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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Op

진정성의 시대에 살아남기

각 시대마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키워드가 있다. 지난 2월에 한 시대를 마감하고 또 다른 시대를 준비하는 시점에 '소통에서 진정성으로'라는 글을 적었다. 지금은 진정성이 시험대에 오른 시대다. 이런 진정성의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또 고민하게 된다.

가볍게 TV예능 얘기로 시작하자. 지난 토요일에 무한도전 8주년 기념으로 무한상사가 방송되었다. 무한상사에서 보여준 정리해고라는 삶의 무게에서 느껴지는 우리네의 삶과 애환이 무겁게 다가온다. 무한도전이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감싸는 것은 그 속에 담긴 진정성을 빼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잘 알다시피 무한도전은 리얼버라이어티 시대를 개척했다. 리얼버라이어티는 돌발성이라는 리얼리티를 추구하지만 기본적으로 버라이어티라는 틀을 유지하고 있다. 잘 짜여진 대본은 없더라도 전체 맥락과 상황을 구성하는 작가들이 존재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의도된 미션들이 주어지고 그것을 수행해나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돌발성 때문에 리얼리티가 보여진다. 무한도전 이후로 쏟아졌던 많은 예능들 -- 1박2일, 패밀리가 떴다, 런닝맨, 정글의 법칙 등 --은 무한도전의 카테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무한도전의 진정성이라고 표현했지만 리얼버라이어티의 기본은 소통의 문제였다. TV 속에만 등장하는 스타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네의 일상 생활 속에서 부대껴 살아가는 이웃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 리얼버라이어티였고, 그것이 일종의 시청자와의 소통이었다. 실제 많은 에피소드에서 연예인들만의 말장난, 몸장난이 주를 이룬 특집보다는 일반 시민들과 부딪히는 상황이 많았던 특집이나 사회문제/시대정신을 반영한 특집들에서 더 큰 호응을 얻었다는 것은 TV 속의 연예인과 일반 시민들 사이의 교감/교류, 즉 소통의 핵심성을 잘 보여주었다.

그리고 더 최근에 방송의 한 꼭지를 차지했던 다양한 오디션 프로그램들에서는 TV스타가 아닌 재능을 가진 일반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일반인들과 연예인들의 묘한 비중의 차이에서 프로그램의 성패가 결정된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일반인이 연예인으로 발굴되고 성장해가는 것도 일종의 큰 벽이 허물어지는 소통의 정점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오디션 프로그램이 성숙할 수록 더욱 부각되는 것이 진정성이었던 것같다.

리얼버라이어티와 오디션의 시기를 넘어서 최근에 보여주는 트렌드는 말 그대로 '진정성'을 핵심 개념으로 내세우는 것같다. 최근에 새로 시작해서 호응을 얻고 있는 프로그램들의 특징은 리얼버라이어티에서 보여줬던 시나리오가 무시되고 있고, 버라이어티가 아니라 그냥 리얼리티를 주무기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소위 말하는 관찰카메라, 즉 그냥 다큐버라이어티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아빠 어디가' '나 혼자 산다' '진짜 사나이' '인간의 조건'에서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컨셉이 그냥 스태프들은 상황을 관찰할 뿐이다라고 말한다. 큰 틀에서 미션이 주어지거나 상황이 설정되기는 하지만, 이전의 무한도전이나 1박2일에서보다는 자유도가 훨씬 더 높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글의 법칙'은 과도기적인 작품이었던 것같다.) 미션은 주어지지만 아이들의 돌발성을 그대로 허용하는 아빠 어디가, 주제만 정해놓고 일주일간 그냥 관찰만하는 인간의 조건, 군대/내무반이라는 상황만 존재하는 진짜 사나이, 그리고 그냥 혼자 잘 살고 있는 독거남들의 집에 카메라만 설치한 나 혼자 산다 등의 최근 프로그램들은 그냥 현실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그런 가공되지 않은 현실이 진정성이다. (최근 정법 뉴질랜드편에서 제작진들이 애써 변명하려했던 것도 일종의 그런 진의를 재설정하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한다.)

무한도전으로 시작된 리얼버라이어티에서 보여줬던 소통의 정신이 슈스케를 통해서 더욱 부각이 되어 나는 혼자산다로 이어지면서 만들어진 여과되지 않은 현실성이라는 키워드가 비단 TV예능의 트렌드로 끝날 것같지가 않다.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적인 문제에서 소통이 중요한 키워드였듯이 이제는 진정성이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용하고 만들어갈 IT 서비스들도 그런 사회 분위기/트렌드에 맞춰져야 한다. 이 시대와 세대가 요구하는 것이 진정성이라면 IT서비스도 진정성의 구현에 초점을 둬야 한다. 사실 진정성없는 소통은 무의미하고 소통이 없는 진정성은 보여질 수가 없기 때문에 소통과 진정성을 별도의 개념으로 떼내어 얘기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소통의 정신과 진정성이라는 시대정신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정도로만 얘기를 해두자. 그리고 잘못된 소통은 소음에 불과하다. 현재 논란의 중심에 있는 층간 소음이 그렇고, 계층간 소음이 그렇다. 진정성이 없는 소통은 그냥 소음에 불과하다.

