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삼성이 MS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소프트웨어를 전문으로 하는 MS와 하드웨어를 전문으로 하는 삼성이 닮았다고 말하는 것이 이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MS가 PC시절의 공룡기업이었듯이 삼성이 지금 모바일/스마트폰시대의 공룡기업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MS가 퍼스트무버는 아니었지만 업계를 평정했듯이 삼성도 퍼스트무버가 아니지만 업계를 거의 평정했다. 그래서 이 둘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MS는 정말 잘 나갔다. 그런데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삼성은 지금 잘 나간다. 그런데...
기업의 성공 이면에는 운이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같다. 제품/서비스의 완성도보다는 타이밍의 싸움에서 이기면 성공한 기업이 되는 것같다. 그런 측면에서 MS는 참으로 대단했다. 초기 MS-DOS의 성공을 바탕으로, PC운영체제, 오피스제품군, 그리고 인터넷 브라우저 시장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말했듯이 MS가 이들 분야에서 퍼스트무버였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 아니라, 적절한 시기에 물량공세를 펼쳤기 때문에 성공했다. 가장 최근 (10년도 더 전의 이야기를 가장 최근이라 표현해야 하다니...)의 브라우저 전쟁에서 네스케이프에 선수를 빼았겼지만, 이후에 윈도우OS를 바탕으로 물량공세를 펼쳐서 브라우저 전쟁의 최후 승자가 되었다 (10년 전에 -- 지금은 다시 춘추전국시대를 넘어 크롬으로 기우는 분위기). MS는 이 때 이후로 이런 물량공세를 그들의 유일한 경영전략으로 삼은 것같다. 그래서 그들이 보유한 현금으로 시장에 다소 늦게 참가하더라도 평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검색에서도, MP3음악시장에서도, 모바일OS에서도, 클라우드에서도... 그런데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계속 현금을 투입하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물론 가능성을 보인 제품/서비스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브라우저 전쟁에서의 승리는 출발이 늦어도 몸빵으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지만, 현재 그들의 전략은 녹록치가 않다.
MS는 삼성의 데자뷰다. 삼성은 메모리, 디스플레이, 피쳐폰의 성공을 발판으로 스마트폰시장에 다소 늦게 뛰어들었지만 지금 세계 1위의 자리를 차지했다. (물론 다른 평가지표로는 1위가 아닐 수도 있다.) 스마트폰시장은 블랙베리와 애플이 먼처 치고 나갔고, HTC가 안드로이드폰을 먼저 만들어서 자신의 시장을 만들어갔다. 그러나 메모리 및 디스플레이에서 얻은 수익을 다시 안드로이드폰에 모두 투자해서 현재는 안드로이드폰 마켓의 1위가 되었다. MS가 브라우저 전쟁에서 승리했던 그 지점과 삼성이 스마트폰/안드로이드폰 전쟁에서 승리한 그 지점이 겹쳐보인다. 늦게 출발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넘은 자만이 생길 법하다. 삼성보다는 더 똑똑했을 MS가 그랬다. 이제 MS가 그랬듯이 다음의 전쟁에서 삼성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전의 글에서 삼성이 혁신능력이 없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참고. 2등이 편한 기업들...) 삼성은 언제나 퍼스트무버가 아니라 헤비무버였다. 몸집이 거대했지만 한 분야에 집중하는 나름 빨랐던 패스터무버이기도 하다. MS가 그랬던 것처럼... 한번 성공한, 그것도 대성공한 전략을 쉽게 버리거나 수정하기가 어렵습니다. 기억은 사람을 망하게 합니다.
그래서 그 순간 "지금 삼성의 성공은 애플이 아니 MS의 길로 이끈다"라는 한줄의 생각이 스쳐갔다. 과거의 성공은 향수일 뿐이고, 과거의 실패도 술자리 안주일 뿐이다. 과거는 레퍼런스가 될 수는 있어도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가 없다. 스스로 변화하고 혁신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미래에 살아남을 수가 없다. 애플이 당장은 어려움을 겪어도 그래도 지켜보는 것은 그동안 보여줬던 혁신 능력 때문이다. 역으로 삼성이 지금 잘 나가지만 불안한 것은 환경에 잘 적응했지만 환경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을 보여주는데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제껏 그나마 빠른 시간 내에 변화된 환경에 투자를 했지만, 매번 그런 운이 따른다는 보장이 없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삼성은 참 애증의 기업이다. '애'가 전혀 없다면 이런 글도 안 적는다. 제발 좀 선해져라.
(2013.02.27 작성 / 2013.03.07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