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James Whittaker가 구글을 떠나 다시 MS에 합류하면서 적은 'Why I Left Google'이라는 글을 읽으면서 만약 내가 사직/이직하게 되면 어떤 글을 남기게 될까?를 잠시 고민했던 적이 있다. 그냥 연습삼아서 미리 유서를 적어놓는 경우도 있으니 미리 사직의 변을 적어놓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고 언젠가는 한번 적어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어떻게 글을 적을지 막막했는데 오늘 아침 문득 떠오른 생각을 정리해볼까 한다. 유서를 미리 적는 것이 죽기위한 것이 아니라 남은 생을 더 의미있고 집중해서 살아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듯이, 사직의변을 미리 적는다는 것도 지금 당장 떠나겠다는 것보다는 언제까지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내가 이곳에 머무르는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기여의 범위도 정해보고 더 일에 집중해보자는 의지의 표현에 가깝다.
실제 사직의 변을 적을 그 날이 오면 더 짧게 적을 수도 있고 더 장황하게 적을 수도 있다. 더 암시적일 수도 있고 더 직설적일 수도 있다. 오늘은 그냥 개괄식으로 3가지 포인트만 남긴다.
- 나는 떠난다.
- 귀가 아니라 입이 없다. 예의와 배려라는 명목으로 자기 검열이 정당화되고 있고, 권위는 그걸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매일 모래시계를 뒤집어세웠다.
- 특별한 일이 없는 한은 앞으로 OO의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을 거다.
첫번째는 실제는 등떠밀렸다가 될 수도 있지만 마지막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서 내 결정에 의해서 '떠난다'라고 밝힐 듯하다. 이런 선언적 의사를 밝힐 기회가 인생에는 몇 번 없다. 두번째는 패거리 조직의 한계를 말한다. 이제껏 소통의 부재를 논할 때 듣는 귀가 없는 줄로 착각하고 살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말하는 이가 없더라. '내부고객'이라는 말은 존재하지만 실제하지 않는다. 무수한 자기검열과 눈치보기, 그리고 그 속에는 자아는 없다. 늦기 전에 모래시계를 뒤집지 않으면 마지막 모래는 결국 떨어지고 말거다. (연명에 변명은 없다.) 편견과 싸우며 사는 것은 참으로 고단하다. 세번째는 '고마해라. 마이 무따 아이가.' 많은 사람들이 떠나면서 '이제는 회사를 떠나지만 외부에서 열혈고객으로 남겠습니다'라고 밝힌다. 진짜 거지같은 거짓말이다.
그런데 이 XXX들은 (이것도 자기검열이다.) 그냥 자기 생각대로 생각한다. 위의 짧은 문장도 니들 마음대로 해석할 거고 또 나를 재단할 거다. 잘 알고 있다. 그래도 글을 적는다. 내가 마지막 입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그냥 쓸데없이 일찍 출근해서 떠오른대로 적은 글이니 너무 많은 의미는 두지 말 것을 당부한다. 그러나 헛소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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