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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Op

다음의 길

지난 주에 회자되었던 '만년 2위 다음의 설움'이라는 글을 읽고 글을 하나 적고 싶었는데,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은 많았지만 글로 적기에는 미처 준비가 덜 되어 글로 표현하는 것은 그만 뒀다. 같은 날 올라온 '네이버의 차세대 검색 코끼리 프로젝트'라는 글을 읽고도 글을 하나 적어야 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괜히 오해를 살 것같고 '너네나 잘 하세요'라는 피드백을 받을 것같아서 또 그만 뒀다. 그외에 여러 글/기사들을 보면서 글을 적어야겠다는 마음을 자주 먹는데 매번 글을 적지는 못한다. 그 모든 반응글을 요약하자면 '글은 잘 적었는데 알맹이는 없네'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최근에 IT관련 재미있는 글들이 별로 없어서 심심했는데 그래도 재미있는 글이라도 발견했으니 다행이긴 하다. 그래도 알맹이가 없는 것은 없다고 말해줘야하지 않겠는가. 1년에 한번 정도는 회사/다음에 대해서 심하게 비판하고 나름의 비전에 대한 글을 적고 있다. 보통 연말이나 연초에 글을 적는데 올해도 마무리하면서 글을 하나 적어야 하나?를 계속 고민중이다. 사실 9월 말에 내부인을 위한 글을 한 번 적었기에 (참고. 합창성의 세계로 나아가라.) 올해는 그냥 조용히 넘어갈까?도 고민중이다.

그런데 주말에 봤던 무한도전 못친소 페스티벌과 어제 이슈를 모았던 케이팝스타의 심사진들 (케이팝스타는 보지 않음)을 보면서 이들에게서 얻은 교훈이 회사에 도움이 될 것같아서 글을 적어야 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오후 내내 혼자서 나름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었지만 (내년 상반기 또는 1년 동안 회사에서 무슨 일에 전념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그 고민에 대한 좋은 답은 얻지 못하고 이 글을 어떻게 적어야 할까?에 대한 생각만 계속 머리 속을 헤집고 다녔다. 그래서 업무 시간이 끝남과 동시에 이렇게 글을 적는다.

나에게 <무한도전>은 토요일 그 자체다. 오후 6시 전에 귀가하지 못할 것같으면 집을 나가지 않을 때도 있다. 몇 년째 그렇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상반기의 파업 중에는 나도 다른 토요일을 경험할 수도 있었다.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MBC에서 무한도전을 계속 본다는 것은 편치만은 않다. 지난 주말에 있있던 '못친소 페스티벌'은 단순히 재미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많은 회사들에게 영감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바로 무한도전이 갖는 아이디어 기획력과 실행력을 배워야 한다. 파업 기간 중에 돈독해진 멤버들의 무한 이기심을 되살리기 위해서 준비한 '네가 가라 하와이' 특집에서 정형돈과 유재석 사이에 오간 외모논쟁에서 시작된 것이 '못친소 페스티벌'이다. 무한도전이라는 예능의 특성상 정해진 포맷이 없이 매주 다른 이야기를 펼칠 수 있기에 가능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무한도전이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연히 흘러가는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고, 그 얘기를 다른 모든 멤버들이 모인 자리에서 다시 얘기를 하면서 하나의 아이디어로 발전시키고, 또 그런 아이디어를 그저 아이디어 수준에 놓아두지 않고 페스티벌이라는 이색적인 이벤트로 발전시켜 실행시키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우연이 만들어준 에피소드가 시청자들이 배꼽을 뽑았다. 그건 우연을 그냥 우연으로 남겨놓지 않고, 그걸 현실화시키는 무한도전의 기획력과 실행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하홍철대결이나 알래스카특집 등을 확인해보라.) 인터넷의 등장 이후, 그리고 최근에는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로 많은 서비스/회사들이 등장한다. 많은 것들이 성공보다는 실패로 귀결된다. 처음부터 대박 아이템만을 쫓으면서 만들어낸 많은 서비스들이 결국은 실패하는 것을 자주 본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도 그렇다. 그렇기에 서론의 '만년 2위'라는 그런 분석이 나온다.  최근 <일밤>에서 많은 프로그램들이 나왔지만 2~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모두 조기종영되는 것을 봤다. 어찌 그리 다음 그리고 많은 한국기업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지... 지난 못친소 페스티벌에서 보여준 무한도전의 기획력과 실행력에서 힌트를 얻어야 한다.

