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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Op

어리석음에 대하여...

개인의 이야기입니다. 그냥 요즘 떠오르는 생각들을 두서없이 적어봅니다. 오해하는 것은 좋지만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냥 이 놈이 할 일이 없으니 별걸 다 생각하고 있구나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설마 어떤 것이 현실이 되더라도 그냥 그러려니 하시면 됩니다. 최근 잠들기 전의 저의 기도는 항상 '주여,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치 마소서.'라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그냥 저의 어리석음에 대한 글입니다. 생각에 관한 것이지 행동에 관한 것은 아닙니다. 또 이렇게 글을 적는 것이 제 나름의 힐링의 과정입니다. 그냥 제 얘기를 하는 겁니다. 담고 사느니 이렇게라도 표출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저의 한숨이 깊어만 갑니다. 지난 몇 달 동안 간단한 추천 알고리즘을 가지고 동영상과 쇼핑 쪽에 적용하는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며칠동안 데이터 준비관계로 짬이 생겨, 지금의 제 상황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내년에도 계속 해야 되나 아니면 새로운 업무를 찾아서 시작해야 하나를 며칠째 계속 고민중입니다. 정확히 6개월 전에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때는 다행히 박사후 과정중에 공부했던 추천방법론을 몇몇 서비스에 적용해보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추천알고리즘에 관한 논문들도 다시 찾아 읽고 내용도 정리하고 그리고 실제 서비스에 적용하기 시작한 것이 동영상과 쇼핑입니다. 동영상은 특정 동영상을 재생시켰을 때, 함께 보여줄 관련동영상을 제공해주는 업무입니다. 그런데 이 작업이 동영상팀의 요청에 의해 시작한 것이 아니라, 저희가 먼저 해주겠다고 제안을 했던 것이라서 동영상팀에서는 별로 급하게 생각지도 않습니다. 결과를 보내줘도 시큰둥하고 피드백도 빠르지 않습니다. 급기야는 애초에 배정되었던 기획자도 바뀐다고 하고, 바뀐 기획자는 아직 연락도 한번 주지 않고 있습니다. 쇼핑은 더 간단한 작업입니다. 다음탑이 개편되면서 성연령별로 내또래들이 관심을 가지는 키워드나 상품을 피쳐링해주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간단하게 여기에 들어갈 키워드를 정제해서 제공해주는 것인데, 이것이 확장되어 내부 섹션페이지작업까지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기존에 사용하던 데이터로 이런 저런 데이터를 제공해줬지만, 많은 부분이 부족해서 새로운 데이터를 요청한 상태이고 지금 그 데이터를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원래부터 쇼핑을 담당하는 동료가 다른 업무로 바빠 잠시 대신해주고 있는 입장에서, 쇼핑을 더 깊이 파고 들어가야하느냐?라는 근본적인 물음도 있습니다.

그래서 내년에도 동영상, 쇼핑을 비롯한 더 다양한 서비스에서 이런 추천작업을 지원해주는 것을 계속 할까?라는 생각도 하면서, 또 다른 더 재미있는 분야가 있을까? 싶어서 구글링을 시작합니다. 단순히 '데이터마이닝 트렌드' 류의 키워드로는 제가 원하는 결과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10년, 20년마다 간혹 큰 줄기의 알고리즘이 등장하는데 최근에는 그런 큰 줄기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한동안 논문은 읽지도 않다고 갑자기 찾다보니 큰 흐름이 보일리 만무합니다. 그리고 학교에서처럼 새로운 알고리즘을 개발해서 논문을 적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회사의 서비스에 맞는 알고리즘을 찾거나 개발해서 적용하는 것이 업무다 보니 단순히 새로운 학술트렌드를 조사하는 것으로 저의 내년 할 거리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추천시스템에 대해서도 구글링을 해봅니다. 최신 논문들을 읽어보면 다양한 개선안들은 확인할 수가 있지만, 그래서 이걸 내 문제에 적용하는 게 맞는 건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년에도 계속 추천으로 나가는 게 맞나?라는 그런 생각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젠 영어로 된 논문을 읽어도 예전만큼 빠르게 지식을 습득하지도 못합니다. 원래 복잡한 수식보다는 개념을 중심으로 사고를 전개하는 편이라 논문에 등장하는 복잡한 수식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인생에서 큰 고비를 만난 것같다는 생각이 요즘 자주 듭니다.

