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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Op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어제 밤에 오랜만에 불면이 찾아왔다. 낮에 여러 가지 일들로 신경을 썼더니 조금 마신 커피에도 몸이 바로 반응을 한 모양이다. 더우기 오늘 휴가를 미리 내놨기에 굳이 일찍 잘 필요도 없었다. 불면은 괴롭지만 정신이 말짱해서 다양한 생각들이 떠오른다. 때론 서비스에 대한 나름 획기적인 아이디어도 떠오르지만 쓰잘데기없는 지난 일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냥 떠오르는 생각들을 흘려보내면 그만인 것을, 이것을 또 페이스북에 올리게 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익숙치않은 것에 자신이 없어지는 것... 나도 그렇다.

낮에 서울에서 내려온 기획자를 오프라인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사람을 사귀는 것에 매우 서툰 편이지만, 그래서 앞으로 몇달간 같은 문제로 서로 고민해야할 사이인데 오프라인에서 일면식도 없이 그저 화상미팅이나 메일/메신저로만 대화하는 것은 사뭇 불편해서, 앞으로 진행될 프로젝트의 방향을 정해보자는 것을 핑계로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싶어서 출장오라고 부탁했던 거였다. 막상 어렵게 출장을 내려왔는데 처음부터 회의실에 마주 앉아서 딱딱하게 일 얘기부터 꺼내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같아, 미팅 전에 커피나 한잔 하자며 일리에서 만났다. 그냥 짧게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왜 그런 얘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연애도 좀 하시고...'라는 얘기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래서 그냥 웃고 넘겼다.

그렇게 그냥 웃고 넘겼던 그 얘기가 제주의 잠 못 이루는 밤에 문득 떠올랐다. '연애도 좀 하시고...' 무슨 의미로 그런 얘기를 꺼냈지?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낮에 그냥 웃지 말고 뭔가 얘기를 해줬어야 했나?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때 문득, '나이가 들어서'라고 대답을 해줬어야 했다고 직감했다. 근데 나이가 든 것과 연애를 안 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오랫동안 솔로로 지내는 사람들은 흔히들 연애세포가 죽었다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나는 연애DNA를 가져본 적도 없기에 죽었다라는 표현이 안 맞다. 연애세포가 죽은 것이 아니라, 애초에 연애DNA가 없었던 것같다. 나는 연애에 익숙치가 않다. 그런데 지금 연애를 시작한다는 것은 이유없는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이때 떠오른 문구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익숙치않은 것에 자신이 없어지는 것...'였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연애를 못한다'라고 말하면, 그렇다면 나이가 든 지금 여러 서비스나 트렌드에 대한 새로운/창의적인 생각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거 아니냐?라고 물어볼 수가 있다.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머리가 굳을만큼 나이를 쳐먹었으면서 파릇파릇한 어린 기획자에게 서비스에 대한 훈수를 둘 신선함/창의성이 아직도 네게 있냐?라고 상대가 생각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그런데 나는 그런 분야에서는 여전히 창의적이고 늘 새로움을 갈구한다고 자평한다. 그럼 나는 아직 나이를 먹지 않은 것일까? 그러면 연애도 시작하면 되겠네?라는 그런 생각.. 그런데 연애는 두렵다. 왜? 서비스나 트렌드에 대한 것을 말하는 것은 나에게 익숙한 일이지만, 목적과 이해를 위해서 여성을 만난다는 것은 나에게 익숙치 않은 일이다. 만약 더 어렸을 때, 미팅이나 소개팅에 나가보라고 했으면 못 이기는 척 나가봤을 법도 하지만, 지금은 그런 제안이 들어오더라도 선뜻 '네'라고 대답을 못한다. 이건 내게 익숙한 일이 아니다.

내가 하고 있는 업무나 분야에 더욱 깊숙이 파고들수록 다른 분야의 일을 하게 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5년, 10년 전이었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 그런 사소한 일들도 그렇다. 이제 익숙치 않은 환경에 놓이는 것이 불편한 나이가 되었다. 아직도 해보고 싶은 많은 일들이 있다. 그러나 무모하게 도전해본 적은 오래되었다. 익숙치 않은 그것들을 내 삶에 들려놓기가 무섭기 때문이다. 새로운 오름을 오르는 것은 익숙하나 새로운 악기를 배우는 것은 익숙치 않다. 이제 나에겐 익숙한 것과 익숙하지 않은 것으로 나뉜다. 그것은 또 두렵지 않은 것과 두려운 것으로 구분된다. 내 나이가 그렇다. 두려움은 나이와 함께 자란다. 앞으로 두려운 것들이 더 많아지겠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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