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Gos&Op

눈길 발자국 이정표 그리고 결단

눈이 온다는 예보처럼 일어나니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장비를 모두 챙겨서 밖으로 나갑니다. 오늘 눈이 오면 주변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설마 눈오는 오전에 사람들이 나보다 먼저 산책을 했겠어라는 생각을 가지고 집 뒤에 쏟은 삼의악오름으로 향했습니다. 지난 밤에 일찍 잠들어서 보지 못했던 응사를 아침에 다시보기 하느라 조금 늦게 출발했더니, 벌써 몇 분이 저보다 먼저 눈밭에 발자국을 남겨놓았습니다. 조금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또 그 자국을 보면서 생각을 합니다.

누군가가 나보다 먼저 이 길을 걸었고, 자국을 남겨놓았다는 것은 내가 그것을 따라가면 안전하게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발자국에 맞춰서 걷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급해졌는지 걸음걸이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누군가 먼저 갔기 때문에 내가 따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욕심을 부렸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그것보다는 이미 밟아놓은 자리라서 그걸 따라가다 보니 제 페이스가 아닌 그 발자국의 페이스대로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우리 인생도 그런 것같습니다. 누군가 먼저 이 길을 걸어갔다는 것은 큰 위안이 되지만, 또 한편으론 큰 부담감이 됩니다. 나도 끝까지 완주해야 하는데, 내가 먼저 치고 나가야 하는데...

산길 계단에 난 발자국은 일정하지가 않습니다. 꾸준히 한카씩 발자국이 새겨져있다가 간혹 한칸이 비워진 경우를 봅니다. 괜히 심술이 나서 앞선 발자국이 없는 곳을 밟습니다. 그런데 조금 어색합니다. 아마 나도 처음 그 길을 걸었다면 두칸을 한꺼번에 넘었을 것입니다. 앞선 이들의 경험이란 것이 거저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괜히 내 길을 걷겠노라고 이상하게 걸으면 피곤하기만 합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남이 밟은 그곳만을 밟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길을 걷다보면 어느 순간 아무도 밟지 않은 곳으로 향합니다. 여전히 길은 끝난 것같지 않지만 발자국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 결정의 순간입니다. 그냥 뒤돌아설 것인가? 아니면 앞으로 내가 개척해 나갈 것인가? 누군가의 흔적이 없어졌다는 것은 그런 두려움과 견단을 동시에 줍니다. 그러나 조금은 앞으로 전진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바로 돌아설 수도 있고, 아니면 자신감을 얻어서 더 전진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의 발자국이 없다고 해서 길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산행로의 다양한 이정표들이 길을 표시해줍니다. 그래서 길을 잃지 않고 전진할 수 있나 봅니다.

그런데 혼자 앞을 치고 나가는데 이정표 하나 없는 전혀 막다른 길에 다다릅니다. 또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길을 찾아서 더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확실한 이정표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서 결정을 내릴 것인가? 아주 예외적인 상황에서 예외적인 사람들은 앞으로 전진합니다. 그리고 성공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예외적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조금 앞을 탐색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되돌아서는 것도 지혜입니다. 범인이 예외적인 사람들처럼 나섰다가는 그냥 길을 잃고 조난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되돌아서는 것이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고민을 하다가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서서 주변을 둘러보니 올 때는 보지 못했던 다른 길이 보였습니다. 다시 이정표를 보면서 걷습니다. 

오늘 산행으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길을 걷고 있고, 그저 누군가의 발자국만 쫓아서 걷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이정표를 따라 걷고 있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내가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는가? 혹시 지금 이정표가 없는 곳에서 결심을 하고 결정을 내릴 때인가? 등등의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누군가의 발자국을 쫓아서 걸어야할 때가 있고 또 나만의 길을 만들어가야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이 그 때인 듯합니다. 아직 결론은 내리지 못했지만 눈길의 산행이 제가 답해야할 물음표만 던져줬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