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의 수준이 낮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보수언론은 보수언론대로 자기들의 수준낮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로보고, 진보언론은 진보언론대로 자기들의 특유의 삐딱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런 왜곡된 세상보기는 지면에 실린 글에서 바로 티가 난다. 그런데, 정치나 경제 이슈 등과 같이 객관성이 부족한 사안이나, 칼럼/논평과 같이 사실보다는 자신들이 말하고자하는 주장을 펼치는 영역이 아닌, 객관성을 요하는 영역 (예, 실제 일어난 사건에 대한 리포팅이나 외국의 언론을 번역한 글)에서조차도 주관성이 지나치게 한국언론이 강요하는 것같다. 여러 블로그 등에서 삼성의 언론플레이에 대해서 혀를 차는 포스팅을 많이 올렸지만, 나도 이런 포스팅에 동참하게 될줄은 꿈에도 몰랐다. IT/과학 섹션에 들어가는 기사들이 객관성이 아닌, 주관성 ('광고성'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맞을 듯)에 바탕을 둔 기사들이 넘처나는 것은 너무나 안타깝다. 오늘 한국경제에 실린 '아이패드 적수…NYT '아이패드2' WSJ '갤럭시탭' 왜?' 기사를 보면서, 내가 그냥 침묵하고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IT/과학 섹션의 기사라서 객관성이 중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리고, 이전부터 삼성언플에 충분히 익숙해져있기 때문에), 그것보다도 기사의 냉용이 외국의 유수 언론사인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한 기사인데, 원문을 왜곡시키는 것은 도저히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
먼저 기사에 언급된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사를 링크걸겠다.
앞의 뉴욕타임스 기사 (정확히 이 기사가 맞는지 의심이 듬.)는 Nick Bilton이 적은 글로써, 2010년을 태블릿의 해로 생각했고, 2011년에는 태블릿의 대중화가 더 가속될 것이라는 기사다. 기사 중에 지금 여러 업체들이 아이패드에 대항하기 위해서 내년 CES 등에서 발표를 준비중이지만, 어떤 회사/제품들이 애플을 이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던진다. 그러면서, 애플도 아이패드2를 준비중이라는 루머가 있다라고 적고 있다. (의역하자면, 아이패드2가 아이패드의 대를 이으면서 대세를 굳힐 듯하다.) 그렇지만, 구글이 안드로이드와 크롬OS의 업그레이드를 준비중이기 때문에 더욱 태블릿 전쟁이 흥미로울 것같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리고, 뒤의 워스트리트저널의 기사는 2010년의 전반적인 테크제품/트렌드를 정리해주는 기사다. 그 중에서, IPAD라는 문단에서 아이패드에 대한 소개와 함께, 서브문단으로 태블릿의 경쟁이 가속화될 것같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경제에서 갤럭시탭이 아이패드의 진정한 경쟁자라고 소개한 부분은 바로 "So far, Apple has had the tablet market essentially to itself, with Samsung Electronics Co.'s Galaxy Tab its only real competitor at the cash register." 이 부분이다. 그런데, 기사를 자세히 보면 이 문장이 갤럭시탭이 아이패드이 진정한 경쟁자라는 뜻은 아닌 것같다. (WSJ은 11월에 갤럭시탭이 출시되었을 때도, 아이패드의 첫번째 경쟁자라는 표현의 기사가 실려있기도 하다.)
한국경제의 기사가 왜 엉터리냐 하면,
- 뉴욕타임스와 WSJ의 기사의 시제가 다르다는 것이다. 글을 잘 보면 알겠지만, 뉴욕타임스의 기사는 2011년의 기술전망을 예측한 것이다. 여러 업체들이 태블릿PC를 내놓겠지만, 애플은 아이패드2로 바로 맞대응하기 때문에 당분간은 애플을 이기기는 힘들어 보인다는 의미로 글을 적었다. 그런데 WSJ는 2010년의 기술동향을 요약한 글이다. 즉, 뉴욕타임스는 2011년을 얘기하고 있고, WSJ는 2010년을 얘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시기의 경쟁을 얘기하는 기사를 가지고, 동일하게 아이패드의 경쟁자는 누구인가?를 묻는 것은 억지중이다.
