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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글을 적는 이유

...는 한두가지로 특정할 수가 없다. 그냥 적고 싶은 생각이 있거나 뭔가를 적지 않으면 안 될 것같은 느낌을 받을 때마다 적는다. 그러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적는 경우는 보통 나를 숨기기 위해서 글을 적는 것같다. 내 과거나 생각을 다 공개하면서 나를 숨긴다는 것이 모순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나 자신을 미화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내가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보여주고 나머지를 숨긴다는 의미다. 단순히 나 자신이 관찰의 대상이라면 사람들은 다양한 시각에서 나를 관찰할 것이다. 그러나 데이터마이너 정부환이라고 태그를 붙여놓으면 사람들은 데이터마이닝의 관점에서 나를 관찰한다. 내가 나 자신을 데이터마이닝이라는 프레임을 씌워놓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굳이 다른 관점에서 나를 보지 않는다. 그러면 내가 가진 데이터마이닝 이외의 것들은 안전하게 숨길 수가 있다. 그리고 다양한 이슈를 제기함으로써 관심을 분산시키는 효과도 있다.

마치 TV광고를 보여주듯이 나 자신의 일부만을 보여준다. (불편한 광고에 대해서는 조만간 여러 편 적을 예정이다.)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기업 이미지/브랜드 광고를 보여주면 사람들은 그 기업에 친숙해진다. 이미 그들의 머리 속에서는 반올림, 불산가스누출사고, 태안기름유출사건, 순환출자나 비자금/X파일 등의 흑역사는 사라져버린다. 내가 나에 대해서 글을 적는 것도 그런 역할을 한다. 가끔 부끄럽고 민망한 실수담도 글에 담는 것도 일종의 전략이다. 내가 정한 선 내에서 나의 치부를 보여줌으로써 저 사람은 자신의 치부까지도 솔직히 보여주는 사람이구나라고 사람들을 속일 수 있다. 그렇게 세뇌를 시키고 나면 내가 잘못을 저지른 후에 '제 잘못이 아니에요'라고 변명을 하면 '저 사람은 자신의 치부도 솔직하게 드러내는 사람인데 설마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겠어?'라는 의식을 심어준다. 물론 여지껏 이런 전략적 관점에서 의도적으로 글을 적지는 않았지만, 결국 지난 글들을 생각해보면 무의식적으로 그랬던 것같다.

그러면 언제 글을 적고 싶어지는가? 이것도 딱히 뭐라 특정할 수가 없다. 책이나 기사를 읽으면서 공유하고 싶은 내용이 있을 때도 있고, 기사나 광고를 보면서 뭔가 속인다는 느낌을 받고 비판하고 싶을 때도 있고, 특강을 들어면서 새롭게 알게된 사실이 있을 때도 있고, 때로는 이제껏 의식하지 못했던 한 단어/표현에 필이 꽂히는 경우도 있다. 매번 특정 사실이나 표현을 글로 바로 연결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가끔 메모를 해두는 경우도 있고, 그러면 언젠가는 그 표현을 마치 내가 만들어낸 양 사용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많은 경우는 잡생각을 하다가 과거의 기억들과 최근의 사건들이 연결되는 경우도 있다. 결국은 그냥 생각이 떠올랐고 그걸 글로써 충분히 적을만하다고 판단되면 글을 적는 것같다. 책을 읽거나 기사/웹문서를 읽거나 TV광고를 볼 때는 글감이 생각나는데, 예능이나 드라마를 볼 때는 별로 그런 경험이 없는 것같다. 의식적으로 글을 적겠다고 마음먹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냥 무장해제시킨 상태에서는 별로 글에 대한 욕구가 없는 것같다. 어쩌면 내가 글을 적는 이유는 TV를 보는 것과 비슷한 즐거움을 얻기 위한 수단인지도 모르겠다.

글을 적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시점과 실제로 글로 표현하는 시점에 차이가 나기 때문에 애초의 생각을 그대로 글로 적혀지지는 않는다. 보통은 글을 적는 시점에 그냥 떠오르는 표현을 그대로 막 적어내려 간다. 지금도 게임을 하면서 이런 글을 적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바로 글로 적는데, 글의 내용은 지금 막 생각나는 것들이다. 바로 이 문장까지도… 운전을 하면서 글을 적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운전중에는 구체적인 표현까지도 생각해두는데 막상 컴퓨터 앞에 앉으면 전혀 새로운 내용이 만들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요즘은 운전시간도 짧고 복잡한 길을 다니기 때문에 심도깊은 생각은 못하는 편이다. 그래도 어느 한 순간에 스쳐지나가는 생각에서 글의 실마리가 잡히는 경우가 많다. 가끔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가 바로 생각이 떠올라서 안달이나는 경우도 있다. 간단히 메모를 남기기도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컨텍스트가 사라져서 애초의 글이 나오지 못한다.

생각을 바로 글로 표현하기 때문에 감정선에 따라서 거칠거나 과한 표현이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나 자신을 숨기는데 실패한 경우다. 그러나 특정 민감한 이슈에 대해서는 말을 순화시키고 교묘한 이중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그런 무미건조하지만 무의미하지는 않은 글을 통해서 나 자신을 숨기는 거다. 때로는 감정선이 폭발했지만 대부분의 글과 표현은 고도로 계산된 것들이다. 사람들이 그냥 지나친 나의 작은 행동과 말 속에 깊은 계산이 깔려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람들, 특히 여성들 앞에서는 제대로 계산된 행동과 말을 못하는 것같다. 그래서 가끔 내 글은 특정 여성 또는 여성군에서 연상된 생각을 짧은 중의적 의미로 표현한 경우도 있다. 가진 것보다 갖지 못한 것이 더 큰 상상력의 원천이다. 그러나 전혀 별개의 글에서 사람들은 그것을 이성의 문제로 결부시키는 것을 보면서 조금 황당하기도 하다. 일부러 컨텍스트를 숨긴 글을 사람들이 다르게 해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나도 나만의 컨텍스트가 있듯이, 그도 그만의 컨텍스트와 의식체계가 있기 때문에 내 문제를 객관화시키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주관화시켜서 해석하는 것이다. 의도가 없는 글에서 사람들은 의도를 말하라고 강요한다. 이때는 조금 피곤하다. 어쩌면 의도가 있었던 글을 사람들이 이미 의도를 알아차려서 재차 확인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냥 글을 마쳐야겠다. 이 글도 위에서 말한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나를 충분히 숨기고 있고 또 즉흥적으로 글을 적고 있다.
(2013.02.08 작성 / 2013.02.15 공개)
그리고 이렇게 작성일과 공개일을 명시하는 이유는 최근에 글을 미리 적어두고 공개하기 때문에 중간에 사실관계가 바뀌었을 수도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가끔 당일 또는 즉시에 공개할 필요가 있을 때는 다른 글에 앞서 공개하거나 당일에 바로 공개하기도 한다. 사람들을 나의 과거에 묶어두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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