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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시작은 하지만 제대로된 결언을 지을 수 있을런지는 자신이 없다. 그저 늘 생각하던 문제의 화두만 던져보고 싶다.

 집단의 광기와 지성을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특히 결과로만 보면 둘 사이의 차이점이 없는 것같다. 그러나 한가지 특징적인 차이는 있는 것같다. 둘의 차이는 결론부가 아닌 시작부 (그리고 진행과정)에서 나타난다. 바로 '다양성'이다. 집단지성과 집단광기는 모두 특정 결론을 향해서 치닫는다. 그런데 집단광기는 처음부터 하나의 방향과 결론이 내려진 상태에서 그 지점에 도달하는 반면, 집단지성은 정해진 방향과 결론이 없이 어쩌다 도출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즉, 광기는 처음부터 하나에서 시작해서 미리 정해진 그것으로 끝나는 반면, 지성은 여럿에서 시작해서 정해지지 않은 무엇으로 끝난다. ('그것'과 '무엇'이 성공이냐 실패냐는 중요한 이슈는 아닌 듯하다.) 사이비 집단일수록 하나의 목적과 하나의 수단만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때론 그 '하나'에 결함이 발견되어 외부의 공격을 받더라도 자연스럽게 자기합리화과정을 그쳐서 단순 변형된 그것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제대로된 지성의 집단이라면 다양한 생각/의견들이 모인다. 끊임없는 정반합의 과정을 통해서 특정 결론에 이르는 것이 지성이다. 애초에 의도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결론에 이를 수가 있는 것이 지성이고, 또 그렇게 맺어진 결론은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긍하고 받아들인다는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정해지지 않은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결론을 향해서 나아가는 과정이 얼마나 길고 지루하겠는가? 그런 지겨운 과정을 거쳐서 도달한 곳/것이 집단지성이다. 그래서 천재들의 눈에는 집단지성이 우습게 (때론 어리석게) 보일 수도 있다. 바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이 눈에 보이는데도 끊임없는 시도와 실패를 반복하는 것이 우스꽝스러워보일 거다. 우리가 개미들의 행렬을 보면서 느끼는 그런 감정... 그러나 어리석고 미개해보이는 개미/벌의 집단은 그들의 임무를 완성한다. 비록 최단 코스, 최단 시간의 정석을 밟지 않았더라도 끝에는 바른 결론에 이른다. 반면에 집단광기는 그 속에 속해있는 동안은 너무 편하다. 보이는 결론을 향해서 모두 힘차게 달려가기 때문에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그러나 한발자국 뒤로 물러나서 보면 그리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들의 달음질이 정말 옳은가?를 판단할 수 있다. 사방 360도 중에 한곳만을 향해서 달려가는 집단보다 더 어리석은 것이 있을까? 때론 최단코스를 밟을 수도 있지만, 영원히 못돌아오는 막다른 길로 치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 집단에 속해있는 동안은 절대 알 수가 없다. 물론 알 수 있는 시점이 결국에는 오기도 한다. 바로 낭떠러지 앞에 섰을 때, 또는 심지어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고 있을 때. 그런데, 집단광기도 처음에는 한두번의 (대)성공을 거두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집단광기가 더욱 공고해지고, 그 속에 더 깊이 빠져들게 되는지도 모른다. 다시 사이비 집단으로 돌아가서, 처음에 그 집단에 들어갔을 때 주위의 관심으로 삶의 위안을 얻는 것처럼 보였듯이, 집단광기에서 처음의 몇번의 성공은 사람/집단의 이성을 마비시켜버린다. 지성의 집단이 될 수도 있었는데, 결국 그냥 광기로 끝나고 만다. 간혹 광기는 자연스럽게 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광기에서 지혜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같다. 그냥 (대)실패로 끝났다면 그래도 나름의 각성이라도 할텐데, 그냥 시간이 지나면 산불이 진화되듯이 그냥 그렇게 사그라들어버리면 나중에 비슷한 광기가 벌어졌을 때 제대로 대처를 할 능력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더 큰 광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무섭다.

