입해서 연습해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해서 또 지인들의 의견을 구해보면서 더 멋진 서비스로 발전시켜나갈 수 있습니다. 악기를 배우면서 느꼈던 점을 글로 남긴다거나 불편했던 점을 개선할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그런 창발성은 실천하기 전에는 생겨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실천했다면 결실을 맺어서 따먹기 바랍니다. 서비스 아이디어라면 신규 서비스로 런칭할 수도 있고 아니면 스타트업을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뭔가를 배웠다면 그것을 마스터하고 연주회/전시회를 하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상상하지 않고, 표현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고, 쟁취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고, 달콤한 결실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동료들의 엉뚱한 상상이나 힘든 도전을 이해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문화는 혼자의 힘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공유된 즐거움을 향유하시기 바랍니다.
이전의 글들에서는 'Imagine & Occupy'로 끝을 맺었는데, 오늘은 다음의 문구로 이 글을 마칩니다.
Imagine Impossible Do Possi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