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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 Jeju

짬뽕같은 제주의 하루

오늘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짬뽕같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재료가 합쳐져서 맛있는 짬뽕이 되듯이 이런 저런 사소한 일들이 마구 뒹엉커서 나름 재미있는 하루를 보냈습니다. 일의 시작은 제주에 관한 한 권의 책과 한 개의 페이스북 페이지 때문입니다. 유홍준 교수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7권 제주도편>과 제주의 문화예술행사와 여행지 및 맛집을 소개하는 <LikeJeju>에 소개된 것들을 직접 답사, 체험해보겠다고 길을 나서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잘 아시다시피 유홍준 교수님께서 제주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시면서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문화유적지 및 자연관광지/코스를 설명해줍니다. 그래서 평소에 큰 길로는 자주 다녔지만 미처 깨닫지 못했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대표적인 곳으로는 입도 첫해부터 한 번 들러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매번 그냥 지나쳤던 추사유배지/추모관입니다. 그리고 LikeJeju에서는 최근에 제주도의 맛있는 짬뽕집을 랭킹매긴 적이 있습니다. (참고로 1등은 조천/함덕의 다래향, 공동 2등은 중문의 덕성원과 하효동의 아서원, 그리고 3등은 삼도동/탑동의 천금반점입니다.) 그래서 오늘 추사추모관과 짬뽕 시식을 동시에 하자고 마음 먹고 길을 떠났습니다.

사실 일의 시작은 어제였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어제 사내의 기타동호회에서 MT 및 연주회를 가졌습니다. (전 기타동은 아닙니다.) MT 장소가 함덕해수욕장 근처라서 이때다 싶어서 다래향의 짬뽕을 먹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함덕의 다래향은 지금 내부수리중이라서 영업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어제 밤에 다래향 짬뽕을 먹었더라도 오늘 일이 이렇게 꼬이지는 않았을텐데...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고 제일 먼저 가고 싶었던 곳은 가시리의 따라비오름이었는데, 지난 주에 이미 다녀왔습니다. (따라비오름, 오름의 여왕) 그리고 두번째로 가고 싶었던 곳은 대정의 추사유배지/추모관입니다. 대정에 가는 김에 대정향교, 방주교회, 물/바람/돌박물관 등의 주변 관광지도 들러보고 GET6 때 여행할 수월봉에도 다녀올 계획이었습니다. (지금 GET 이전에 여행스팟을 공유받아서 미리 여행지에 대한 기대치를 높여줄 글을 적을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점은 어제 먹지 못했던 짬뽕을 굳이 먹어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대정에서 가까운 모슬포에 있는 홍성방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홍성방도 해물짬뽕으로 유명하다고 예전부터 소개받았기 때문에 한번쯤은 가보고 싶었던 곳입니다. 대정의 추사유배지를 둘러보는 일은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습니다. (입장료가 대인 500원이고, 제주도민은 신분증 확인 후 무료입장입니다.) 추모관[각주:1] 주변에 오리지널 제주 돌하르방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참고. 현재 47개의 돌하르방이 남아있는데, 2개는 서울에 있는 국립박물관에 있고, 나머지 45개가 제주도의 주요 지역에 흩어져있습니다. 원래는 제주목과 대정, 성읍 등 3곳의 성문 앞에 세워졌던 것들입니다. 제주목 관아 내외, 제주대학교 정문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돌하르방을 볼 수가 있고, 대정의 돌하르방은 모양과 크기가 조금 다릅니다.)

추사유배지를 둘러보고 바로 모슬포로 향했습니다. 홍성방은 모슬포 토요시장이 열리는 입구에 위치해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홍성방도 공사중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주변의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서 밥을 먹고 처음 계획대로 대정항교나 수월봉에 갈까도 생각했지만, 짬뽕에 대한 미련을 쉽게 벌리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위의 라이크제주에 소개된 아서원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중문의 덕성원이 더 가깝지만, 구제주에 있는 분점에서 짬뽕을 먹어봤기에 (물론 본점의 맛이 더 낫다고 알려져있음) 서귀포 지역에 자주 오지도 못하니 그냥 하효동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처음에는 서귀포 시내 또는 서쪽에 위치해있는 줄 알고 깊을 나섰는데, 계속 가다보니 아서원은 쇠소깎 근처에 있었습니다. 쇠소깎은 서귀포의 동쪽 끝에 있습니다. 즉, 제주도 서쪽 끝에 있는 모슬포에서 서귀포 시내를 모두 통과해야지 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길을 나섰으니... (참고로, 아서원 근처의 보목리의 미향이라는 곳도 짬뽕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힘들게 갔지만 짬뽕 맛은 좋았으니.... 제주도의 여느 짬뽕집들은 신선한 해산물을 위주로 해서 해물짬뽕, 굴짬뽕, 전복짬뽕 등이 나오는데, 아서원의 짬뽕은 오히려 육고기가 들어있었습니다. (해산물도 많이 들어있음) 개인적으로 해산물보다는 그냥 고기류를 더 좋아해서 제 입맛에는 그만이었습니다.

