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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을 달리 해석하는 것은 읽는 이의 자유지만 그것이 내 의도는 아님을 미리 밝힙니다.

기본적으로 나는 야근을 권하지 않는다. 계약을 맺은대로 정시에 출근해서 정시에 퇴근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그러나 불가피하게 야근 또는 추가 근무가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비록 본인 (또는 상사나 동료)의 무능, 잘못 짜여진 계획, 부족한 리소스 (시간) 등의 이유로 인한 잔업을 해결하기 위한 야근도 절대 지지하지 않는다. 물론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합의와 공감대가 있었다면 얘기는 조금 달라지겠지만…

지난 연말부터 새로운 프로젝트에 투입됐고, 이것 때문에 서울에서 파견 오신 분도 계신다.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에 서울에서 오신 분들은 잠만 숙소에서 자고 아침 8시에 출근해서 밤 12시 또는 그보다 늦은 시간에 퇴근하는 것이 다반사다. 평소에도 일찍 퇴근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함께 일하시는 분들이 늦게까지 야근하기 때문에 그들과 같이 퇴근하지는 못하더라도 평소보다 조금 더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있게 된다. 물론, 사무실에 남아있는다고 일만 하는 것은 아니고 1~2시간정도는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괜히 남아서 게임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더 얄밉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먼저 사무실을 떠나는 것이 편하지 않다.

참고로, 기본적으로 나는 제주에 내려오면서 나인투나인으로 생활하고 있다. 가능하면 아침 9시 이전에 출근해서 밤에 8시나 9시정도까지는 사무실을 지키려고 한다. 대학원 연구실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던 것이 몸에 베어 그런 것도 있지만, 워크홀릭이라서 그렇게 실행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8시간 동안 모든 능력과 집중력을 압축해서 소진해버리고, 일과 무관한 세상으로 도피하는 (그리고 다음날 또 도살장으로 끌려가듯 일터로 나가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그저 8시간동안 집중할 것을 9~10시간으로 양적으로 완화, 분배해서 여유롭게 일을 하고 싶을 따름이다. 담배를 피거나 커피를 마시면서 수다도 떨지 않기 때문에 잠시 머리 식히려고 퍼즐을 하는 것은 좀 용납해줘으면 한다. (사실 퍼즐을 하고 있을 때는 가장 많이/집중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쨋든 그렇게 조금 늦게 회사에 남아있다보니 이제 저녁 7시가 넘어서 야근하는 사람들을 거의 볼 수가 없고, 대부분의 사무실은 불이 꺼져있다. (실은 한 두 사람 때문에 불필요하게 사무실 전체가 환희 불켜져있는 것이 맞다.) 내가 처음 제주로 내려왔던 6년 전과는 사뭇 다른 사무실 풍경이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함께 밤 늦게 일하던 대부분의 동료들이 이제 결혼해서 애를 낳고 가정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도 이유이기는 하지만… 잠시 감정을 추스리고...

그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새로 들어온 젊은 친구들이 야근을 하는 모습을 쉽게 보는 것도 아니다. 간혹 급한 잔업을 처리하기 위해서 야근하는 모습은 보이지만, 야근이 사라진 사무실의 풍경이 이제 전혀 낯설지가 않다. 칼출근, 칼퇴근이 나쁘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근태관리는 중요하다.)

잔업에 의한 야근은 분명 반대하지만, 지금은 열정에 의한 야근마저 사라졌다는 것에 답답하고 암울하다는 얘기다. 지금은 형식상 야근이 사라졌다는 것이고, 실질적으로는 열정과 의욕이 사라졌다는 것을 뜻한다. 업무의 연장선에서 더 나은 제품/서비스/성능을 위한 야근도 사라졌지만, 더 심각한 것은 새롭고 다른 것을 시도해보기 위한 야근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전자든 후자든 자발성에 의한 야근이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제 직원들이 창조성과 생산성을 위해서 잉여력을 기꺼이/자발적으로 투자하지 않는다. 그냥 소비하고 소진할 뿐 창조하지 않는다. 다양한 원인과 이유를 모두 설명할 수 없지만, 어쨌든 결론적으로 열정이 사라졌고 그 현상으로 야근하는 모습이 자취를 감췄다.

몇 년 전 소셜 커머스가 이제 막 생겨나던 시절에 몇몇 직원들이 듀얼잡으로 소셜 커머스 서비스를 운영하다가 적발돼서 감봉 등의 징계를 받은 사건이 있었다. 분명 이중취업을 금지한 회사 내규를 어겼기 때문에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사안이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 또는 실수 또는 잘못을 단순히 감봉하고 징계하는 선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새로운 기회로 삼아서 사내 벤처 형식으로 도전의 기회/장으로 활용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확신컨대 해당 소셜 커머스 서비스는 별로 빛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례를 통해서 사내의 다른 직원들도 도전의 기회가 생길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고 그래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벌써 2~3년도 더 지난 이야기지만 그런 기회를 통해서 그 사이에 제도권 내에서는 만들어질 수 없었던 다양한 서비스나 제품이 만들어져서, 회사 전체의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하고 수익이 되는 사업으로 발전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실패했을 수도 있다.)

낮에는 맡은 회사일에 충실하고 그리고 퇴근 후에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저녁이 있는 삶은 중요하다) 또 다른 기회를 위한 도전이 이뤄지는 삶의 모습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벅차다. 그러나 그런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야근이 사라졌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의욕과 열정이 사라졌다. 언제든 버려질 수 있는 부속품이 되어 회사를 힘겹게 다니는 동료들의 모습만 보인다. 새로운 도전, 무한한 꿈, 넘치는 열정… 여유가 없으니 문화도 없고 시스템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회사에 경쟁력있는 서비스가 없는 것도, 주가가 시원치 않은 것도 문제겠지만, 그건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그런 문제들은 어떻게든 해결될 수 있다. 단, 열정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직원들이 존재할 때의 얘기다. 지금은 직원들에게서 그런 열정과 도전을 발견하기 어렵다. 그래서 회사의 전망이 어둡다는 거다. 캐시카우는 만들어서 키우면 되고 그러면 자연스레 주가는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그런 캐시카우는 만들고 키우는 직원이 없다면… 그들의 열정과 상상력과 도전이 없다면….?

