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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Op

이런거? Like This. No, Something Else.

어제 오마이뉴스에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강인규님이 적은 <우리는 '이런 거' 왜 못드냐고?>라는 칼럼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미 읽어보셨겠지만, 간단하게 요약하면
  1. 제대로된 문제의식의 미비
  2. 위계구조와 그에 바탕을 둔 질책성 위압
  3. 인문학을 무시하는 분위기
특히, 세번째 이유에 대해서 장황하게 적혀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문제는 비단 인문학만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문학은 빙산의 일각이고, 기본적으로 '기초를 무시한 응용 위주'의 분위기가 문제입니다. 여기서 기초학문이라 하면 수학, 물리/화학 등의 기초과학, 철학, 역사, 에술 등의 인문학 등을 통털어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리고 대학 (물론 하급 학교들도)은 기초과학이나 철학보다는 바로 산업에 적용할 수 있는 응용공학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도 공대를 나왔지만) 철학에 대해서 말하자면, 사람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보지도 않고 또 그런 질문에 답을 찾으려는 노력도 한번 제대로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람들이 필요로하고 원하는 제품을 찾아서 만들 수 있겠습니까? 공학에서도 비슷하게 수학적/물리적 원리도 모르면서 겉보기 뻔지르한 제품만 만들려고 그리고 돈만 벌어보겠다고 강의실을 채우고 있는 수많은 학생들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생각이 없이 강의실만 계속 채워주고 있느니 대학들도 학생들을 봉으로 알고 사구려 강의를 제공하면서 수업료만 인상하려고 드는 것인지도... 그리고 단지 수업료 인상만 투쟁을 하지, 정작 사구려 강의에 대해서는 말도 제대로 못하는 그런 대학생들이 안스럽기도 합니다. (저도 고백하자면, 적어도 박사 3년차 정도가 되기 전에는 아무런 생각/고민이 없이 대학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기술 자체에 대한 천시도 문제가 있지만, 원천기술 연구에 투자하는 것보다는 단순히 물건을 찍어내는 기술을 발전시키는데 초점을 맞춘 것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아침에 위의 칼럼을 RT한 글 중에서 "이런거가 아니라 새로운거라고 질문해쟈요" 라는 @gunshik님의 트윗을 보았습니다. 이 트윗을 보고 바로 떠오른 생각이 '컬럼버스의 달걀 Columbus' Egg'이었습니다. 컬럼버스의 달걀이란 컬럼버스가 그의 서인도제도 발견을 시기하는 이들에게 계란을 주면서 세로로 세워보라고 주문했지만, 아무도 계란을 세로로 세우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컬럼버스에게 게란을 세울 수 있는냐고 반문하자, 컬럼버스는 계란의 끝을 따내고 바로 세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할거면 누구나 할 수 있다"라고 또 다시 힐난하자, 컬럼버스는 "물론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자네들은 누구하나 이런 방법을 해보지 않았고 나는 그것을 해봤다."라고 말하며, 신세계를 찾는 것도 배를 타고 서쪽으로 줄곳 갔으면 누구나 찾을 수 있었겠지만, 자신은 직접 찾아나섰다라고 대답한데서 유래된 것이 '컬럼버스의 달걀'입니다. 즉, 컬러버스의 달걀은 한번 보고 나면 누구나 따라할 수 있지만, 그 첫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실행력에 대한 얘기도 되겠지만...) 현재 한국 사회의 문제는 컬럼버스의 달걀과 같이 '보기 전에는 보이지 않는 invisible 것을 볼 수가 없다'라는 것입니다. 즉, 상상력의 부재가 문제입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상상력은 원래부터 없었던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면서 상상력이 억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어린이날을 앞둔 현 시점에서 더욱 반성을 해야합니다. (다시 교육 문제로 들어가지는 않겠습니다.)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 등을 보면 요리비법이나 무술고수를 찾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자신의 수준은 전혀 모른체 무슨 '비법'만 찾으면 바로 레벨업이 되는 것만 같은 그런 엉뚱한 상상력만 키우고 있습니다. 옆에 보이는 모든 평범한 것들을 제대로 볼 수만 있다면 그 모든 것이 비법이 될 수 있습니다. 특별한 비법이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것을 깊이 관찰할 수 있고 그 내면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 하늘에서 떨어진 비법을 찾는 것보다 더 빠른 길입니다. 말콜 그래드웨의 <아웃라이어>에서 말했듯이, 자신의 영역에서 10000시간이라는 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도 않고, 그저 비법만 얻어면 뭔가 만들어낼 수 있고, 뭔가 이룰 수 있을 것만같은 그런 어리석은 분위기를 버리는 것도 현재의 문제에서 벗어나는 길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벌써 쓸모없이 허비한 시간을 아쉬워하면서 똑같은 시간을 같은 식으로 허비하고 계실 건가요?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전략이나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올바른 철학과 문화가 필요합니다. 원천기술도 부족한 것이 맞지만, 이것은 또 어떻게 하다보면 얻을 수가 있지만, (에전처럼 국가 5개년계획이나 BK21처럼 밑빠진 독에 돈을 부어넣다보면 어쩌다 얻어 걸릴 수도 있는 거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바로 정립된 철학과 문화가 없이 새로운 기술을 발견하고 개발한다고 해서 세계를 선도할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항상 가지게 됩니다. 

 또, 남이 만들어놓은 길만 따라갈 뿐,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는 도전정신이 부족한 것도 안타깝습니다. 이도 컬럼버스의 달걀이 주는 교훈입니다. 컬럼버스가 계란의 끝부분을 깨고 세우니 우리도 그렇게 할 수가 있다라고 아우성을 지르는 것과 같습니다. 컬럼버스에 앞서서 대담하게 계란을 깨뜨릴 그런 용기를 가지지 못했는데 어떻게 계란을 세울 수 있을지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토마스 쿤이 말하는 패러다임 시프트라는 것도 현재 갖혀진 틀 속에서 안일하게 개선하고 방법을 궁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 틀을 깨어부수고 또는 새로운 틀을 만들어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병아리가 알을 스스로 깨지 못하면 태어날 수 없듯이, 현재 우리를 보호해주는 그런 틀을 깰 용기와 도전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특히, 젋음과 패기를 가진 자들에게... (물론, 그런 젊은이들이 굶지는 않도록 보호해줄 수 있는 지원도 필요하지만...) 저도 이제 30대 중반이지만, 더 어릴 적에 용기와 도전이 없었고 지금도 도전과 용기가 없으면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그렇지만 저보다 조금이라도 더 용기가 있는 분들에게 힘이 되고 싶은 마음은 한결같습니다. 

 침묵의 교실 또는 사육... 이라는 것도 떠오른 생각이지만... 패스

 이공계를 다닌 사람이라면, 수학에서 말하는 선형, 연속, 스무드/스, 미분가능이 가지는 아름다움을 모두가 알고 동경할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움은 비선형에서, 불연속에서, 꺽인 지점에서, 그리고 미분불가능한 지점에서 태어납니다. 여러 괘변을 늘어놓았지만,... 본 것에 만족하지 말고 (물론 그런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 꿈을 키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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