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Gos&Op

프로는 프로가 아니다.

어제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는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저 여느 때와 같이 일방적으로 대화를 듣고 있는 중에 떠오른 생각입니다. 그 때 바로 떠올랐다기 보다는 오랜 고민이 그 순간 하나의 문장으로 만들어졌습니다. 20세기는 프로페셔널 professional 의 시대였습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프로의 시대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전히 다양한 분야/직업에서 프로들이 존재합니다. 전문성 또는 특수성이라는 측면에 갖혀있는 프로의 시대는 종말을 구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프로는 프로가 아니다'라는 말의 의미는 각 분야의 프로가 그 분야의 프로가 아니다라는 말이 아닙니다. 한 분야에서는 프로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절대 프로가 아니다라는 의미입니다. 현대에서 두 분야에서 동시에 프로로 인정받는 경우를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특정 분야에 전문 지식을 갖춘 경우라면 다른 분야에서는 아마추어 수준보다도 낮은 지식을 가진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운동선수들이야 잘 발달된 운동 신경 때문에 자신의 주 종목 외에도 다른 스포츠들도 잘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지만, 그 외의 분야에서는 한 분야의 전문가가 다른 분야의 전문가로 대접받을 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지금 귀농도 하나의 사회트렌드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특정 제조업이나 사무직에서 특별한 기술을 가진 사람이 바로 시골에 내려가서 노련한 농부가 될 수 없습니다. 적어도 3~5년 정도의 경험이 쌓인 이후에 농부의 모습을 조금씩 갖춰가게 됩니다. 회사와 농업이라는 극단적인 예가 아니더도, 한 사무실 내에서 여러 업무로 분화되어있는 현재 자신이 맡은 이외의 업무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기가 힘들고 어쩌면 구조적으로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한 분야의) 프로는 (다른 분야의) 프로가 아니다라는 문장을 만들었습니다.

일전에 '제4의 물결은 뭘까?'라는 글을 통해서 회사 내에서 텃밭동호회가 활성화되고 스스로 과일과 채소 등을 가꿔서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습니다. 궁극적으로 귀농이 미래의 트렌드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형식이 자급자족이 일종의 큰 트렌드 또는 변화가 될 것같다는 취지였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더 극명한 양분화가 이뤄질 듯합니다. 자신의 손으로 가꾼 음식으로 직접 만들어서 자신의 식단을 채우는 자급자족족들과 그냥 돈으로 농공장에서 만들어진 탐스러운 식자재료 전문 요리사가 만든 식탁에서 우아한 식사를 하는 타급타족족들로 양분화될 듯합니다. 타급타족은 당장 제 관심 밖이니 더 긴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자급자족족들이 늘어난다면 분명 그들은 멀티태스커가 될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기서 멀티태스커는 동시간 대에 다른 일을 동시에 하는 사람을 뜻하지 않습니다. 여러 분야에서의 전문성을 두루 갖춘 사람을 뜻합니다. 멀티태스커보다는 유틸리티맨/우먼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할 듯합니다. 낮과 주중에는 직장 또는 사무실에서 교환수단으로써의 돈을 위해서 일을 하고, 저녁이나 주말 시간에는 자신의 재미/취미를 위한 다양한 액티버티를 하거나 귀농/주말농장과 같이 자급자족을 위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듯합니다. 프로슈머Producer + Consumer 나 프로암 Professional + Amature 등이 뜻하는 아마추어리즘의 활설화를 뛰어넘는, 즉 다양한 분야에서 멀티-프로페셔널의 시대가 올 것같다는 얘기입니다. 사무실에서는 전문 프로그래머지만, 또 주말농장에서는 또 전문 농부가 되는 그런 시대가 올 듯합니다.

분명 과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멀티태스커/유틸리티맨들이었습니다. 밭에서 채소를 가꾸고, 논에서 벼농사를 짓고, 과수원에서 과실을 키우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살 집을 스스로 짓거나 고치기도 했습니다. 마을 축제가 되면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징이나 꾕과리를 잡고 노래를 불렀고, 덩실덩실 춤을 췄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채소농사는 채소 전문가에게, 쌀농사는 논전문가에게, 악기는 음악인들에게, 춤은 춤꾼들에게... 한 사람이 경우에 따라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던 과거의 모습이 많이 상실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자급자족이라는 트렌드, 어쩌면 웰빙이라는 더 큰 트렌드에 편성해서, 그리고 생산적인 아마추어 또는 잉여문화에 편성해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기술들을 배우고 삶에 적용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듯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멀티태스킹의 시대 또는 유틸리티의 시대가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또는 그런 시대 트렌드가 제4의 물결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합니다.

전문성을 더 갖출수록 전문성이 더 옅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T자형 인재상을 넘어서, U자형이나 W자형의 인재로 변화하고 있는 것같습니다. 적어도 2분야 이상에서 전문가라는 소리를 듣게 되고, 또 그런 상이한 두 분야를 결합해서 새로운 분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인재들이 각광을 받을 듯합니다. IT에 종사하는 프로그래머들이 새로운 농법을 배워서 IT농업을 만들어내는 것도 멀지 않을 듯합니다. 아니면 (사람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서 로봇을 만들어내듯이) 농업에 기반한 IT기술이 만들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때 데이터파밍 Data Farming이라는 용어도 나왔는데, 프로그래밍에도 파밍기법이 만들어질지도 모르는 일이죠. 오픈소스운동에서처럼 한명이 간단한 프로그램 씨앗을 뿌리면 다른 이들이 조금씩 기능을 추가해서 성장된 프로그램/서비스를 만들듯이...

---

최근에 적고 싶은 많은 글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글을 적어야할지 막막합니다. 그래서 그냥 적고 싶은 글의 화두 (제목)만 던저놓고, 그 이후에는 그것과는 무관하게 그냥 흘러가는 제 생각만 적게 됩니다. 비의도 낚시 Unintended Fishing이었으니 넓은 아량을 바랍니다. 한동안 계속 이런 글쓰기가 이러질 듯합니다. 그래서 조만간 '지식의 사춘기'라는 글도 적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