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3.07.22 관심 생명 주기
  2. 2013.02.14 김종욱찾기
  3. 2013.01.11 천재와 교육

관심 생명 주기

Gos&Op 2013.07.22 08: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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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가지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 첫번째는 최근에 진행 중인 쇼핑 추천 서비스와 관련이 있다. 아마존을 사용해본 사용자라면 다 알겠지만 아마존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최근에 구매했거나 조회해본 상품들이 첫화면에 나열되고 그것과 관련이 있는 상품들을 추천해준다. 일종의 개인화 추천이다. 구매나 조회는 나의 관심사를 암묵적으로 보여주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상품을 추천해주는 것은 직선적이다. 그런데 그런 상품을 언제까지 추천을 해줘야할까? 만약 1년 전에 마지막으로 아마존에 접속해서 책 한권을 살펴봤다가 1년만에 재접속했는데 여전히 그 책과 관련 도서를 보여준다면 제대로된 추천이라고 볼 수가 있을까?

두번째는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경험해보니 좀 거시한 거다. 어떤 여성 의류 쇼핑몰이 있다. 그런데 최근에 내가 접속하는 많은 블로그나 사이트들에서 해당 쇼핑몰의 광고가 계속 노출되고 있다. 처음에는 해당 쇼핑몰이 광고를 많이 하나보다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이게 다 구글의 장난이었다. 해당 쇼핑몰에 한 번 접속한 후로 계속 같은 광고가 노출되고 있다. 광고에 있는 쇼핑몰 모델이 예뻐서 클릭해봤던 건지 아니면 위의 쇼핑 추천 서비스를 테스트하면서 접속해봤는지 정확한 시작은 모르겠지만, 한번 접속 이후로 계속 같은 광고가 따라다닌다. 처음에는 1주일정도 노출되다가 말겠지 생각했는데, 벌써 몇 주째 같은 광고만 보고 있다. 알고리즘에 의해서 다양한 정보 (?)의 선택권이 박탈되었다.

위의 두가지 사례는 모두 개인의 관심 또는 흥미 Interest와 관련이 있다. 분면 내가 아마존에서 책을 조회했기 때문에 해당 책에 관심을 보였고, 해당 쇼핑몰에 접속해봤기 때문에 또 그 쇼핑몰에 관심을 보인 경우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바탕으로 다른 상품이나 해당 몰을 계속 보여주는 것은 일리가 있다. 그런데 언제까지 계속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아마존이 되었든 구글이 되었든 또는 다른 업체가 되었든 개인의 관심사를 찾아내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관심사가 소멸되는 시점을 예측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개인마다 관심사가 제각각이고 또 계속 변한다. 관심의 생성이 중요하듯이 관심의 소멸도 중요하다. 인터넷 서비스들이 개인화를 시작하면서 관심의 생성/발생에는 초점을 두는데 관심의 소멸에는 좀 소홀한 것같다. 어떤 물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그 물건을 검색해보고 상세정보를 확인해본다. 관심이 생성된 시점이라고 봐도 좋다. 그런데 계속 살까 말까를 고민하면서 다양한 제품들을 조회해보다가 결국 지름신을 이기지 못하는 때가 온다. 그 물건이 내 손에 들어온 이상 더이상 그것에 대한 관심이 없어진다. 즉, 관심이 소멸한 시점이다. 그런데 구매가 이뤄진 이후에도 계속 내가 최근에 본 상품과 그것의 관련 상품을 추천해준다면 좋은 일을 해주고 욕먹는 꼴이 된다.

가끔 사회 이슈가 된 것 때문에 검색을 해보거나 특정 사이트에 (우발적으로) 접속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바탕으로 관련 광고를 계속 노출시켜주는 것이 현재 구글의 DA 전략이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우발성 또는 일회성에 있다. 이것은 관심의 생성과 함께 소멸을 의미한다. 그런데 계속 관심이 살아있는 것으로 가정하고 광고를 노출한다면 해당 업체에 대한 피로감만 누적된다. 때로는 여행과 같이 의도를 가지고 검색/광고클릭을 했더라도 그 욕구를 충족시킨 이후에도 계속 비슷한 광고가 노출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관심의 생명주기가 어떻게 될지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관심을 캐치해내는 능력을 키웠듯이 관심이 소멸되는 시점을 캐치해내는 능력에 대한 연구와 시도가 필요하다.

