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출근길에 종종 목격하는 현상이 있다. 이미 미디어에도 소개될 만큼 대부분 알고 있을 거다. 스타벅스 레디백 얘길 하려는 거다. 지난주까지는 매주 목요일만 출근하다가 이번 주 화요일부터는 매일 출근하고 있다. 여러 이유로 아침 6시 전후에 집을 나선다. 그러면 회사에는 6시 반이나 7시경에 도착한다.
지난 몇 주 동안도 목격했던 거지만, 오늘 더더욱 눈에 띄어서 적는다. 오늘은 6시20분 경에 판교역에 도착해서 30분경에 회사에 도착했다. 판교역에서 큰길을 건너면 스타벅스 매장이 있는데 이른 아침부터 십여 명이 줄을 서서 매장 오픈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타벅스 커피에 미친 사람들이 아니라 순전히 레디백을 받기 위한 사람들이다.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2~30대의 젊은 층만 열광하는 줄 알았는데 앞쪽에 60대 후반이나 70대인 어머니도 있었다. 자식들을 대신한 것일까?
다시 긴 줄을 만난 것은 10분을 걸어서 회사 근처에 왔을 때다. 회사 맡은 편 건물에 있는 스타벅스 앞에 이제 20명의 사람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다시 육교를 건너 회사 건물의 스타벅스 매장에도 20명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략 오픈 시간이 7시 인 듯한데, 6시 반부터 저렇게 줄을 섰다면 첫 사람은 아침 6시부터 줄을 섰다는 것일까?
굳이 이해하려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 뭐가 있겠냐마는… 개인적인 관점에서 스타벅스 레디백에 열광하는 이유는 모르겠다. 수백만 원의 커피를 주문하고 그냥 레디백 하나만 챙겨서 나가서 그렇게 만들었던 커피를 무료로 풀고 결국 대부분 폐기 처분했다는 뉴스에 한동안 시끄러웠다. 그 돈이었으면 그냥 샤넬이나 구찌 등의 명품백을 사는 게 더 나은 선택이 아닌가? 난 잘 모르겠다. 이런 현상을… 물론 이게 놀이의 일종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나도 대수롭지 않은 게임을 하기 위해서 더운 날 굳이 집 밖을 나가기도 한다. 그래 놀이로 생각하자. 그래도 마음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
아이폰이 새로 나와서 매장 앞에서 기다리는 것도 이해 못할 사람들이 많을텐데, 스타벅스 레디백을 받으려고 저러는 건 더 이해하기 힘들 거다. 물론 나는 애플에 호의적이라서 아이폰 줄은 이해한다. 여유가 된다면 나도 그 줄에 끼어서 현질을 해봤으면 좋겠다는 소소한 바람도 있다. 그런데 레디백은 도저히…
저렇게 줄을 서서 레디백을 받고 나오면서 스스로 위너가 됐다고 생각하겠지? 그리고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자랑하겠지? 이런 생각의 끝에 씁쓸해졌다. 스스로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겨우 레디백이다. 그 이상을 얻는 것은 현실에선 불가능해졌다. 루저들의 시대가 됐다. 경제적 부든 사회적 자원이든 물려받지 못하면 제대로 된 것을 얻기가 힘들어진 시대다. 1%를 제하면 모두가 루저다. 나도 그렇다. 그래서 그 사회에서 벗어나고 싶다.
수도권에 오분양된 세대를 일반 분양한다는 공고에 수백 대 일의 경쟁이 붙었다. 9급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도 수십대 일의 경쟁이 필요하다. 지금 회사에 여름 인턴을 진행하는데 수십 명을 뽑는데 수천 명이 지원했었다. 물론 정규직 전환 전제한 인턴이지만 이렇게 호응이 클지는 몰랐다. 딱 20년 전에 졸업을 위해서 여름 방학 동안 포스코에서 인턴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단지 마지막 학기 수업의 선행 과제였기 때문에 인턴을 한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굳이 그러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지금은 인턴을 위해서도 몇십 대 일의 경쟁을 뚫어야 한다. 자력으로, 노력만으로 뭔가를 얻을 수가 없는 시대다. 루저에겐 노력도 사치란 말인가?
집안의 빽이 없으면 웬만한 능력이나 노력으론 얻고 싶은 걸 쉽게 얻을 수가 없다. 그렇게 우린 루저들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루저의 시대에 몇 잔의 커피를 마시고 한 시간만 기다리면 손에 넣을 수 있는 레디백은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다. 이런 시대에 이걸로 잠시나마 행복했다면 좋겠다. 그들이 옳다.
(마지막 문장을 적는데 감정이 올라온다. 더이상 글을 적지 못하겠다. 여러모로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