야근이 사라진 것이 아쉬운 것이 아니라 함께, 아니 먼저 사라져버린 열정과 도전이 아쉽다. 나는 아직도 가슴이 뛰고 있는데… (몸도 지쳤고 마음에 상처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아직은 버틸 수 있지만… 힘든 건 힘들다.) 로켓에 빈 자리가 나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도 이젠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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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innyland.tistory.com BlogIcon 바람이 머무는 하늘 2014.05.13 10:55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안녕하세요, 잘 보고 갑니다. ^^;
    추천 시스템에 대해서 열심히 보다가 가벼운 글까지 함께 읽게 되었네요.

    야근에 대해서 읽고 있으니 문득 프랑스로 건너간 어떤 개발자가 겪은 야근에 대한 SNS가 생각나네요. 근면한 한국 개발자로서 프랑스에서 일하면서 8시, 9시까지 남아 일을 하다보니 매니저가 와서 화를 내더랍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열심히 하고 싶어서 그런거다. 성과가 나면 당신에게도 좋지 않느냐' 라고 응수했다지요. 매니저가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당신 한 사람으로 인해서 나머지 사람들이 따라 야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겨서는 안된다. 우리는 일의 성과보다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저녁시간이 훨씬 소중하다. 우리가 힘들게 만들어 놓은 문화를 제발 망가트리지 말아달라' 라고요. 역시 나라마다 문화가 틀리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단순히 생겨난 문화가 아닌, 개발자들이 스스로 노력해서 만들어간 근무 문화가 정착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 역시 해 보았습니다.

설득의 실종

Gos&Op 2013.06.24 09: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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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무실에서 사원증 패용 때문에 조금 시끄럽다. 유치한 캠페인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있고, 이번/지난 주는 일제검점기간 -- 일제고사도 아니고 -- 으로 설정해두고 조금 강압적인 분위기마저 연출하고 있다. 사원증이 출입증의 역할 외에도 내외부인의 구분 및 직원의 식별ID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의도치 않은 보안사고를 미연에 막을 수도 있다. 그런 취지를 잘 이해하고 있지만 이를 실행하고 종용하는 강압적인 분위기에 반감을 가지게 된다. 누군가의 불만에 그저 틀에 박힌 FAQ만 게시판에 올려놓는 것에서도 거부감이 든다. (보안)사고는 불시에 일어나기 때문에 미연에 모든 가능성을 점검하고 가능하면 일어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맞다. 그러나 이를 실행하는데 왜 그렇게 사무적이고 관료적인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보안 관련 부서의 (업무의 특성에서 기인하고 체화된) 사고의 경직성만이 문제가 아니라, 이것이 이 회사 전반에 뿌리 박힌 고질적인 병폐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원증 패용이나 VPN 연결 등은 크리티컬한 사안이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가 있지만, 그 외에 가벼운 사안들에 대해서도 과정이 비슷했던 것같다. 갑들에게는 '결정하면 따르라'라는 것이 깊이 각인된 것같다. 그런 사고가 내부의 분위기만 망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 전달되는 서비스에도 그대로 투영되어있다는 느낌이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다음의 위기설은 단순히 재무재표의 문제나 성공한 서비스의 부재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답을 미리 정해놓고 적당한 문제를 찾아 끼워맞추는 것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요즘 대한민국 전반에서도 감지되는 것이지만, 회사 내에서도 설득의 과정이 실종된 것같다. 결론없는 토론이 토론없는 결론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모든 결정에서 토론의 과정, 즉 이해시키고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생략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고,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굳어지고 있는 것같다. 나름 결정권이 있는 사람들이, 그리고 전문성이 있는 사람들이 고민해서 해결책을 제시했겠지만, 그 결정이 100% 맞다손치더라도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키고 동참시키는 과정이 생략되면 결국 정답이 오답이 되고 만다. 그냥 결정하고 공지하고 (공청회도 아닌) 설명회 한두번 하고 실행하는 것에서는 새로운 변종, 즉 창의와 창발이 없다.

말했듯이 그런 내부의 분위기는 그대로 외부에 투사된다. 바로 기획하고 개발하고 운영되는 서비스를 통해서 나타난다. 좋은 것을 만들었으니 너희들은 그냥 와서 사용하기만 하면 된다라는 인식으로 서비스를 기획하고 개발하는데, 어떻게 사용자들이 기쁜 마음으로 서비스를 이용하겠는가? 리더십이 팔로워들을 포용하고 설득시키듯이, 서비스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그 서비스 고객들을 포용하고 설득시켜야 한다. 그래야 사용자들이 그 서비스를 제대로 이해하고 결국 애용하게 된다. 최근에 다음이 만든 대부분의 서비스들이 별로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게중에는 트렌드를 잘 못 읽었거나 기획이 나쁘거나 개발이 개판이었던 것도 있다. 그러나/그렇더라도 결국 서비스가 실패한 원인은 사용자를 제대로 설득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비스라는 것이 그냥 오픈해서 이벤트 한번 한다고 해서 저절도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기획단계에서는 시대의 트렌드도 분석하고 사용자들의 니즈도 파악하고 또 더 근본적인 사용자들의 욕구를 제대로 잡아내야 한다. 그렇게 서비스의 컨셉을 제대로 잡아서 빨리 만들어서 시장에 내놓으면 성공했다. 10년 전에는... 경쟁 서비스들도 많고 시장도 불확실한 요즘에는 완벽한 컨셉의 서비스를 제때 출시한다고 해서 시장에 바로 안착시킬 수가 없다. 과거에는 오픈이 레이스의 끝이었지만, 이제는 오픈이 레이스의 시작이다. 이제부터는 지나하게 사용자들을 설득시켜야 한다. 이미 사용하고 있는 다른 서비스보다 더 낫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하고 새로운 서비스가 마음에 들 것이라고 꾸준히 보여주면서 유저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의 성공신화는 잊어야 한다. 신화는 신화일 뿐이다. 낫다는 것, 빠르다는 것, 좋다는 것이 성공을 보장하지 못한다.

