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외부 개발자들이 모여서 하루밤동안 내외부 API를 이용해서 프로토타이핑 서비스를 개발하는 13회 데이데이 때의 일화입니다. 외부 개발자를 위한 행사였지만, 사내 개발자들도 3팀이 별도로 참가했습니다.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한 팀을 이뤄서 참가했길래 어쩌다가 옆에서 같이 밤을 새었습니다. 중간 야식 시간에 이런저런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그들은 이번 서비스를 더 잘 다듬어서 실리콘밸리로 진출할 거라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성공적으로 실리콘밸리에 안착하면 제게 CTO 자리를 맡기겠다고 하더니, 이내 그냥 미디어/블로그 담담으로 CBO (Chief Blog Officer)를 맡기겠다고 말했습니다. 팀으로 모여서 서비스를 하나 만들면서 당찬 포부를 밝히는 모습을 보면서 다음날 정신이 든 이후에 내가 그와 비슷한 이들에게 CBO의 역할을 해주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제가 말하는 CBO는 블로그담당관이 아니라 Cheif Brake Officer입니다. 즉, 제동담당이 되는 것입니다.
Y Combinator의 Paul Graham이 '스타트업은 성장이다 Startup = Growth (번역된 글)'다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창업을 해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스타트업은 성공할 수 없다는 그의 말에 적극 동감을 합니다. 그렇지만 이상만 보고, 자신의 열정과 패기만을 믿고 도전 도전 도전만을 외치는 이들이 간혹 염려스럽기도 합니다. 걸음마 단계의 아이가 막 뛰어가다가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지까 봐서 조마조마한 부모의 심정입니다. 한 손에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다른 손에는 젊음이라는 여정과 패기를 가지고 도전을 하면 한동안은 거침없이 성장해나가겠지만 어느 순간 현실의 장벽에 막혀서 이제껏 쌓아온 성과마저도 완전히 와해되어버리는 것도 종종 봅니다. 도전과 실패에서 교훈을 삼는 미국과는 달리 한번 실패는 영원한 낙오로 쉽게 간주되어버리는 한국이라는 현실에서는 더욱 안타깝습니다. 그렇기에, 이상향만을 보면서 달려가는 이들에게 현실적인 완급이나 방향조절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세하지만 그런 완급이나 방향 조절을 해주는 사람으로써의 CBO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이릅니다. 스타트업의 본질이 성장이지만 제동없는 성장이나 방향변화없는 성장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구글의 초기에 펀딩을 받은 직후에 그들을 도와줄 어른이 필요하다는 조언을 들었고, 그래서 영입한 이가 현재 이사회의장인 에릭 슈미트입니다. 에릭 슈미트가 구글의 CEO로써 구글을 본 궤도에 올려놓은 것도 알고리즘과 기술과 패기만을 가진 페이지와 브린의 지고나가려는 것을 적절히 제어하면서 방향이나 완급을 조절해줬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슈미트의 업계 경험이 없었다면 어쩌면 구글은 지금쯤 그냥 좋은 기술과 제품을 가진 연구실정도로 성장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벌써 그들의 기술과 제품을 다른 회사에 팔아넘겼는지도 모릅니다. 끝이 없는 직선주로에서 승부가 결정난다면 브레이크는 애초에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굴곡과 요철이 산재해있고 또 그런 것들이 전혀 예상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브레이크나 핸들이 필요합니다. 비행기의 경우도 자동항법장치만으로 웬만한 비행이 가능하지만, 난기류를 만나면 그때 파일럿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서두에 말했든 참가팀도 6명의 기획 개발자들이 자신들의 아이이어가 대박이 날 것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더 현실적인 조언(보다는 딴지)을 계속 해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게 사람들이 진짜 좋아할 것같냐? 벌써 비슷한 서비스는 많이 있다. 차별화 포인트를 못 찾겠다. 이게 그냥 기술적으로는 가능하고 그래서 지금처럼 프로토타잎을 만들고 나면 기분은 좋겠지만, 이게 정식으로 서비스에 들어갔을 때에 마주칠 난관은 어떻게 해결할거냐? 등의 딴지를 걸었습니다. 어차피 성공을 확신한 그들에게는 저의 이런 딴지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외부인의 중립적/객관적인 시각으로 조언을 해주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한 분이 너무 부정적으로 말한다고 불평을 하셨지만, 제가 그저 부정적인 사람이라서 그런 의견을 개진한 것이 아닙니다. 저도 단지 기분좋게 말해줄 수도 있었지만 그것이 제 역할이 아니다라는 걸 느꼈습니다. 