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생각이 한번 머리 속에 들어오면 한동안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옅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화신에 찬 아이디어가 되고 마치 바로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안 될 것같은 조급증이 생긴다. 그런데 그 생각을 이렇게 글로 쓰고 나면 다시 생각이 정리되고 조급함도 사라진다. 다시 일상의 평정심을 찾게 된다. 기록으로 남기면 추후에 다시 생각을 리마인드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샘쏟는 열정을 잠시 묻어둘 수가 있다. 다음인 마을을 만들겠다는 생각도 그랬고, 늘 GET에 빚을 지고 있는 느낌에 SET 블로깅을 하겠다는 생각도 그랬고 (다행히 이건 실행에 옮겼다. http://setinjeju.tistory.com), 여러 다양하고 잡다한 서비스에 대한 생각들이나 여행에 대한 계획 등도 그랬다. 현재 나를 잡고 있는 생각은 페스티벌이다. Festival. 그렇다. 모여서 놀자는 거다.
최근 기타동 MT를 다녀온 후로도 그랬고, 사진동의 <특별한 하루>를 다녀온 후에도 그랬고, 몇 차례의 GET 여행을 동행한 후에도 그렇고, DDC가 취소되었을 때도 그랬고, 작은 컨퍼런스들이 열리고 후기들을 볼 때도 그랬다. 왜 이것들이 모두 흩어져서 개별로 존재해야하는 걸까? 왜 한번의 이벤트로 끝나버리는 걸까? 왜 각자 수고는 하는데 힘들기만 하고 별로 남는 건 없을까? 이런 저런 생각들이 겹치면서 그냥 이것들을 모두 모아서 페스티벌을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에 이른다.
그래서 우선 제주도에 다음직원이 500명만 있더라도 또는 재능있는/관심있는 미혼자 2~300명만 있더라도 더 다양한 동호회가 만들어질 것이고 그러면 그들의 연합체를 만들어서 금요일 오후에 먹고놀자식의 회사 축제를 만들 수 있을 것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 끼리 못하면 다음서비스를 비롯한 주변의 회사들과 연합해서 그런 축제의 장을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해보고, 옆에 제주대학교의 학생들과 연합해서 그런 행사를 만들어볼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아니면 제주도의 지역 축제의 한 켠에 부스를 설치해서 우리끼리 기타치며 노는 것도 괜찮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매년 가을마다 5~600명 다음의 개발자들끼리 모여서 2박3일 컨퍼런스를 가졌다. 그런데 올해는 그냥 취소해버리고 내년부터 직군의 벽을 허문 새로운 컨퍼런스를 준비한다고 한다. 그런데 조금 걱정된다. 그냥 재미있으면 되는데, 경영진들은 돈을 투자했기 때문에 뭔가 의미있는 행사로 남기고 싶어할 것같다. 사람만 많아지고 직군의 구분만 없어졌지 그냥 심심한 컨퍼런스가 만들어질 것같다. 이럴 거면 그냥 우리끼리 놀게나 놔두지라는 푸념소리를 들을 것이 분명하다. 또 다른 것은 데브온이라는 외부개발자들을 위한 행사도 있다. 왜 이건 따로 두는 걸까?라는 생각도 든다.
공부를 위한 컨터런스가 아니라, 그냥 놀기 위한 페스티벌을 만들면 안 될까? 그렇게 서로서로 친해지면 그 이후의 일은 그대로 남겨두면 안되는 걸까? SXSW도 그냥 뮤직페스티벌로 시작해서 최근에는 IT발표회장으로 발전했다. 그냥 우리끼리 노는 장소와 시간을 주고 그 속에서 다양한 행사들이 자생하도록 놔두면 안 되는 걸까? 아니 불가능한 걸까? 2박3일의 시간동안 한켠에서는 밴드동호회가 연주하고 있고, 또 한켠에서는 사진동호회가 그들의 사진을 전시하고 있고, 또 한켠에서는 사내외의 인사를 모셔놓고 강연을 듣거나 대담회를 가지고, 또 한켠에서는 마음맞는 개발자들끼리 모여서 최신 동향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또 한켠에서는 기획자와 개발자가 모여서 새로운 서비스 프로토타이핑하면서 서로의 실력을 뽐내기도 하고, 또 한 켠에서는 회사의 여러 정책들을 비판하고 또 비전을 만들어보는 소모임을 가지고, 또 한켠에서는 팀이나 유닛끼리 모여서 미니워크샵을 가지고, 또 한 켠에서는... 이런 저런 행사들이 준비된 듯 또 우연히 형성된 듯 그렇게 중구난방 무형식의 형식으로 이뤄지는 걸 생각해본다.
우리끼리 부족하면 뮤직페스티벌과 같은 행사에 꼼사리를 낄 수도 있을테고, 아니면 경쟁사, 비경쟁사의 직원들을 초빙해서 열띤 토론을 벌려보는 것도 좋다. 최근에 한예종의 음악가들을 초빙해서 연주를 듣는 행사도 종종 가졌는데 그런 행사도 한 켠에서 이뤄지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직원 가족들도 참여해서 회사를 이해하고 또 그들의 숨은 재능을 뽐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또 지역의 주민들을 초빙하는 것에는 무슨 문제가 있을까? 그냥 놀면서 그렇게 여유를 가져보는 건 재미있을 것같다. TED가 무엇이고, SXSW가 무엇인가? 다 이런 거 아닐까? 우리끼리 만들어서 우리끼리 놀고 우리끼리 배워가는 그런 페스티벌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설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우리 자신을 믿지 못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