쇼핑 추천 서비스를 준비하면서 일단은 기술적으로 추천 알고리즘을 개발했지만, 끝내 풀지 못한 문제가 이 관심의 소멸시점에 대한 것이다. 수학적으로 시간에 따라 감소하는 dacay factor를 식에 넣기는 했지만, 이것이 소멸 시점을 확정시키지 않는다. 예전에 소셜픽 프로젝트를 하면서 이슈의 생명주기를 고려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이슈는 생성 시점만큼 소멸 시점이 명확하다. 검색량이나 관련 문서량이 급감하면 이슈가 소멸했다고 판별할 수 있다. 그런데 대중의 관심사에 대한 소멸은 경향성을 보면 짐작할 수도 있지만 개인(화를 위한 개인)의 관심사의 소멸시점을 특정하기 어렵다. 특정 물건에 관심을 가지기 싲가해서 평규적으로 며칠 후에 물건을 실제 구매하더라 등과 같은 데이터라도 제대로 확보한다면 유추해 가늠해볼 수는 있지 않을까? 새로운 관심의 생성시점이 이전 관심의 소멸시점으로 유추할 수도 있으나 여전히 불완전하다.

관심/흥미 생명주기 Interest LifeCycle 또는 관심의 변동성 Interest Volatility 을 연구해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을 것같다. 그런데 이 연구에 대한 흥미는 언제쯤 없어질까?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unexperienc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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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욱찾기

Gos&Op 2013.02.14 09: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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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김종욱 찾기'

영화 '김종욱 찾기'는 아련한 기억 속의 첫사랑의 연인인 김종욱을 찾아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의 일상 속에도 그런 김종욱같은 사람이 있다. 물론 이 글에서 김종욱을 첫사랑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글의 기본 내용은 오래 전부터 생각하던 것인데, 결정적으로 글로 표현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모든 전문가가 전문가는 아니다'라는 문장이 문득 떠오른 때다. 그렇다. 이 글에 말하는 김종욱은 나만의 전문가를 의미한다. 그저 유명하고 권위가 있는 인물이 아닌 내 주변의 전문가를 찾는 프로젝트가 바로 코드명 김종욱이다. (물론 실제 프로젝트가 진행중인 것은 아니다.)

인터넷이라는 것이 어느날 우리에게 찾아온 이후로 다양한 서비스들의 역습을 경험했다. 1996년 대학이란 곳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이메일 계정을 만들었다. 그 전에 OT기간동안 포스비라는 학내 사설BBS에 계정을 먼저 만들었던 것같다. 고퍼는 사용해보지 못했지만, 유즈넷은 가끔 사진이나 폰트를 찾는다고 이용했던 적도 있다. 지난 달 서비스를 종료한 나우누리의 기억도 새록새록하다. 1학년 겨울 방학 즈음해서 HTML을 배워서 홈페이지를 만드는 것에 푹 빠지기도 했고 JAVA라는 언어를 배운답시고 책부터 구매했던 그런 시절도 있었다. 홈피에 방명록을 붙인다고 CGI소스를 다운받아서 설치했던 것도 반평생 전의 이야기다. 그러던 중에 요즘도 많이 사용하는 웹메일이 등장하고, 웹기반의 커뮤니티와 지식서비스가 나왔고, 또 블로그라는 개인미디어는 홈피를 집어삼켰다. 웹2.0이라는 마케팅 용어 이후로 지금의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의 서비스들이 인터넷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대학을 다닐 때 만들어졌던 인터넷 1세대 그리고 대학원 이후에 나온 인터넷 2세대가 현재는 공존하고 있다. 인터넷에 다양한 서비스가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길어졌다.

