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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 Jeju

제주에서 어느 일요일 Once Upon A Time In Jeju

 성경 욥기에 보면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구절이 나온다. 오늘 내 일과가 이와 비슷한 것같다. 처음에는 그냥 여느 일요일과같았다. 아니다. 처음부터 달랐는지도 모르겠다. 평소 나의 일요일 일정은 11시에 예배를 드리고, 그 이후는 그냥 회사에 잠시 들러거나 해서 시간을 보내다가 집에 돌아와서 TV를 보고 새로운 한 주를 준비한다.  오늘은 시작부터 조금 달랐다. 평소보다 빠른 9시에 예배를 보러 간 것부터 달랐다. 원래는 7시 예배를 보고 이후에 산행을 할 계획이었지만, 눈을 떠니 8시가 다 되었기에 일단 2부 예배를 보기로 했다. 10시 30분 경에 교회를 빠져나와서, 인터넷에 올라온 단독주택 매물이 궁금해서 애월로 드라이브를 떠났다. 아, 그 전에 아점으로 고르멍드러멍 (구, 영분식)에서 식사를 할 참이었는데, 아직 식당을 열지 않은 관계로 그냥 가볍게 애월로 향했다.

 처음에는 원활했다. 인터넷에 매물로 나온 집을 정확히 찾아갔다. 아래의 집이다. 실내를 구경하거나 주인과 얘기를 나눠볼 생각은 없이, 그냥 집의 외관이나 위치 정보만 파악할 요량이었다.  아래 집은 약 3억원에 매물로 나온 건데, 앞에 잔디가 깔린 넓은 마당이 마음에 드는 집니다. 그런데 마을 정가운데 위치하기 때문에 상상 속의 전원생활과는 조금 거리가 멀다. 가격은 다소 비싸다는 느낌을 받지만, 지금 전반적으로 제주도의 주택가격이 이렇게 매겨져있기 때문에, 상대적인 가격으로 봤을 때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2억, 2억5천에 매물로 나온 집들과 비교해본다면 그렇다는 얘기다.


 그냥 집 한채만 구경하고 돌아오기에는 뭔가 부족해 보였다. 그래서 궁리 끝에 어제 페이스북에 친구들이 올린 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바로 아래의 사진에서 보듯이 물줄기가 멋있는 엉또폭포로 향했다. 근데, 물줄기는 어디? 그렇다. 이 폭포는 평소에는 폭포가 아니라 그냥 바위절벽과 물웅덩이에 불과하다. 비가 억수같이 오는 날이나 그 다음날만 폭포로 변한다는 거다. 분명 어제 엉또폭포에 다녀온 분들은 물을 봤다는데, 하루 늦게 간 나는 물을 볼 수가 없었다. 그런 폭포다. (참고기사) 그런데 문제는 나는 가볍게 출발했는데, 엉또폭포의 위치가 너무 멀리 있었다. 중문과 서귀포의 중간쯤에 위치해있다. 제대로된 폭포도 못 보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에는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더 서귀포쪽으로 드라이브를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들른 곳이 외돌개다. 11년 전인 2000년도에 연구실 동료들과 제주도에 놀러왔을 때, 다녀간 곳이다. 그런데 지난 3년 동안 제주도에 살면서 서귀포에는 자주 오지 못해서 11년만에 다시 보게 되었다. 외돌개나 섬들은 그대론데 그 주변이 많이 변했다. 관광객들과 올레객들을 위한 트래킹코스가 잘 정비되어있었다. 그런데, 난 11년 전의 흙길이 더 마음에 든다. 이곳에서 듣는 파도소리는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첫번째 사진은 외돌개에서 해무에 쌓인 보는 범섬 (맞을 듯)이고, 다음 사진이 외돌개다.

외돌개


 계속 서쪽으로 이동해서 쇠소깍에 들렀다. 지난 번의 정방폭포가 내륙에서 바다로 떨어지는 폭포였다면, 쇠소깍은 냇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이다. 주위에서 얘기를 자주 듣던 곳인데, 오늘 처음 구경했다. (외돌개와 쇠소깍 사이에도 천지연폭포, 칠십리, 정방폭포 등의 관광포인트들이 있음) 혼자서 잠시 들른 곳이라 큰 인상은 받지 못했다. 큰 인상을 받기에는 배가 너무 고팠다.


 쇠소깍을 출발해서 표선의 춘자싸롱에서 멸치국수를 먹을려고 했다. 한참 운전하다보니 표선까지 가기에는 배가 너무 고파서 남원에 있는 공천포식당이 생각나서 공천포식당에 가기로 급히 변경했다. 아뿔사... 그런데, 공천포식당은 남원에 있는 것은 맞기는 한데, 남원과 서귀포가 만나는 경계에 위치해 있었다. 즉, 쇠소깍 바로 옆에 위치해있다는 얘기다. 난 벌써 7~8km이상을 운전해왔는데... 그래도 나름 유명한 곳이기에 그리고 서귀포 쪽에는 자주 올 일이 없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결국 길에서 15km정도 불필요하게 낭비를 한 셈이다. 공천포식당은 물회만 판다. (알콜도 있다.) 한치물회와 자리물회는 6000원, 소라물회는 7000원. 요즘은 한치나 자리물회가 좋다고 해서 한치물회를 시켰다. 주변에 식당에서 가끔 한치물회가 나오는데, 한치를 구경하기 어렵다. 그래서, 원래 물회는 그런 거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공천포식당의 물회는 달랐다. 진짜 물반고기반이라는 말이 실감날정도로 한치가 듬뿍들어있다. 15km의 낭비는 결코 낭비가 아니었다. 양도 많고 고소한 한치물회... 서귀포에서 남원으로 지나가는 길에 시간이 맞으면 공천포식당에 가볼 것을 권합니다.

 
 배를 채우고 나니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그래서, 남원에서 교래리를 통해서 제주로 넘어왔다. 중간에 물영아리오름에 오를까도 생각했지만, 오는 길에 남씨가 많이 흐려져서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같아서 그냥 단순히 제주로 건너왔다. 사려니숲길이 제주-남원 도로 상에 있다는 것도 확인했으니 다음에 사려니숲길에도 가봐야할듯..

 처음에는 가볍게 집구경하러 마실을 나갔다가 제주도 반바퀴를 돌았다. 그래고 지금은 녹초가 되어 여느 일요일처럼 저녁 오락프로그램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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