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정치적인 글도, 정치를 논하는 글도 아니다.
최근에 터져나오는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많이 분노했다. 이 글의 초안을 적어놓고 어제는 일찍 잠들었는데 많은 새로운 이슈로 아침을 맞이했다. 워낙 전방위적이라서 어떤 이슈는 제대로 쫓아가기도 힘들다. 예전에는 관련자와 이슈가 비교적 단순해서 '한 놈만 패면 돼'였는데, 요즘은 이슈도 멀티모달 multi-modal이다. 어제 저녁에 문득 이화여대와 관련된 이슈에 대해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1년을 기다리지 못했을까? 편법으로라도 들어갔으면 제대로 하던지...) 그 이슈와 관련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니라, 그럴 수 밖에 없었던 (<< 이 표현은 좀 이상하다) 대한민국 사회가 안타까웠다. 그래서 글을 적었다.
정유라씨는 승마 국가대표다. (그녀가 어떻게 국가대표가 될 수 있었는가는 논외로 한다.) 국가대표라는 것은 어떤 기술이나 기능에서 그 나라에서 최상위에 들어간다는 걸 의미한다. (실제 실력이 최상위인지는 모르겠으나) 쉽게 말해서 기술이나 기능의 최고 명장인 셈이다. 그런 최고 명장이 대학에 들어가서 학위를 구걸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우리는 주변에서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죽으라 애를 쓰는 모습을 자주 본다. 왜 그래야만 하는 걸까? 간혹 대학의 운동부에 들어가기 위해서 형식적으로 입학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미 어떤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을 가졌음에도 학위를 위해서 굳이 대학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본다. 때로는 자신이 가진 능력과 무관한 학과로... 이미 최고의 프로그래밍/해킹 기술을 가진 청소년이 컴공과로 진학해서 4년동안 더 배운다고 뭐가 달라질까? (배경 이론 지식은 더 배우겠지만...) 이미 장인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대학에 왜 굳이 가야만 하는 걸까? 왜 학위가 없으면 그들의 능력을 제대로 인정하고 대접을 해주지 못하는 걸까? 메시나 호날두가 대학 입학했다는 얘기를 들어봤는가?
스포츠 선수들은 불확실성이 크다. 부상 등의 이유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탑 클래스가 아니어서 프로나 실업팀에 입단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10년을 넘게 운동만 했는데 어느 순간 더 이상 그 기술로 먹고 살지 못한다. 운좋게 프로/실업팀에 입단했더라도 30대 중반을 넘기면서 은퇴를 하면 그 후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스포츠만의 얘기는 아니다. 어떤 일을 10년 20년 넘게 해왔는데 빠르면 20대부터 늦어도 4~50대부터 더이상 그 일을 할 수가 없다. 그 이후의 삶은 보장돼있지 않다. 즉, 삶의 안전망이 없다는 거다. 소위 말하는 복지가 없는 대한민국이 참 안타깝다. 재능의 다양성으로 먹고 살지 못하는 대한민국이 안타깝다. 첼로 영재가 자라서 설 수 있는 무대가 없어지고, 때론 첼로 강사하는 것도 힘들다. (특정 직업은 그냥 예시다.) 많은 취미 생활에 가까운 기술을 가진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 그것만으론 기본 생활 자체가 불가능하다. 결국 자신의 재능이 아닌 다른 길로 빠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가진 재능과 안 맞는 일에서 보람도 의욕도 얻을 수 없다.
유수의 유럽 유스팀들은 선수들에게 의무교육을 시킨다. 그걸 이수해야지 훈련에 참여할 수 있고, 훈련 시간도 제한한다. 아마추어나 세미프로팀에 소속된 선수가 다른 직업 교육을 받는 사례를 다큐에서 종종 본다. 예체능 등에 종사했던 이들에게 사회 안전망을 줄 수가 없다면 어릴 때부터 대안 교육을 함께 시켜줬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지 못하는 것이 참 안타깝다. 운동부나 연예인 지망생들이 수업을 빠지는 것이 당연시 돼는 사회에서 그들이 그 분야에서 실패하면 그 후의 삶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저 낙오자로 낙인찍을 뿐이다. 때론 좋은 미끼가 된다. 운동선수나 연예인이 주변의 감언이설에 넘어가서 사업을 시작해서 실패하거나 사기를 당한 얘기는 수도 없이 듣는다. 바로 아래에 현대 교육을 비판하겠지만 그런 비판받아 마땅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이들에게 현재 대한민국은 기회를 주지 않는 (또는 줄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개인적으로 이제 대학이나 학위가 필요없는 시대가 됐다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10년 20년 뒤에는 대학의 존재 이유가 사라질 거라 생각한다. 아주 특수한 몇 개의 대학은 남아서 다른 역할을 하겠지만, 대중을 위한 대학 또는 학교 시스템은 그 효용 가치를 다 했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학교는 산업화, 즉 규격화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 찍어내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물건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지원하는 역할에 필요한 것들이 현재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다. 많이 암기할수록 자신의 효용가치가 그만큼 오래 간다. 창의력의 시대라고 말하는데 여전히 찍어내기에 바쁘다. 다르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더욱이 인공지능과 로봇의 부상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지식의 종말을 고한다. 내가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강의를 열심히 듣고 시험을 잘 봐도 컴퓨터가 제시하는 답 이상을 내놓을 수가 없다. 설마 알파고를 벌써 잊은 것은 아니기를 바란다. 최고의 두뇌도 모든 가능성을 계산한 것을 이길 수는 없다. 시대 정신이 바뀌는데, 굳이 대학에 들어가겠다고 아등바등하는 것이 안타깝다.
최순실과 주변 인물들은 뭐 때문에 불법/편법을 다 동원해서 정유라를 대학에 밀어넣은 것일까? 이미 충분한 권력과 금력을 가졌을 그들이... 대학이라는 이너서클이 필요했던 것일까? 뭐가 됐든 지금의 불연속의 시대가 정유라라는 괴물을 낳았다. 그런 시대가 참 안타깝다. 지금 대한민국의 괴물들이 지배하는 나라다.
내 걱정부터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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