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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Op

함께 사는 세상

지난 밤에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또 마음이 무겁습니다. 2013년 6월 17일에 방영되었던 MBC 다큐스페셜의 594화 '마지막 해인 - 오랑 바자우 라우' 편에 대한 잔상이 깊습니다. 채널을 돌리다가 푸른 하늘과 쪽빛 바다가 조화를 이룬 빼어난 풍경 때문에 보기 시작했는데, 아름다운 배경에 대비되는 그 속에서 살아가는 그네들의 삶의 험난함이 저의 마음을 짓누릅니다. 방송 말미에 "그들은 거친 바다는 무섭지 않지만 변하는 세상은 무서워한다"는 나레이션이 제가 방송을 보면서 느꼈던 그 무게를 잘 설명해줍니다.

오랑 바자우 라우 (오랑 = 족, 바자우 = 종족이름, 라우 = 바다, 즉 바다의 바자우족)은 바다에서 태어나 작은 배에 의지해서 바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말레이시아 해안가에서 주로 살아가지만 딱히 국적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바다가 그들의 나라고 생활터전이고 또 영원한 안식처입니다. 화면에 비친 바다의 모습은 참으로 웅장했습니다. 잔잔한 에메랄드 바다, 수많은 산호와 물고기, 뭉게구름이 피어오른 파란 하늘 그리고 붉게 물든 석양... 평소 꿈꾸던 휴양지의 모습입니다. 이제껏 그 웅장함에 가려진 오랑 바자우 라우들의 삶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마음이 무겁고 또 지금 다시 생각하니 눈물이 흐릅니다.

수십 수백 년 동안 바다만을 의지하고 살아왔던 그들이 더 이상 설 곳이 없습니다. 대물림되는 가난의 굴레는 벗어날 길이 없고, 해안경비대나 지역민들의 텃세를 늘 경계해야만 하고, 진격하는 대자본 앞에서 그들의 삶의 터전을 내어놓아야 합니다. 오랫동안 타고다니던 배가 파손되었지만 수리할 돈이 없어서 몇 달동안 근해에서 연명해야 하는 가족 (배의 가격은 우리돈 10만원정도), 늦은 밤에 먼 바다에 나가서 다이빙해서 잡은 물고기를 겨우 1만원정도에 팔아야하고 또 그 중에서 반정도는 수송해준 사람에게 품삯으로 줘야하는 사람들, 며칠동안 수집하거나 말린 조개, 게, 건어물을 기름값도 나오지 않을 헐값에 팔 수 밖에 없는 가족,...

가난이나 무서운 바다보다도 대자본의 공습에 그들의 삶의 터전을 내어줘야만 한다는 것이 그들이 가장 힘들게 만듭니다.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을 읽던 기억을 되살립니다. 대자본의 침투에 힘없이 밀려나는 가난한 토착민들의 모습이 책이 아닌 영상으로 보니 더욱 마음이 무겁습니다. 터전에서 밀려난 이들은 더욱더 가난과 빈곤의 수렁에 빠져듭니다. 그런데 이것이 먼나라, 제 3국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여러 면에서 지금 이 땅, 대한민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자연이 파괴되고 인간성이 말살되는 그 현장에 지금 우리가 서있습니다. 사람들의 목숨보다 더 소중해져버린 돈 앞에서 무너지는 또 다른 사람들...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되돌아보면 '잘 살아보세'로 요약됩니다. 여전히 그 논리가 지배합니다. 경제만 해결하면 모든 것이 용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해서는 안 될 선택도 했고 그래서 더 나쁜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윗분들은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보자'라고 외칩니다. 그러나 함께 잘 사는 세상 이전에 '함께 사는 세상'부터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살 수가 없는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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