 '집단광기'라는 용어를 처음 생각한 것은 아마도 국내 청소년들의 아이돌을 향한 팬덤문화를 보면서 느꼈던 것같다. 더 먼 미래는 생각지도 않고 단지 현재 좋아하는 그들의 우상을 향해서 생과사를 모두 바치려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자기 오빠가 아닌 다른 이들은 무조건 무시하고 깎아내리려는 그런 이상한 팬덤문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던 것같다. 단순히 '팬덤=광기'로 표현할 의도는 없다. 단지 부정적인 팬던현상에서 그런 광기를 느꼈다는 얘기다. 그리고 또 느꼈던 적은 2008년의 대한민국에서 촛불이 일어났을 때였다. 지금 '촛불=광기'로 표현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개인적으로 나도 그때 우리의 반응을 지지한다.) 단지, 그 사건/현상이 자칫 잘못하면 지성이 아니라, 광기로 흘러갈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 전에도 황우석사건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고, 신정아사건 때도 비슷했고, 천안함사건이나 최근 카이스트사태에서도 비슷한 것을 느낀다. 내가 지금 그런 개별 사건들과 진행과정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사건이 지성으로 연결될 것인가 아니면 광기로 이어질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을 하며 관찰을 했다는 거다. 그리고, 일부에서는 광기도 분명 존재했던 것같다. (대체로 정상과정을 밟아왔지만,..) 사실 이성이 깔리지 않은 우리의 많은 집단행동들이 광기로 이어질 개연성은 충분히 있고, 그런 집단주의가 과거의 파쇼와 다를바가 없다는 생각도 간혹 하게 된다. 최근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화 움직임은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큰 흐름에서는 집단의 지성과 감흥 (연대)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간중간에 함정과 같은 광기도 분명 존재할 거다. 그런 덫을 제대로 찾아내서 제거하지를 못한다면 지금 중동의 바람이 또 다른 후세인이나 카다피를 만들어낼 것이 분명하다.

