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크 독트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06.25 함께 사는 세상
  2. 2009.02.03 The Shock Doctrine 쇼크 독트린, by Naomi Klein

함께 사는 세상

Gos&Op 2013.06.25 0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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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밤에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또 마음이 무겁습니다. 2013년 6월 17일에 방영되었던 MBC 다큐스페셜의 594화 '마지막 해인 - 오랑 바자우 라우' 편에 대한 잔상이 깊습니다. 채널을 돌리다가 푸른 하늘과 쪽빛 바다가 조화를 이룬 빼어난 풍경 때문에 보기 시작했는데, 아름다운 배경에 대비되는 그 속에서 살아가는 그네들의 삶의 험난함이 저의 마음을 짓누릅니다. 방송 말미에 "그들은 거친 바다는 무섭지 않지만 변하는 세상은 무서워한다"는 나레이션이 제가 방송을 보면서 느꼈던 그 무게를 잘 설명해줍니다.

오랑 바자우 라우 (오랑 = 족, 바자우 = 종족이름, 라우 = 바다, 즉 바다의 바자우족)은 바다에서 태어나 작은 배에 의지해서 바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말레이시아 해안가에서 주로 살아가지만 딱히 국적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바다가 그들의 나라고 생활터전이고 또 영원한 안식처입니다. 화면에 비친 바다의 모습은 참으로 웅장했습니다. 잔잔한 에메랄드 바다, 수많은 산호와 물고기, 뭉게구름이 피어오른 파란 하늘 그리고 붉게 물든 석양... 평소 꿈꾸던 휴양지의 모습입니다. 이제껏 그 웅장함에 가려진 오랑 바자우 라우들의 삶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마음이 무겁고 또 지금 다시 생각하니 눈물이 흐릅니다.

수십 수백 년 동안 바다만을 의지하고 살아왔던 그들이 더 이상 설 곳이 없습니다. 대물림되는 가난의 굴레는 벗어날 길이 없고, 해안경비대나 지역민들의 텃세를 늘 경계해야만 하고, 진격하는 대자본 앞에서 그들의 삶의 터전을 내어놓아야 합니다. 오랫동안 타고다니던 배가 파손되었지만 수리할 돈이 없어서 몇 달동안 근해에서 연명해야 하는 가족 (배의 가격은 우리돈 10만원정도), 늦은 밤에 먼 바다에 나가서 다이빙해서 잡은 물고기를 겨우 1만원정도에 팔아야하고 또 그 중에서 반정도는 수송해준 사람에게 품삯으로 줘야하는 사람들, 며칠동안 수집하거나 말린 조개, 게, 건어물을 기름값도 나오지 않을 헐값에 팔 수 밖에 없는 가족,...

가난이나 무서운 바다보다도 대자본의 공습에 그들의 삶의 터전을 내어줘야만 한다는 것이 그들이 가장 힘들게 만듭니다.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을 읽던 기억을 되살립니다. 대자본의 침투에 힘없이 밀려나는 가난한 토착민들의 모습이 책이 아닌 영상으로 보니 더욱 마음이 무겁습니다. 터전에서 밀려난 이들은 더욱더 가난과 빈곤의 수렁에 빠져듭니다. 그런데 이것이 먼나라, 제 3국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여러 면에서 지금 이 땅, 대한민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자연이 파괴되고 인간성이 말살되는 그 현장에 지금 우리가 서있습니다. 사람들의 목숨보다 더 소중해져버린 돈 앞에서 무너지는 또 다른 사람들...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되돌아보면 '잘 살아보세'로 요약됩니다. 여전히 그 논리가 지배합니다. 경제만 해결하면 모든 것이 용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해서는 안 될 선택도 했고 그래서 더 나쁜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윗분들은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보자'라고 외칩니다. 그러나 함께 잘 사는 세상 이전에 '함께 사는 세상'부터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살 수가 없는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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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 심정적으로 5점을 주고 싶은 책, 그러나 지금껏 내 자신이 조금 왜곡된 세상을 보아왔듯이 저자 역시 어쩌면 조금 왜곡된 세상을 보고 우리에게 전했을 위험이 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4.5를 주기로 했다... 감추어진 이면을 너무나 적날하게 폭로해서 너무나 속이 시원하면서도 너무나 무섭다. 최근의 경제 위기에서 가장 곤혹을 치른 경제학자는 분명 지금 지옥에서 있을 법한 밀턴 프리드먼인데, 그가 왜 그렇게 욕을 먹는지 그 이유를 이제서야 알 것같다.

 현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는 나는 분명 보수주의자였다. 지금도 여전히 보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토마스 프리드먼이 그렇게 전도하고 다녔던 세계화의 신봉자였고, 자유무역의 신봉자였다. 스스로 가진 것이 없으면서도 가진 자들의 논리에 놀아났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런 시절은 이제 끝났다. 여전히 귀족노조들의 노동운동에 얼굴살을 찌푸리지만, 많은 일반 노동자들의 눈물을 이제는 조금 볼 수가 있게 되었다. 여전히 FTA를 찬성하지만 불평등 사대주의에 젖은 그들의 어리석은 조약에 분이 차 오른다. 평평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단의 높이는 다른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할 것인가에 대한 무서운 회의감도 든다. 사각의 링 안에서 싸워볼 기회마저 빼았긴 그들... 아니 우리의 현실을 더이상 좌시할 수만은 없다. 잃어버린 70년대의 칠레와 아르헨티나, 80년대의 볼리비아 등의 남미와 중국의 천안문 사태, 90년대의 폴란드, 러시아 등의 공산주의 붕괴와 한국을 비롯한 많은 아시아 국가들의 좌절, 그리고 2000년대에도 여전히 이어지는 이라크를 둘러싼 그들만의 전쟁을 어떻게 봐라봐야만 하는가? 그들의 먹이감이었던 우리가 왜 지금 또 다시 그들의 논리에 물들고 그들보다 더 악날하게 변하고 있는가? 고문은 한 사람의 영혼을 파괴시켰지만, 그 잘난 밀턴 프리드먼과 시카고 보이즈들의 만행, 그리고 부시를 둘러싼 네오콘들의 만행은 한 나라를 넘어 인류를 파멸의 길로 내몰고 있다. 심정적으로 이라크 전쟁에 찬성표를 던졌던 이로써 참회의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고, 미안하다는 말밖에 더 무슨 말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이라크 전쟁은 석유 때문에 벌어진 전쟁이 아니라고 항변하던 그 미친 인간들은 지금 또 무슨 괘변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는지... 시대여 눈을 감지 말라. 귀를 닫지 말라. 그리고 입을 열어라.

미국이 자국의 이익 (특히 석유) 때문에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다는 명백한 증거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자국의 극소수 특권층들이 이라크 전쟁을 통해서 여러 면에서 사익을 얻었으며 이라크 내에서의 저지런 만행, 그리고 결과적으로 더 불안하고 퇴보된 이라크의 국내 정세를 만든 것은 명확한 사실입니다. 다음의 목표가 '대한민국'이 아니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벌써 10여년 전의 경제위기와 IMF 구제금융, 그리고 IMF의 권고에 의한 구조조정이나 외국 자본에의 폭넓은 문호개방 등의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생각을 한시라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특히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이며 언제던지 전쟁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유일한 휴전국가인 우리에게는 칠레, 아르헨티나, 중국, 아시아, 폴란드와 러시아, 이라크, 그리고 미국 내에서 자유라는 미명 아래 자행되었던 그 모든 사건들을 되셔겨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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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크 독트린
카테고리 경제/경영
지은이 나오미 클라인 (살림Biz,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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