인터넷의 많은 서비스들의 핵심은 데이터 (텍스트, 이미지, 동영상, 메타/통계 데이터 등)을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있다. 단순히 컴퓨터 화면/브라우저상에 어떻게 보여지느냐가 아니라, 사용자들의 만족효용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데이터의 정렬에 관한 것이다. 검색에서는 랭킹이라 불리고 다른 서비스에서는 추천이라고 불린다. 사람이 직접 관여해서 운영되는 경우도 존재하고, 알고리즘에 의해서 자동으로 이뤄지는 경우도 존재한다. 많은 서비스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차별화를 시도하지만, 결국에는 이 랭킹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로 집결된다. 구글은 페이지랭크를 선보이면서 인터넷의 절대강자가 되었고, 페이스북은 엣지랭크를 선보임으로써 유용한 사용자경험을 제공했고, 아마존은 개인화 추천이란 것을 선보였다. 인터넷의 등장 이후로 랭킹을 제대로 해결한 기업들이 결국 탑랭크되었다. 역사가 말해주고 또 말해줄 것이다.

랭킹. 문제는 참 단순한데 답은 꽤 복잡하다. 인터넷의 절대 반지다. 많은 사람들이 답을 구했지만 손에 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구글이 그랬고, 페이스북이 그랬고, 아마존이 그랬다. 그러나 아직은 완벽하지도 범용이지도 않다. 그래서 여전히 희망이 있고 새로운 웹도라도 (웹 엘 도라도)를 발견하기 위해서 많은 이들이 노력하고 있다. 그저 웹 세상에서는 구글이 평정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구글이 그저 컨텐츠와 집단지성을 이용하고 있을 때, 새로운 경쟁자들은 컨텍스트에 주목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트위터는 시간을 공략했고 페이스북은 인간을 공략했다. 포스퀘어가 공간을 지배할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공간정보는 그냥 범용이 되었다. 아, 소위 지식서비스라 부르는 Q&A도 구글의 거대한 알고리즘 틈 사이로 사람을 집어넣은 것이다.

랭킹이나 추천을 어떻게 할 것인가? 현재까지 사용되는 방법은 구글과 아마존으로 대표되는 집단지성, 지식iN으로 대표되는 전문지성 (일단, 답변자들이 전문가라고 가정하자.), 그리고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대표되는 지인지성이 있다.

집단지성. '많아지면 달라진다'는 말 (클레이 셔키의 책 제목)이 있다. 많은 사람이 선택을 했다면 '좋다' 아니 적어도 검증되었다라고 볼 수가 있다. 이를 가장 잘 활용한 곳이 구글과 아마존이다. 구글은 다량의 문서 네트워크에서 암묵적인 인커밍 허브를 찾아내는 방법을 활용해서 이를 페이지랭크라 불렀다. 아마존은 상품 구매자의 평점을 활용해서 개인화 추천 시스템을 만들었다. 특히 아이템 기반의 관련 컨텐츠는 이후 유튜브의 관련 동영상에도 사용되고 있다. 그외에 이베이의 판매자 평판 시스템도 명시적 집단지성을 잘 활용한 예다. 문제가 있으면 대중에게 물어보면 된다. 각자의 능력과 지식은 미흡할지 모르나 모이면 정답에 가까워진다. 물론 문제의 답이 정규분포를 따른다는 (일반적으로) 가정 하에 그렇다.

전문지성. 요즘은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그냥 구글에 검색해보거나 트위터/페이스북에 질문을 올리지만, 예전에는 가장 좋은 방법이 전문가를 찾아가는 거였다. 물론 유명한 전문가를 우리가 직접 만날 가능성이 매우 낮은 치명적 단점이 있다. 그러나 인터넷은 개념적으로는 그런 만남의 가능성을 높여놓았다. 아니, 우리 모두가 아는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재야의 고수들을 만날 수 있다. 개념적으로 전문가에게 질문을 하고 답변을 하사받는 시스템이 지식iN 또는 Q&A 서비스다. 물론 현재 인터넷에는 숨은 고수들이 많지만 사이비도 많다. 특히 마케팅/홍보로 오염된 경우가 많다. 어쨌든, (신뢰할만한) 전문가가 있다면 전문가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좋다. 아프면 인터넷에서 검색도 해보지만, 병원을 찾는 이유도 가운을 입은 의사가 전문가라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진짜 천재를 만나 고급의/정확한 전문지식을 얻을 수 있다면 집단지성보다 낫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우 그런 이를 만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전문지식에도 집단지성이라는 투표수나 공감수 등을 믹싱한다.