서귀포까지 온 김에 또 다른 서귀포의 맛집을 더 가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미 배가 부르기 때문에 바로 더 먹지는 못하겠지만 그냥 집에 가져가서 나중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습니다. 바로 이중섭거리 위쪽에 있는 시장 내에 위치한 하효통닭입니다. 지난 번 GET5 때 두점 얻어먹은 치킨 맛을 잊을 수가 없어서, 서귀포 현지인에게 물어서 알아낸 곳이 바로 하효통닭입니다. 그래서 통닭을 먹겠다는 일념으로 이중섭거리로 차을 몰았습니다. 여느 토요일과 같이 이중섭거리에는 문화예술인들이 모여와서 벼룩시장을 펼쳐놓았습니다. 시장에도 북적이지는 않았지만 많은 이들이 장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음지도를 보면서 찾아간 하효통닭은 '10일부터 21일까지 휴무'라는 안내문구만이... 함덕의 다래향, 모슬포의 홍성방, 그리고 서귀포의 하효통닭까지... 3단 콤보의 멘붕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예정했던 제주도 서쪽 여행 및 GET6 프리뷰 블로깅은 그냥 포기하고 서귀포의 홈플러스에 들렀다가 한라산 성판악을 경유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여행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여행을 계획할 때의 설레임과 떨림이 참 좋습니다. 그러나 막상 여행을 시작하면 이런저런 문제들이 터져나오고 계획했던 대로 잘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돌발상황들이 여행을 더 재미있게 만들어줍니다. 만약 다래향의 짬뽕, 홍성방의 짬뽕, 그리고 하효통닭을 먹었다면 그곳의 그것에 대한 제 갈망이 바로 식어버릴 겁니다. 그런데 그것들을 한 번에 얻지 못했기 때문에 조만간 다시 시도를 해볼 겁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한번에 얻을 수는 없습니다. 너무 쉽게 얻었다면 기대했던 기대치를 바로 충족시키지 못하고, 또 그 후의 진한 아쉬움도 남길 수 없습니다. ... 그래서 제가 언제부턴가 (외국) 여행을 가기 전에 그곳에 관한 여행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고 떠나는 듯합니다.

이중섬거리를 걸으면서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중섭은 단지 1년을 제주/서귀포에 기거했을 뿐인데, 지금 그가 살았던 지역에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생기고 또 중섬이라는 이름/브랜드를 기반한 생활터전을 만들어놓았는데, 나는 벌써 입도 5년차인데 이곳에 어떤 흔적을 남겨놓았나?'라는 조금은 상실감과 아쉬움에 대한 생각이 깊었습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님의 대표작인 세한도

세한도의 초가집 벽면에 뚤린 둥근 구멍이 추사추모관에 형상화되어있다.

유배지의 초가지붕

승효상님의 추사추모관. 외관은 심플하지만 세한도의 초가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추사의 글씨처럼 더 하지도 덜 하지도 않음.

대정의 돌하르방.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돌하르방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 크기도 조금 작고...

추사추모관을 중심으로 3개의 관광코스가 개발되어있습니다. 제주도에는 올레 21+x코스도 있지만, 한라산둘레길이나 오름둘레길 등과 같이 다양하게 걸을 수 있는 곳이 많습니다. 이런 길들을 모두 모아서 '길모아'라는 서비스를 제공해줘도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좋을텐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서원의 짬뽕. 보기에는 그냥 허접해보이지만 맛은 과히... 직접 맛보지 않은 이에게 어떻게 글로 그 맛을 표현하겠습니까?


  1. 추사추모관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건축가이신 승효상님의 작품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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