오늘 SM주가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기사를 읽으면서 한국 연예계/음악계의 3대 기획사에 생각이 미쳤다. 보통 하나의 산업 분야에서 1등이 50~70%를 먹고, 2등이 2~30%를 먹고, 나머지가 합쳐서 1~20%정도를 먹는다. 이동통신에서 SK, KT, U+의 시장비율이 그렇고, 인터넷 포털에서 네이버, 다음, 네이트 등이 그렇고, 전자에서 삼성, LG, 기타가 그렇다. 그 외에 많은 산업에서 1등과 2등과 3등 이하에서 이런 비율로 시장을 나눠갔는다. 그런데 음반기획사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SM, JYP, YG가 대형기획사이지만 이들이 5:3:2로 전체 시장을 나눠갖지 않았다. 이들 3대 기획사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기획사들이 나름의 성과 (인기있는 아이돌가수들)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들 3대 기획사 중에 어느 한 기획사가 다른 기획사보다 3~4배 규모가 크다고 말할 수도 없다. 왜 음반산업은 다른 산업과 다른 양상을 보일까?를 고민하게 된다. 최근에 아이돌 (및 댄스)를 중심으로 음악시장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이런 시장에서 SM, YG, JYP가 주요 플레이어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같은 아이돌가수를 양산하고 있지만, 이들 기획사들은 내세우는 스타일이 모두 다르다. 아이돌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3대 기획사를 묶기에는 (회사 및 소속 가수들의) 색깔이 너무 다르다. 이런 차별화가 음반시장에서 3사가 고르게 점유률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아닐까 생각한다. 네이버와 다음의 사업영역이 별로 차이가 없다. 이통사들의 사업영역이 다르지 않다. 핸드폰이나 가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음반시장에서는 같은 듯지만 고유의 나름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일종의 창조적 파괴다. 다양성이 상실된 영역에서는 서로 1등, 2등, 3등으로 규모의 경쟁을 펼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다양성이 인정되는 곳에서는 각자가 각자의 영역에서 1등이다. 이들은 경쟁관계이면서도 서로 보완관계가 된다. '군무'에 능한 기획사에서 굳이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랩'을 잘 하는 가수를 키우려고 하지 않고, 그냥 그런 가수는 '랩'을 전문으로 하는 기획사에 맡겨버리고 자기들은 더 나은 군무/댄스를 개발해서 차별화/전문화를 하면 된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에서 왜 YG는 자사의 많은 댄서/가수들을 놔두고 타기획사의 현아를 뮤직비디오/음악에 참여시켰나?라는 의문을 표하는 것을 봤다. 그냥 타기획사의 가수더라도 현재 프로젝트에 가장 적합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다른 영역에서 전문화/차별화를 가져야 한다. 그러면 극단의 치킨게임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고 공생할 수도 있다. 그리고 더 큰 시장이 만들어진다. 모두가 SM과 같은 영역에 욕심을 부렸다면, 아마도 지금 한국의 (아이돌) 음악시장은 훨씬 작았을 거다.

내가 이 회사 (다음)을 비판하는 주요 내용이 위의 사례에서 잘 나타나있다. 왜 다음은 만년 2위이고 그래서 설움을 겪어야 하냐고? 왜 다음은 네이버와 같이 차세대 검색에 대해서 고민을 하지 않고 있냐고? 왜 주가가 그렇게 반토막 나도록 뭘 하고 있었냐고? 그들이 가진 장점을 잘 모르고 또 강점을 잘못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수평구조의 장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다양한 실험을 해가면서 우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야 하는데, 그저 1위 기업인 네이버의 꽁무니만 쳐다보고 있으니 스스로 실험해서 새로운 길을 만들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된 기획력이 생길 수도 없고, 또 늘 실패하다보니 실행력도 무뎌졌다. 예전에 1위였던 한메일, 카페가 네이버에 밀린지가 오래고, 또 최근에 내놓은 서비스들이 다른 기업들에 밀리고 있다. 다음만의 컨셉을 가지고 다음의 서비스를 만들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늘 하게 된다. 트위터와 미투데이가 있는데 굳이 또 하나의 단문서비스인 요즘을 만들 것이 아니라, 그럴 바에는 국내에는 없는 텀블러/포스터러스처럼 중문/미니블로그를 만들어서 더 쉽게 퍼블리슁하고 모바일에서도 최적화된 서비스를 만들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초기에 주소록 기능만 가진 마이피플을 (빨리) 출시하고, 이후에 메시징, 무료통화 등을 순차적으로 업그레이드를 했다면 지금 카톡과의 싸움이 어땠을까?라는 생각한다. 우연에서 얻은 다양한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이미 공고해진 시장에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짓을 반복하고 있는 모습이 늘 안타깝다. 그리고 지금 다음은 대표서비스가 없다. 파란색 위에 녹색을 덧칠하면 일반 유저들이 다음과 네이버를 구분할 수 있을까?