지인지성. 사실 일반 대중에게 묻거나 전문가를 찾아가는 것보다 더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엄마한테 물어보는 거다. 엄마가 갑이다. 나이가 들면서 엄마만으론 부족하기 때문에 주변의 친구들의 조언을 듣는다. 친구들은 내가 뭘 좋아하는지 또는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많이 알기 때문에 전문지식은 아니지만 친밀한 답변을 해줄 수가 있다. 나에 대한 컨텍스트 정보가 없는 전문지식이나 대중의 지혜가 쓸모없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경우는 너무 사소해서 전문가나 대중들에게 묻기가 부끄러운 경우도 있다. (물론 검색하면 대부분 나오지만… 구글은 신이니까)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가 이를 파고든다. 페이스북의 엣지랭크가 친구와의 친밀도 점수를 활용하고 있다.

집단지성은 대중성에 기반을 두고, 전문지성은 객관성에 기반을 두고, 지인지성은 친밀성에 기반을 둔다. 최근의 서비스들은 이들 모두를 잘 활용하는 듯하다. 어떠한 형태로든 원하는 답변을 얻을 수 있다면 별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중에 의해 검증된 지인의 진솔한 전문지식을 답변으로 얻는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집단지성이라는 대중적 검증과 전문지성이라는 신뢰하는 출처, 그리고 지인지성이라는 개인적 친밀감을 더 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래서 김종욱이 필요하다. 나와 아는 사람 중에서 검증된 전문가 김종욱을 찾는다. 프로젝트 김종욱. 참 복잡할 것같다.

(서론은 길지만 본론과 결론이 짧은 것이 내 글의 특징이다.) 검색이나 추천에서의 랭킹/순위는 다른 말로 관련성이라 표현할 수 있다. 내가 입력한 키워드와 나의 처지에 맞는 검색결과, 그리고 나의 개인적 취향에 맞는 제품/컨텐츠를 추천하는 것이 관련성이다. 그런데 이 관련성은 3가지로 세분화된다. 

  • 첫번째는 질문자 (나)와 답변자 (너) 사이의 관계다. 지인 네트워크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단순히 관심사로 묶인 관계일 수도 있다. 같은 물건을 구입했던 사람, 같은 노래를 듣고 있는 사람, 같은 기분/처지를 공유하는 사람 등등의 동질성을 가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친밀감이 온다. 
  • 두번째는 나/질문자의 관심사다. 답변은 나의 관심에 맞아야 한다. 아무리 전문가의 답변이더라도 또는 99%의 대중이 선택한 것이더라도 나 개인의 관심사와 맞지 않는다면 전혀 쓸모가 없다. 관심사는 평소 누적된 나의 행동에서 얻을 수 있다. 평소에 검색했던 검색어목록, 작성했던 글, 자주 읽는 기사, 또는 자주 가는 곳 등의 평소의 작은 행동들이 모여서 나의 관심사를 보여준다. 그리고 답변자의 관심사도 파악이 되어야 한다. 나의 관심사는 질문의 컨텍스트를 제공해주지만, 답변자의 관심사는 답변자의 전문성을 확보해준다. 
  • 세번째는 너/답변자의 관점이다. 관점은 다소 불명확한 개념이다. 그냥 겉으로 드러나는 답변만으로 부족하다. 답변자가 어떤 관점으로 그런 답변을 내놓았는지 알지 못한다면 답변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예를들어, '강정 해군기지의 문제점'이라는 질문에, 찬성론자는 필요성을 부각시키고 부작용을 축소시켜서 답변을 줄 것이고 역으로 반대론자는 필요성/당위성보다는 환경파괴나 공동체파괴 등의 극단적 부정성을 강조하는 답변을 내놓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관점도 어필이 되어야 한다. 답변의 뉘앙스가 나의 관점에서 벗어난다면 답변의 만족도가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질문자의 관점이 나와 똑같야 된다는 말이 아니다. 상대가 어떤 관점을 가지고 답변을 주는지가 파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결론적으로 전문성의 가진 지인이 나의 관점에 맞는 답변을 해주면 베스트케이스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전문가를 김종욱이라 부르기로 했다. (여담. 회사 내에 동명의 인물이 있긴하다. 과연 그가 답을 하사해주고 떠날 것인가?)