다음이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은 -- 여러 번 주장했듯이 -- 문화의 실패라고 말하고 싶다. 겉으로 보이는 조직도가 아니라, 그 조직 내면에서 꿈틀대고 있는 정신과 철학 -- 때로는 정치 -- 의 문제다. 그런 정신과 철할이 문화라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그런 (창조적인) 문화는 결국 서비스라는 제품으로 형상화된다. 다음에 잘못 정립된 많은 것들이 있지만, 나는 이 글에서는 설득의 과정이 생략되고 공감과 동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이것을 콕 집어서 말하고 싶다.

유저를 이해하고 설득하고 기다리지 못한다면 다음이 그 어떠한 우수한 서비스를 만들더라도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그런 이해와 설득과 기다림은 내부에서 체득된 문화를 통해서만 발현될 수 있다.

이유가 없는 현상은 없다.

(2013.06.18 작성 / 2013.06.24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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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KISTI에서 발표 요청이 들어왔다. 장소가 대전이고 발표일도 수요일이라 고민하는 사이에 이미 다른 발표자로 채워졌다는 소식을 듣고 결국 발표는 불발로 끝났다. 그런데 발표요청을 수락할까 말까를 고민하면서 이미 내 머리는 발표내용을 뭘로 할까?로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때 생각했던 것이 아까워서 일단 발표자료를 만들기로 했고, 마침 다음 주에 팀워크샵에서 발표하기로 했다. 아래는 어제 밤에 정리한 1차 드래프트다.

전혀 새로운 주제를 가지고 발표할 수도 없으니 그냥 인터넷 및 데이터마이닝 트레드에 대한 내용을 준비했다. 2010년도에 모교 (포항공과대학교) 후배들과 울산대 학부생들을 위해서 이미 비슷한 주제로 발표를 했었다. 당시에는 8개의 C자로 요약한 인터넷 트렌드, 검색이야기, 그리고 소셜에 대한 내용을 1~2시간 정도 자유롭게 얘기를 했다. 그런데 새로 만드는 발표자료를 예전 것과 너무 겹치는 것은 식상할 것같아서, 2010년도에 적었던 8개의 C워드는 그냥 나열만하고 당시에 미쳐 넣지 못했던 새로운 3개의 C워드를 추가하기로 했다.

이미 예전에도 글을 적었지만 (인터넷 검색 소셜) 2010년도에는 실시간, 위치, 그리고 소셜의 부상을 다룬 Context, 애플과 구글을 중심으로 벌어졌던 IT기업들 간의 다양한 경쟁관계를 다룬 Competition, 플랫폼과 에코시스템의 주도권 싸움인 Control, 에버노트 넷플릭스 등의 다양한 클라우드 서비스들의 등장을 알리는 Cloud, 대중의 지혜를 활용한 서비스들을 위한 Crowds, 아이패드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소비경제를 뜻하는 Consumption, 편의를 위해서 희생되는 개인정보를 다룬 Convenience,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것들이 (특히 모바일에서) 연결되는 Connection 이렇게 8개의 C워드로 당시를 정리했었다.

2010년도에 제시했던 단어들이 여전히 유효하고 어떤 것들은 더욱 강화되었다. 특히 Cloud는 빅데이터라는 시대의 화두를 만들어냈고, 당시에는 모바일 투게더 전략이 맞았지만 이제는 더디어 모바일 퍼스트 또는 모바일 온니로 진화했다. 2010년에 전혀 허튼 단어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점에 안도감을 느끼면서 새롭게 3개의 단어를 더 추가했다.

2010년도에 위의 발표를 한 직후에 가장 아쉬웠던 단어가 바로 Curation이었다. 아직 핀터레스트가 대중에게 잘 알려지기 전에 발표자료를 만들었기에 Curation이라는 개념을 발표자료에 넣을 엄두를 못 냈던 것이 나의 근시안이었다. 그래서 새롭게 발표자료를 만들면서 가장 먼저 Curation을 추가했다. 특히 아침에 공개했던 글 (참고)에서도 구글리더의 종료는 큐레이션의 부상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두번째로 추가한 단어는 Container다. 이것은 올해 2월 초에 공개했던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글에서 소개했던 개념이다. 정보의 관점에서 컨텐츠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다루었다. 인터넷의 초기에는 컨텐츠가 왕이었지만, 지난 몇년 동안 컨텍스트는 또 다른 컨텐츠로써의 지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맥루한의 말과 같이 그런 컨텐츠와 컨텍스트를 담고 있는 컨테이너도 컨텐츠를 정의하는데 중요한 요소임을 깨닫게 되었다. '미디어가 보여주는 것과 진실'이라는 그림이 보여주듯이 컨텐츠를 담고 있는 컨테이너도 중요한 컨텐츠다. 그리고 그런 컨테이너는 특정 기업의 입장에서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추가한 단어는 Culture다. Culture에 관해서도 작년에 몇 편의 글을 남겼다. (참고, 참고 등) 내가 문화라고 말하는 것은 두가지 측면이 있다. 첫번째 측면은 흔히 말하는 문화예술을 뜻한다. 기업 내에서 조직원들이 다양한 문화 생활을 즐기면서 그런 가운데 창의적인 사고가 만들어진다는 의미다. 스티브 잡스가 말했던 애플은 인문과 기술의 교차점에 있다는 말에서 밝힌 그 인문 (liberal art)를 의미하는 문화를 뜻한다. 두번째는 조직/기업의 문화를 의미한다. 즉 어떻게 하면 기업이 더 창의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는 결국 그 기업문화에 달려있다. 경직된 조직이 될 것인가 유연한 조직이 될 것인가 등은 모두 그 기업문화에 달려있다.

