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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Op

이동통신사 사례에서 본 정부규제의 불편한 진실

대선 이후의 우울한 기분도 전환하고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해서 한라산 산행을 계획했었는데, 아침에 날씨도 많이 흐리고 조금 늦게 일어나서 그냥 사려니숲길에 다녀왔습니다. 4km정도 걸어가다가 산행과 달리 숲길이라 별로 재미가 없어서 그냥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한 무리의 남자들이 어제 방통위가 이동통신 3사의 부당한/불투명한 보조금 지급 등의 불공정거래를 이유로 과징금 및 영업정지 결정을 내린 사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관련뉴스들) 그들의 대화를 우연히 들은 이후, 돌아오는 동안 그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잘못을 저절렀으니 규제 및 과징금 처분이 내려진 것은 당연하지만, 그 이면에 몇 가지 불편한 진실이 있습니다.

독과점시장?
현재 대한민국의 이동통신사업은 SKT, KT, LG U+ 이렇게 3사에 의한 과정시장입니다. 보통의 독과점 시장에서는 사업자들 간의 담합에 따른 가격결정, 일자조정 등으로 소비자들에게 불이익을 주기 때문에 규제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그런데 이동통신사업에서는 3사 간의 시장점유율을 놓고 심한 출혈경쟁을 펼치는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에서 독과점을 규제하고 있는 이유는 사업자들 간의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서 소비자들에게 양질의 서비스/제품을 제공하는 것을 독려하기 위함도 있지만, 더 현실적으로는 가격경쟁을 통해서 소비자들에게 더 낮은 가격으로 서비스/제품을 제공하라는 이유가 큽니다. 그런데 이번 사안에서는 사업자들이 보조금이라는 형태를 통해서 소비자들에게 더 낮은 가격에 제품/서비스를 제공해주는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독과점 규제의 측면에서 조금 재미있는 현상입니다. 물론, 조삼모사식으로 초기에 보조금을 지급해주면서 향후 2~3년동안 노예계약을 맺어서 소비자들의 지갑을 털어버리는 것에 대한 규제도 있고, 지나친 가격경쟁에 치우쳐서 품질경쟁이 이뤄지지 않는 것을 우려한 조치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자유시장에서 사업자들 간의 경쟁을 통한 가격인하를 규제한다는 것이 조금은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불공정행위?
이미 공시된 가격의 제품을 불법적인 수단 (보조금)을 통해서 낮춰서 판매하는 것은 분명 불공정거래/행위가 맞습니다. 그런데 아주 불편한 진실은 바로 '공시된 가격'에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국내의 핸드폰 가격은 해외에서 판매되는 것보다 훨씬 비쌉니다. 그런데 제조사나 이통사의 보조금 명목으로 고가로 책정된 금액을 낮춰서 해외에서 판매되는 수준으로 소비자들에게 판매되고 있습니다. 왜 처음부터 제품의 가격을 부풀려서 공시를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통사들이 소비자들을 모으기 위해서 출혈경쟁을 펼친 것은 분명 불공정거래가 맞지만, 애초의 원인은 핸드폰의 제조사인 삼성과 LG 등에서 부풀려진 가격에 제품을 납품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현재 소비자들은 자기들이 사용하는 핸드폰의 정확한 정가를 알 수가 없습니다. 5~60만원에 판매되어야할 제품을 처음부터 100만원이라는 가격이 붙어서 출하되고, 4~50만원을 제조사 보조금, 이통사 보조금 등의 형태로 거짓 할인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통사들의 불공정거래에 앞서서 제조사들의 불투명한 가격결정정책에 대한 규제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삼섬 갤럭시S3가 처음 나왔을 때, 바로 땡처리제품으로 판매했던 것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불공정 형태에 대한 규제와 시정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소비자들은 국내의 이통사 및 제조사들을 신뢰하지 않을 것입니다.

과징금? 수령자? 리니언시?
많은 이들이 궁금증을 가진 사안입니다. 왜 부당이득은 수천억씩 챙겼는데, 과징금은 부당이득의 1/10, 1/100정도인 몇 십/백억밖에 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상식적이라면 부당이득을 전부 되돌려받고, 여기에 더해서 몇배의 징벌적 과징금을 매겨야 비슷한 사례가 반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친기업 사람들은 이건 너무 사회주의적인 발상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되었다는 미국에서도 여러 기업을 상대로 한 민사소송에서 피해액에 더해서 엄청난 징벌적 보상액을 책정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본보기를 통해서 비슷한 부정을 미연을 막겠다는 것입니다.
피해는 국민이 받았는데 왜 과징금은 정부에서 거둬가느냐는 것도 이슈가 될 듯합니다. 기업들에게 과징금을 추징하는데, 소비자들에게 보상해주라는 내용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모든 소비자들에게 피해액만큼의 보상이 이뤄지고, 또 과징금도 피해자들에게 1/N로 고르게 돌아가도록 해주는 것이 맞지 않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리니언시 Leniency제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래 동영상 참조) 담합을 해서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입힌 경우, 담합의 주체 중에 일부가 그 담합의 내용을 정부기관에 알려주면 해당 업체는 징벌/과징금을 감면받는 제도입니다. 담합의 주체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담합내용을 수사기관에 폭로하게끔 유혹하는 당근과 같은 정책입니다. 그런데, 그 담합을 통해서 가장 큰 이득을 얻은 업체에서 담합내용을 폭로하고 과징금 납부를 피하는 것을 자주 목격합니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가장 죄가 심한 업체가 이득은 이득대로 보고, 과징금은 과징금대로 피해가는 모순된 상황입니다. 담합에서 하위 업체가 리니언시를 활용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괜히 담합을 폭로했다가 큰 업체들에게 밉보이는 것이 향후에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고, 또 작은 업체는 큰 업체가 얼만큼의 부당이득을 취했는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제대로된 폭로/수사협조가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큰 업체는 상황이 다릅니다. 리니언시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들에 대해서도 처벌하는 대안이 필요합니다.

업데이트(12/26) 오늘 미디어오늘에서 '통신사 "영업정지 억울"..."속으론 좋으면서"'라는 제목의 기사도 나왔습니다. 이미 마케팅으로 과수요/과포화 상태의 통신시장에서 더 출혈경쟁을 해도 신규고객 유치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영업정지기간에 불필요한 마케팅비용을 절감해서 오히려 영업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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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들 외에도 불편한 진실은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다보면 진짜 눈뜨고 코베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요즘은 그래도 언론에서 제대로 주목하지 않아도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감시를 하고 인터넷 등에 정보를 제공해줘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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