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샤프 SHARP의 흥망을 다룬 영상을 추천해줘서 봤다. 기승전결이 깔끔하다. 샤프펜슬 개발 (기), 라디오와 TV 수상기 생산 (승), 반도체와 LCD 투자 (전), 마지막으로 헐값에 폭스콘에 매각 (결)이다. 결을 좀 더 자세히 얘기하면 무리하게 10세대 LCD 공장에 올인했는데, 대규모 공장을 건설하는 동안 (3년?) 삼성과 LG가 따라잡았고 OLED라는 새로운 기술로 스크린 기술이 넘어가버렸다. 대규모 투자비를 충당하기 위해 구시대 기술 제품을 비싸게 팔아야 했는데 수요는 당연히 없을 테고 결국 망테크를 탄 거라고 한다.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 Form is temporary, class is permanent.”라는 빌 샹클리의 말마따나 본질은 망각하고 순간순간 변하는 기술/트렌드만 쫓으면 탈 난다.
잠시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의 얘기를 들어보자.
I very frequently get the question: 'What's going to change in the next 10 years?' And that is a very interesting question; it's a very common one. I almost never get the question: 'What's not going to change in the next 10 years?' And I submit to you that that second question is actually the more important of the two -- because you can build a business strategy around the things that are stable in time.
사람들은 내게 10년 뒤에 어떻게 변할지를 묻지만 나는 10년 뒤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이 뭐냐고 스스로 묻는다. 형태는 늘 변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샤프의 몰락은 기술 (LCD)이 영원할 거라는 잘못된 예측 때문이다. 변하지 않는 사람의 ‘본다’라는 행위를 놓쳤기에 LCD에 매달리면서 OLED라는 새로운 기술을 놓쳐버렸다. 이전의 성공이 다음의 실패에 결정적일 때가 많다. 현재의 캐시카우를 죽이지 않고는 미래의 먹거리를 얻을 수 없다. 성공의 발판이 된 프레임을 스스로 파괴할 용기 있는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고)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의 혁신가의 딜레마 (파괴적 혁신)이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얘기가 좀 딴 길로 셌는데… 이 ‘본다’라는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삼성/LG의 OLED도 ‘본다’라는 본질에 비췄을 때 언젠가 구시대 기술이 될 것이다. 그러면 ‘본다’라를 본질을 채워줄 새로운 기술이 뭘까? VR 기기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좀 거추장스러워서 편재하더라도 궁극의 기술이라 생각지는 않는다. …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뇌와 직접 연결돼서 우리의 시각 신경을 직접 제어해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그 만들어진 이미지를 내가 ‘봤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형태가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때 문득 영화 ‘아바타’가 생각났다. 뇌와 연결된 기기를 통해서 전혀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서 체험하는…
영화 속의 허구라 생각하겠지만 이미 뇌파를 이용해서 로봇을 조종하는 연구는 꽤 진척됐고 역으로 전기자극을 통해서 뇌를 속이는 (?) 것도 가능하다. TV에 나오는 음식의 향과 맛을 느끼며 주문하는 날도 멀지 않았다. (여담이었다) 현재 코로나의 긴 터널을 지나면서 우리의 삶과 생활은 아바타 시대로 돌입해서 익숙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태의 초기부터 우리 일상의 삶이 근본적으로 코로나 이전과는 달라질 거라는 말은 했지만 어쩌면 더 근본적인 변화를 맞을 수도 있다.
매장에서 직접 보지 않고 온라인으로 물건을 구입하는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음식을 직접 만들거나 식당에 찾아가지 않고 그저 앱으로 주문하는 횟수가 증가한다. 일상의 작은 것도 직접 처리하기보다는 대리인이 등장하는 경우가 잦다. 예전에는 일반인에게는 어렵고 전문성이 있는 분야 (예를 들어, 변호사, 의사)에만 대리인이 있었지만 요즘은 일상의 모든 것이 대리인들이 처리한다. TV 드라마에서 보든 부잣집 가정부가 요즘은 가사도우미라는 형태로 언제든 방문해서 청소든 빨래든 잡다한 집안일을 대신해준다. 간병이나 육아도 대신해준다. 이런 게 부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란 얘기다. 시간과 경험을 돈으로 구매해서 대리하는 게 아바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유행한 O2O가 결국 아바타 제공 서비스다.
