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업무시간에 딴짓을 많이 한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의 새글도 확인하고, 업무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떨어지는 책을 읽기도 하고 가끔 블로그에 올릴 글도 적고 (보통은 저녁시간에 적지만 급하게 떠오른 생각이나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충만할 때는 그 유혹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리고 글을 적을 때도 백그라운드에서 분석프로그램이 실행중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가끔 불필요하게 돌리는 경우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퍼즐게임도 즐겨한다. 그래서 간혹 사람들은 내게 업무시간에 딴짓 좀 그만하라는 소리를 한다.
어떤 이유에서건 정해진 업무 시간에 딴짓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서 나를 변론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내가 딴짓하는 것에는 또 그만한 이유가 있다. 보통 직장인들은 하루 8시간의 업무시간이 주어진다. 그 시간동안 최선을 다해서 맡은 업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나는 업무시간이 8시간보다는 긴 10~12시간정도다. 외부에서 강제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언제부턴가 그렇게 생활해오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일을 느슨하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즉 하루 2시간 정도의 딴짓을 하면서도 맡은 일은 충실히 하기 위해서 더 많은 시간을 사무실 컴퓨터 앞에서 보낸다. 오전 10시 출근이지만 가급적 9시에 출근하려는 것도, 오후 7시 정시퇴근이 아닌 8시나 9시가 되어서 퇴근하는 것도 그만큼의 딴짓을 하면서 느슨하게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다. 그리고 퇴근 후에도 침대에 누워서 업무와 관련된 많은 생각을 하고, 책도 본다. 급한 일이 있으면 더 늦게 야근하거나 주말에도 나와서 일하기도 한다. 8시간을 사는 사람과 10시간을 사는 사람의 생활패턴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야근이나 주말 등의 초과 근무에 대해서 보상을 해주지 않으면서 업무 시간에 잠깐의 딴짓을 무조건 불허하는 것도 형평성에 맞지 않다. (야근이나 주말 근무를 하기 위해서 쉬엄쉬엄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베스트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 조건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에 맞춰서 일하는 것뿐이다.)
단순히 남들이 활동하는 시간에 내가 딴짓을 한다고 해서 내가 잘못 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딴짓을 했으면 그만큼 또는 그 이상의 시간과 노력을 업무에 투자하고 있다. 나에게 딴짓하지 말라는 그들의 생활을 관찰해보면 하루에 적어도 1시간 이상은 카페에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다. 대부분의 대화가 업무 외적인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카페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 것은 직장 내 스트레스를 푸는 행위이고, 내가 자리에 앉아서 간단한 퍼즐을 하거나 글을 적고 있는 것은 딴짓이 된다. 정시에 출근해서 정시에 퇴근하면서 하루 1~2시간을 커피나 수다에 보내는 사람들이 내가 자리에서 잠시 딴짓하는 것을 나무라면 어쩌자는 건지... 물론 업무 분위기가 나빠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면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사람들이 안 보이는 곳에서 즐겁게 딴짓하는 그네들의 승리다.
업무의 특성상, 데이터분석을 돌려놓고 결과가 나오길 기다려야할 때가 많다. 그 시간을 멍시간으로 만들 이유는 없다. 그러니 인터넷 서핑도 하고 주위 사람들과 대화도 하고 퍼즐도 하고 또 글을 적기도 한다. 특히 주변에서는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시간을 많이 보낸다. 인터넷 서핑을 하는 것은 별로 딴짓이란 인상을 갖지 않는 것같다. 그런데 그 시간에 글을 적는 것은 딴짓이 된다. 보통 인터넷 서핑을 하면 트렌드와 정보를 습득하고 있다고 인식하는 듯하다. 그렇듯이 글을 적는 시간은 내게 트렌드를 분석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된다. 인터넷 서핑 이상의 창의적인 시간이고 향후의 업무 수행을 위한 기초 작업이다. 그러나 남들에게 그 시간동안 나는 딴짓을 한 사람이 된다.
유정식님의 글 중에 '사무실에서 딴짓할 시간을 허하라'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사무실 또는 업무 시간에 딴짓을 불허하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생산성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생산성을 저해한다는 요지의 글이다. (그리고 외부 인터넷을 막아놨다하더라도 요즘은 그냥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마음대로할 수 있으니 강제로 막는다고 해서 막을 수도 없다.) 나는 저 글을 읽으면서 사람들에게 딴짓할 시간 time to이 아니라 딴짓할 용기 dare to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무실에서 또는 업무 시간에 방종을 권하는 것은 아니지만, 계획된 딴짓은 필요하다. 집중할 때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듯이 자유로울 때 얻을 수 있는 것도 많다. 특히 지식노동자들에게 딴짓은 그냥 노는 것이 아니다. 창의력의 시대, 융합의 시대에 딴짓은 창의와 창발성의 일으키는 한 가지 수단이기도 하다. (물론 무분별한 딴짓을 허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딴짓의 정의가 뭘까? 그냥 업무가 아닌 모든 일이 딴짓일까? 인생은 정해진 트랙을 도는 육상경기가 아니다. 그냥 시작과 끝만 있을 뿐이다. 직진한다고 해서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가장 빨리 가는 것이 가장 좋은 것도 아니다. 삶의 트랙에는 매 순간 다른 목적과 이유가 있다. 딴짓을 그저 업무의 방해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딴짓을 통해서 더 창의적으로 업무를 추진할 수 있는 그런 문화와 지원을 만드는 것이 어떨까?
(2013.04.03 작성 / 2013.04.12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