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길

TSP 2017.01.02 12: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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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도 마지막 날인 지난 토요일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한라산 사라오름을 다녀왔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12월 31일에 일년에 단 한번만 개방되는 한라산 저녁 산행을 선택해서 새해 첫날의 해돋이를 백록담에서 보는 걸 선택했겠지만 저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저 사라오름에 올라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한 새하얀 상고대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푼 마음 뿐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전날의 포근한 날씨 때문에 기대했던 상고대는 놓쳤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의 산행으로 지친 몸으로 2017년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여섯시에 맞춰둔 알람이 울릴 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날씨를 체크했더니 흐림으로 나옵니다. 비록 사라오름에 상고대가 있더라도 날씨가 흐리다면 그저 짙은 안개 속의 상고대만 보고 내려올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역으로 흐린 날씨 때문에 간밤에 새롭게 상고대가 생기지는 않았을까?라는 희망도 가졌지만... 어쨌든 미명이 밝기 전의 추운 겨울날에 일찍 일어나서 산행을 한다는 것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짧은 시간동안 깊은 고뇌에 빠졌습니다.

결국 전날 준비해둔 장비를 챙겨서 길을 나섰고 6:30경에 성판악 휴게소에 도착했는데 여전히 날은 어두웠습니다. (그 시간에 이미 많은 이들이 산행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도 놀라웠습니다.) 사라오름까지는 조금 미끄럽지만 눈이 별로 쌓여있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등산화만 갈아신고 바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준비성이 좋은 분들은 헤드랜턴으로 길을 밝히며 걸었지만, 저는 무작정 등산로를 따라서 걸었습니다. 돌길이 조금 위험할 수도 있지만 다른 분들이 비춰주는 불빛에 의존하기도 하고 어둠이 걷히는 새벽의 기운에 의지해서 계속 걸어갔습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어둠 속도 길은 있다는 것을 잘 알지만 길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보이지 않는 길... 어제 새해 첫날을 보내면서 아니 그제 지난해의 마지막을 보내면서 '길이 보이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계속 했습니다. 40대를 접어든 지금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해야하는 걸까?를 계속 고민하게 되는데 지금의 제 모습이 마치 이른 새벽에 등산로를 걷고 있는 제 모습과 매우 흡사했습니다. 분명히 저 앞으로 길은 있을텐데 어둠 속에서 그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멈춰서서 밝을 때까지 기다려야할지 아니면 길이 있을테니 감각에 의지해서 일단 계속 걸어가야할지...

연말에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이런 글귀를 봤습니다. '회사를 나가는 것은 용기고, 회사에 남는 것은 지혜다.' 그도 누군가로부터 들은 것을 다시 적었겠지만 이런 글귀를 그가 마음에 새기는 것도 그리고 제가 기억하는 것도 어쩌면 지금 많은 이들의 공통된 고민이 아닐까?라고 생각해봅니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그냥 머물러있어야 하는가 아니면 계속 걸어가야 하는가? '음악이 흐르는 동안은 계속 춤을 춰야 한다'라는 말은 지난 금융 위기 때를 대표하는 문구였는데, 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계속 걸어야할지 아니면 멈춰야할지...

매년 년초의 첫 포스팅은 조금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한해를 살아갈 포부를 적었는데, 2017년을 맞이하는 지금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그냥 잘 될 거야' '이 또한 지나가리라' 류의 위로가 될 수 없는 위로의 글을 적을 수가 없습니다. 작년 이맘 때에 적었던 글을 다시 보니 지난 일년이 참 부끄럽습니다. 어둡지만, 하나의 촛불에라도 의지할 수 있기를...

비록 세상은 어제와 같을지라도 저는 또 내일을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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