프로젝트 김종욱의 결과물이 소셜Q&A 서비스인 Quora나 Aardvark 등과 닮았다. 그러나 Q&A 서비스는 온디멘드 On-Demand다. 즉 누군가 질문을 하면 그제서야 지인 전문가가 답변을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프로젝트 김종욱은 Q&A보다는 검색을 염두에 두고 있다. 즉, 지금 내게 필요한 정보/답변을 지인 전문가의 예전 글에서 찾아주는 것이다. 물론 현재 변화된 상황에 맞는 답변을 얻을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이건 검색이 가진 어쩔 수 없는 한계다. 그래도 비동기식 Q&A가 줄 수 없는 즉시성의 장점이 있다. 현재가 지나면 현재의 관심사도 없어진다. 아드바크의 초기 조사에서 응답시간이 수분 내로 매우 짧았다고 한다. 그러나 몇 시간, 며칠 이후에야 답변을 얻는 경우도 상당한 비율을 차지했다. 인터넷, 특히 모바일 세상에서 사람들은 참을성을 점점 상실하고 있다. 수초의 시간도 길다. 최근 페이스북이 그래프서치를 선보였다. 그걸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결국은 지인전문가 김종욱이 아니라, 김종욱이 전해주는 정보에 관심이 가는 것인 걸까? 영화에서도 결국 김종욱이 아닌 새로 만난 인연과 연결이 되었다. 김종욱은 구실일뿐...

(2013.02.02 작성 / 2013.02.14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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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와 교육

Gos&Op 2013.01.11 09: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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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풍미했던 천재 지휘자 헤르베르트 본 카라얀. 그의 평전을 읽으면서 '카라얀이 만약 음악/지휘를 하지 않았다면 그가 천재로 인정받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어릴 적에 기계 메카닉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어쩌면 엔지니어로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엔지니어로 천재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까? 만약 물리학이나 수학 또는 경제학 등의 전혀 다른 분야로 진출했다면 그는 그 분야의 천재가 됐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카라얀은 운좋게도 지휘/음악을 시작했기 때문에 그 분야에서 천재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현재까지 음악에 문외한 나조차도 알고 있는 지휘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참고. 카라얀 평전 1, 카라얀 평전 2)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적합한 분야를 선택해서 공부하고 노력한다면 천재적 기질을 발휘할 수 있지 않았을까?' 또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분야가 아닌 엉뚱한 곳에서 재능을 썪히면서 평범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페이스북에 짧게 "모든 사람은 천재다. 만약 자신의 재능을 꽃피울 최적의 분야를 찾는다면… 그래서 대부분은 바보다."라는 글을 남겼다.