지난 글에서 밝혔듯이 지난 정권에서는 소통이 가장 큰 화두였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MB정권은 소통의 부재의 시대가 아니라, 신뢰의 부재, 즉 불신의 시대였던 것같다. 그런 내재되고 억압된 신뢰라는 문제가 -- 그는 소통이라는 키워드로 의제를 설정했으나 -- 진정성이라는 키워드로 정리된 것이다. 그런 분위기가 TV방송에서 그대로 나타나는 것같다. 새로운 정권이 시작하기 전에 진정성의 시대를 잘 맞이해야 된다라고 말했는데, 몇 달이 지난 지금 진정성이 크게 훼손된 것을 본다. 공약이 공약이 되어버렸다. 어떻게 해서 국민들이 그렇게 세뇌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공주님은 약속을 잘 지키는 정치인이다라는 신기루같은 믿음이 있었고, 어쩌면 그런 허상 때문에 지금 여제가 되었다. 그런데 이제 실제 보여지는 여과되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그래서 언론과 대중에 잘 노출되려하지 않는다) 진정성이 의심받기 시작했다. (의심받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나마 불행중 다행이다. 꿈에서 벗어나는 길은 먼저 잠에서 깨어나야하기 때문이다.) 시민이 주인이 되지 못하는 경제민주화라든가 실체가 없는 창조경제라는 용어로 여전히 국민들을 꿈꾸게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실망하고 있다.

MB시대를 거치면서 가장 각광을 받았던 서비스는 촛불과 함께 아고라라는 공론의 장이 이슈가 되었고, 이후에 아이폰의 등장과 함께 각종 SNS라는 연결과 소통의 서비스가 주를 이뤘다. 인터넷이 처음 대중화되던 시절에는 오프라인의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대체되었듯이 스마트폰의 시대를 맞으면서 모든 온라인 서비스들이 모바일 최적화가 이뤄졌고, 그런 모바일 퍼스트의 핵심은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중심으로 어떻게 (서로를 -- 정보와 사람, 사람과 사람) 연결해서 묶을 것인가?가 시대의 화두였던 것같다. 소통의 시대에 소통의 도구가 각광을 받았던 것은 당연하다. 아고라가 그랬고, 트위터가 그랬고, 페이스북이 그랬고, 카카오톡이 그랬다.

소통의 시대에서 진정성의 시대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 새롭게 등장하는 서비스들도 소통이 핵심이 아니라 진정성이 핵심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제 소통의 도구는 그냥 기본이 되었다. The step after ubiquity is invisibility라는 말이 생각난다. 이제 모든 서비스의 기본에 모바일과 소통의 정신이 체화되어버려서, 모바일이나 소통을 전면에 내세울 필요가 없어졌다. 소비자들은 으레 새로운 서비스가 나오면 모바일에서도 잘 작동하겠지 또는 친구들과 공유하는 것이 편하겠지라고 생각한다. 지난 몇 년동안 중요하게 생각되던 기능들은 이제 모든 서비스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 시점에 역트렌드로 모바일무시 또는 고립된 서비스를 만들어서 특정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도 있다. 어떤 측면에서 개인정보와 프라이버시 문제와 함께 그런 역트렌드 서비스가 오히려 진정성의 구현으로 각광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소통의 기능이 기본이 되어버렸다면 이제 새로운 차별화 포인트가 필요하다. 진정성의 시대에 그런 차별화 포인트는 당연히 진정성일 듯하다. 개인의 진정성을 표출할 수 있는 공간/기능/서비스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미안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여전히 진정성은 모호한 개념이다. 적어도 소통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가 있지만, 진정성은 겉으로 표현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굳이 표현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진정성이라는 단어의 개념부터 제대로 정립해야겠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면 어느 정도 정리될 것같다. 적어도 진정성의 여부를 사람들이 판단하는 기준은 생길 것같다.

일상 속의 진실된 나의 모습을 알리는 서비스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아주 사소한 생각이나 활동이더라도 그것이 나 자신을 제대로 반영하는 것이라면 일기를 적듯이 표현하는 그런 서비스일 수도 있다. 진정성의 시대에는 개인이 개인으로써의 브랜드가 중요해질 것같다. 평판이라 불리는 그것이 개인에게 더 중요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의 평판을 관리하는 서비스가 마련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역으로 평판 세탁을 도와주는 서비스도 성행할지도 모르겠다. 공인들의 말과 행동을 감시해서 그 사람의 진정성을 관찰, 평가하는 것들도 등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정치인들이 했던 모든 말을 모아서 그 사람의 일관성을 측정해보고 실제 선거철에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고, 선거 공약으로 등장했던 것들이 얼마나 제대로 지켜졌는지에 대한 것도 점검될 것이다. 그런 공인들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것이 그저 깨어있는 시민단체를 넘어서 대중에게 퍼질지도 모르겠다.

이제 단순 연결보다는 속깊은 신뢰가 더 중요해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런 신뢰 진정성의 시대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짧은 설을 내부인들에게 짧게 펼치고 싶어서 글을 적으려고 했는데 너무 장황하게 흘러갔고 또 본론/결론은 미약해졌다. 그냥 시대의 정신이 소통에서 진정성으로 넘어가고 있으며, 새로운 서비스는 그런 흐름에 맞춰야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내 글이 늘 용두사미로 끝나지만, 구체적인 액션플랜을 제시하기보다는 그냥 시대(정신)의 흐름을 말해주고 싶었다.

(2013.04.28 작성 / 2013.05.06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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