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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Op

그래도 한줄기 소나기보다 못하다

제주도에 오랜만에 비가 내립니다. 한달 이상의 가뭄을 완전히 해갈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반가운 소식입니다. 지난 주말의 세차가 효과를 발휘한 것같아서 나름 뿌듯합니다. 누군가 페이스북에 '스프링클러 100개 이상의 위력'이라며 비오는 사진을 올립니다. 이때 머리 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습니다.

물과 관련된 유명한 경제 용어 두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신자유주의 물결과 함께 늘리 사용되는 것으로 낙수효과 Trickle down effect입니다. 낙수 즉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듯이 경제 상층부에서 돈을 풀면 그 돈이 아래쪽으로 내려온다는 논리입니다. 기업의 법인세를 내리면 인하된만큼 연구개발에 더 투자하고 일자리를 늘린다는 것이 법인세 인하의 주요 논리였습니다.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한데 현실에서는/결론적으로는 실패한 정책입니다. 갈수록 불평등이 더 심해집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트리클다운을 주장하는 진영의 반대 진영에서 내세우는 용어/논리가 있습니다. 바로 분수효과 Sprinkler effect입니다. 낙수효과가 경제 상층부에 돈을 풀면 돈이 생산에 투입되어 경제 전반으로 흘러간다는 논리인데, 분수효과는 그 반대로 돈을 아래쪽에 풀면 돈이 소비에 투입되어 소비가 활성화되고 자연스레 생산도 늘어나서 경제 전반으로 흘러간다는 논리입니다.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진영에서 내세우는 논리가 바로 분수효과입니다.

지난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트리클다운, 더 나아가 (무분별한/무규제의) 신자유주의는 실패한 정책임이 밝혀졌습니다. 그들의 논리대로 인하된 법인세 또는 기업의 세제 혜택 등이 일부 연구개발, 일자리 창출에 투입되었지만 대부분은 그런 생산과 무관한 주주 및 비생산/자본가 계층으로 흘러들어가서 경제불균형, 양극화만 심화되었습니다. 분수효과를 주장하는 쪽은 아직은 세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서 제대로 된 실험이 이뤄지지는 않고 있습니다. 어쩌면 실험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기보다는 복지예산이 투입된 이후에 어떤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지 제대로 측정하고 평가하고 있지 않고 있다는 말이 더 맞을 듯합니다. 어쩌면 긍정적 효과가 기득권에 의해서 여전히 (의도적으로) 무시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분수효과가 낙수효과보다 장기적으로 나을 것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오늘 내리는 비와 함께 조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지금 세상을 1%와 99%로 나눠서 보려는 시각이 보편화되고 있습니다. 양극화라는 큰 틀에서 본다면 1%와 99%로 나누는 것은 좋은 프로파간다가 맞지만, 1%의 반대편을 99%로 묶기에는 편차가 너무 큽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신자유주의 혜택을 받은 1%와 극빈층의 2~30%, 그리고 나머지 70%의 중간계층으로 나누는 것이 더 맞을 것같습니다. 극빈층을 2~30%로 잡은 것은 현재 실업률이 5% (공식적으로 3.1%라고 나와있지만 실제는 이것보다 심하다고 생각함)로 가정했을 때, 비경제인구와 취업이 된 상태지만 근근이 생활하는 계층이 최소 2~3배 이상은 더 존재하기 때문에 30%는 안전한 수치입니다. (극단적으로 표현해서) 트리클다운 효과는 상위 1%에게만 혜택이 돌아가고 스프링클러 효과는 하위 30%에게 돌아간다면 나머지 6~70%는 양쪽 모두에서 배제되어있습니다.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은 폭포 아래의 웅덩이와 계곡만을 채우고, 스프링클러에서 나오는 물줄기도 반경 몇 m 내에만 혜택이 돌아갑니다. 그 외의 모든 지역은 여전히 가뭄에 시달립니다.

단순화를 위해서 극단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니 트리클다운이나 스프링클러 이론이 나옵니다. 이 둘은 극단의 상, 하위에 초점을 맞췄을 뿐, 여전히 중위의 대다수는 배려하지 못합니다. 오전에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면서 트리클다운과 스프링클러의 허상을 생각하게 됩니다. (트리클다운과 스플링클러 효과가 전혀 없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런 것들이 대다수에게는 단기적으로 (5년 내외) 너무 미약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많은 폭포가 있더라도 아무리 많은 스프링클러가 있더라도 가뭄은 여전합니다. 편견이 없이 세상을 적시는 빗줄기가 필요합니다. 어떤 정책이 온누리를 적실 빗줄기가 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공공정책이라면 특수계층만을 위해서 설계될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합의하는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은 분명합니다. 아무리 큰 폭포나 많은 스프링클러가 있더라도 여름을 적시는 한줄기 소나기보다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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