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검색의 미래'와 '검색은 미래가 아니다'라는 포스팅의 핵심은 사람들의 검색패턴이 바뀌게 될 것이다라는 것이다. 일종의 Rich Search라는 중간과정을 거쳐서, 궁극에는 검색이라는 행위 자체가 불필요한 순간까지도 상상해 보았습니다. 아침에 문득 진짜 검색이라는 행위가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동에 맞지 않은 것이라는 강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전 포스팅에서 최근에 구글 Google Inc.에 인수된 Aardvark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구글이 단순히 검색어 기반의 검색이라면, Aardvark는 질의어 기반의 검색이며, 구글이 검색결과로 해당 검색어를 포함한 문서목록을 제공해준다면 아드바크는 주제어에 가장 전문성이 있는 (그리고 친밀도도 있는) 권위자를 연결시켜주는 것입니다. 구글 검색의 모델이 인류의 오랜 지식창고역할을 했던 도서관 Library에 있다면, 아드바크의 중계모델은 인류의 더 오랜 지혜의 창고역할을 한 마을/동네 Village에 있습니다. 즉, 구글의 도서관 모델에서는 어떤 문제에 직면한 사용자 A는 도서관에 찾아가서 자신의 문제의 원인 및 해결책을 담고 있을 법한 도서를 찾아서 읽음으로써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추천해주는 책, 가장 유명한 책, 그리고 피인용회수가 높은 책을 찾아보면 원래 가졌던 문제해결에 (그나마) 가장 빠른 길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드바크의 빌리지 모델은 사용자 A가 도서관을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연륜이 높고 학식이 풍부한 동네의 유지/어르신에게 찾아가서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고 상담을 받는 것입니다. 보통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면 사용자 A가 가졌던 문제나 해결방식이 사용자 B 또는 그 이전의 사용자들 C's의 문제 및 해결책과 크게 다르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소셜네트워크에서 친구의 문제 또는 전문가의 해결책이 힘을 발휘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류에게 도서관이라는 지식의 창고가 생기기 전부터 마을은 형성되어왔으며 각 마을에는 연륜을 가진 지도자 및 유지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도서관이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혼자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서, 마을 공동체에서 문제를 함께 해결해나가던 모습이 인류 사회에서는 더 자연스러운 검색패턴이었습니다. 이런 사회적인 관점에서 검색보다는 질의가 더 자연스러운 행위이고, 더 오래된 문제해결 방법입니다.
사회적인 관점에서도 질의가 검색보다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듯이, 개인적인 관점에서도 질의가 검색보다 더 자연스러운 행동입니다. 물론, 인간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서 질의보다는 검색에 더 익숙해지고 있다는 점은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린 아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 유치원에 갓 들어갈 나이의 아이들을 상상해보십시오. 이런 어린아이들이 문제 (궁금증)를 가졌을 때, 가장 먼저 책을 찾아보던가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바로 주위의 엄마/아빠/할머니/할아버지 등의 주변 어른들에게 매번 질문을 합니다. '엄마 이건 왜 이래? 아빠 저건 뭐야? ...' 질문이라는 것이 검색보다 더 자연스럽고 태고적 모습입니다. 이렇게 질문에 익숙한 Question-Native들이 어떤 이유에서건 자라면서 질문의 회수는 줄어들고, 직접 책을 찾아보거나 인터넷에서 모든 해결책을 찾기 시작합니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어른들에게 질문 (대드는?)을 하는 것 자체를 버릇없는 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에, 수업/발표 중에 자유로운 질문이 오가지 않습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질문/궁금증 자체를 만들어내지는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한 개인의 성장사에서 보듯이 검색보다는 질문이 더 자연스러운 행위입니다.
그리고, 이전 글들에서 '질의'는 단순히 더 먼 미래를 향하는 징검다리역할을 할 뿐이라고 했습니다. 더 먼 미래에는 검색 또는 질의라는 행위 자체가 없이 우리가 원하는 데이터/정보를 원하는 시점에 당도 appearing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회적 동네 모델에서도 보면, (농경사회에서) 봄이 되면 모든 동네 사람들이 씨를 뿌립니다. 그러면, 자신이 씨를 뿌릴 생각을 못했더라도 지금 씨를 뿌릴 시기가 왔구나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김매기나 추수 등도 주변의 상황/흐름을 보면서 판단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궁금해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모두 알려주는 그런 모습입니다. 그리고, 개인의 성장사에서도, 유아기의 아기들을 보십시오. 한번 울기만 하면, 엄마아빠들이 젖을 먹여주거나 얼르주거나 기저귀를 갈아줍니다. 울음이라는 일종의 시그널이 없는 상태에서도 적당히 시간이 되면 젖병을 준비하고, 기저귀를 준비해서 아기에게 최상의 쾌적한 환경을 제공해주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검색하는 것보다 질문하는 것이 인간에게 더 자연스러운 행위이고, 또 그런 질문에 앞서 답을 얻는 것이 더 태고적 모습입니다. 지금 현시점에서는 온디멘드가 대세이지만, 미래에 다시 찾아올 오프디멘드의 시대를 지금 준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단순히 기술적인 존속혁신 (더 빠른, 더 안정적인, ...)에 정신이 팔려서, 더 근본적인 파괴혁신 (검색패러다임)을 넘겨버릴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글에서처럼 검색의 패러다임이 바뀐다면 검색광고의 패러다임도 바뀔 수 밖에 없습니다. 많은 인터넷 기업들의 돈줄이 광고였다면, 새로운 미래에 맞는 새로운 광고모델도 개발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최근 일련의 글들에서 주장하는 바입니다. (이제까지 제 글과 모순될 수 있지만) 미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상상할 수 없는 미래만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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