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다 그랜튼의 <일의 미래>를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쉬엄쉬엄 읽는 거라서 진도가 빠르지 않습니다. 여담이지만, '미래'에 대한 책들을 읽으면 항상 저자들의 상상력에 놀라기도 하지만 역으로 그들의 상상력 빈곤에도 놀라게 됩니다. 책을 읽으면서 자연히 10년 20년 뒤에 나는 뭘 하고 있을까? 또는 그때를 위해서 난 뭘 준비해야하는가? 등에 대한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지난 4월에는 '제4의 물결은 뭘까?'라는 글을 적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회사 옆에 새로 생긴 텃밭이나 사회 전반의 귀농/전원주택 열풍에서 제4의 물결은 어쩌면 더 진보한 과학이 아니라 1차 산업으로의 회귀가 아닐까?라는 조심스러운 전망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일의 미래'를 읽으면서 어쩌면 필연적으로 제1의 물결에 동참할 수 밖에 없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의 미래는 항상 먼 과거에 있습니다.
1차 산업의 경우 사람이 생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기초적인 것을 제공해주기 때문에 규모는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건제하고 있습니다. 현재 3차 산업의 비중이 많이 높아졌지만, 실질적으로 이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2차 산업입니다. 2차 산업에서의 결실물이 없이는 3차 산업이 불가능합니다. 공장 제조업에서 만들어진 제품들을 소비하고 또 그들 노동자들에게 지금된 임금이 3차 산업에 흘러들어오고 있습니다. 일반 음식점과 같은 서비스업뿐만 아니라, 인터넷 기반의 산업들도 실질적으로 2차 산업의 기반 위에 세워져있습니다. 그렇기에 3차 산업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2차 산업의 기반이 무너지면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산업혁명 이전의 가내수공업 시기의 산업발전은 많은 노동력에 기반했습니다. 땅을 잃은 많은 농민들이 도시로 몰려들었고, 그런 도시에 세워진 수공공장에서 노동력을 제공하면서 생을 연명했습니다. 그런데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부터 수작업으로 이뤄지던 많은 일들이 기계로 대체되면서 노동자들은 일터를 잃기 시작했고, 그래서 곳곳에서 러다이트 운동도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산업화는 계속 진행되었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기존의 일터에서 떠나야 했지만 곧바로 새로운 일터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공장의 기계가 많은 노동력을 대체했지만, 여전히 소수의 노동자/기술자는 필요로 했습니다. 그 시기에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도 했고, 새로운 식민지들도 개척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공장이 지어졌고, 새로운 공장에서는 여전히 기계를 다룰 새로운 노동력이 필요했습니다. 산업혁명이 일시적으로 노동력을 감축시켰지만, 인구의 증가, 식민지 개척 등으로 생긴 수요의 증가는 2차 산업을 지탱시켰습니다. 당시에는 1차산업의 비중이 여전히 높았고, 3차 산업은 비중이 다소 적었기 때문에 사회구조가 안정적이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기계기술이 더욱 정교하게 발전하고, 인구증가가 다소 둔화되고 (제조품에 대한 소비 가능한 인구 증가둔화) 강제적인 식민지가 없어지면서 2차 산업의 노동력들이 다시 흘러나와서 3차 산업으로 전향했습니다. 특히 현재의 대한민국의 인구비율을 보면 비정상적으로 3차 산업 종사자의 수가 많습니다.
앞으로의 전망은 이렇습니다. 꾸준히 농업혁명이 일어나고 있어도 1차 산업의 종사자 비율은 어느 정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나 2차 산업의 경우 기계나 로봇, 자동화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 2차 산업의 종사자 수는 급격히 줄어들 것으로 전망됩니다. 예전과 같이 무리한 인구증가나 식민지 개척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더 많은 공장이 들어서는 것을 기대할 수도 없고 또 새로운 공장이 들어서더라도 노동력/일자리 수요가 눈에 띄게 늘어날 것같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모두 3차 산업으로 흘러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지만 2차 산업의 기반이 없는 3차 산업은 그저 사상누각에 불과합니다. 2차 산업에서 생겨난 자금이 3차 산업에서 소비되고 순환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불가능해져서 많은 3차 산업들이 문을 닫고 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만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실업자들이 생겨나지만 이를 위한 복지제도가 제대로 갖춰질 것같지도 않습니다. 복지를 위한 재원도 건전한 2차 산업이 존재할 때만 가능합니다. (개인세금이 아닌 법인세로 많은 부분 충당할 수는 있겠지만)
그러면 소득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먹고 살 수 있을까요? 바로 이 시점에서 결국 (일부/완전) 자급자족이 가능해야지 미래에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미쳤습니다. 증가한 인구 때문에 어업을 포함한 수렵은 거의 불가능할테니 어쩔 수 없이 자가농이 되어야 합니다. 귀농현상이 더 가속화될 것같습니다. 단순히 도시 지역에서의 비인간적인 삶에 지쳐서 시골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이제 생존을 위해서 시골로 내려가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그런 귀농 지역에서는 최소 수백평의 자기 텃밭이 있어야 자급자족이 가능합니다. 도시에 남은 사람들도 집 내의 작은 공간에서 활용가능한 다양한 자가농법이 개발 보급될 것입니다. 최소 3~400평의 농지가 있어야지 다양한 식량을 자급가능하다고 합니다. (1인 기준인지 2~3인 가족 기준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쌀 등의 곡물은 별도로 수급해야 합니다.) 어쩌면 지금부터 새로운 3차 산업 식당을 개업할 것이 아니라 (그래서 망할 것이 아니라), 1차 산업으로 회귀해서 자신을 연명할 준비를 해두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런 경험으로 더 많은 귀농자들에게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것도 괜찮은 아이디어입니다.
1차 산업으로의 회귀는 필연적으로 마을 공동체의 형성으로 이어집니다. 이미 존재하던 커뮤니티에 속할 수도 있고 아니면 뜻이 맞는 이들끼리 새로운 마을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각자가 수백평의 땅에서 각자 먹을 것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작은 공동체 내에서도 전문성을 발휘해서 품종의 다양화를 시도하는 것이 비교우위론의 교훈입니다. 식량 자급뿐만 아니라, 생활에 필요한 갖은 도구들도 기본적으로는 공산품에 의존하겠지만 수공으로 만들어진 것을 사용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산업화와 산업화 이전의 모습이 절묘하게 조화가 된 그런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의 기준으로 보면 (개별 국가의) 인구 감소 및 노령화 현상으로 노동인력의 부족이라는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더욱 발전하여 모든 공장이 거의 무인자동화가 이뤄진다면 그때는 현재의 부족한 노동력들이 그냥 불필요한 잉여 인력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1차 산업이나 3차 산업의 서빙도 로봇으로 대체된 미래를 상상해 봅니다. 그 시점에 과연 인간은 무엇일까요? 픽사의 애니메이션 <월-e>에 나오는 그런 모습이 사람들로 이 사회가 채워지게 될까요? 노동 인력이 덜 필요한 미래가 온다면 인구감소가 축복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