당장은 듣기 싫은 얘기를 해주면서 더 큰 그림을 그리고 더 장기적인 궤도를 알려주는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최근에 신규 서비스 기획회의에 들어가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른 글에서도 밝혔지만, 기획자들은 꿈을 꾸고 있고 개발자들은 자신의 능력에 과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서비스의 유니크니스나 차별화 포인트를 명확히 밝히지도 못하면서 이런 서비스가 나오면 대박이 터질 거에요라고 스스로 세뇌가 된 기획자들의 모습도 자주 보게 되고, 또 개발자들은 그런 서비스나 기능을 만드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하고 제가 다 해줄 수 있어요 식으로 자신의 능력을 뽐내고 싶어 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비슷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못한 태도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비슷해서 내게 필요한 기능을 만들어서 제공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해줄거야라는 의미에서 비슷하다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기획자들이 생각하는 서비스나 기능을 이미 다른 경쟁자들도 생각해뒀고 어디에서는 비슷한 것을 구현 서비스 중에 있고 또 다른 곳에서는 사업성이 없다고 접었을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성공한 벤처보다 실패한 벤처가 더 많습니다.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기획안을 가지고 덤빈 경우도 있지만, 말이 되지만 너무 말이 되어서 경쟁자가 너무 많고 시장이 포화된 상태여서 실패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업계의 트렌드에 대한 너른 시각을 가지고 또는 아웃사이더로써의 다른 생각을 가지고 딴지를 걸어주는 사람이 없는 기획,개발팀은 결국 모두가 생각하는 고만고만한 제품/서비스를 만들어내고 또 하나의 실패경험만 쌓아갑니다.
똑똑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 실패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 집단/멤버의 능력이나 자질에 문제가 있어서 실패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동질성에 따른 실패입니다. 하나의 집단을 형성하면 서로 동질감을 느끼게 됩니다. 의겹을 취합하다 보면 시각이 비슷해지고 시야가 좁아지고 시선이 고정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정해진 목표를 향해서 힘차게 내달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목표가 글로벌 옵티멈 포인트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물론 똑똑하고 경험이 많은 이들이 모였으면 그래도 괜찮은 목표점을 잡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또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반례들이 넘쳐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시각이 비슷해지면 그 집단은 개인보다 못할 수도 있습니다. 스타트업을 위해서 모인 이들도 처음 필받은 아이디어에 꽂혀버리면 그 아이디어가 가지는 태생적 문제점을 보지 못하기도 하고 주변의 여건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저 이걸 빨리 구현해서 서비스를 하면 대박날거야라는 환상에만 푹 빠져있을 뿐입니다. 집단의 큰 비전은 중요하지만 그 비전이 시각의 획일화로 귀결이 된다면 재앙이 됩니다. 시야가 좁아지고 시각이 같아지면 결국 더 다양한 것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 똑똑한 집단의 성공은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로켓에는 제동장치가 필요없습니다. 한번 쏘아올리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스타트업은 로켓이 아닙니다. 때로는 반대와 딴지를, 때로는 칭찬과 부가정보를 제공해주는 그런 역할을 하는 제동장치의 역할... 브레이크가 고장난 차를 타고 가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아이디어와 열정이라는 가속장치를 가졌다면 여기에 현실적 여건 (자금, 법규제, 경쟁사 및 업계동향 등 포함)이라는 제동장치도 함께 준비해서 성공적인 성장을 구가하는 스타트업들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자금이나 법 등은 제가 어쩔 수가 없지만, 적어도 생각의 브레이크 역할을 해줄 수 있습니다.
나 스스로가 몽상가, 데이드리머인데 또 스스로 브레이크가 되겠다는 말은 참 아이러니하다.
(2013.03.01 작성 / 2013.03.11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