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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Op

실용이란 이름으로..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Practical?

 '실용'이라는 용어가 한 순간에 쓰레기가 되었다. 학교에서 국사 시간에 조선후기를 다루면서 '실학'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뭔가 모를 뿌듯함을 느낀 적도 있었다. 실용적이다. 얼마나 좋은 용어인가? 이제껏 우리 사회에 내재했던 많은 부조리나 겉치레를 모두 걷어내고 알맹이만 남길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작은 기대를 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적어도 지난 3년 간의 경험에서 '실용'만큼 누더기가 되어버린 용어/개념도 없는 듯하다. 그렇다. 자기들 나름대로 '실용'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정권이 들어섰다. 그리고 3년이 지났다. 처음부터 여러 실정을 보면서 '실용'에 대해서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아침에 문득 실용에 대한 더 깊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하루종일 잊고 있던 그 용어가 때마침 다시 생각나서 이렇게 글을 적는다. 이 글에서 정치적인 얘기를 할려는 것도 아니다. 그냥 실용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해볼려는 것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오해도 말고 곡해도 말기 바란다.

 실용을 영어사전에 찾아보니 'practical use' 또는 'utility'라고 적고 있다. 일상적으로 '실용적'이라고 말하면 그냥 'practical'로 통한다. 그런데, 이 practical이라는 용어가 몰라도 'practice'에서 나왔을 거다. Practice는 정의상 '연습'이라는 뜻을 가진다. 물론 Best Practice에서처럼 '관행'이니 뭐 다른 뜻으로 사용되지만, 길을 가다가 마주치는 한국인들에게 practice가 뭐냐고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연습'이라고 답할 거다. 그러면, '연습'이란 뭘까? 연습은 언제 닥칠지 모를 상활들을 미리 설정을 하고, 여러 시나리오에 맞춰서 반복 실행해보는 거다. '훈련'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듯이, 운동선수들이 앞으로 다가올 경기/시합을 위해서 미리 몸을 만들어두는 것이 practice다. Practice라는 용어, 즉 '연습' 또는 '훈련'이라는 개념/이미지에서 '실용'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즉, '실용'이란 미래의 개연성있는 사건에 대해서 미리 (즉, 과거에) 대비를 하며 훈련을 하는 거다. 그런데, 오늘날의 '실용'은 그냥 '현재' 또는 '즉시'의 의미로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당장 효과가 있는 것이 실용이고, 현재의 예외상황에서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는 것이 마치 '실용'의 전형이 되어버렸다. 광우병과 촛불집회, 천안함 사건, 연평도 사건 등의 과거의 사건들을 회상하지 않더라도, 현재 벌어지는 구제역 사태만을 보더라도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실용'이라는 개념을 볼 수가 있다. 수명이 다한 타이어가 펑크가 났는데, 새로운 타이어로 교체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냥 정비소에서 고무땜질로 막아보겠다는 그런 임기응변의 방식이 '실용'적인 방식이 되었다. 앞서 장황하게 practice를 가지고 얘기를 했다. '실용'이란 단지 '지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부터 미리 차근차근 준비해왔던 것이고 또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바로 참다운 '실용'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 '현재'보다는 '지금 당장'만 보인다.

 그런데, 이런 성향이 비단 이 정권의 문제는 아닌 것같다. 이 정권은 그냥 그런 이 사회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 것뿐이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억울할 수도 있다. 물론, '실용'이라는 용어를 잘못 들고 나온 자신을 가장 먼저 탓해야겠지만... 그런데, '인터넷'과 '실시간'이 유행하는 것이 우리에게 '지금 즉시'라는 실용의 이미지를 더 키운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던 그 시절에는 아무리 사기꾼같은 친구의 구라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인터넷이 되면서부터 누군가 조금 이상한 얘기를 하면, 바로 PC 앞에 앉아서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버릇이 들었다. 그래도 5~10년 전에는 사실을 확인하는데, 적어도 수분 ~ 몇시간의 딜레이가 있었다. 스마트폰이 보급된 요즘은 누가 얘기를 하면 바로 스마트폰부터 꺼내드는 것같다. 딜레이가 수초도 되지 않는 것같다. 이 시대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참을성/인내를 상실하고 있는 것같다. (물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를 포함해서 그렇다.) 이런 인내심의 부족을 만들어낸 '즉시 확인' 개념이 '실용'과 연결되어있는 것같다. 그리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는 '사실확인'을 위해서는 도서관에서 책을 뒤져보거나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했어야 했다. 아니면, 스스로가 미리 다양한 종류의 책과 정보를 습득하고, 전문가가 되도록 노력했어야 했다. 즉, 전문가/장인이 되겠다는 그런 미래의 비전을 놓고, 미리 (과거에) 책을 읽고 공부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사실확인을 위해서 미리 공부할 필요가 없다. 전문가가 되겠다는 그런 노력도 필요없다. 그냥 아이폰을 꺼내기만 하면 된다. (일부러 스마트폰대신 '아이폰'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우리는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분명,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가 엮여서 만들어지는 개념인데... 우리에게 오직 '현재' 아니, '지금'밖에 안아있지 않다. 과거의 경험을 말하는 것은 전혀 '실용'적이지 못하고 샤프하지 못하다. 그리고, 미래의 희망과 비전을 말하는 것도 전혀 '실용'적이지 못하고 섹시하지 못하다. '실용'이 '실용'으로써의 진정한 가치를 누릴려면 '꾸준한 과거'와 '불투명한 미래', 그리고 '활기찬 현재'가 모두 존재해야 한다. 제발 우리에게, 이 사회에 과거와 미래를 돌려놓자.

 지금 벌어지는 구제역 사태가 전형적인 '실용'의 나쁜 예가 아닌가? 지난해 신종플루처럼 구제역이 올해 갑자기 생겨난 질병이 아니다. 꾸준히 발생해왔던 질병이다. 그런데, 이런 전염성 질병에 대해서 미리 준비해두지 않았다.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미래를 대비하는 것은 전혀 '실용'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찌어찌해서 이번 사태가 잘 마무리되었다고 치자, 그러면 내년에는 잘 준비가 되어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을 거다. 말이 많은 '4대강' 사업도 이런 왜곡된 '실용'의 전형이 아닌가? 4대강이 완공된 후에 어떤 모습일까?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없다. 그냥 임기 중에 치적을 하나 만들어두면 그만이다. 5년밖에 없는 정권에게 100년의 미래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문제였고, 우리의 불찰이었다. '과거를 부정하는 이들에게는 미래도 없다.' 잃어버린 10년은 잃어버릴 100년, 1000년이다. 남북관계 문제도 그렇고, 최근의 소말리아 해적사건도 그렇다. (소말리아 해적사건에서, 그네들이 해적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과거를 무시하고 단지 그들의 지금 행위만을 가지고 '해적'이라고 쉽게 이름표를 붙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단지 그들을 힘으로 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바른 미래상을 제시/준비해주지 못한다면 불행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아우르는 것이 진정한 실용이다. 시간의 개념에서 뿐만 아니라, 공간의 개념에서도 단지 한 부분/지역의 문제만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전국/전지구적으로 영향을 파악하고 대비/치료하는 것이 실용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아픔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 실용이다. '지금 즉시 이 부분'을 해결하자가 아니라, '언제든지 우리 모두의 문제들'을 해결하자는 것이 진정한 실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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