여담으로 2010년도에는 증강현실 AR이 주목을 많이 받았는데, 2013년 현재는 Internet of Things가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2010년과 2013년을 비교해보면 큰 차이가 없는 것같지만, 또 그 이면에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는 우리는 변화를 제대로 쫓아갈 수가 없고 또 그런 변화의 결과가 미래를 더욱 불확실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경험해보지 못한 과거를 우리는 살아갈 것이다라고 계속 말하는 것이다.

발표자료의 뒤쪽에 나온 데이터사이언스 (스마트데이터와 예측분석)의 내용은 '빅데이터의 시대는 갔다'를 참조하기 바란다.

(2013.03.25 작성 / 2013.03.28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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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낮에 이 주제에 대해서 생각이 정리되면 블로깅을 하겠노라고 말했는데, 그건 내가 글을 적는 스타일이 아니기에 그냥 생각났던 부분만 그리고 글을 적으면서 떠오르는 것만 적으려 합니다.

최근에 '문화'가 중요하다는 글을 몇 개 적었습니다. 스스로 글을 적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던 부분인데, 고백하자면 제 글에서 두 가지의 다른 문화를 하나의 문화로 표현되어있습니다. 조직 내에서의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 방식 또는 그 조직의 정체성 등을 나타내는 (조직/기업) 문화와 (보통 업무 외... 우리 대부분은 예술가가 아니니) 유희와 예술 활동을 포괄하는 문화. 이 들을 혼용해서 그냥 문화로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생각없이 글을 읽어나가면 '그래 맞아'했던 부분을 다시 읽어보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뭐야 이거?'라는 반응을 보였을 법합니다. 어쨌든 오늘은 두번째 문화 예술을 뜻하는 의미에서의 문화를 목표로 글을 적는다고 지금 적을려는 순간, 결국에는 이게 조직의 문화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불현듯 지나갑니다.

아직은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으나 조금 재미있는 프로젝트 또는 도전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일전에 컬처베이스를 만드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다음 내의 다양한 문화 예술활동을 시작해보고 또 그런 것을 통해서 즐거운 다음의 생활 또는 다음만의 독특한 기업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뜻을 합친 이들이 있습니다. 음악을 중심으로 공연 및 강연을 계획하기도 하고 아니면 제주의 다양한 문화예술인들과 교류를 해볼까도 고민하고 있고, 아니면 다른 소모임들과 연계 및 교류를 본격적으로 해볼까? 아니면 텃밭이나 공방 등의 생산적인 활동을 전파해볼까? 등의 여러 생각들이 흘러다니고 있습니다.

누구나 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다음이 제주라는 공간에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독특한 재미있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여러 뜻을 모으고 있습니다. (자세히 밝힐 수 없다고 했으면서 계속 꺼집어 내고 있으니...) 그런데 그런 문화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문화라는 것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져서 전파되어 공유될 때 생기는 것일텐데, 그것을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있습니다.

제주의 다음 오피스가 다음스페이스.1으로 명명된 것은 다음스페이스.2, 다음스페이스.3 등이 계획 중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새로운 공간에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도 계획에 일부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공간을 만들어주면 사람들이 즐거워하며 그 공간에서 자유롭고 창의적이고 다양한 문화 예술 활동을 할까?를 고민합니다. 먼저 공간이 주어지면 그 공간에서 새로운 것이 만들어질까요? 아니면 자생적으로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뭔가를 해보자라는 중지를 모은 후에, 즉 서로 공감을 한 후에 그런 활동을 전개할 공간을 만들어가는 것이 맞는 걸까요?

그래서 문화를 만든다는 것이 먼저 공간이 주어지면 사람들이 공감해서 참여할까요? 아니면 공감을 한 사람들이 모여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 맞을까요? 물론 이 둘이 합쳐져서 새로운 것이 만들어진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공간이 먼저일까 아니면 공감이 먼저일까?

다음스페이스.1에 테니스 코트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바닥이 정식으로 테니스하기에 좀 부적합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옆에 제주대학교에서 테니스 선수들을 초빙해서 자체 강습을 시작했습니다. 아직 동호회가 발족되지 않아서 모두 자비를 들여서 테니스 레슨을 시작했습니다. 테니스 강습을 받고 그래서 점심, 저녁 시간에 테니스를 치면서 여가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스포츠도 대표적인 문화활동이니 이제 다음에 테니스 문화라는 것이 생긴 셈입니다. 여기에서는 테니스코트라는 공간이 생겼기 때문에 뜻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테니스 활동이라는  문화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역으로 생각해보면 여러 사람들이 학교 다닐 적에 테니스를 배웠고 그래서 테니스를 치고 싶었을 것입니다. 주변에 테니스 장을 전전하다가 너무 귀찮아서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면 테니스장을 만들어달라고 건의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 테니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감이 모였기 때문에 테니스장이 생겨나고 그래서 이를 중심으로 테니스 문화가 생겨난 것일까요?

일전에 텃밭 얘기도 몇 번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다음스페이스.1 서쪽에 꽤 넓은 텃밭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주말에는 가족끼리 나와서 텃밭을 가꿉니다. 그리고 전에는 점심식사 후에는 그냥 담배만 피며 잡담을 나누던 사람들이 이제는 식사 후에는 바로 텃밭에 모여서 모종을 심고, 물을 주는데 전염을 합니다. 일종의 텃밭 문화가 생겨났습니다. 이 텃밭 문화는 텃밭이라는 공간이 생겼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일까요? 그런데 최근의 귀농이나 참살이 트렌드에 편성해서 GMC에 있을 때부터 텃밭에 대한 요구가 사람들 사이에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공감이 다음스페이스.1에 텃밭을 만들도록 이끈 것일까요?

공간이 먼저일까요 아니면 공감이 먼저일까요?

그런데 다음스페이스.1에 이해할 수 없는 장소가 있습니다. 바로 게이트볼장입니다. 보통 게이트볼은 연로하신 분들이 많이 하는 스포츠입니다. 다음의 직원 중에 가장 나이가 많아도 이제 40대중후반정도입니다. 즉, 게이트볼을 할 사람이 없는 가장 금싸래기 땅에 게이트볼장이 만들어졌습니다. 게이트볼장이라는 공간이 생겼는데도, 아무도 게이트볼을 하지 않습니다. 게이볼은 문화로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공간이 주어진다고 해도 공감이 없으면 문화로 발전할 수 없나 봅니다.