예전에는 새로운 것들을 보면 쉽게 받아들려서 다른 분야에 적용해보고 또 그 문제에 맞는 다른 해법을 찾는 것이 쉬웠는데 나이가 들수록 그런 능력이 퇴화되어 갑니다. 지금 바로 그렇습니다. 예전같으면 '내년에는 뭘하지?'라는 이런 종류의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끊임없이 제가 해야할 일들이 물밀듯이 밀려왔고 또 그런 생각이 나더라도 바로 해답을 찾아서 그 길로 가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일주일이 넘도록 내가 뭘 하면 좋을까?라는 질문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리에 앉아서 남들 보기에 신선노름처럼 논문만 파고 있는 것도 미안하고 그렇다고 무작정 업무시간에 게임만 하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보통 때는 업무 중에 머리를 식히거나 창발적인 생각을 위해서 간단한 카드게임이나 퍼즐을 즐겨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냥 퍼즐에만 깊이 빠져듭니다. 얻고 싶은 답을 얻지 못하고 그냥 허비하는 시간만 늘어납니다.

저의 인생은 큰 굴곡이 거의/전혀 없습니다. 웬만한 즐거움이나 시련을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하나뿐인 아들을 위해서 헌신해주신 부모님 덕에 배를 곪지는 않았습니다. 어릴 때는 몰랐지만 누나들이 대신 희생을 치루줬던 것도 있습니다. 학교에서 성적도 그리 나쁜 편이 아니었고, 특별히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습니다. 어쩌다 시험을 치면 성적은 곧잘 나와서 반에서 2~3등 수준은 계속 유지했습니다. 더 높은 등수에 대한 압박도 없었고 (부모님께서는 더 바래셨는지도 모르지만), 그런 쓰잘데기없는 욕망따위는 없었습니다. 간혹 실수로 모의고사 1등이 되기는 했지만 그걸 유지하기 위해서 더 악착같이 공부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반항적인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지도 않았다. 그래서 평생을 반항적인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또 시간이 지나고 결정의 순간이 오면 늘 쉽게 길이 열렸습니다. 항상 베스트의 길로 들어선 것은 아니지만, 현재에 이르기까지 무난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제 또래의 남학생들이라면 초등학교 때 본 미드 '맥가이버'에 영향을 받아서 물리학자가 되겠다라는 꿈을 키운 애들이 많습니다. 기억이 남는 가장 어릴 적부터 저의 장래희망은 과학자였고, 초등학교를 거치면서 맥가이버의 영향으로 '물리학자'가 제 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고3이 되고 막상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게 된 시점이 되어서는 물리학이 아닌 산업공학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그냥 서울대 산업공학과에 진학하겠다는 반친구의 진학결심만 듣고 저도 그냥 '산업공학 가보지뭐'라고 선택했습니다. 대학교는 어릴 적부터 가고 싶었던 포항공과대학교에 갔습니다. 물론 바로 합격하지는 못했습니다. 인생에서 첫번째 시련기가 시작되나 싶었습니다. 다행히 재수학원도 알아보던 어느날 등록하겠냐?라는 전화를 받고 '네 그러겠다'라고 해서 입학도 했습니다. 대학 4년 동안도 30명 중에서 그냥 2~3등 수준에서 성적이 계속 나왔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을 진학하면서 성적순으로 아래쪽에 속하는 집단들이 하나둘씩 떨어져나가고 점점 더 수준이 비슷한 집단으로 정제되었는데도 여전히 2~3등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저 꾸준한 등수가 바로 저의 평탄한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같습니다. 그래서 부족하지도 않았고 악착같지도 않았습니다. 대학 이후의 석사, 박사 과정에서 조금의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그냥 그렇게 시간과 함께 진학을 했고, 운좋게 기다려주신 교수님 덕분에 학위를 딸 무렵에는 논문도 제법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논문을 쓰는 것이 제 일이었지만 그것이 가장 재미있는 일이었고 또 가장 잘하는 일이었습니다.