코로나의 긴 터널을 지나면서 더더욱 언택트 (un-contact) 기술과 분야가 증가하고 만연해질 거다. 여행도 대신해주고 공연도 대신 봐주는… 제주도가 유채꽃밭을 갈아엎는다는 뉴스를 보면서 사진과 영상 전문가들을 초빙해서 곳곳을 생동감 있게 찍어서 고화질의 사진/영상을 보여주며 현장을 방문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간접 경험을 시켜주고 마치 그곳에서 인증사진을 찍은 듯이 합성시켜주는 서비스를 만들어서 집에 갇혀있는 이들에게 제공해줬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토요일 ‘놀면 뭐하니?’에서 보여줬던 ‘방구석 콘서트’의 진보된 형태의 서비스를 기대하는 건 어리석은 생각일까? 물론 현장에 직접 방문해서 보고 만지는 게 좋다. 하지만 수많은 형태의 간접, 대리 경험은 더 많아질 거다. 코로나 이후에 접촉이 꺼려는 게 디폴트 (뉴노멀)이 된다면 말이다.
… 이런 전체를 그냥 아바타라고 부른 거다. 이미 그 시대에 우리는 들어섰다.
빛이 강하면 그늘이 짙다고 했다.
대리 경험의 반대 방향의 역트렌드로 생각할 수 있다. 우리의 모든 감각을 사로잡는 수많은 TV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인이나 각종 느리게 살기를 담은 다큐도 인기를 얻고 있다. 모든 걸 남에게 맡겼지만, 역으로 모든 걸 자급자족하는 삶에 대한 동경… 재밌는 것은 직접 그런 자급자족의 삶을 살기보다는 그런 프로그램을 보면서 또 한 번 간접 경험하면서 대리 만족하고 있다는 현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한국이 그나마 잘 해처 나가는 이유는 제조 산업 기반이 건재하기 때문이란 평이 많다. 금융, 관광, IT 등의 서비스로 경제의 중심축을 삶은 유럽이나 미국에서 기본 의료장비를 구할 수 없고 생필품이 부족하고 생활기반이 무너진 것은 자난 수십 년 동안 아웃소싱/오프쇼어링을 통해서 제조공장을 모두 중국 등으로 이전해버린 결과로 보는 해석이다. 다시금 핵심 제조 자산을 자국 내로 유입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뿐만 아니라 식량 안보의 중요성도 높아져서 1차 산업도 다시금 주목받으리라 본다. 생산 단가가 높고 그래서 가격이 비싸더라도 국내산 농수산물과 Made in Korea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단지 신토불이나 애국심의 문제만은 아니다. 안보다.
스스로 뭔가를 하는 것이 어쩌면 아바타 시대에 살아가는 한 가지 전략일지도 모르겠다. 귀촌해서 자급자족하며 안빈낙도를 해야 할 텐데... (말년에 연명할 돈을 마련하자.ㅎㅎ)
** 추가
처음에 이글을 적을 때 게임 관련 내용을 적으려했는데 글을 적으면서 까먹은 듯해서 간단히... 게임이 아바타를 가장 잘 표현한다고 본다. 게임하는 행위도 그렇지만, 게임을 하는 걸 보는 행위에서 더 그렇다. 9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이로서 당시 TV에 방영하는 스타크래프트 게임 영상을 종종 보기도 하고 기숙사에서 친구가 게임하는 걸 뒤에서 보기도 했지만, 몇 해 전까지 이해할 수 없던 걸로 게임BJ나 유튜버가 스트리밍하는 걸 계속 보는 거였다. 스타크래프트는 실력이 존재해서 조금 포기한 것도 있지만, 최근 트위치나 유튜브에 나오는 일부 게임들은 실력과 전혀 무관한 것들도 많다. 대표적으로 랜덤박스를 오픈하는 걸 지켜보는 것, 더욱이 시청자가 돈을 주면서 자신의 랜덤박스를 BJ/게이머가 오픈하는 걸 지켜보면서 좋아하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BJ가 오픈한다고 해서 더 좋은 아이테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닐텐데... 그런데 요즘 그런 행위를 나도 가끔 하고 있는 걸 보며 흠찟 놀라기도 한다. 직접 해도 별 문제없는 행위를 남에게 시키고 그걸 지켜보는 게 아바타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