역으로 사내에 축구를 좋아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새 사옥에 축구장은 안 만들어졌습니다. 축구장은 부지가 커니... 좀 무리긴 합니다. 그러나 테니스장 크기의 풋살장은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축구에 대한 공감은 있지만 축구장/풋살장이라는 공간은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지난 월요일에 한번 농구장에서 미니축구를 한번 한 것을 제외하면, 두달이 지나도록 다음스페이스.1에서는 축구/풋살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주말에 모여서 축구장에서 축구를 합니다만...) 공만있으면 모여서 즐길 수 있는 것이 축구인데, 공감만으로는 축구문화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풋살장이 만들어졌더라면 눈치를 안보고 저녁 시간에 모였을 법한데 말이죠.

공간과 공감이 동시에 생겨서 하나의 문화를 만든다면 가장 좋은 시나리오지만, 현실에서는 어렵습니다. 그러면 공간을 먼저 만들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봐라라는 것이 맞을지 아니면 공감을 바탕으로 사업계획서라면 작성해서 오면 그것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줘야할지... 하나의 성공적인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공간과 심리적인 공감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

오랜만에 참 성의없는 글을 적었습니다. 역시 생각을 좀 더 해보고 글을 적을 걸 그랬습니다. 글은 적고 있지만 글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글을 더 이어가기도 힘들고 또 어떻게 결론을 내려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적도의 남자'식으로 바로 엔딩크레딧 올라갑니다. ... 다음에...

...

추가. 2012.05.25. 이 글을 처음 적을 때부터 '공'자로 시작하는 한 단어를 더 애타게 찾았습니다. 공간이라는 것은 위치를 타나내는 단어이고, 공감이라는 것은 사람 사이의 감정의 교감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즉, 시간, 공간, 인간의 3대 문맥 축에서 공간과 인간의 축에서 공간과 공감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 축에서 '공'자로 시작하면서 문화혁명의 시발이 될 수 있는 단어가 뭘까를 계속 고민했습니다. 우연히 '공강'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공강이란 대학교에서 강의 사이의 비는 시간을 뜻합니다. 그렇게 업무 등의 일 속에서 여유 시간이 주어져야지 즐길 수 있고, 문화가 탄생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간 축에서 문화의 동력으로 공강이라는 단어를 넣으면 좋을 듯합니다. 이름도 '공가' + 'ㄴ / ㅁ / ㅇ'으로 일부러 맞춘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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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전에 주제 넘게 '교육의 시대는 끝났다'라는 도발적인 글을 적었습니다. 그 글의 요지는 우민화, 즉 생산적인 근로자 양성을 목적으로 했던 근대 교육체계가 창의적인 인재를 요구하는 미래의 사회에 맞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낙담할 필요는 없습니다. 미래가 창의적인 인재를 요한다면 그런 인재를 키워내는, 아니 학생들이 그런 인재로 자라나게 하는 환경을 준비하면 됩니다. 근대 우민화 교육의 종말을 선언했을 뿐, 교육 그 자체의 효용성이 사라졌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저의 요지는 간단합니다. 학생들이 실생활에서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죽은 지식을 흡수하도록 내버려둘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경험을 스스로 창조하도록 내버려둬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버려둔다는 말의 함의는 그들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그들의 창의적 자유를 허용하고, 또 생각할 기회를 준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의 호기심과 도전을 가로막는 교육은 이제 시효를 종료해야 합니다. 미래의 교육은 분명 뇌를 사용하는 것 (암기)이 아니라 뇌를 활용하는 것 (사고/창의)이 될 것입니다.

지금 제러미 리프킨의 신간 <3차 산업혁명>을 읽고 있습니다. 책의 말미에 교육에 대한 챕터가 따로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느끼고 있는 근대 교육의 문제와 그리고 해결책에 대해서 저와 비슷한 생각을 전개해놓은 것을 읽고 놀랬습니다. 리프킨도 근대 교육이 단순히 이미 죽은 그래서 더 이상 효용가치도 없는 지식을 흡수하는 것에 문제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리프킨이 분명히 밝히는 대안은 학생들에게 공감의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전작 <공감의 시대>를 읽어보면 더 도움이 될 듯합니다.) 공감한다는 것은 우리가 태어나서 자라는 환경은 자연과의 교감을 의미하고, 또 우리 주변의 살아있는 인간/동료와의 교감을 의미합니다. 물론 직접적인 교감에 더해서, IT기술 등의 현대의 이기를 이용해서 전 세계와의 교감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시야를 세계의 수준으로 넓히고 지구 반대편의 인류들과도 소통하라는 것임)

리프킨이 말하는 공감 또는 교감 또는 소통은 결국 interaction을 의미합니다. 자연과의 interaction, 그리고 사람과의 interaction입니다. Interaction이란 달리 표현하면 곧 '경험 Experience'입니다. 자연을 경험하고, 사람을 경험하는 것이 교육이라는 의미입니다. 자연을 경험하고 사람을 경험한다는 것은 또 달리 말해서 -- 저의 표현대로라면 -- 주어진 자연 환경 하에서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풍습, 즉 문화를 경험한다는 의미입니다. 책에 적혀있는 문자로 된 지식을 읽고 흡수하는 20세기의 교육방식에서 벗어나서, 주변의 문화를 직접 경험하고 또 더 나아가 다양한 문화를 직접 만들도록 허용해주는 것이 21세기의 교육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언제까지 학생들에게 풀이법을 던져줄 수는 없습니다. 그들에게 문제를 던져줘야 합니다. 그 문제를 보면서 스스로 생각하도록 해줘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새로운 가정 assumptions을 더 하거나 제약조건 constraints을 설정해서 문제를 단순화시킬 수도 있고, 더 발전하면 그런 가정이나 제약사항 중에 일부를 제거하면서 문제를 일반화시킬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면서, 문제를 풀어내는 방법을 스스로 사고하고 찾아가는 과정을 배워야 합니다. (경험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리프킨도 강조한 '토론'을 통해서 공동으로 사고하는 것도 필요하고, 또 인터넷 등을 통해서 전혀 새로운 세계의 학생들의 생각을 가미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 더 말하자면.. 일전에 다음 제주에서 <인사이드 애플>에 대한 임정욱님의 강연 후에 적었던 <기업의 문화와 철학과 가치는 소중하다>라는 글을 적었습니다. 그 글에서는 쿨선언 The Cook Doctrine으로 알려진 'We believe in...'이라는 글을 소개했습니다. 그 글에 바로 정욱님께서 답글을 달아주셨습니다. 팀쿡이 즉석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팀쿡의 모교인 Auburn University의 신조인 Auburn Creed를 평소에 외우고 다녔고, 이 Auburn Creed이 'we believe in..'으로 시작하는 문장으로 이뤄졌다고 합니다. 