물론 나도 잘 안다. 이렇게 공자왈 맹자왈 훈수를 두는 것은 쉽다고... 그리고 나도 어떤 서비스를 내놔야지 지금 바로 먹힐 수 있을지 또는 앞으로 5년 10년을 대표서비스로 키워갈 수 있을지에 대한 아이디어도 없다. 당장 내가 내년에 어떤 일을 할지에 대한 아이디어도 없어서 하루종일 고민했는데, 어찌 일개 사원따위가 회사 전체의 먹거리를 만들어내겠는가? 그러나 위의 '합창성의 세계로 나아가라'의 글에서처럼 회사 전체가 머리를 맞대고 모여서 아이디어를 좀 만들어냈으면 좋겠다. 경영진들만 늘상 모여서 이런 저런 슬로건만 만들어내면서 지난 몇년을 허비해버리지 않았는가? 그렇게 만들어낸 핵심사업영역도 서비스와 기술이 혼합되어 밑에 사원들은 진정 자신들이 뭘 해야하는지에 대한 이해도 하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사내 게시판에 다양한 재미있는 서비스 아이디어들이 끊임없이 올라오지만, 그것들이 실현되는 걸 제대로 보지 못했다. 처음 한두번 그렇게 아이디어가 무시되면 더 이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려 노력을 하지도 않고 또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굳이 공유하려들지도 않는다. 그렇게 직원들은 무기력에 익숙해진다. 그럴수록 회사는 더욱 수렁에 빠져든다. ... 글을 적으면 적을수록 그냥 욕하고 싶어지니, 여기서 그만.

말미에 헛소리를 길게 적었지만 "우연에서 힌트를 얻어 기획, 실행할 수 있는 힘을 갖고, 같은 시장이지만 다른 경쟁을 하는 그런 차별성/전문성을 키워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내가 지금 다음에 다니고 있으니 '다음'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어쩌면 당신 회사의 모습이 아닌가요?

Imagine Impossible Do Poss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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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처음 이 글을 구상했을 때 넣고 싶었던 내용이 생각나서 추가합니다.

며칠 전에 우연히 '한국 자영업이 망하는 이유'라는 그림을 봤습니다. (링크참조) 그림은 '피리부는 사나이'를 패러디한 것입니다. 2001년에는 피리부는 사나이가 PC방을 차려서 잘 되니 나머지들이 죄다 PC방을 창업하고, 2002년에는 치킨집을, 2009년에는 커피/카페를, 2011년에는 떡볶이 분식사업을, 2012년에는 닭강정업을 따라 하는 패러디 그림입니다. 하나가 잘 되니 그 소문을 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같은 업종에 뛰어들어서 시장이 포화되고, 결국 손님이 줄어들어 모두가 망해버린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그리고 다른 그림은 (원래는 따로 봤던 그림인데 위의 블로그에는 둘이 함께 포함되어있습니다.) 외국에서는 한 사람이 둥근 구를 만들면 다른 사람은 피라미드를 만들어서 누가 잘되는지 경쟁을 해보는데, 한국에서는 한 사람이 구를 만들어서 잘 되면 다른 사람도 구를 만들고, 또 그 사람도 잘 되면 또 다른 사람들도 획일적으로 구를 만들어서 경쟁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위의 SM/JYP/YG 기획사 얘기와 함께 이 에피소드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글을 적다보니 미처 글/그림을 넣지 못했습니다. 또, 싸이의 강남스타일 패러디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재미있기 때문에 따라하고 패러디 동영상을 찍을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개인이 인기를 끌면 TV에서는 그 사람의 모습밖에 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추가한 직후에 페이스북에 올라온 기사도 있습니다. '저예산 독립영화 58편 상영횟수, 광해의 25%뿐'이라는 기사입니다. 획일화 또는 다양성의 실종에 대한 좋은/나쁜 예가 될 듯합니다. 이러다가 대한민국의 모든 산업은 다 망합니다. 다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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