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빅토어 마이어 쇤베르거가 지은 <잊혀질 권리>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서론 밖에 못 읽었기 때문에 저자가 책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주장을 펼칠지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래도 대략 짐작하자면 디지털화 그리고 인터넷의 도래도 과거의 작의 기록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깊이 있게 글을 적지 못할 것같아서 따로 글은 적지 않았지만, 오래 전부터 쇤베르거의 우려와 같은 우려를 해왔습니다. 그리고,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다'라는 말은 종종 했습니다. 망각의 동물인 인간이 기계를 만나면서 기억의 동물이 되어버렸습니다. 나의 의식에서는 사라졌더라도 다름 사람들의 기록에는 남아있습니다.
최근에 재미있는 또는 안타까운 사건들이 많이 발생했습니다. 표절을 넘어서 대필의혹까지 일고 있는 문도리코 문대성씨 (국회의원 당선자), 정신대 발언으로 곤혹을 치르고 잠정 은퇴를 선언한 방송인 김구라씨, 그리고 지난 총선의 최대 이슈 중에 하나였던 (근데 이게 그렇게 이슈가 될 수 있었나? 싶지만, 거대 언론들은 집요하게 추궁했으니..) 시사평론가 김용민씨의 노인비하발언 등... 모두 잊혀졌던 과거의 사건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현재의 사건으로 바뀐 경우들입니다. 좀 더 과거로 돌아가보면 MC몽의 발치사건도 유명하고, 2PM의 리더였던 (박)재범씨의 마이스페이스 글도 있었고, 위대한 탄생 1에서 1급수로 칭찬을 들었던 김혜리씨의 사건도 기억이 납니다. 그 외에도 비슷한 유형의 사건들이 잊혀지지 않아서 발생한 것들입니다.
조금 다른 이슈이지만 요즘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다양한 <~녀/~남> 시리즈도 과거같았으면 그냥 묻혀질 사건들이 인터넷 공간을 통해서 급속히 확산되고, 개인의 신상정보까지 털리는 사태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녀/남 시리즈의 경우 현재 발생한 이슈에 대해서 인터넷에서 들끓었기 때문에 망각과는 조금 궤를 달리하겠지만,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지금 인기검색어에 오른 그 ~녀/~남 키워드를 입력한다면 지금 우리가 보는 그것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을테니, 지금의 사건도 영원한 기억으로 남겨지게 됩니다. 시점의 차이에 의해서 지금의 사건이 미래의 비망각 사건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저런 사건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들이 났습니다. 우선 '너무 유명해지지 말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용민씨나 문대성씨가 총선에 출마를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가정을 해보게 됩니다. 김구라씨나 MC몽, 박재범씨가 연예인이 아니었더라면..? 김혜리씨가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오지 않았더라면...? 분명 그들은 과거의 잘못 때문에 현재 정죄를 받고 있지만, 더 엄밀히 말하면 지금의 유명세 때문에 정죄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사람없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저나 여러분이 아무리 깨끗하게 살았더라도 나중에 고위공직에 오른다거나 또 다른 유명세를 타게 될 때 지금의 잘못이 까발려지는 것은 피할 수 없을 듯합니다.