학교에서의 삶은 참 익숙했고 편했지만, 학교 이외의 삶에 대한 부담이 늘 있었습니다. 연구비 명목으로 지급되는 소정의 금액만이 학위의 대가로 주어지는 것도 조금은 불편했습니다. 인터넷 비즈니스 초기부터 항상 관심을 가졌기에 결국 입사한 곳이 다음입니다. 물론 박사후과정을 하면서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은 인터넷 업계가 아니라, 기업체의 경제연구소였습니다.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트렌드를 분석하고 발굴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제게 열리지 않았고, 결국 지금 이렇게 제주에 내려와있습니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다음도 나름 큰 곳이지만, 내부에서 보면 조직이나 업무가 완벽하게 갖춰진 조직이 아닙니다. 입사 당시에 검색에 많은 리소스를 투자하고 있던 시점이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서비스들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서비스들을 개발 운영하는 것에 많은 부분이 허술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입사하자마자 많은 일들을 바로 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둘 문제들이 풀려가고 또 사람들이 많이 충원되고 나니 저의 존재감이 점점 옅어지는 것같습니다. 그냥 일이 넘쳐났기 때문에 내일은, 다음주에는 뭘하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이제 업무가 익숙해지니 웬만한 새로운 업무가 떨어져도 1~2주 내에 해결되고, 웬만한 일은 큰 도전으로 못 느껴집니다. 모두들 직장생활을 3~4년을 하면 그런 직장권태기가 오는 듯합니다. 저도 그런 기간이 참 오래 지속됩니다. 그런 와중에 시작했던 것이 추천입니다. 그리고 6개월이 흘렀습니다. 애착을 갖은 프로젝트/서비스에서 반강제적으로 제외되기도 했습니다. 많은 부분에서 제가 잘못했다는 것은 알지만, 그 상황이 순전히 제가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억울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러나 그 때는 또 다른 많은 일들에 기회가 있었기에 대수롭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좀 다릅니다. 그냥 재미없습니다.

예전에는 생각이 참 빨랐습니다. 서비스를 사용해보면 바로 그 가능성이나 한계를 바로 파악할 수 있었고, 또 이런저런 문제들이나 개선안 등을 정리해서 알려주곤 했습니다. 그래서 회사 내에서 제가 관심을 가지는 서비스를 담당하시는 분들은 절 참 싫어합니다. 늘 이런 저런 문제점을 발견해서 시니컬하게 피드백을 보내기 때문입니다. 일면식도 없으면서 제 이름에 거부반응부터 보입니다. 어쨌든, 그런데 요즘은 예전만큼 그렇게 활발하지가 않습니다. 중간에 주눅이 드는 경험을 몇 번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머리회전 자체가 예전만 못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현재 가지고 있는 고민을 바로 해결하지 못하고 시간을 끌다보니 지금 다른 일을 시작해야할 때가 아닌가?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지금 이렇게 어려운데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보면 더 기회를 놓쳐버리는 것은 아닌가?라는 걱정이 됩니다. 그냥 자리에 앉아서 관념적으로 일하는 것보다는 몸을 움직이는 일이라도 해야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조금이라도 생각이 자유롭고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 일을 벌려야 되는 게 아닐까?라는 그런 고민도 생깁니다. 어떤 면에서는 안정적이고 싶은 충동과 다른 면에서는 더 자유롭고 싶다는 충동이 내면에서 일어납니다. 이렇게 재미없이 시간을 보내는 바에는 그냥 돈이라도 더 벌 수 있는 곳에서 재미없이 톱니바퀴처럼 굴러가는 게 5년 10넌 후를 생각해서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마저도 듭니다.