카라얀 평전 초반부에 마리아 칼라스의 명언이 한 줄 나온다. "좋은 교사와 위대한 교사의 차이: 좋은 교사는 제자의 자질을 최고로 끌어올릴 줄 알고, 위대한 교사는 제자의 장래를 내다볼 줄 안다."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의 재능을 발견해주고 그 재능을 극대화시켜주고 또 그걸 통해서 미래를 개척/변화시키는 것을 도와주는 그런 부모/스승/멘토/지도자를 만난다면 우리 모두가 천재가 되지 않을까? 적어도 현재처럼 자신의 소질과 흥미와는 무관하게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책에만 파묻혀서 지내지는 않아도 되고, 그래서 더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서 더 재미있고 흥미로운 세상이 만들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부모들은 자기 자식들이 어릴 때 한 작은 행동이나 말을 보면서 '천재가 아닐까?'라는 착각에 쉽게 빠지고, 자식들이 진짜 흥미를 느끼고 또 재능을 보이는 것이 아닌 (부모의) 착각 속의 분야로 자식들을 내모는 경우를 자주 본다. 대부분은 안 좋게 끝난다. 자식들의 실제 재능을 발견하기 위해서 이것저것 모두 해보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무진장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사람이 천재가 되는 길은 참 험하고 멀다.

흔히들 우리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적어도 3가지 기준으로 그 일을 평가해본다.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일인가? 내가 진짜로 잘할 수 있는 일인가? 내가 진짜로 해야만 하는 일인가? 즉, 흥미와 관심 Love to, 재능과 소질 Able to, 그리고 당위 Have to에 대한 자문이다. 당연히 내가 좋아하면서도 잘 하는 일을 해야만 할 때, 가장 퍼포먼스도 잘 나고 어쩌면 그 일에 천재적 재능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어느 것 하나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평범하게 살아간다. 때로는 자신의 관심과 재능과는 전혀 무관한 분야에서 자기 만족에 빠지는 경우도 있고, 더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경우도 종종 본다.

어릴 적에는 부모나 주변의 강요에 의해서 싫든 좋든 많은 것을 해본다. 운좋으면 자신의 흥미와 재능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어린이에게 시대적 소명이나 당위성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그런 경우라면 그것을 즐기며 갈고 닦으면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말콤 그래드웰이 <아웃라이어>에서 말한 1만시간의 법칙을 지킨다면 천재까지는 아니더라도 평균 이상의 전문가로는 명성을 쌓을 수 있을 거다. 그런데 운좋게 발견한 그 분야가 진짜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고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괜히 적당히 좋은 분야에 올인하느라 진짜 천재적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리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본다. 조금 다른 뉘앙스지만 자신의 재능과 흥미를 발견할 때도 -- 짐 콜린스가 말한 -- '좋은 것이 위대한 것의 적'이 될 수도 있다. (참고,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사람들은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서 스스로 꿈을 꾸게 된다. 보통 그 꿈이란 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요즘 청소년들은 제대로 된 꿈을 꿀 기회조차도 박탈당하는 것같다. 나만 하더라도 어릴 적에는 막연한 장래희망이 있었지만, 10대와 20대 초반을 보내면서 특별한 목적의식은 없었던 것같다. 짜여진 획일적인 커리큘럼에 따라서 교육받아지는 우민 백성들이 만들어지는 사이에, 진짜 소중한 우리의 꿈과 개성과 재능은 늘 뒷전으로 밀리기만 한다. 최근에는 그런 몰개성 교육의 무용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고, 미래를 위해서 새로운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단순히 새로운 커리큘럼을 준비하는 것은 새로운 방식의 바보만 양산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교육 자체가 없어져야할지도 모르겠다. 2차산업의 역군을 키우기 위해서 갖춰졌던 현대 교육과 작별을 고할 때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이들에게 다양한 놀거리와 생각할거리를 제공해서, 스스로 자신의 꿈과 재능을 발견할 기회를 줘야 한다. 이 대목에서 앨빈 토플러의 충고를 새겨들어야 한다. 그는 한국의 학생들은 10년 후에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하루에 몇 시간씩 공부한다고 지적했다. 기성세대가 만든 과거가 아닌 자신이 설계하는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다행히도 소위 말하는 머리에 피가 마르는 시기가 되면 성인들은 스스로 자신의 장래를 걱정하면서 자신의 흥미와 소질을 재평가해서 미래의 직업을 선택한다. 우민화로 인해서 그 시기가 너무 늦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노파심에서 말하지만, 여기서 좋아하는 것은 유희적/소비적 취미를 뜻하지는 않는다. 생산적 취미와는 어느 정도 맞다.