또 다른 생각은.. 이런 두려움 때문에 정작 해야할 말도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일종의 자기검열의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현재의 기분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거친 욕설이 제격이고 제맛인데도, 채면을 차리기 위해서 아주 점잔은 말로 비판하면 비판의 재미가 없어집니다. 그리고 상사나 누군가의 눈치를 보면서 하고 싶은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하고, 글을 적지 못하는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 두렵습니다. 표현의 자유가 영원한 기억의 족쇄에서 잠겨버립니다. 특히 저는 참 걱정입니다. 트위터를 통해서도 그렇지만 이 블로그를 통해서 여러 사회 (정확히는 회사) 이슈에 대해서 쓴소리를 많이 했는데, 지금의 고용주야 똥밟은 심정으로 계속 절 품고 갈 수야 있겠지만... 만약 제가 다른 곳으로 이직을 결심했는데, 새로운 직장의 인사과에서 제가 적은 글들을 가지고 딴지를 걸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가 조금 고민은 됩니다. 그래도 현재로써는 저의 감정에 충실하고, 제가 가진 (방종은 아닌) 자유를 누리는 것이 더 소중해서 조금 위험한 발언을 자제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프레임'에 대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특히 정략적 '프레임'의 무서움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분명 김용민씨의 과거발언이 문제가 있었지만, 전체 맥락이 아닌 일부분의 표현만을 문제삼으면서 크게 부각하는 수구 언론들의 말빨, 그리고 그들이 그려놓은 틀에서 새로운 시각을 갖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 사실 저도 다른 누군가가 언론의 기사를 새롭게 설명해주지 않는다면 보통은 기사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어쨌던 30년 이상 경북에서 자라왔고 그런 시각이 너무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이상한데라고 느끼면서도 조중동의 기사를 그대로 믿어버리는 경우도 많고, 때로는 그들 신문의 기사를 읽으면서 뭔가 꼼수가 포함되어있지 않나?를 의심하고 읽게 되는 습관이 생겨버렸습니다. IT/과학 또는 문화, 스포츠 등의 시사/이슈성이 약한 주제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도 그들이 왜 이런 기사를?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IT뉴스에서 삼성과 애플 관련 뉴스를 보면 중립 주제에 대해서도 그들의 시각의 편향성을 많이 느낍니다.)
프레임에 더해서 기록은 영원히 남지만 부분 기록만 영원히 남는 것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위의 김용민씨의 발언도 일부만 추려져서 회자가 될 뿐이지 전체 전후 맥락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사건의 개요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용민씨가 비하발언을 했다는 것은 알지만 뭐 때문에 어떻게 발언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은 기억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또 최근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채선당 사건'이나 '버스무릎녀 사건' 등에서도 처음 문제를 제기했던 한쪽의 시각이 너무 우세해서 나중에 바로 잡힌 새로운 시각의 정보가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합니다. 대부분의 잘못이야 퍼센트의 차이일 뿐 상방과실일텐데, 우리는 우리가 편한 한쪽의 의견에 쉽게 동조해버리고 맙니다. 먼저 프레임을 잡거나 기억의 한 부분을 선점해버리면... 생각을 바꾸기가 참 어렵습니다.
몇 가지 더 생각했던 것들이 있지만... 마지막으로 글의 제목에서 '...'는 '나' '너' '우리'를 넣을 공간이었습니다. 앞에서도 제가 글을 통해서 거친 표현들을 많이 적는다고 말씀드렸듯이, 여러분들도 깊은 생각이 없이 그냥 편하게 툭 던지는 많은 말들과 사진, 동영상들이 있습니다. 이것들이 나중에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부메랑될지를 생각하면 정말 무서워집니다. 재미있자고 그리고 지금의 감정에 충실하자고 던졌던 것을 누군가는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고 때로는 새롭게 가공해서 퍼뜨리고 있습니다. 이걸 생각하면... 인터넷의 모든 활동을 접어야할까 봅니다. 단순히 글을 쓰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누가 어떤 기사/글을 읽었다라는 정보도 남겨지고 알려진다면... 간단한 예로 미간인 불법사찰을 처음 제기했던 김종익씨의 인터뷰 뒤쪽에 보였던 몇몇 책들을 가지고 그의 이념을 종북좌파로 규정했던 언론들의 행위를 목격했습니다. 비슷하게 내가 어떤 특정 기사를 열람했다는 정보만을 가지고 나의 세계관이나 가치관을 판단해서 저를 제단해버리는 그런 시대가 오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습니다.
인터넷은 참 좋습니다. 편리해졌고 다양한 재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은 나의 망각권을 빼았아 가버렸습니다. 타인의 눈에서 벗어나서 조용히 내 감정에 충실하고 싶었는데, 인터넷에서는 저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 그리고 말 하나하나가 이미 공유재가 되어버렸습니다.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 관성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등의 고전물리학의 뉴턴 3대 법칙이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사회 문제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같습니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사이에서 참 헷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