내 인생의 여정에는 반감기가 있습니다. 대구/경산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거의 20년을 살았습니다. 이후 저의 20대의 모든 시간을 포항에서 10년을 조금 넘게 보냈습니다. 포항 생활을 청산하고 온 곳이 제주도입니다. 그래서 입도하면서 5~6년 뒤에는 어쩌면 또 다른 삶을 준비하고 있을 거라는 막연한 감이 있었습니다. 벌써 5년을 다 채워갑니다. 처음에 예감했던 그 시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냥 남들과 같이 결혼해서 애낳고 그렇게 정착을 해야하나 아니면 그냥 노마드로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하나에 대한 고민도 있습니다. 20대 중반에 결심했던 것이 있습니다. 제 인생 반을 살고 난 후, 즉 제 나이 40이 되면 그냥 이런 직장생활은 미련없이 버리고 선교단체나 봉사단체에 들어가서 세계의 오지에 봉사/선교활동이나 나서는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지금 그 시간이 다가올수록 더 준비 상태가 미흡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막상 그 시간이 닥쳤을 때 어떻게 되지?라는 불안감도 매일 엄습합니다. 아직까지 40이후의 삶을 전혀 준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배운 지식과 경험이 아깝기도 했지만, 10년정도는 베풀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10년을 채운 40에의 삶이 걱정됩니다. 40이 넘어서도 일상에 안주해버리고 20대의 비전을 잊게 된다면 저에게 큰 시련을 달라고 기도했던 적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겪을 큰 시련을 미리 막기 위해서 지금부터 준비기간을 주시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합니다. 더 늦기 전에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준비하고 실행에 나서야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어쨌든 지금이 변화가 필요한 시기인 듯합니다. 처음에는 그냥 새로운 분석방법론을 습득하면 뭔가 달라지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지만, 구글신도 그 새로운 것을 제게 던져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새로운 서비스에 더 깊이 파고들어가볼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현실적으로 가장 가능성있어 보입니다. 아니면 아예 데이터분석이 아닌 새로운 종류의 일을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업계의 트렌드를 수집 분석하고 새로운 신사업발굴이나 그런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될 때 살짝 발만 걸쳐서 그런 프로젝트나 서비스의 개념을 잡아주고 또 사용성을 높이는 방안 등을 같이 고민하고 토론을 해보는 것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 이건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면 또 이제껏 쌓았던 것들이 아깝게 느껴집니다. 이왕 버릴 거면 아예 완전히 새로운 곳으로 가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운동선수들이 FA시장에서 나와 자신의 객관적인 시장가치를 평가받고 싶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참, 배부른 소리한다'라고 말했었는데, 어쩌면 나도 시장에서의 내 가치가 어느 정도인가를 확인하고 싶기도 합니다. 단지 얼마의 연봉을 받을 수 있는가가 아니라, 나의 어떤 점이 그들에게 어필이 되고 또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확인해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객관화시켜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자주 느낍니다.) 이제껏 헤드헌터들이 연락이 오면 모두 사양했는데, 왜 그랬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대부분의 오퍼라 양S사에서 왔기 때문에 거절한 것도 있습니다. 작은 곳의 경직에도 갑갑해하는데, 더 큰 곳의 견고한 경직성을 몸소 체험하고 싶지만은 않기 때문입니다. 입사 초기에 지도교수님께서 대구의 모 대학교에서 연구만 담당하는 교수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내주셨는데, 고향에서 가깝고 뽀대나는 것같다는 생각도 했지만, 직업으로써 교수를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지원도 하지 않았던 것도 문득 떠오릅니다. 한달 전에는 연구실 후배녀석이 학교에 새로운 프로그램에서 교수를 초빙한다는 공고를 보내줬던데, 끌리기는 했지만 그것도 내 길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그냥 지원이라도 해볼걸 그랬나?라는 생가도 해봅니다. 사실 직업으로써의 교수는 딱 질색이지만, 인생을 살면서 쌓았던 경험과 지혜를 누군가에게 나눠줄 수 있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고 지혜자의 특권이다라는 생각을 줄곳해왔습니다. 현실에서는 강단에 서지 않는 이상은 그럴 기회가 극히 드뭅니다. 이렇게 글을 적는 것으로는 날것으로써의 저의 모습과 생각을 전해주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후회가 있지는 않습니다. 그저 그런 일들을 통해서 내가 있어야할 곳을 더 분명히 찾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벽에 부딪히고 나면 그때 잘못된 선택을 했었나?라며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보는 것뿐입니다.

