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좀 주춤하지만 그래도 한달에 4~5권 정도의 책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책을 읽기 시작한 계기나 책을 선택/배제하는 원칙같은 것을 여러 번 적었습니다. 오늘은 평소에 책을 사면서 가장 쓸데없다고 느꼈던 부분에 대한 불만을 쏟아낼까 합니다.
저는 보통 책을 첫장부터 끝장까지 순차적으로 읽습니다. 그래서 오래 전에는 무심코 읽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읽지 않고 넘어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추천사입니다. 사족과 같은 추천사가 왜 모든 책에 붙어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추천사를 읽지 않는 첫번째 이유는 추천사에 별 내용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냥 그 분야에 나름 유명한 사람에게 부탁해서 추천사를 적는 것같은데, 그 추천사가 책의 맥락과 별로 맞지 않는 경우가 많고 그냥 억지로 적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냥 칭찬만 해줄 거면 왜 추천사를 적는지 모르겠습니다.
두번째는 스포일러가 포함된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어떨 때는 추천사만 읽고나면 책을 다 읽은 느낌입니다. 어떤 책을 읽으면 초반에 그 책에서 다룰 모든 내용과 결론이 제시되어있고, 그저 저자가 자기 자랑하듯이 예시만 죽 나열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책을 좀처럼 잘 읽혀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내용이 이미 추천사에 등장했다면 그 책을 읽어야할 이유가 사라집니다.
세번째는 그래서 저자의 원초적인 시각과 생각을 느낄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책을 통해서 저자를 만나고 저자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접해야 하는데 이미 추천사를 통해서 추천인의 시각에서 저자가 평가되고 책의 내용이 걸러져버립니다. 필터를 통하면 다양한 이색적인 풍경을 만날 수도 있지만, 한번 필터를 거치면 원래의 것을 그대로 다시 얻을 수 없습니다. 추천사가 책을 읽기도 전에 그 책과 저자의 가치관이나 시각을 한번 걸러주고 또는 다른 식으로 선입견을 심어줍니다. 그렇게 되면 저자가 원래 하려던 말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추천사가 제시한 방향으로만 내용이 읽혀집니다.
그래서 내번째로는 나 스스로 책을 읽는 기회가 박탈된다는 점입니다. 저자의 날 생각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것을 통해서 나 스스로 내용을 정리하고 내 시각에 맞도록 재구성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책읽기의 즐거움입니다. 그런데 추천사라는 필터링을 통해서 저자의 생각도 필터링되지만 독자의 사고방식도 필터링되어 버립니다. 책은 지식을 얻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남의 생각/글을 통해서) 내 생각이 발아되는 시발점이기도 합니다.
추천사가 가지는 나름의 의미를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책의 본연을 잃게 만드는 그런 추천사들은 책에서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분량만 차지하기도 하고, 때로는 책표지 디자인만 망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몇 장의 추천사를 뺀다고 해서 책값이 싸질 것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모든 지면을 모두 모은다면 열대우림을 살릴 수도 있습니다. 부가적인 그런 추천사라면 그냥 웹에 올려놓고 링크만 걸어줘도 충분합니다. 인터넷, 모바일 시대에 여전히 쿠텐베르크 시대에 정립된 책의 포맷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책에 추천사를 적는 사람들도 스스로의 평판관리가 필요합니다. 연구소나 학교에 취직하기 위해서 지도교수 등으로부터 추천서를 제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그저 좋은 얘기만 해주는 경우가 많지만, 외국의 경우 단순히 좋은 점만 나열하거나 무턱대고 좋은 사람이라고 추천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단점 등도 정확하게 말해준다고 합니다. 추천서를 남발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평판관리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책 추천사도 그저 자신의 유명세를 내세우기 위해서 적는 것이 아니라, 그 추천사가 가지는 파급력이나 부작용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고 조심스레 적어줘야 합니다.
독자와 저자가 1대1로 바로 대면하는 것을 막는 그런 추천사를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2013.06.14 작성 / 2013.06.20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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