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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Op

대중의 실패

저에 대해서 별로 관심은 없겠지만, 그동안 제가 읽었던 책들을이나 글들을 보다보면 '대중'이나 '집단'과 관련된 것들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임스 서로위키의 <대중의 지혜>라던가 존 L. 캐스트의 <대중의 직관>, 찰스 리드비터의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 등과 같이 '대중의 ~' 또는 '집단~' 등의 제목이 붙은 책들이라면 어김없이 저의 위시리스트에 올라갑니다. 그 외에도 집단지성 및 집단행동에 관련된 책들이라면 대부분 읽은 듯합니다. (클레이 셔키의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나 <많아지면 달라진다>, 키스 소여의 <그룹 지니어스>, 피터 밀러의 <스마트 스웜>, 말콤 그래드웰의 <티핑 포인트> 등도 이런 맥락에서 읽었습니다.)

이런 책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바는 조금은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개인이더라도 이들이 함께 모여서 집단을 형성해서 문제를 해결할 때면 소위 전문가들보다 더 뛰어난 문제해결능력을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단순히 생각해봐도 잡스형의 뛰어난 통찰력의 소유자가 어느 날 갑자기 해결책을 제시해주지 않는 이상은, 유행이라던가 사회트렌드는 모두 대중의 선택에 의해서 이뤄지고 주도되는 것이니 당연합니다. 

그런데 모든 문제에서 대중 또는 집단이 옳은/현명한 선택을 했을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제가 종종 우려하는 '집단광기'는 과연 없는가? 최근 이슈가 되었던 연예인들에 대한 사생팬이나 팬덤현상과 같은 부작용을 심도깊게 얘기하는 책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위의 책들에서도 가끔 우려의 목소리는 내지만, 책의 주요 논지가 긍정적 집단지성에 맞춰졌기에 부정적인 면에 대해서는 누락되거나 거대한 네트워크 내에서 자연치유/자기정화 Self-healing되는 것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 SNS에서 잘못된 정보가 쉽게 퍼지기도 하지만 그런 잘못들이 즉시에 바로 수정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합니다.)

이 글에서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집단광기에 대해서 얘기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즉흥성의 흥분보다는 더 큰 대중의 실패에 대해서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대중의 선택이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선거결과입니다. 지난 수요일에도 19대 국회의원 총선이 있었습니다. 결과는 아들 아시다시피 아이러니하게도 보수층에게는 안도와 불안을, 진보층에게는 좌절과 희망을 동시에 줬습니다. 금뱃지를 달게된 모든 국회의원들이 제대로 뽑혔는가?에 대한 잡음이 심합니다. 문도리코나 제수 성추행미수범 등과 같이 겉으로 드러난 사례도 있지만, 낙선한 후보가 당선된 후보보다 더 적합한 인물인가?에 대한 의문이 계속 이어집니다. 앞으로의 4년의 여정을 통해서 대중의 선택이 옳았는가?가 판단될 것이니 미리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그러나 과거의 선거결과들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대중의 선택이 옳았다면 왜 정권은 계속 바뀌고 국민의 대표는 수시로 바뀌는 것일까요? 물론 시대와 사회의 큰 틀에서 또는 강력한 외부요인에 의해서 개인이 실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국제금융위기라던가 대내외의 전쟁 등의 어쩔 수 없는 환경에서 대통령이 소기의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대중의 선택은 늘 바뀝니다. 지난 MB의 실정은 MB 개인의 잘못일까요 아니면 그를 선택한 대중의 잘못일까요? 

국내에서는 역사가 짧기 때문에 정권교체가 별로 빈번하지 못했지만, 미국의 경우 공화당이나 민주당인 10년이상 장기집권한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겨우 재선에 성공해서 8년 정도 정권이 이어지면, 그 다음에는 거의 어김없이 다른 당의 대통령이 나왔습니다. 앞서 말한 어쩔 수 없는 외부요인에 의한 실정도 고려되어야겠지만, 매번 선거 때마다 표심의 향방이 바뀝니다. 그것은 4년 5년 전의 대중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 제임스 길리건의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책에서는 미국의 경우 공화당 대통령이 집권하면 살인률과 자살률이 증가하고, 민주당 대통령이 당선되면 치상률이 감소했다고 합니다. (신)자유주의의 공화당 대통령 시기에는 사회 불균형도 심해지고 그런 빈부차에 따른 수치심도 늘어나서 살인 또는 자살률이 올라간다고 합니다. 범죄라는 이런 단적은 사례만을 본다면 대중은 매번 민주당을 선택했어야 합리적입니다. 그런데 5년 10년마다 한번은 민주당을 선택했다가 또 그들에게 실망해서 다음번은 공화당을 선택합니다. 이런 스윙보팅행위가 대중의 불완전성 또는 실패의 단적인 사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중의 지혜를 말할 때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집단 내의 각 개인은 모두 독릭적으로 생각/선택해야 하고,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를 역으로 해석하면 균일화된 집단에서 비독릭적으로 (또는 상호의존적으로) 생각/선택/행동하게 된다면 집단은 일종의 팬덤현상이나 광기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해도 될 듯합니다. 미국에서는 붉은 색의 남부 또는 중서부 내륙 주들과 푸른 색의 (서/동) 연안 주들로 나뉩니다. 집단이 독릭적인 개인에 의해서 이뤄졌다면 이런 명확한 집단의 분리를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국내에서도 19대 총선결과는 강원도, 경상도를 기점으로 한 붉은지역과 경기도 전라도를 기접으로 한 녹색지역으로 명확하게 나뉘었습니다. 수도권만 보더라도 녹색의 강북과 붉은색의 강남 (물론 강남3구를 중심으로)으로 나뉘었습니다. 지역주의는 집단 내의 개인의 사고의 폭을 제한합니다. 집단 내의 독립성과 다양성이 무너졌을 때, 집단의 합리성도 무너진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집단이 늘 옳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늘 실패하라는 법도 없습니다. 그러나 집단이 조금이라도 실패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독립된 개인으로 남아서 각자의 역량에 따라서 사고하도록 자유를 줘야 합니다. 그런데 '프레임 Frame'이라고 말하는 사고의 틀을 만들어서 개인들이 그 틀 속에서만 생각하도록 강요합니다. 그렇기에 틀을 벗어난 생각을 부정한 생각이라고 은연중에 경계를 하는 것같습니다. 기존의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사고의 틀을 만들지 못한다면 대중 또는 집단은 결국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게임이론에서의 협력게임과 같이 개인은 (조금) 실패하더라도 집단은 성공할 수 있어야 하는데,...

주말에 읽은 글에서.. 헤겔의 정반합의 변증법에서 '정'에 대항하는 '반'은 기존의 '정'의 프레임에 갖힌 사고다. 새로운 프레임이란 '정'에 대한 '반'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은 '합'이다라는 요지의 글이 기억납니다. 기존의 것을 단순히 동조하거나 아니면 단순히 반대하는 것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합을 만들어내는 것이 건전한 집단으로의 길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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