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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서구의 개인주의가 창의력의 원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전히 사실인지 아니면 그냥 신화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Pixar 스튜디오에는 화장실이 건물 중앙에 한 곳에만 있다고 합니다. 누구나 생리현상은 해결해야 하고, 그럴려면 중앙에 있는 화장실로 모여야 합니다. 그렇게 모이고 부딪히면서 서로 얘기를 하다보면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갈 것입니다. 때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토로하는 경우도 있을테고, 때로는 최근에 자신이 했던 프로젝트나 잘 된 일을 뽐내기도 할 것입니다. 그렇게 우연히 마주친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줄 사람과 대화하기도 하고, 또는 그런 이를 연결해주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연에 의한 창발을 기대하며 화장실은 하나만 만들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빌딩 숲 사이로 점심시간이 되면 삼삼오오 무리를 지은 사람들이 몰려나와서 수다를 떨면서 식당으로 향합니다. 웃고 떠드는 사이에 픽사의 그것처럼 서로 시너지를 일으켜서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샘솟아날 것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음성지원이 될 것같다.) 이렇게 무리를 지은 사람들을 찬찬히 확인해보면 이미 평소에 친하게 지내거나 같이 일하고 있는, 그리고 많은 경우 같은 부서, 팀원들끼리인 경우가 많습니다. 구내 식당을 이용할 때도 보통 팀원들끼리 같이 내려와서 같이 식사를 합니다. 같이 내려와서 따로 앉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다양한 이유로 한두명이 따로 앉게 되면 괜히 미안해하는 듯합니다. 간혹 혼자 내려오면 가장 먼저 누구랑 같이 먹을지 친한 동료를 찾기에 바쁩니다. 식사나 다과 자리에서 업무 얘기보다는 우스개 소리만 하면서 식사가 빨리 끝나기만을 초조히 기다립니다.

이 두 사례에서 어쩌면 서양의 개인주의 풍토가 오히려 그들에게 창의력의 원동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평소에는 각자 흐트져서 생활하다가도 또 모여서 일해야할 때는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모습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미국에 잠시 머무르는 동안 — 소수 그룹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었지만 — 한국인 게스트연구자들끼리는 매번 식당에서 모여서 식사를 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습니다.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늘 비슷한 일상을 얘기합니다. 물론 그런 관계가 나중에 중차대한 일에서 다른 창발성과 다양한 연결에 기여하겠지만, 얼핏 봐서는 이질성이 모여서 새로운 동질성을 만들어낼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서양인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외향적인 성격의 소유자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TV나 영화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그냥 평소에는 각자 생활하다가도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긴 대화가 이어지는 모습을 봅니다. (물론 영화적 설정일 수도 있지만…)

끼리끼리만 모이다보니 그 무리에 속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자연스레 배타적이 될 수 밖에 없고, 또 그 그룹 내에서 생각과 시각의 동질화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룹 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한 인식과 해결은 가능하지만, 외부의 생각이나 현상을 접할 기회가 줄어듭니다. 그러나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곳에서는 평소에는 이기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각자가 다양한 경험과 견해를 가지고 특정 문제가 발생했을 때 새로운 팀을 바로 구성할 수 있는 것같습니다. 끼리 문화에서 누군가를 새로 받아들이는 것이나 또 한명이 다른 그룹에 내보내게 되는 것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원래부터 개인으로 활동했으면 필요에 따라서 뭉치고 흩어지는데 별다른 지장이 없어 보입니다.

다양한 연결에 의한 우연한 아이디어의 창발이 곧 창의성입니다. 빛과 그림자는 늘 상존합니다. 공동체 문화가 공동체 내에서는 좋지만, 또 제주의 괴당과 비슷하게 공동체 외부와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면역학/유전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현상이 하나 있습니다. 유전적으로 비슷해지면 예측치 못한 돌연변이의 발생이 잦아지고, 특정 유전병으로 인해서 그 유전자 그룹 모두가 괴멸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중학교 때였나 고등학교 때 생물책에서 읽은 유전적으로 비슷해진 치타 무리에 대한 우려의 글이 여전히 머리에 생생합니다. 동질감 때문에 평소에는 공동체를 이루지만, 그 동질감을 파괴하는 새로운 병이 발생하면 모두가 파멸의 길에 이릅니다. 한 때 화려했던 문명들이 갑자기 사라진 것의 이유 중에 유전적 동질성이 가장 먼저 제기되는 것도 이때문입니다. 유럽인들에 의해서 정복되었던 아프리카나 아메리카의 원주민이 멸종된 것도 면역/유전병에 이유를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너무 깨끗하면 병에 더 잘 걸린다는 말도 비슷한 케이스입니다.

일국의 대통령이 창조경제라는 정체불명의 말을 만들어낼만큼 '창조성' '창의성'은 중요합니다. 순수한 한 사람의 노력이나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기반한 창조성도 있지만, 요즘에는 다양한 연결을 통한 창발적 창의성이 큰 힘을 발휩합니다. 다양한 생각, 다양한 견해, 다양한 경험을 가진 개인들이 모여서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같은 생각끼리는 처음에는 뭉치기는 쉽겠지만, 새로운 진보를 예상하기는 힘듭니다. 적어도 IT분야에서 미국 또는 실리콘밸리가 왜 앞서갈까?를 생각해보면서 어쩌면 개인주의가 오히려 창조성을 자극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이런 여담은 하면 나중에 꼬투리 잡히는데…) 지금 창조경제를 주장하는 무리들이 모든 국민들을 하나의 틀에 맞도록 컨트롤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절대 창조성이 발현될 수 없습니다. 조금만 다른 생각을 하면 그냥 '종북' 딱지를 붙이는 세상에서 다름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으며, 그 상상된 것을 겉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다름이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렇다고 말살시키는 것은… 그리고 이중잣대로 사회를 판단하는 것도 창조성에는 별로 좋지 않은 듯합니다. 자유를 외치면서 나의 자유와 너의 자유를 동시에 보장하지 않고, 오로지 나의 자유만을 감싸는 것은 잘못되었습니다. 규제를 철폐하겠다고는 하지만, 1%의 이득에 관련된 것만 해당되고 나머지 대다수가 불편해하는 것은 늘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민영화된 포스코의 회장으로 정권의 사람이 내정되(었다)는 소문/현상을 후세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줘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민영화가 결국 이득의 사유화라는 것을 보여줄 뿐입니다. 민영화 및 경쟁체계가 좋다면, 대통령 등의 권한도 민영화하고 두명 이상을 뽑아서 경쟁시키면 우리 나라가 더 좋아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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