개인의 개성 (흥미와 재능)에 더해서, 당위성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무조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라고 해서 그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법과 문화, 규범의 테두리 내에서 불가능한 것들도 많다. 그런 하드한 제약조건이 아니더라도, 특정 시대가 요구하는 시대정신 또는 소명이 있다. 그런 시대정신과 소명에 맞는 일이 무엇인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다 같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유아독존이 될 수가 없다.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모두 그 사회로부터 받은 것을 되갚아줘야 한다. 즉, 사회기여 contribution가 필요하다. 내가 이 일을 함으로써 이 사회는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 또는 역으로 어떤 해를 입을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면서 일을 선택해야 한다. 우려되는 점은 이 사회의 저소득, 하층민, 소외계층의 경우 사회로부터 받는 것이 전혀 없다는 그런 좌절감을 느낀다. 최근 대한민국의 양극화/불평등/불확실성 상황을 보면 그 심각성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그런 인식을 갖는 사람이라면 역사회기여의 행위를 자행할 수도 있다. 실제 최근 자주 발생하는 묻지마 사건들이 그런 부작용의 일종이다. 개인이 사회에 느끼는 당위성은 사회가 그 개인에게 공평하고 공정한 기회를 줄 때만이 생겨난다. 개인의 사회 당위성은 사회 (국가)의 개인에 대한 공정성에서 나온다.

마지막으로 카라얀 평전에 나오는 글귀 (챕터제목) 하나로 글을 마친다.

천재란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노력이다.

[업데이트 20130114] 주말에 안타까운 뉴스가 있어서 업데이트 합니다. 13세의 나이로 RSS (Rich Site Summary, formerly Really Simple Syndication)의 표준화에 참여했고 Creative Commons에도 참여했고 Reddit도 공동창업했던 Aaron Swartz의 자살소식입니다.  (참고. Prosecutor as bully, by L. Ressig) 그냥 유명 연예인의 죽음은 별로 충격적이지 않은데, 이런 기술분야의 천재들의 뉴스에는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평소에 이런 천재들이 더 많이/오래 사회에 공헌/기여하는 것을 원했던 사람으로써 그의 요절은 참으로 충격적이고 안타깝습니다. 앞서 천재는 적성과 재능과 당위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와 함께 '인성'에 대한 부분도 필요합니다. 특히 어릴 적부터 천재 소리를 듣은 이들은 자신만의 인성을 갖기도 전에 주변의 주목부터 받기 때문에 제대로된 인성을 기를 겨를이 없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본 윤석찬님의 아론에 관한 글의 말미에 나오는 대한민국의 김웅용씨가 말한 'NASA에서는 계산과 예측에서 천재성을 발휘하는 그의 재능만 필요로했다'는 말에서 이들에게 자존감과 사회공동체의식과 같은 인성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오직 그들의 재능만을 빨아먹고 있는 것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성은 당위성과 함께 제대로 가르쳐줘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을 깨닫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어릴 적부터 천재성이 부각되기 때문에 그런 재능을 소진한 이후에 당위성과 인성을 자각하게 되면 너무 늦습니다. 검찰과 MIT에서 과도하게 그를 옥죄었다는 것이 그의 자살/우울증의 원인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그가 제대로된 인성교육을 받았다면 이번 사건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MIT JSTOR의 해킹이 그렇게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신념 때문에 정보의 자유로운 공유를 위해서 JSTOR를 해킹했을 개연성은 높았지만, 그래도 당위성에 대한 가르침이 있었다면 그렇게 쉽게/무모하게 행동에 나서지도 않았을테고 제대로된 인성이 갖춰졌다면 그 이후의 사회적 압박/괴로움 그리고 삶을 포기하는 것을 그렇게 쉽게 자행하지는 않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별한 분야에 적성과 재능을 가졌다지만 천재도 또한 사람입니다. 그에게 천부적인 재능을 강요하는 것에 앞서서, 사람으로써의 자존감을 갖도록 인도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최근 한국 사회의 청소년 문제들을 보면서 우리도 반성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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