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아래의 '죽은 시인의 사회' 마지막 장면 동영상이 올라왔습니다. (R.I.P. Robin Williams) 이 영화는 제가 중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 문화 활동의 일환으로 대구 시내 극장에 가서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린 나이여서 영화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클립을 보면서 교육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며칠 전에도 모두가 다른 꿈을 가진 어린이들에게 불필요한 획일적인 학습만 강요한다는 글을 적었습니다. (참고. 교육과 평등) 영상을 보면서 다시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교육의 목적을 한두 문장으로 정리할 수는 없겠지만, 지도자(리더)를 양성하는 것도 한 축이라 생각합니다. 영상에 나오는 학생들을 윽박지르는 교사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교육을 통해서 과연 지도자가 양성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월호 사건을 통해서 보여지는 '가만히 있으라'라는 식의 강압과 획일화가 현재 교육의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교육에서 지도자로 클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품습니다.
인터넷에 돌아다닌 보스와 리더를 구분하는 유명한 짤방(아래)이 있습니다. 그림에서 리더는 팀원의 앞에서 그들을 이끄는 사람으로 묘사되어있습니다. 가장 앞에 있다는 것은 여러 불확실한 상황을 가장 먼저 파악해서 그것에 대처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불확실성에 노출되어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매순간 보이는 그리고 보이지 않는 정보를 수집해서 분석하고 대응책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자율적인 사고가 없이는 절대 리더의 위치에 갈 수 없습니다. '자리에 똑바로 앉아라 Sit down' '가만히 있으라'의 명령에 순응한 학생들이 과연 자라면서 불확실성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까요? 지금 교육은 리더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말 잘 듣는 추종자를 만들고 있습니다. 영상을 보면서 이 생각에 잠시 눈물이 났습니다.
이어서 '명량'에 관한 글도 읽고 (참고, 진중권에게 '명량'이 졸작일 수밖에 없는 이유), 필즈상에 관한 기사도 읽고 (젊은 천재 4인.. 수학으로 우주와 미래에 더 다가갔다), 금강의 큰빗이끼벌레에 관한 기사도 읽으면서 (나는 큰빗이끼벌레를 먹었다) 같은 생각이 반복됩니다. 교육은 튀는 지도자를 키우는 것일까 아니면 얌전한 추종자를 양산하는 것일까? 리더십의 부재는 결국 그걸 바라는 자들의 교육에 의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쩌면 조금 더 철이 든 다음에 '죽은 시인의 사회'를 봤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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