이는 미래 교육 (적어도 한국에서는)에 대한 중요한 힌트를 주고 있습니다. 바로 교육은 학생들에게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또 생각의 틀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팀쿡이 평소에 Auburn Creed를 암송하면서 수백 수천번 'we believe in...'을 반복했을 것이고, 그러면서 자신이 재직하는 회사의 신조는 무엇일까?를 계속 고민하고 생각하고 정리하도록 해줬을 것이라 유추가 가능합니다. Auburn Creed의 내용을 통해서는 학생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가치관이나 신념, 또는 정심을 심어주었고, 그 형식을 통해서는 생각의 틀을 만들어줬습니다. 추측하건데 팀쿡이 언젠가는 'we believe in...'로 시작하는 멋진 말을 해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주총회의에서 우발적으로 쿡선언으로 표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은... 결국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되어야 하고, 좋은 생각의 틀/템플릿을 제공해주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경험하고, 교감하고, 생각하고, 창조하고... 교육의 미래는 결국 미래 인재들의 창의성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체계를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들이 직접 만들어가야할 듯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조금 더 쉽게 만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하고 지원해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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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estima.tistory.com BlogIcon estima 2012.05.25 12:52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부환님은 참 생각이 깊군요. ㅎㅎ 잘 읽었습니다.

    • Favicon of http://bahnsville.tistory.com BlogIcon Bahniesta 2012.05.26 01:14 신고 Address Modify/Delete

      그냥 스쳐지나가는 생각들을 정리도 못하고 적는 것입니다. 요즘은 업무 외의 문화프로젝트 때문에 여러 분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또 중요한 단어나 개념들을 자주 듣게되고 그러면 또 그것과 관련된 다른 이야기들과 엮어서 글을 적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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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다. 아마 지난 목요일 아니면 금요일인 듯하다.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공유되는 문화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진 이후로, 그저 우민화를 위한 교육은 더이상 힘을 쓰기 어렵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이 잘 먹히던 시대는 끝났다. 과거가 미래로 이어진다는 측면에서 교육의 시대가 끝났다라고 선언하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지만, 어쨌던 전통적인 방식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라면 충분히 공감가는 주장이 아닐까 싶다.

현재 교육체계의 틀이 갖춰지던 그 시대부터 교육이 미래에 더 이상 맞지 않았다. 현대 교육체계는 일종의 우민화를 위한 수단이었다. 국가의 지도자로 성장할 상위 1%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교육체계이고, 반대급부로 나머지 99%를 그들의 피지배계층으로 고착화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현대의 교육체계다. 1% 지도자가 갖춰야할 능력과 자질이 필요하듯이, 나머지 다수들이 현재의 지배체계에 순응하고 일을 잘 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 교육/학교 시스템이다. 교육을 통해서 미래의 지도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말 잘 듣는 국민들을 위한 세뇌수단이 교육의 시작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사회가 변함에 따라 교육의 모습도 바뀌었지만 기본적인 틀은 여전한 것같다.

미국에서는 어릴 적부터 'You'll get what you got'이라는 것을 교육시킨다고 들었다. 처음에는 직업의 다양성이라던가 아니면 천한 직업은 없다는 등의 평등 의식을 심어주기 위한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교육이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의 분리고착화를 위해서 고안되었다는 논리에 의한다면 UGWUG은 그냥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라는 강한 메시지가 있다. 네가 지금 가난하면 앞으로도 가난할 것이고, 네가 지금 힘이 없으면 앞으로도... 그렇게 힘없고 백없고 능력도 없으면 그냥 그렇게 평생 살아라. 그냥 위에서 주는대로 받아 먹고 불평불만하지 마라라는 강한 메시지가 UGWUG에 담겨있다. 

교육체계가 만들어지던 그 때부터 '교육이 기회의 균등을 제공한다'라는 헛소리를 전파했다. 그냥 그런 피지배계층의 무리들 사이의 평등일 뿐, 절대 1%의 상위로는 진입할 수가 없도록 고안된 것이 현대교육체계라는 거다. 그런데 가끔 1%에 진입하는 영웅신화에 도취되어서 나도 그런 운을 얻지 않았을까?라는 헛된 기대를 갖게 된다. 라스베가스 카지노에서 일부러 잭팟이 터지면 요란하게 소리를 낸다고 한다. 마치 잭팟이 많이 터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켜서, 자기도 조만간 잭팟을 터뜨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고취시켜주며 계속 갤블을 하도록 유혹하는 거다. 로또 1등 당첨을 크게 홍보하는 것도 같은 이치일터... 

교육이 우민화를 위해서 탄생되었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현대 교육체계는 그저 산업화시대에 특화되었다. 소위 산업일꾼이라 미화된 그런 노동자들의 근로 매뉴얼을 알려주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을 통해서 농업생산량도 많이 늘었고, 산업에서의 대량생산이나 자동화도 이뤄졌다. 그런데 그기까지다. 정보화 시대를 위한 코더들만 양산하고 있다. (스스로 개발자라고 믿는 수많은 개발자들이 진정 개발자인지 자문해보고 깨닫기 바란다.) 창의적으로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해결해낼 능력은 교육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교육은 틀에 박힌 사고를 전수하는 것이지, 다양성이나 새로움을 전하는 수단이 아니다. 공고해진 현대 교육체계에서는 그럴 능력이 전혀 없다.