저는 일을 통해서 즐거움을 얻는 타입인 듯합니다. 일의 많음/어려움보다 적음/없음이 더 큰 스트레스입니다. 다양한 여행이나 문화활동 등의 외부활동은 그때는 재미있지만 현실적 먹거리 걱정으로 오래 지속되지 못합니다. TV시청이나 독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순간순간 웃으면서 또 깨달음을 얻기는 하지만 그것이 삶의 즐거움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생각이 떠올랐을 때 글을 적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지만, 어쩌다 거저 얻은 생각을 글로 적는 수준이고 또 이를 전문화할 가능성도 매우 낮습니다. 그러나 제가 책임감을 가진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는 세상의 모든 근심도 잊고 맙니다. 늦은 밤에 잠자리에 들려다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서 연구실로 달려가던 때가 생생합니다. 그러나 회사에 들어오면서부터 비록 좋은 생각이 떠오르더라도 굳이 사무실로 밤에 나올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사실 입사 초에 한두번 늦은 밤에 출근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레 늦은 밤에는 깊은 사색에 빠져들지 않게되고, 그냥 몸과 뇌를 피곤하게 만들어서 깊은 잠에 빠져들기에 급급해져갑니다. 지금 한동안 몰입할 수 있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곳에서 얻을 수 있다면 이곳에 더 머무르는 것이고, 이곳에 없다면 있는 곳으로 가야겠지요. 그러나 그게 뭔지 도통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저 모든 것을 뒤로한채로 여행이라도 떠나면 뭔가가 떠오를까요? '자유롭게 살자' '야성을 잃지 말자'라고 매번 되뇌이지만 저의 삶에서 자유가 점점 줄고 있고 야성은 이미 길들여진지 오래입니다. 빨리 비대히진 저의 정신력을 다이어트해서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야겠습니다. 영화 <히트>에서 '남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5분 내에 모든 걸 버리고 떠날 수 있어야 한다'는 대사가 나옵니다. 진정한 노마드의 삶을 살기 위해서 그런 훈련을 미리 해둬야겠습니다. 후회도 없고 미련도 없이… 많이 받는 것도 없고 많이 이룬 것도 없고 많이 가진 것도 없으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미련을 가질 것이 없어서 참 좋습니다. 그래도 배고픔에 익숙해지고 견디는 연습도 해둬야겠습니다. 또, 이럴 때는 혼자인 것이 편합니다.

최근에는 옆에 동료들과의 잡담도 많이 줄었습니다. 커피 동호회에서 담소를 나누지만 맨날 똑같은 얘기입니다. 나 혼자 월급을 축내는 것도 모자라서 동료들의 시간까지 축내는 것을 못할 짓인 것도 같고, 또 오피스를 옮긴 이후로는 그냥 우연히도 마주쳐서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기회도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처음 다음스페이스로 이주했을 때는 많은 긍정적인 변화들을 봤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동료들과의 우연한 만남과 대화가 급격히 줄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담배를 피운다면 1층에 내려가서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지만 그러지도 못합니다. 예전에 창밖의 테라스에서 만나서 업무나 회사돌아가는 이야기 그리고 나머지 사적인 이야기 등을 자유롭게 나누었는데, 다음스페이스에서는 그런 시간이 많이 줄었습니다. 퇴근후 모임에 참석하는 것도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회사를 떠나더라도 시일이 다 되어어서야 겨울 몇 다리 건너서 듣는 경우도 자주 발생합니다. 그래도 가끔 마주 쳐서 애기도 나누고 또 흘러가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봅니다. 단순히 한 개인의 문제에서부터 팀의 문제, 그리고 회사 전체의 문제에까지 많은 걱정들을 달고 살고 있는 것같습니다. 저도 그런 문제들이 많이 보이지만 최근에는 애써 무시하는 것같습니다. 일부러 문화예술 프로그램/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그런 도피처를 찾기 위한 건지도 모릅니다. 누구는 내가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말하지만 저의 내면은 그대로입니다. 그냥 밖으로 속이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 피드백이 오히려 더 저를 화나게 만듭니다. 시스템의 문제를 개인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시스템이 외면하고 있다는 느낌도 자주 받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글을 계속 적어나가야 하나? 신앙에 관한 얘기가 빠졌습니다. 주말에 미국에서 같이 신앙생활을 했던 분들을 만나니 제 신앙생활도 되돌아보게 됩니다. 참고로 미국에 있던 1년반이 현재까지 제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로 기억됩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도 없었고 주변의 압박도 없었고 신앙생활도 나름 가장 잘했고 인생40이후의 꿈을 갖게된 때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또 젊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인생의 굴곡을 못 느낍니다. 모든 친척들이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할아버지부터 벌써 3대를 이어오는 크리스찬 집안입니다. 그래서 저도 소위 말하는 모태신앙이었고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어느 일요일에 교회 가기 싫어서 하루 빠졌던 기억은 있지만 성인이 되기 전까지 주일 성수를 못한 기억은 없습니다. 고3 때도 오전 예배는 드리고 학교에 나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맘 때면 크리스마스를 준비한다고 밤마다 교회에 나가던 것도 엊그제같습니다. 대학 이후로 간혹 바쁘거나 너무 늦잠을 잔 경우를 제외하면 많이 부끄러운 산앙생활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매일 구원에 대한 고민도 하고 이런 평탄한 삶에 대해서 감사도하고 때로는 죄책감에 쌓이기도 하지만 산앙적 감정기복은 거의 없는 편입니다. 천성이 울퉁불퉁해서 최근 교회와 목회자들의 어리석은 모습을 보면 화도 내지만 제가 그들을 정죄할만큼 깨끗하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제 삶에서 웬만한 부분을 떼어내어 얘기를 듣더라도 굴곡을 거의 느낄 수 없는 무난함을 볼 수 있습니다. 그저 옆에서 보면 큰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 그런 착한 아들정도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많은 부족을 느낍니다. 2004년도 미국에 있을 때 가장 행복했던 시기라고 말했지만, 또 2004년도 여름에 깊은 수렁에 빠져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때 읽은 말씀이 신명기 31장 8절입니다. "그리하면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지금 다시 되새겨봅니다. 지금 또 매일 성경말씀을 읽으며 사사기 6장 12절의 말씀이 눈에 들어옵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지금 이렇게 고민을 해도 늘 그 힘을 믿습니다.