 갑자기 든 생각이다. 기업에서 '브랜드'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지성과 광기의 싸움인 것같다. '브랜드'란 소비자들이 인식하는 그것으로 정의될 수가 있다. 소비자란 바로 '집단'이다. 그 집단 전체에 퍼져나가는 기업이나 제품에 대한 인식이 바로 브랜드다. 그래서 하나의 브랜드가 정립되기 위해서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 간혹 잘 만들어진 광고로 인해서 인지도가 높아지는 경우는 있지만, 그것이 바로 브랜드로 직결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게 만들어지고 공고해진 브랜드의 가치가 어떤 면에서 집단지성이다. 그런데, 국내의 굴지의 기업S가 벌이는 모습을 보면 지성체로써의 브랜드가 아니라 광기체로써의 브랜드를 지향하는 것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기업에서 독단적으로 진행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언론사들이 광고주를 모시기 위해서 먼저 굽신그렸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 기업에서 새로운 제품이 출시가 되면 언론사들은 마치 약을 먹었는 것처럼 그 제품을 찬양하고 경쟁사의 제품에 흠집을 내기에 바쁘다. 이것이 집단 패닉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그렇게 찬양하던 제품이 제대로된 브랜드로 소비자들에게 인식되던가? 치명적인 브랜드로 인식이 되기는 했다. 그게 너무 '치명적'이라서 자신 (기업과 언론사)들의 몸에 생체기를 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아직까지는 그런 기업과 언론사들의 몸집이 너무 커서 그런 작은 생체기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언젠가는 작은 생체기를 통해서 감연된 세균은 거대한 몸퉁 전체를 쓰러뜨리고 말 것이다. (국내의) 소비자는 늘 국내 기업의 지원군들이다. 그러나, 그들을 언제나 반군이 될 수도 있다. 기업의 광기에 소비자의 광기로 맞서는 그런 날은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비극이다. 제발 지성과 지성이 만나서 새로운 지성을 탄생시키자. 그나마 이제껏 기업의 광기에 소비자의 지성이 만나 현상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사람은 늘 지성과 광기의 중간에서 외줄타기를 한다. 그런데, 국내의 기업들뿐만 아니라, 정부기관이나 학교 등의 여러 단체들도 기업의 그것보다 더 낫다고 볼 수가 없으니 문제고 걱정이다. 후진국가가 선진국민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국민도 언젠가 인내심이 바닥나고 포기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 날은 절대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집단감성을 집단지성보다 고위의 상태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집단감성은 집단광기와 명확히 다르다. 이성을 기저에 두지 않는 집단감흥이 집단감성이 될 수가 없다. 이성에서 시작해서 발흥한 집단의 감흥이 집단감성이다. 그런 감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또 불을 지필 수 있다면 미래에 더 잘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의 인터넷 에코는 집단의 지성과 감성을 모으고 발화시키는 공간인지 아니면 집단의 광기에 불을 지피는 공간인지 늘 조마조마하게 지켜본다. 이상은 지성과 감성에 있지만, 현실은 늘 광기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같기도 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런 끝없는 광기의 사건들과 과정들을 통해서도 나름 발전과 진화를 거듭해간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쩌면 단편단편의 광기에 너무 크게 주목하고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때론 작은 광기가 지성의 자극제가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말머리에 밝혔듯이 이 글이 어떻게 쓰여졌는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결론을 내리기 위한 글은 아니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오해를 살만한 내용들이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한다. 점심시간 및 분석프로그램 실행중에 잠시 짬을 내어서 글을 적다보니 연결이 매끄럽지도 못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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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 5, 집단지성에 의해서 쓰여진 집단지성에 관한 책.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
카테고리 경제/경영
지은이 찰스 리드비터 (21세기북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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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  
 
 이 책에 대한 가장 좋은 설명 방법은 아래에 나열된 '함께 읽으면 좋은 책'을 소개해주는 것이다. 정보기술, 특히 인터넷의 발달은 과거에는 상상도 못하던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많은 예제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주목해볼 만한 것으로는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서로 인터렉션이 가능하여 서로의 생각을 즉시에 교환/공유할 수가 있다는 점이다. 이런 즉시 교환 및 공유는 하나 또는 몇 개의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지게 되고, 그런 모아진 의견은 소위 말하는 '집단지성 Collective Intelligence'로 발전하게 된다. 현명한 영웅이 평범한 다수를 먹여살리던 것이 역사나 영웅담의 주요 소재였다면, 더이상 그런 영웅담은 없어질 것같다. 집단지성의 기본은 이런 영웅담을 뒤집는데서 시작한다. 이제는 평범한 다수의 집중된 힘이 천재 1인의 능력을 능가하는 시대가 되었다. 물론 천재의 번떡이는 능력은 여전히 빛을 발하겠지만 천재 한명이 전세계를 구하는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같다. (반대의 경우 - 즉 1인이 세계를 멸망시키는 시나리오 - 는 여전히 가능하겠지만. 현재 남MayBe북JI처럼) ... 인터넷이 그리고 집중된 다수의 힘이 모든 것에서 우위를 발휘할 수는 없겠지만, 점점 그 세력/영역이 커지는 것을 부인한다면 다가오는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집단지성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는다. 현재 1%를 위한 암울한 시절을 보내고 있지만 99%의 힘이 모아지는 그 최적점을 찾아서 전진하는 과정에 있다. ... 그리고, 집단지성과 함께 생각해봐야할 주제는 바로 '집단감성 Collective Emotion'이다. 인류가 함께 생각하는 집단지성과 인류가 함께 느끼는 집단감성의 시대를 우리는 준비해야 한다.

   함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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