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에서 손학규씨는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모토로 주목을 받았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노동 시간이 가장 긴 국가다. 회사에서 저녁을 먹고 또 야근을 한다. 그러니 저녁에 가족과 같이 식사할 수가 없다. 노동 시간과 야근에 더해서 출퇴근 시간이 길다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다. 한시간정도 버스나 지하철에서 사람들에게 치이면 마지막 남은 기력마저 모두 소진된다. 가족과의 함께 하는 저녁 시간은 사치가 됐다.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주말이 되면 쌓였던 피로를 풀기 위해서 주말마저 사라진다. 그렇기에 '저녁이 있는 삶'은 깊은 울림이 됐으리라 짐작한다.
지난 주 수요일 아침이었다. 여름에는 창으로 강한 태양 빛이 들어와서 일찍 잠에서 깨곤 한다. 집에서 혼자 할 일이 없으니 출근 시간도 조금 이르다. 아침에 귓가에 들리는 새소리를 들으면서 전날 제주를 휩쓸었던 폭풍우가 마치 꿈 속에서 경험했던 것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비 온 다음 날의 싱그러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 카메라를 들고 회사 건물을 한 바퀴 돌았다. 이슬을 머금은 풀과 꽃은 축복이다. 그 싱그러움과 상쾌함이 기분을 좋게 만든다. (참고. https://brunch.co.kr/@jejugrapher/25)
그때 문득 나에게 아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아침이 있는 삶'을 가져봤던가?를 묻게 된다. 대한민국에 저녁이 있는 삶이 필요한 만큼 아침이 있는 삶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침에 30분이나 한시간정도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지난 밤의 피곤함을 그대로 간직한 채로 허급지급 일어나서 다시 출근길에서 치이는 그런 아침이 아니라, 한 여름 오후에 우물물로 등목을 할 때 느끼는 그런 시원함을 느끼는 아침말이다. 우리에겐 그런 아침이 필요하다. 그런 아침을 맞이한다면 그날 하루가 즐거울 거다. 그러나 수많은 도시의 직장인들에게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나도 잘 안다.
저녁이 있는 삶이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라면, 아침이 있는 삶은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이다. 물론 각자 사정에 따라서 아닐 수도 있다. 아침에 짧게라도 혼자서 운동을 하거나 외국어 스터디를 하거나 주변을 산책하거나 아니면 그냥 묵상이라도 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나 자신을 위한 투자의 시간, 어쩌면 세상와 완전히 동떨어진 나만의 시간말이다. 누구나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밤동안 에너지를 비축했다면 이제 그걸 제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기동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게 아침의 역할이다. 그런데 우린 그 시간이 없다.
제조업 등의 극한 노동 현장은 조금 다르겠지만, 일반 화이트칼라 사무실의 아침 풍경은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9시 또는 10시에 출근해서 삼삼오오 카페/휴게실에 모여서 커피를 마시면서 30분정도 잡담을 한다. 흡연자들은 카페 대신 흡연실이 될 수도 있다. 출근하느라 지친 심신을 그렇게라도 여유를 주지 않으면 하루를 온전히 버틸 수가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안다. 그러나 이건 너무 소모적이다. 이런 시간을 벌충하기 위해서 또 야근을 한다. 만약 출근이 힘든 과정이 아니고 짧더라도 혼자만의 아침/여유 시간을 가질 수만 있다면 비생산적인 시간이 많이 줄어들 것같다. (티타임이나 끽연타임과같은 소셜 컨넥션이 불필요하거나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만, 출퇴근 시간이 고통의 시간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럴려면 우선 짧아야 한다. 이 말이 현실성없다는 것은 잘 안다. 그래도...
우리는 이제 노동의 시간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소모적인 관행이 계속되는 한 노동의 패러다임이 쉽게 변하지 않을 것같다. 노동의 생산성은 결국 노동자의 집중력에 달려있다. 닭과 달걀의 논쟁으로 빠질 우려가 있다. 무엇이 닭이고 무엇이 달걀인지는 모르겠으나 집중할 수 있는 환경, 즉 온전한 저녁과 아침을 노동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그리고 노동자도 스스로 각성해야 한다. 각성없이 선진국의 9to5 근무 조건을 얻을 수 없다. (한국에서는 8시간 근무가 점심시간을 제외한 9-6인데, 미국은 점심시간을 포함해서 9-5가 일반적인 듯하다.)
온전한 저녁을 가족들에게, 그리고 온전한 아침을 나에게... 나는 나만의 아침이 필요하다. (이 문장의 '나'는 글쓴이가 아니라 글을 읽는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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