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업계의 트렌드에 빠삭하다고 자부하기 때문에 새로운 서비스가 소개되면 일단 가입부터하는 버릇이 생겼다. 잘못된 자만심은 늘 불행의 씨앗이다. 그냥 기다렸다가 한번 정리가 된 서비스에 가입해서 사용하면 될 것인데, 일단 가입부터 해서 한두번 사용해보고 재미없어서 그냥 묵히는 경우가 많다. 초기 테스트를 위해서 소개된 웬만한 기능들은 다 활성화시키고, 가용한 친구들은 다 추가시키거나 친구요청이 들어오면 아무런 가이드도 없이 그냥 수용하는 경우가 많다. 트위터를 처음 사용할 때 조금 유명세를 탄 이후에 들어오는 대부분의 팔로잉을 맞팔로잉했고, 페이스북은 게임을 한다고 게임친구들을 마구잡이로 추가했고, 구글+도 친구요청이 오면 다 추가했다. 그렇게 막무가내로 친구나 기능을 추가하다보면 당연힌 사용빈도나 연결빈도가 낮은 기능/친구들이 생겨나고, 그렇게 될수록 서비스에 대한 흥미도 떨어진다. 그런데 막상 한번 활성화된 기능이나 추가된 친구를 제거하는 것은 어렵다. 더하기는 참 쉽다.
다행히 트위터는 4000명이 넘어선 순간부터 무분별한 맞팔로잉은 자제하고 있고, 페이스북은 더 친밀한 관계 유지를 위해서 게임친구들을 모두 제거했다. 구글+은 단순히 블로그글을 발행하는 이상의 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계속 추가하고는 있고, Quora나 Pinterest 등도 큰 활용성이 없기 때문에 아직은 그냥 추가하고 있다. 그 외의 서비스들도 비슷한 경향이다. 지난 대선을 지나면서 트위터에서 나랑 맞지 않는 일부는 제외시켰지만, 여전히 4000명 가량의 팔로잉이 유지되고 있어서 혼란스럽고 줄려야겠다는 압박을 받는다. 페이스북도 2000명이 넘던 친구들을 200명으로 줄였지만 또 어느 샌가 500명을 바라보고 있다. 숫자의 압박을 받을 때마다 불필요한 연결을 끊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기가 너무 힘들다. 누구를 남기고 누구를 추가할 것인가?는 참 어려운 문제다. 빼기는 참 어렵다.
더하기는 쉽고 빼기는 어렵기 때문에 생각했던 전략이 초기화다. 물론 아직 한번도 실행에 옮긴 적은 없지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깔끔해질 것같다. 트위터에서 모든 팔로잉을 정리한 후에, 다시 넣기를 하면 적어도 지금처럼 4000명을 팔로잉하는 일은 없을 것같다. 추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어렵고 아리쏭해서 또 넣기도 하겠지만 지금보다는 깔끔한 목록이 만들어질 것같다. 페이스북에서는 그나마 쉬웠다. 오프라인에서의 관계가 있는 경우만 페이스북 친구로 남겼다. 실제로 오프라인에서 만났거나 학교나 회사 등으로 연결되어 잠정적으로 만날 수 있는 사람들만 페이스북 친구로 남겼다. 물론 한 열명정도는 전혀 일면식도 없는 경우거나 오프라인 관계가 없지만 친구로 등록된 경우도 있다. 매번 그들의 글을 보면 그냥 정리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만, 또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그냥 남겨놓곤 한다.
핀터레스트도 한번 정리했던 적이 있다. 몇 가지 주제에 관심이 있어서 이런 저런 모든 사람들 -- 정확히 말해서, 보드 Board들 --을 팔로잉했는데, 어차피 사진이 올라오는 보드만 계속 사진이 올라오고 나머지는 별로 업데이트도 되지 않기 때문에 불필요한 보드가 많아져서 그냥 모두 제거하고 새롭게 관심보드를 빌딩했던 기억도 있다. 그렇게 가끔 한번씩 초기화에 가까운 빼기를 한 후에 다시 더하기를 하는 것은 그냥 많이 채워진 가운데 하나둘을 제거하는 것보다는 더 쉬웠다. 빼기가 어려울 때는 다 빼고 다시 시작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포털 회사를 다니다 보니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켜줘야 하기 때문에 이런 저런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주고 있다. 많이 사용되는 서비스들은 깔끔하고 리뉴얼도 잘 되는데, 그냥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 만들어진 서비스들이나 이미 경쟁사에 밀린 서비스는 업데이트도 잘 안 이뤄지고 아주 오래전 디자인/서비스가 그대로 인 것들이 많다. 그런데 막상 그런 서비스를 종료시키는 것은 참 어렵다. 그래서 서비스 종료 결정을 빨리 내리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면서 운영비용만 가중시키는 것을 종종 본다. 각 서비스에 담당자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 입장에서는 자신의 서비스가 종료되는 것에 반감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고, 또 혹시나 모르는 고객들의 불만도 고려되기 때문에 어떤 서비스를 남기고 어떤 서비스를 버릴지를 결정하는 것이 어렵다. 수십 수백 가지 서비스를 동시에 관리다보면 그런 일이 자주 발생한다. 이런 경우에도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든다. 100개에서 10개를 빼는 것이 아니라, 0에서 90개를 더하는 방식이다. 그러면 좀더 쉽게 서비스가 정리될 것같다.
서비스 뿐만 아니라, 현재 대한민국의 포털 탑화면에 노출되는 수많은 정보들도 그렇다. 모든 것들이 꼭 필요한 것이 아닌데, 예전부터 노출되던 것이라서 과감히 뺄 수가 없거나 아니면 새롭게 추가된 기능/서비스이기 때문에 잘 노출시켜줘야 한다는 논리다. 매년 주기적으로 메인화면의 리뉴얼이 진행되지만 정보의 위치가 바뀔 뿐 제거되는 것은 거의 없다. 사실 리뉴얼될 때마다 새로운 정보/기능들이 더 추가될 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서비스의 질은 떨어지고 고객들은 혼란에 빠진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백지 화면에서 시작해서 꼭 필요한 것만 남기는 식으로 정보/기능을 추가하면 조금 더 깔끔한 첫페이지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최근에 야후의 탑화면이 간단해졌는데 (물론 다른 서비스들에 비해서는 복잡하지만), 어쩌면 그들이 했던 것이 이런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더하기는 쉽고 빼기는 어렵기 때문에 어려운 빼기에 골몰할 것이 아니라, 0에서 시작하는 더하기 전략을 택하는 것이 좋을 것같다. 그렇게 더해가다보면 또 복잡해진다. 그러면 그때 다시 0으로 만들어서 또 더해나가면 된다. 뺄 수 없으면 다시 시작하자.
뺄 수 없으면 파괴하라.
(2013.04.08 작성 / 2013.04.10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