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Gos&Op

기획에 대해서 On Planning

나름 테크기업에서 일하다보니 가끔 듣는 얘기가 있다. 외국의 유수 테크기업들은 기획자라는 포지션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데, 한국에만 특이하게 기획자라는 직군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한국에서 기획자들의 역할을 대략 생각해보면 개념을 디벨롭해서 서비스/제품을 디자인하고 프로젝트의 일정을 관리하면서 결과물에 대한 품질 검수(때론 운영)까지 다양한 일을 한다. 그런데, 구글이나 페이스북같은 서비스 회사에서는 개발자들이 (직접 프로토타이핑하면서) 개념을 디벨롭하고, (중간) 매니저들이 일정이나 리소스 관리 정도를 해주고, 자동화된 테스팅 툴이나 특화된 QA 조직에서 품질검수를 해준다. 애플같은 회사에서는 개념 디벨롭이 디자이너들에게 많은 권한이 넘어가있다는 특징도 있다. 이렇게 보면 기획이라는 특화된 직군이 필요가 없고 누구나 기획의 역할을 담당하면서 분업/전문화되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서비스를 담당하며 다양한 기획자들과 일하다보면 기획자들만이 가지는 특장점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즉, 이 글의 목적이 기획자가 필요없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특히 개발자들과는 다른 다양한 분야/전공에서 오는 (다양성의) 장점을 발견할 때가 많다. CS나 공학을 전공한 사람이 볼 수 없는 다양한 면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만인을 위한) 서비스/제품을 개발하는데 분명 도움이 된다.


(세부 업무를 무시하고) 얼핏 생각하면 기획자는 큰 틀에서 서비스나 제품의 밑그림을 그려야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은연중에 받는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기획자는 큰 그림을 그릴 수가 없다. 기획자 개인의 능력이나 자질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권한을 얘기하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주니어 기획자가 괜찮은 서비스에 대한 아이디어를 낸다고 쳤을 때, 그 아이디어가 바로 실현될 가능성이 몇 퍼센트나 될까? 2, 3년 내에 비슷한 서비스가 만들어진다면 그나마 괜찮은 편에 속할 것이다. 대부분의 아이디어는 두세단계 위로 올라갈 기회조차 없다. 일명 그냥 까인다. 결국 (큰 조직에서) 서비스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는 그리고 그려야하는 사람들은 힘있는 경영자나 창업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급변하는 사회에서 늙은이들의 생각은 신뢰하지 못하겠다.) 관리자가 관심을 가지는 아이템에 대해서 살을 붙이고 구체적인 채색을 하는 것이 실무 기획자들의 몫으로 내려온다.

현실이 그렇기에, 내가 기획자들에게 바라는 큰 두가지는 [첫째] 가능성이나 현실성을 염두에 두지 말고 다양한 상상을 하는 것과 [둘째] 서비스의 디테일을 챙기는 것이다. 서비스나 기능의 가능성은 개발자가 검토하고 리소스나 일정은 관리자가 걱정/조율하면 된다. 대신 기획자는 자신의 서비스에 대한 다양한 모습을 상상하고 시나리오를 만들어내는 것이 첫째 미션이다. 그리고 실제 개발된 서비스나 제품이 고객들에게 전달되기 전까지 그리고 전달된 이후의 세심한 디테일을 모두 챙기는 것이 둘째 미션이다. 내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렇게 믿는다.

이것이 나의 1001번째 생각이고, 함께 일하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다.

==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unexperienced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