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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Op

Pay It Forward (아이스 버킷 챌런지를 보면서)

2000년인가 아니면 2001년인가 정확한 년도는 기억에 나지 않는다. 대학원에 들어가서 연구실에서 쓸데없이 밤을 새던 시절로 기억한다. 밤을 새면서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별로 많지 않다. 공부나 연구를 했다고 말하면 솔직히 부끄럽다. 프렌즈를 시작으로 미드에 관심이 생기던 시절이지만, 요즘처럼 폭발적이지는 않았다. 대신 극장에서 보지 못했던 영화는 암암리에 구해서 (대부분 화질이 나쁜 립버전이었지만) 볼 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교내 FTP에서 다운받아서 봤던 영화 제목이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당시 아역 배우로 할리우드에서 이름을 날리던 할리 조엘 오스먼트가 주연했던 'Pay It Forward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제목의 영화였다. 영화의 기본 구조는 간단하다. 내가 오늘 아무 조건없이 세명에게 선을 베풀면, 그 세명도 조건없이 다른 세명에게 선을 베풀고, 또 그 아홉명이 각자 세명에게 선을 베풀고,... 그렇게 피라미드식으로 전체 네트워크에 선을 전파한다는 내용이다. 내용이 정확히는 기억에 남지 않는다. 한번의 선이 오히려 불행으로 돌려받기도 했지만, 결국엔 (그 아이의 아이디어에 따라서) 누군가에게 선을 베푸는 장면으로 영화가 끝났던 것같다.


갑자기 Pay It Forward가 생각난 것은 현재 유행처럼 번지는 루게릭병 단체인 ALS을 후원하기 위한 '아이스 버킷 챌런지' 때문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내가 얼음물을 덮어쓰고 3명의 다음 도전자를 지목한다. 지목된 도전자는 24시간 내에 얼음물을 덮어쓰거나 ALS에 $100 (약 10만원)을 기부하면 된다. 도전을 받아들이면 그도 얼음물을 덮어쓰고 다음 도전자 3명을 지목한다. 그렇게 기부를 하거나 도전을 받아들이거나 하면 된다. 물론 도전을 받아들이고 또 기부도 함께 할 수도 있다. 처음부터 이런 구조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정확한 설명은 찾아보지 않았지만, 얼음물을 덮어쓰는 순간 느끼는 고통으로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이들의 고통을 경험하고 그들과 공감하자는 취지로 시작된 것같다. 이후 유명한 운동선수나 연예인들이 동참하면서 일이 커졌고, 유수의 IT 거물들도 동참하면서 나같은 사람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도 유명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등을 중심으로 도전이 이어지는 것을 여러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페이스북 CEO 저커버그가 도전 후에 MS의 빌 게이츠를 지목해서 그도 동참한 것은 기사화됐다. 또 FC바르셀로나의 네이마르도 동참했고 월드컵에서 그에게 부상을 입힌 수니가를 다음 도전자로 지목한 것 (그래서 수니가도 도전을 받아들임)도 유명하다. 메시나 호날두 등도 동참했고, 어제는 (최근 애플에 인수된 비츠의) Dr. Dre가 도전했는데, 그를 지목한 사람이 현 애플 CEO인 팀 쿡이었다. 국내에서도 개그맨 김준호씨가 코믹한 버전의 도전을 보여줬고, 그가 지목한 배우 조인성 (조인성은 가수 션이 지목함. 팀 - 션 - 조인성으로 이어짐. 김준호는 류현진 박한별 정준영 지목), 그리고 조인성이 지목한 야구선수 조인성 등으로 도전이 이어지고 있다. 참고로 김준호를 지목한 것은 페이스북 코리아의 조용범 대표다. 유명인들 위주로 주목받고 있지만 수많은 이름없는 이들이 함께 동참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 현상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났다. 가장 먼저 앞서 소개했던 영화가 떠올랐다. (이건 뒤에 다시 얘기하고..) 이 도전의 처음 취지는 살을 애는 얼음물의 고통을 겪으면서 루게릭 환자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기부나 유희보다는 공감이 우선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공감이라는 취지보다는 도전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부를 한다는 내용이 앞서고 (물론 유명인들은 도전과 기부를 동시에 하겠지만), 단순히 도전을 받아들이고 다음 상대를 지목하는 유희, 즉 놀이의 성격이 더 커져가는 것같다. 무거운 주제를 가벼운 놀이에 담아서 전파되는 것은 좋은 바이럴 마케팅이지만, 어느 순간 놀이가 취지를 잠식해버리는 경향은 늘 있어왔다.

최근 창궐하는 에볼라 바이러스의 전파 모형이나 사회관계망에서 친분이나 정보가 전파되는 모습을 연구 분석한 내용은 늘 나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이 도전이 어느 정도 지난 후에 도전자들과 그들이 지목한 다음 도전자들을 연결해보면 재미있는 네트워크가 만들어질 것같다는 생각도 든다. 난 하지 않겠지만 누군가 이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서 발표하리라 생각한다.

국내의 상황은 조금 아쉽다. 루게릭병을 알리는 취지는 나도 동감한다. 그러나 단순히 루게릭병으로 제한되어 전파되고 있다. 아이스 버킷 챌런지의 취지가 루게릭병을 알리는 것이니 어쩔 수도 없지만... 어떤 면에서 유명인들이 단순히 유희로 받아들이거나 자신의 유명세만 확인하는 수단으로 변절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루게릭병만큼 고통스러운 다른 많은 질병을 앓고 있는 이들은 이 움직임에서 소외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일례로 게이츠 제단에서 에이즈 연구에는 투자하지만 에이즈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내는 말라리아 등에는 제대로 지원하지 않는다. -- 확인필요) 질병 뿐만 아니라, 현재 대한민국은 세월호 전과 후로 나뉜다. 세월호의 고통이 여전히 진행중인데, 노란리본이 얼음물에 가려지는 것은 아닌지...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가서, 처음 영화를 봤을 때 아이디어는 참 참심한데 이게 실현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컸다. 그러나 아이스 버킷 챌런지가 계속 이어지고 유명인들이 동참하면서 더 커져가는 것을 보면서 Forward Propagation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많은 이들은 상상했을 것이다. 대부분은 상상에 거친다. 일부는 상상을 실천해본다. 많은 경우 실패한다. 그러나 상상이 계속 되듯 실행도 계속된다. 꿈이 현실이 되는 것 (dream comes true)이 아니라 실행이 꿈을 현실로 이룩한다 (execution realizes dream)가 맞다. 상상은 실행을 통해서 상상에서 벗어난다.

(Update) 그냥 이런 기사도..
  • http://www.instiz.net/bbs/list.php?id=pt&no=2324828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5425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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