- WSJ에 포함된 'REAL'의 의미를 오역 (의도적인 오역인지는 모르겠으나)하고 있다. REAL은 우리가 너무 잘 알듯이 '실제'를 말한다. 그러니, 위의 기사에서 its only real competitor를 직역하면, '아이패드의 유일한 진짜 경쟁자'로 해석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전후 문장을 모두 읽어보면, 여기서 사용된 REAL은 '진짜의'를 뜻하기 보다는 '실재하는/실존하는'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사전에서도 앞의 '진짜의'는 real의 첫번째 의미, '실재하는'은 real의 두번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즉, '갤럭시탭은 현재 존재하는 아이패드의 유일한 경쟁자'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뒤에 이어지는 문장을 보면, 내년에는 모토롤라나 RIM에서도 태블릿을 생산/판매하기 때문에 대안이 등장할 것이다 (The New Year will bring alternatives from Motorola Inc. and RIM among others.)라고 적고 있다. 즉, 2010년 상황만을 본다면, 다른 메이저업체에서는 아이패드에 대항하는 태블릿PC를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실존하는 아이패드의 경쟁자는 오직 갤럭시탭 밖에 없었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내년 (2011년)에는 다른 업체들도 제품을 출시하기 때문에 경쟁이 심화될 것같다는 의미로 글을 적고 있다.
- 그리고, 제가 다른 WSJ 기사를 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위의 WSJ기사에서는 한국경제에 실린 "WSJ은 이같은 주장의 근거로 '출시된 지 2개월여 만에 글로벌 판매량 140만대를 넘어선 갤럭시탭의 판매량'을 들었다."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없다. 현재 WSJ.com에서 only real competitor (한국경제 기사에도 등장하는 문구)를 포함한 기사는 두건밖에 없다. 하나는 위에 제시한 기사고, 다른 하나는 WSJ기사가 아니라, 다른 여러 매체들에 등장하는 기사를 하나로 묶어놓은 기사다. 해당 기사를 찾아서 들어가도, 갤럭시탭의 판매량 등에 대한 내용은 없고, 2011년 CES에서 다른 태블릿PC들이 등장해서 경쟁이 치열해질 것같다는 내용 외에는 없다.
늘 그렇듯이, 한국경제는 분명 의도된 아전인수 오역으로 보인다. 소위 기자라고 불리는 그 양반은 소설쓰는 능력만 키우지 말고, 영어 해석하는 능력도 같이 좀 키워줬으면 좋겠다.
더 가관인 것은 한국경제 말미에, 뉴욕타임스는 지면 판매부수가 100만 밑으로 떨어져서 어려움을 겪어서 아이패드용 구독BM때문에 논란을 일으키고 있으며, WSJ는 이미 유료화에 잘 정착해서 올해 $60M의 수익을 올리고 상위 25개 언론사 중에 유일하게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고 칭찬하고 있다. 아이패드에 대해서 호의적인 글을 적은 뉴욕타임스는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나름 갤럭시탭에 호의적인 (기자 양반이 그렇게 느낀) 기사를 쓴 WSJ는 찬양하는 이상한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아이패드의 경쟁자로 시작한 기사에서 왜 뉴욕타임스와 WSJ의 현재 경영상태까지 집고 넘어가야하는 걸까? 그것도 한쪽은 부정적으로, 다른 쪽은 긍정적으로... 뉴욕타임스는 아이패드를 통한 유료화에 혈안이 되어서 다급한 상황에서, WSJ는 이미 유료화에 성공했기 때문에 여유롭게 태블릿PC 시장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라고 친절하게 소설의 결론을 짓고 있다. * 참고로, WSJ, 더 나아가 루퍼트 머독의 News Corp.가 유료화에 성공했다는 명확한/구체적인 증가가 아직 일반에 공개된 적이 없습니다. 다른 매체/분석기관들에 따르면, 유료화 선언 이후에 구독자가 1/10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얘기는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fiction 기사를 보아야 하는가? 이렇게 소설 쓸 거 다 쓰면, 소는 누가 키워, 소는. 기자양반, 이제 소설은 그만 쓰시고, 그냥 소나 키우세요. 소나. .. 김동훈씨, 당신 이름을 기억해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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