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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Op

2등이 편한 기업들...

아침에 (01/29) 재미있는 제목의 기사가 눈길을 사로 잡았습니다. '흔들리는 애플, 그래서 삼성은 행복할까?'라는 SBS 김범주 기자님의 기사입니다. 요약하면 삼성전자의 수익의 2/3는 휴대전화부분에서 나왔고, 이미 미국 등의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에 현재 수준 또는 그 이상의 스마트폰을 판매하더라도 -- 현재 애플이 듣고 있는 것과 같이 -- '정체됐다'는 평을 받을 것이다라는 정도입니다. 그러면서 으레 등장하는 혁신이 필요하고, 1등기업의 위상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식으로 기사를 맺고 있습니다. 처음 제목을 봤을 때는 애플이 구매하는 반도체나 LCD패널 판매량 감소 등을 다루나 싶었는데, 그것보다는 한 단계 더 나간 기사였습니다. 그래서 얼핏 읽기에는 심층분석 기사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입니다. 

기사의 제목은 맞습니다. 애플이 흔들리면 삼성도 흔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애플 제품에 들어가는 부품 판매가 줄어드는 것도 한 가지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미 애플은 부품의 공급선을 다각화했고 삼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낮기 때문에 아이폰 판매부진이 삼성 부품의 판매실적으로 바로 연결될 것같지 않습니다. 삼성보다는 다른 부품공급사나 제조사들이 받는 타격이 클 듯합니다. (실제 그런 징후에 대한 기사들이 많이 나옴.) 그리고 시장이 포화되었기 때문에 삼성으로써도 더 시장을 확대할 여력이 없는 것도 사실이고, 그렇다면 삼성도 정체되었다는 소리를 듣게 될 개연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삼성이 그런 소리를 듣는다면 시장이 포화되었기 때문보다는 삼성의 혁신능력 부재에 따른 것이 더 크다고 봅니다. 이제껏 쉽게 체리를 빼먹을 수 있었지만, 애플이 사라지면 체리나무를 심는 것부터 삼성이 혼자서 할 수 있는가?를 물어봐야 합니다.

그동안 보여줬던 삼성의 저력은 대단합니다. 그러나 그런 삼성이 혁신의 능력은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늘 부정적입니다. 일단 스마트폰을 제외하고, 기존에 잘 나가던 메모리 반도체나 LCD/LED 패널의 경우에는 일반 소비자가 느끼는 혁신이 없었습니다. 이미 정해진 방향으로 제품을 개선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더 작게/크게, 더 빠르게, 더 싸게, 저전력, 더 선명하게 등과 같이 기술적인 측면에서 개선만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경쟁사들이 많았기 때문에 1등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기술개선은 필요했습니다. 핸드폰/피쳐폰이나 TV 등의 가전제품과 같은 일반화된 제품들도 혁신이 아닌 개선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스마트폰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혁신이지만 이제는 일반화된 카테고리의 제품이기 때문에 딱히 내세울만한 혁신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더이상 혁신이 필요없는 제품/시장에서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관성으로 밀어붙여서 성공했던 기업이 현재의 삼성입니다. 새로운 카테고리의 제품/서비스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 MS를 바라봤던 그 시각 그대로입니다. 특별한 테크닉이 없이 그냥 악셀만 죽으라고 밟으면 되는 직선도로 또는 정형화된 트랙에서의 치킨게임에서는 승리할 수 있었지만, 죽음의 레이스라 불리는 디카르 랠리와 같이 오프로드나 사막에서 벌어지는 데스랠리에서도 승리할 수 있을까요?

애플이 아이폰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의 스마트폰을 만들지 않았다면 삼성의 갤럭시 시리즈가 나왔을까요? (물론 더 오랜 시간이 흘러서 비슷한 제품이 나왔을 수도 있습니다. 폼팩터 측면에서 아이폰과 비슷한 시기에 나왔던 LG의 핸드폰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고, 당시에 욕먹었던 윈모도 개선이 되었을 것입니다.) 애플도 구글과 삼성의 추격 때문에 혁신 또는 새로운 기능의 탑재에 더 가속을 붙였던 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레이스의 최대 수혜자는 후발주자인 삼성입니다. 앞서 나가는 애플의 뒤에 바짝 붙어서 애플이 키워놓은 체리만 야금야금 빼먹으면 그만이었습니다. 작년에 있었던 애플과 삼성 간의 디자인 특허 소송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현재는 적어도 디자인 폼팩터 측면에서는 다른 제품이 되었습니다.) 1등 제품을 그대로 베끼면 표절로 의심받기 때문에 차별화를 위한 다른 기능들을 넣었고, 간혹 그런 것들이 시장의 반응에 호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iOS와 안드로이드 간의 경쟁이 iOS보다는 안드로이드, 궁극에는 이를 사용하는 삼성전자에 큰 혜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가이드 역할을 해주던 기업/제품이 사라지면 그를 따르던 2등 기업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사이클 팀경기에서 선두주자가 앞에서 바람을 막아줘서 팀 전체 기록을 좋게 만들어줍니다. 이제껏 삼성 앞에서 애플이 그런 역할을 해줬습니다. 그래서 다시 기사의 제목처럼 애플이 흔들리면 혁신의 능력이 없는 삼성으로써는 선두기업이 될 수는 있지만 애를 먹을 것이 뻔합니다.

장기 비전과 로드맵 또는 자신만의 독창성/아이덴터티가 없는 기업들이 다 비슷한 처지에 놓일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아류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이 그런 소리를 듣듯이, 국내 시장에서 2등이 편해서 2등 유지를 최우선 목표로 삼는 많은 기업들이 있습니다. 적당히 해도 먹고 살 수 있으니 굳이 모험을 할 필요가 없는 2등 말입니다. LG전자가 오랫동안 그렇게 자기혁신이 없이 시름시름 앓았습니다. 살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지만 대중의 눈에서 벗어난지 오래입니다. 인터넷 포털에서는 다음이 그렇습니다. 초기에 한메일이나 카페 등의 성공적인 서비스를 내세웠지만 최근 몇 년 간은 네이버나 다른 업체의 서비스를 답습한 (좋게 말해 벤치마킹한) 미투서비스/전략들만 내놓고 있습니다. 모바일 세상에서는 1등으로 치고 나가겠다고 외쳤지만 이마저도 카카오에 밀렸습니다. 그리고 PC관성을 이용한 네이버에서도 밀렸습니다. 그런데 (물론 내부에서는 치열한 몸부림이 있지만) 어느 정도는 현재의 2등에 만족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많이 줍니다. 편하게 앞으로 치고 나가면 모든 화살을 직접 맞아야 하지만, 뒤에서 안전하게 경쟁사들의 실패경험을 흡수해서 똑같은 짓을 하지 않으려는 안전한 전략을 구사하는 것같습니다. 그러나 실패할 수 없으면 성공할 수도 없습니다. 2등 병의 가장 흔한 증상으로 '1등이 하는데 우리가 왜 해?'와 '1등이 안 하는데 우리가 왜 해?'입니다. 1등이 하면 1등과 다른 방식으로 시도해보고, 1등이 안 하면 당연히 틈새를 파고 들어야 합니다. 스스로의 의제능력이 없으면 연명할 수는 있어도 성장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글을 쓰면서 그냥 겉으로 비친 현상만 보고 늘 주변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닌지?라는 의구심도 있지만, 나쁜 예측은 항상 맞습니다.

(2013.01.29 작성 / 2013.02.07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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