현재 교육이 충분히 좋은 자료를 제공해준다손 치더라도 현실의 삶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다. Numb3rs에서는 수학천재가 나와서 인간의 모든 심리와 행동이 수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면 이상한 수식들을 적고 있지만, 우리의 삶에서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의 사칙연산 이상을 사용해본 적이 없다. 미분적분이니 확률함수니 이런 것들이 우리 주변의 많은 것들의 움직임을 설명해주는 것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내가 밥을 먹고 사는 것과는 무관하다. '네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도 수학원리에서 나왔고, 컴퓨터도 그렇고...' 등과 같은 반론이 나올 수도 있다. 그것은 인정한다. 그렇다고 그게 나의 일상과 무슨 상관이 있나? 그런 것을 수학적으로 설명해주지 않더라도 그냥 그러려니하고 자동차를 타고다니고 컴퓨터로 인터넷을 하면 그만이다.

창의적인 인재 또는 스스로 사고하는 인재를 키울려면 -- 그런 인재로 키울 수 있다고 믿는 것부터 고쳐야할지도 모르겠다. --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지금은 그저 정혀적인 문제를 풀도록 사육하고 있다. 그렇기에 교육의 시대가 끝났다라고 말하는 거다. 여전히 1차, 2차 산업에 더 많은 이들이 종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현대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사명을 감당한 창의적인 인재를 위한 교육은 분명히 현대 교육은 아닌 듯하다. 그저 변하는 환경에 반응해서 몸이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닌, 변화 이전에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환경을 만들 수 있는 인재들이 필요하다. 그런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커가기 위해서는 문화적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깊어진다.

'교육의 시대가 끝났다'라는 생각은 '문화라는 것은 그냥 경험하면서 습득하는 것이지 교육을 통해서 일일이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에서 시작했던 것같다. 주변의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고 또 스스로 문화적 토양을 만들어가야할 사람들에게, 그저 주어진 문화환경에 순응하도록 교육을 한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저 그런 것이 자연이듯, 그저 그렇게 만들어지고 익히는 것이 문화다. 몸이 움직이게하는 그런 획일적인 교육이 아닌, 마음과 생각이 움직이게하는 그런 다양한 문화가 필요하다.

다행히 최근에는 고 스티브잡스 때문에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나도 인문학에는 젬병이지만 그래도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기술에 앞서 사람을 이해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지금 나의 최대 관심사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이룩한 사회도 관심이 있다. 그런 사회의 결실인 문화도 관심이 있다. 그런 문화적 토양 위에서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 현재 간절한 바람이다.

관련 후속글: 그러면 교육에 미래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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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서비스다.

Gos&Op 2012.04.27 11: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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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당신이 이 글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할 반응은 '뭐야 이거?'일거다라고 추측한다. 논리로 글을 읽지 않기를 바란다.

사람 
서비스는 사람이다. 사람으로 향하는 것이 서비스고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서비스다. 언제부턴가 기술 중심의 제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 제품은 그저 제품일뿐 서비스가 아니다. (편의상 글에서 제품 또는 서비스는 인터넷 제품/서비스를 뜻한다.) 서비스한 사람의 경험에 바탕을 둔다. 그저 제품을 만들어 놓으면 사람들이 그걸 잘 활용하는 걸로 착각한다. 그렇게 나온 많은 제품들이 사람들의 주목도 받지 못하고 사라졌다. 제품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서 제품이 나온다. 그렇게 경험에서 나온 제품이 서비스다. 사람을 향한 제품이 사람을 위한 서비스가 되고, 사람으로부터 나온 제품이 사람을 위한 서비스가 된다. 경험이란 한번의 실행에서 얻는 것이 아니다. 꾸준히 누적된 일관된 실행이 패턴이 되고, 경험이 된다. 그런 경험이 시대에 전해지고 세대에 전파되면 문화가 된다.

문화
다음이라는 회사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있다. 이 사람들은 정말 고집스럽게도 카페와 메일을 사랑한다는 거다. 벌써 성장의 모멘텀과 변화의 시기를 놓쳐버린 그걸 끝내 손에서 놓지 않는 모습을 보며 기대가 절망으로 바뀐 순간이다. 카페라는 것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이 오프라인에서 편하게 모여서 담소를 나누는 공간에서 비롯되었다. 메일이라는 것도 형태가 이메일이나 웹메일로 바뀐 것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으나, 그보다는 사람들 간의 소통의 경험이 새로운 수단으로 변화된 거다. 아고라라는 토론의 장도 결국은 광장이나 시장과 같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 그리고 그 장소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모습이 제품이 된 거다. 카페, 한메일, 아고라 등의 나름 성공했던 모든 제품들은 사람의 경험이 새로운 형태로 바뀐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다음
언제부턴가 다음에서 새로운 제품 또는 서비스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에 의해서 성공한 제품이 벤치마킹이라는 이름으로 카피캣이 되는 경우는 많았지만, 새롭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왜 새로운 서비스가 나오지 못하는가?에 대한 힌트를 얻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제품 (또는 회사)을 바라볼 때 기술중심인가? 아니면 사람중심인가?를 묻곤한다. 단언컨대 다음은 기술중심의 회사는 아니다. 기술은 그저 거들뿐... 그렇다고 사람중심의 회사인가? 그럴뻔은 했었던 것같다. 가끔 사람들 사이에 '다음은 뭘 하는 회사지?'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검색에 종사하고 있지만, 다음은 그냥 검색도 하는 미디어회사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과연 다음이 미디어 회사인가?라고 직설적으로 묻는다면 또 망설여진다. 그런데 어제 대화 (거의 듣는 수준이었지만) 중에 다음의 시작이 문화였다는 얘기에 나름 힌트를 얻었다.

