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후배 장례식장에서 오랜만에 많은 선후배들을 만났습니다. 자연스레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특징적이게도 포항공과대학교 산업(경영)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대부분이 전국 각지에 있는 대학교 교수가 되었거나 삼성에 취직해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예외적인 경우가 SK플래닛에 두명, 그리고 제가 다음에 있는 경우입니다. 학사, 석사로 범위를 넓히면 조금 더 다양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각종 은행이나 금감원 등의 금융계에 종사하거나 SK, LG, 두산, 현대, 포스코 등의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간혹 예외적으로 벤처나 개인사업을 하는 경우가 존재하지만, 대부분은 교수 또는 대기업에 종사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고인이 박사학위를 마쳤고 교수로 재직했기 때문에 비슷한 패스를 거친 이들과 친했기 때문에 샘플링에 문제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제가 나온 대학원 연구실과 동기들은 좀 더 다양하게 진출해있습니다. 연구실 박사만을 대상으로 삼는다면 교수 2명, 국책연구소 1명, 삼성 1명, 다음 1명, 삼성에 다니다가 미국에 연구원으로 갔다가 현재는 인도계 회사에 취직해있는 분 1명, 미국 NIST의 연구원 1명 그리고 미국 오라클 1명 등으로 장례식에서 만났던 선후배 (박사)들보다는 좀더 다양한 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과동기들은 교수나 삼성에서 일하고 있는 경우도 많지만, 공무원으로 간 친구도 있고 자기사업이나 프리랜서로 일하는 친구들도 있어서 좀더 다양한 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장례식에서 만난 선후배들의 직업분포를 보면서 '지금 나름 잘 나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기에 앞서,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구나'라는 안타까움이 앞섰습니다. 초중고등학교를 제외하고 10년을 넘게 공부해서 갈 수 있는 곳이 대학교 강단이나 삼성이라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현재 삼성에서 일하고 있는 분들도 학교로 진출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인생의 목표를 교수로 잡고 가장 창의력과 활력이 넘치는 20대를 보내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곳이 지금의 대한민국입니다. 나름 국내 1%에 들어가는 수재들이 대학교육을 받고 나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학교/공무원, 대기업, 은행 또는 (국책)연구소 등에 거친다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또는 그렇게 20대를 보낸 사람들이 결국 갈 수 있는 곳이 학교나 삼성으로 제한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앨빈 토플러가 2008년도에 말했다는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15시간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도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라는 말은 늘 뇌리에 맴돕니다. 더 심하게 말하자면, 이제 갓 교수가 되신 분들은 자신들이 10년 15년 전에 배웠던 필요없는 지식을 현재 10년 15년 뒤에 현업에 뛰어들 학생들에게 똑같이 가르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입니다. 자신의 미래가 교수 또는 삼성으로 정해져있다면 진짜 악몽이 아닌가요? 10년, 15년 전에 저의 미래가 교수나 삼성이었다면 아마도 현재는 미쳐있을 것입니다.
포항공과대학교 (산업공학과)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논지를 펼쳤기 때문에 위화감을 느낄 수도 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렇다면, 현재 자신의 학교/학과 선배들의 진로를 파악해본다면 그들의 현재 직업/직무가 자신의 미래가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암담하지 않나요? 길게 보면 다양성이 이깁니다. 각자의 길을 가시기 바랍니다. 이 땅의 많은 교수라는 작자들이 학생들의 인생을 가지고 무책임하게 도박하고 있는 현 상황을 용인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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