글을 적기 시작한지 며칠이 되어가니 하고 싶은 일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벌써 일부 서비스되고 있는 것이며 또 다른 부분에서 이미 다른 분이 책임지고 있는 것이고 또 경제적 실효성이 낮아서 이걸 하자고 말하면 선뜻 좋은 답변을 듣지 못할 것같아서 망설여집니다. 누구나 필요성은 느끼지만 자금은 아니야라고 계속 미뤘던 것이고, 또 길게 잡고 갈 일도 아닙니다. 겨우 그걸 하려고 비싼 돈을 주고 널 고용했겠냐?라는 말을 듣게 될까봐서 무섭습니다. 언제부터 제가 이런 소심쟁이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주에 급하게 기입한 KPI를 오늘 평가하고 또 동료평가도 마치고 나니 또 6개월 전의 분노도 살아납니다. 왜 자기들이 해야할 일을 직원들에게 떠넘겨서 동료가 아닌 경쟁자로 만드는가?에 대한 분노입니다. 일단 꿋꿋하게 모두 4.67 / 5을 줬습니다. 모두 5점 주고 싶지만 위에서 짜증을 내니 억지로 두개 항목은 4점을 줬습니다. 결코 나쁘게 준 것이 아니지만 동료들에게 미안합니다. 내 눈에는 함께 일하는 모든 동료들이 프로이고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고 청의적이고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없어서 만점을 주고 싶은데, 이노무 체계는 그걸 인정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들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를 뽑은 상사와 HR이 책임져야할 것인데, 왜 직원들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는지 너무 화가 납니다. 비록 그들은 제게 나쁜 어쩌면 현실적인 점수를 주겠지만 -- 일부러 그들의 평가 및 코멘트를 읽지 않습니다 -- 전 그들을 이해합니다. 그래도 그들은 제게 5점 만점의 동료들입니다. 동고동락할 이가 필요해서 이곳에 온 것이지 경쟁하라 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록 저는 차갑고 혼자 내상이 깊어가지만... 갑자기 따뜻하게 글을 급마무리하는 분위기입니다. 시간이 흐르니 또 주변에서 이런저런을 일을 해보자는 요청이 들어옵니다. 답이 없다면 또 그걸 해나가겠지만 또 시간이 흘러서 지금과 같은 고민에 빠지게 될 것이 미리 걱정입니다. 개인의 삶에서는 하고 싶은 일을 하겠지만, 단체의 삶에서는 해줘야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또 저는 특유의 제 자신의 일부를 또 떼어버리게 됩니다.

어쩌면 나는 지금 그저 위로를 받고 싶어서 이 글을 적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이렇게 글을 적고 있는 사이에 기다리던 데이터가 마련되어 이번 글은 여기서 (잠시) 중단하겠습니다. 

여러 날에 걸쳐서 글이 쓰여졌기 때문에 다양한 감정이 들어있고 그래서 문체에 통일성이 없습니다. 여러 상황에서 선긋기도 시도했지만 그 선을 절대 넘지 않겠다는 얘기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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