시작과 끝
다음이 초기에 인터넷 갤러리를 시작했다. 오프라인의 갤러리라는 경험을 인터넷의 서비스로 만들었다. 그런 서비스를 통해서 사람들은 또 다른 경험을 했다. 오프라인에서의 친목모임이라는 경험을 통해서 카페를 만들 수 있었던 것같다. 그와 같은 경험들이 한메일도 만들었고, 아고라도 만들었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다음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인터넷 전반에서 같은 현상이 발생했다. 마을 공동체에서의 품앗이 전통이 서로 묻고답하고 하는 지식iN이 되었고, 굳건한 단일민족이니 친족중심의 문화가 1촌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되었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이후에도 카카오톡이니 몇명 성공한 제품들이 여전히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 이후가 문제다. 이제는 더 이상 욹어먹을 문화적 토양을 상실한 느낌이다.

핀터레스트
처음 이 글을 적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핀터레스트 Pinterest'때문이다. 큐레이션이라는 개념이 전혀 생소한 것이 아니다. 핀터레스트 이전에도 대한민국에 비슷한 제품이 나왔어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어째서 미국에서 핀터레스트가 발전할 수 있었을까? 궁금했다. 약 1년반정도의 미국 생활에서 나름 힌트를 얻었다. 대부분의 공공건물 입구에는 게시판이 놓여있다. 대학/연구소의 소식을 알리는 경우도 있고, 축하메시지를 알리는 경우도 있고, 개인적으로 파티를 알리는 경우도 있고, 벼룩시장이나 구인구직을 알리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게시판이 핀터레스트라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한국의 대학에도 다양한 게시판들이 있었는데, 그걸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던 것같다. 단순히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당국의 일방적 통보의 장으로 활용되었지 속의 사람들끼리의 친목을 위한 공간은 아니었던 것같다. 가끔 대자보는 붙지만, 그것은 당국에 대한 저항정신의 표현일뿐...

즐거움
언제부턴가 우리는 즐거움을 잃었다. 다음이라는 곳이 그냥 치열한 삶의 전쟁터가 되었다. 그렇게 문화의 토양이 잠식당했다. 그 이후부터 새로운 서비스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 문화는 전쟁의 산물이 아니라, 유희의 산물이다. 즐거움이 없는 곳에서 새로운 문화가 나올 수 없고, 빈약한 문화적 토양에서는 문화를 누림으로써 얻는 경험이 없고, 그렇기에 경험이 서비스가 되지 못한다. 그냥 사람들을 가정하고 제품만 찍어낼 뿐이다. 그런데 그런 제품들은 사람들이 외면한다. 다음을 떠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속으로는 박봉이니 승진의 기회가 없다느니 등의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명분은 '재미가 없다'라는 거다. 재미는 태생적으로 일의 결과물이 아니다. 어쩌면 결과물만을 바라는 사람들의 시각에 문제가 있다. 

결실
재미는 그냥 결실이다.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부대낌을 통해서 조금씩 쌓여갔던 삶의 패턴들. 그 일상들이 모여서 하나의 문화가 된다. 다양한 패턴들이 다양한 문화를 이룬다. 그런 인고를 통해서 얻어진 문화. 그걸 누리면서 만들어낸 결실이 재미다. 그런 재미가 사라졌다고 한다. 도전을 원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도전은 모든 사람들이 공통된 욕구가 아니다. 그냥 새로운 문화를 경험해보고 싶다는 것이상의 의미가 없다. 더이상 새로운 문화적 충격을 줄 수 없는 곳에서 새로운 재미를 기대하기가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떠난다. 문화의 존재가 새로운 서비스라는 결실을 만들듯이, 문화의 부재가 사람을 떠나게 만든다.

이식
문화의 부재는 어쩌면 조직의 경화에서 온건지도 모르겠다. 부드러움을 상실한 조직은 새로운 문화를 만들지 못한다. 다양함을 잃은 조직이 새로움을 창발시킬 수 없다. 입에 자유가 없는 인간에게서 몸의 자유를 기대할 수도 없다. 그렇게 조직이 굳어지고 사람은 그 조직에 적응한다. 적응하면 그냥 만족하고 그렇지 못하면 처음에는 욕도 해보지만 결국 사람들의 눈치를 보다가 떠난다. 그렇게 또 하나의 조직의 안전이 지켜진다. 이렇게 경화된 조직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공신들부터... 그러나 산에서 거목을 옮겨심는 경우는 없다. 어린 묘목을 옮겨심는다. 어린 묘목을 심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가꿔나가야지 새로운 푸른 산을 만들 수 있다. 잘 가꿔진 거목은 문화재가 되고, 그렇지 못한 거목은 그냥 뗄감이 될 뿐이다. 푸르고 푸른 우리의 강산은 거목이 아닌 어린 묘목에 달려있다.

희망
그렇기에 새로운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린 묘목들에게 기대를 해야 한다. 그들에게 역사를 알려주고 문화의 가능성을 심어줘야 한다. 그런데 교육을 통해서는 문화가 만들어질 수 없다. (그래서 조만간 교육의 시대는 끝났다라는 글을 적을 예정이다. 아님 말고) 어린 세대에게서 새로운 희망을 기대한다. 그들이 새로운 문화를 만들 수만 있다면 다음이라는 회사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도 희망이 있다. 지금은 희망의 씨앗을 뿌릴 때... 중세의 암흑기 이후에 르네상스의 시기가 도래했다. 해뜨기 직전의 새벽이 가장 어둡다. 대설과 한파 이후에 봄이 찾아온다. 지금은 분명 대한민국 인터넷의 중흥기는 아니다. 그저 오래 전 유물을 그냥 사용만 하고 있을 뿐, 미래를 위한 새로운 유물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희망을 노래한다.

무논리
참 글을 길게 적었지만 논리도 없고 핵심도 없다. 이런 글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는데... 어제 밤에 글을 적다가 지웠던 이유가 있었다. 말이 되든 그렇지 않든 간에 하고 싶었던 말은 서비스는 문화의 결실이고, 경험의 결심이고, 사람의 결실이다라는 거다. 기술은 그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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