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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 Jeju

제주인, 우리는 중국 자본을 욕할 자격이 있는가?

* 제목이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저 강조를 위한 수사법일 뿐입니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카메라를 들고 제주의 곳곳을 누빕니다. 최근 마음의 짐이 점점 무거워집니다. 힐링을 위해 제주를 찾는 이들이 이제 제주를 킬링하고 있습니다. 그 속도가 점점 빨라져서 걱정입니다. 2000년도에 여행와서 봤던 제주의 모습이 2008년도에 다시 찾았을 때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도로 등이 좀더 정비돼 있어서 더 편리해졌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2012년도에 우도를 10년만에 다시 찾았을 때 제 기억이 틀렸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2~3년 사이에는 온전한 기억이 이젠 거의 남지 않게 됐습니다.

현재 제주는 중산간 곳곳에 중국의 거대 자본에 잠식된 골프장과 리조트 단지들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송악산 일대는 풍광을 해치는 고층 호텔이 들어선다고 난리입니다. 월령리 일대의 밭들이 중국 자본에 넘어가고 있고, 조만간 대형 리조트 사업이 진행될 거라는 얘기에 제주에서 시끄럽습니다. 각종 위락시설이 들어서면서 원래 취지와 맞지 않은 카지노가 들어선다는 것에 큰 반대가 있습니다. 한동안 주춤했던 제주도심의 100층짜리 빌딩 건축이 중국 자본으로 재개되고 있습니다. 지역 신문/방송에서만 다루지 않고 이제 전국 일간지, 방송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뉴스 소재가 됐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중국 자본의 잠식을 우려하며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욕해야할 대상이 비단 중국 자본만이 아닙니다. 그저 대한민국의 자본이 아니고 (섭지코지로 대변되는 국내 자본에 의한 왜곡도 있고), 일개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거대하고, 또 눈에 너무 잘 띄는 곳에서 자연을 파괴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비난의 화살을 중국 자본에 돌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똑같은 비난을 더 많은 우리들이 받아야 합니다. 중산간 등의 자연 보호 지역을 파괴하는 것이 거대 중국 자본이나 국내의 골프장/리조트 회사들이라면, 소소한 우리의 동네와 해안을 파괴하고 있는 것은 누구일까요?

제주의 원주민/이주민이라는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흔히 그렇게 사용하니 이 글에서 큰 오해없이 그대로 사용하겠습니다. 초기 제주에 이주/정착한 이주민들은 제주에 긍정적인 효과를 줬다고 생각합니다. 정체된 제주에 조금 다른 활기를 불어넣었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예술가들이 보여줬던 다양성을 높게 평가합니다. 그리고 원주민들과 다른 친절을 앞세운 독특한 식당들이 저의 지갑을 가볍게 했습니다. 새로 생기는 깔끔하고 친절한 식당이나 카페를 보면서 원주민들의 허름하고 불친절한 식당은 곧 망할 것같다는 글도 남긴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운은 어쩌면 불과 3년 전까지입니다. 여전히 긍정성이 존재하지만, 부정성이 점점 크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2년 전 봄에 월정리 해안에 갔을 때 충격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4~5년정도 전에 아름다운 해변에 카페 하나는 용의 눈을 찍은 듯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지럽게 늘어선 카페들과 붐비는 자동차와 사람들 속에 더 이상은 특별할 것이 전혀 없는 해안가 마을이 됐습니다. 지난 주말에 북서쪽 해안도로를 드라이브하면서 또 다시 충격에 빠집니다. 원래부터 북동쪽보다는 식당이나 펜션들이 많이 있던 곳이지만, 지금같지는 않았는데 이젠 제 기억을 수정할 시간입니다. 월정리 도로가에 박힌 주차금지 봉이 애월해안도로에 그대로 박혀있는 것이 상징적입니다.

그리스의 산토리니가 아름다운 것은 그곳에서 나는 건축자재로 통일감있게 들어선 건물들 때문일 것입니다. 일부러 특이하게 만들기 위해서 하얀 집들을 지은 것이 아니라, 주변에 늘린 석회암을 이용해서 건축하다보니 자연스레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형성된 마을이 지금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제주의 시골마을이나 해안가를 돌아다니면 마치 프랑케슈타인을 재현한 듯한 착각을 받습니다. 기존 제주집을 개조한 것들도 많지만, 많은 이주민들은 제주의 환경과 마을의 스토리와 무관한 모습으로 집과 카페, 식당 건물을 올리고 있습니다. 주변과 호흡하지 못하고 역사와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저는 안도 타다오가 제안한 노출 콘크리트의 미니멀리즘 건축의 신봉자입니다. 그래서 제주에서 전원주택을 짓게 된다면 여건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미니멀한 노출 콘크리트 건물을 짓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깨닫게 됐습니다. 아무리 갈망하더라도 제주에서는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제주가 원치를 않습니다. 이미 그렇게 지어진 많은 집들이 제주와는 겉돌고 있습니다. 

제주의 중산간과 거점들을 파괴하는 것은 중국 및 국내 거대 자본이지만, 제주의 곳곳을 파괴하는 것은 결국 우리들입니다. (그리고 강정과 같이 국가에 의한 파괴도 무시할 수 없음) 이주민들만의 잘못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원주민들이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주민들이 빈틈을 파고들면서 엇박자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글에서 자연과의 조화, 역사의 연속성, 원주민과의 호흡에 초점을 맞췄지만 (당연히 거대 자본은 이런 것에 극히 취약하고, 최근 많은 이주민들도 마찬가지임), 조금 다른 측면에서의 걱정도 있습니다. 원래 주말에 이 글을 구상할 때 자연/역사/공동체와 동떨어진 마구잡이식 건축물과 함께, 그 속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의 가격)도 아직은 제주와 조금 동떠어진 것같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처음 이주민들의 식당과 카페는 제주에 새로운 맛과 친절을 갖다줬습니다. 그런데 그것과 함께, 서울의 물가도 그대로 가져온 듯합니다. 어차피 도심에서 온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곳이지만, 그 건물이 들어선 시골 마을 어르신 들이 감당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으로 음식이 제공되는 것은 조금 모순이라 생각했습니다. 서비스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는 것은 맞지만 단순 입소문만 믿고 터무니없는 가격을 매기는 것은 지양해야 합니다. (8,000원짜리 자장면이나 12,000원짜리 햄버거를 한번정도는 테스트 삼아 먹으러 찾아가겠지만 진짜 특별하지 않는다면 다시 찾거나 추천해줄 것같진 않습니다.) 어쩌면 이런 것도 원주민과 이주민, 그리고 원주민과 관광객의 간격을 더 크게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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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을 위해서 조금은 흉악하게 변해가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필요한데 제가 너무 아름다운 것만 남기려던 욕심 때문에 적당한 사진을 찾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좀더 다양한 사진을 찍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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