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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실패

Gos&Op 2012.04.23 0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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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과학에 재미있는 실험이 있습니다. 바로 아래의 그림에서 가운데 두 선의 길이 중에 어느 것이 더 긴가?에 대한 질문/실험입니다. 뭘러리어의 도형 Muller-Lyer figure로 알려진 문제입니다. 길이가 같은 두 선이지만 양끝의 꺽세 <, > 때문에 두 선의 길이가 달라보이는 현상, 즉 인지적 착각 congnitive illusion을 잘 설명해주는 그림입니다. 이미 이 실험에 대한 사전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백에 백은 두 선의 길이가 같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제가 아래의 그림에 한가지 트릭을 심어놓았습다. 실제로 두 선의 길이가 같을까요?

뮐러리어의 도형. 인지적 착각을 잘 설명해주는 그림.

아래의 그림은 위의 그림에서 꺽세를 제거한 것입니다. 그리고 가이드선이 표시되었듯이 실제로 두 선의 길이가 다릅니다. (너무 많이 다르게 하면 위의 그림에서 바로 표시가 날 것같아서 조금만 달리 했습니다.) 만약 뮐러리어 도형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이 순전히 자신의 감각에만 의존했던 사람들이라면 아래쪽 선이 더 길다고 말했을 것이고, 그들은 옳은 답변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뮐러리어의 도형이나 인지적 착각 등에 대한 배경지식을 가진 이들이라면 두 선의 길이가 같다라고 대답했을테고, 그들은 틀린 답을 말한 것입니다.

뮐러리어 도형에서 꺽세를 제거한 그림. 실제 두 선의 길이를 다르게 그려놓았다.

비슷한 실험으로 아래의 그림과 같이 배경색 (흰색 vs 검은색)에 따른 회색의 밝기 차이를 인지하는 실험도 있습니다. 같은 명도의 회색이지만 검은 배경 위의 회색이 흰 배경 위의 회색보다 더 밝아보이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위의 뮐러리어의 도형에서와 같이 실제 아래 그림에서도 회색의 명도를 일부러 달리해두었습니다. 인지적 착각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는 이들이라면 분명 두 원의 명도가 같다라는 틀린 답을 했을 것입니다.


배경색에 따른 회색의 밝기 실험. (실제 회색의 밝기가 다르게 해놨음.)

지금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을 읽으면서 실제 선분의 길이가 다르고 색상/명도가 다른 경우에도 사람들은 길이와 명도가 같다라고 답변을 할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물론 책에서는 인지적 착각, 즉 보는 것과는 달리 두 선분의 길이가 같고 두 원의 명도가 같다는 것을 시스템1과 시스템2를 설명하기 위해서 예시를 내세우고 있음. 그러나 저는 실제로 둘이 달랐을 때는 어땠을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간혹 인지적 착각을 역이용한 (실제 다른 걸 보여주면서 인지적 착각을 일으킨 것처럼 속이는) 유머/패러디도 있습니다.)

전문성을 갖는다는 것, 많은 (배경) 지식을 갖는다는 것은 멋진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전문성 또는 지식 때문에 실제 사물과 현상에 대한 편견을 가지게 되지는 않을까요? 위의 그림에서 처럼 실제로 다른데, 그냥 조금 알고 있는 알량한 지식 때문에 둘이 같다라는 틀린 답을 내릴 가능성 또는 그런 현상이 없는 걸까요? 이런 현상을 그냥 지식/전문성의 실패, 함정, 편견 등으로 부르고 싶습니다. 경험이 쌓이고 지식이 쌓이면서 스스로 더 완벽해지고 있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역으로 그런 지식과 경험이 사람들의 사고의 틀로 작용해서 더 넓게 볼 수 있는 것을 좁히고, 더 자세히 볼 수 있는 것을 대강 보도록 만들지는 않을까요? 전문성, 지식,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든 문제에서 최고는 아닌 것같습니다. 그리고 경험이 자만을 낳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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